영화 이야기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페이트리어츠 데이(Patriots Day)


타미(마크 왈버그)가 보스턴 마라톤 경비를 하고있다.

2013년‘보스턴 마라톤’폭탄 테러 실화


2013년 보스턴의 ‘애국자의 날’ 마라톤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허구를 섞어 긴장감 있고 또 기능적으로 잘 연출한 액션 스릴러로 아드레날린이 상승하는 박력을 만끽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영화다. 액션 전문의 피터 버그 감독과 건실한 배우 마크 왈버그가 세 번째로 손잡고 만든 영화로 둘의 이전 영화는 ‘로운 서바이버’와 올 해 나온 ‘딥 워터 호라이전’.
이 영화는 가공할 재난을 당한 보스턴 시민들과 도시의 경찰을 비롯한 법집행자들의 강인한 시민정신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한데 제목 그대로 미국적인 애국 냄새가 지나치게 나 다소 버겁다. 그러나 고강도의 스릴을 갖춘 튼튼하게 만들어진 팬들의 호응을 받을 영화다.
영화는 마라톤 몇 시간 전부터 시작해 경기 중 폭탄이 터지면서 도시가 아수라장을 이루고  이어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는 경찰과 FBI의 긴박한 수사과정으로 이어진다. 얘기는 테러 생존자들과 수사관들 그리고 목격자들과 형제 테러리스트를 찾아다니면서 진행되는데 주인공은 허구 인물인 보스턴 경찰의 사전트 타미 선더스(왈버그). 타미의 현명한 아내로 미셸 모나핸이 나오나 장식용.
타미는 경험이 많은 형사였으나 근무 중 다리를 다쳐 휴직했다가 아직도 절름거리는 상태에서 마라톤 경비근무를 맡아 심기가 불편하다. 이어 차르나에프 형제가 마라톤 참관 인파 속에 남겨둔 사제 폭탄이 터진다. 경찰에 비상이 걸리고 고지식한 FBI요원 리처드(케빈 베이컨)가 수사 책임자로 파견돼 수사본부를 설치한다.
이와 별도로 타미는 자기 경험을 살려 테러 부상자들과 목격자들을 일일이 면담하면서 범인 추적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신속히 사건을 해결하려는 보스턴경찰국 커미셔너 에드(잔 굿맨)와 신중을 기하는 리처드 간에 마찰이 인다. 
범인들의 도주와 경찰의 추적이 숨 막히게 긴박감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도주하는 차르나에프 형제가 중국인 청년 던 멩(지미 O. 양)의 차를 카재킹 한 뒤 장시간 함께 타고 달아나는 부분이 서스펜스 가득하다. 그리고 범인들이 보스턴 인근의 작은 마을 워터타운으로 도주하면서 이 마을 경찰의 베테런 사전트 제프리(J.K. 시몬스가 잘 한다)가 수사에 나선다.       
액션과 스릴과 서스펜스를 일사불란하게 구사하면서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버그의 연출이 탁월한데 다소 미흡한 점은 타미의 역이 너무 밋밋하게 묘사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타미의 개성과 특성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 음악과 촬영(특히 공중촬영)도 좋다. R. CBS Films/Lionsgate.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패신저스(Passengers)


짐(오른쪽)이 우주유영을 하기 전 오로라와 대화하고있다.

고장난 우주선, 90년이나 일찍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


비행하다 고장이 난 우주선에 단 둘이 남은 남녀의 생존투쟁과 사랑을 그린 액션과 스릴을 약간 겸비한 공상과학 로맨스영화로 재미는 있으나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와 톤이 아주 다르다. ‘이미테이션 게임’을 만든 노르웨이 감독 모텐 틸덤이 연출하고 두 빅스타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가 나오는데 스탠리 쿠브릭의 ‘2001:우주 오디세이’와 ‘샤이닝’ 그리고 맷 데이먼이 나온 ‘화성인’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많다.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를 만들고 프랫과 로렌스라는 흥행보증 수표와도 같은 인기배우가 나오는 영화치곤 평범한 수준이기는 하나 특수효과를 비롯해 보고 즐기기엔 큰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인간이 거주지로 만든 외계의 식민지 행성 홈스테드로 가던 우주선 아발론이 비행 중 유성들과 충돌하면서 컴퓨터가 고장 난다. 우주선에는 258명의 승무원들과 5,000명의 승객들이 동면상태로 탑승중이다. 컴퓨터가 자체 수리를 하는 동안 미캐닉인 승객 짐 프레스턴(프랫)이 누운 누에고치 모양의 탱크에 고장이 나면서 짐이 깨어난다.
짐은 처음에 목적지에 도착한 줄 착각하는데 알고 보니 도착일 보다 90년 먼저 깨어났고 인간은 달랑 자기 혼자. 슬픔과 좌절과 분노 그리고 공포와 고독에 시달리는 짐의 유일한 낙은 무표정의 익살 맞은 로버트 바텐더 아서(마이클 쉰).
그러면 로렌스의 역인 오로라 레인은 어디서 왔는가. 오로라가 후에 자신이 동면상태에서 깨어난 이유를 알게 되면서 별 얘기 없이 진행되던 영화가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추게 된다. 망망대해 우주를 나르는 고장 난 우주선에 신체건강하고 잘 생긴 젊은 두 남녀가 있으니 둘이 사랑에 빠질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모든 러브 스토리가 다 그렇듯이 둘 사이에도 갈등이 인다. 갈등의 계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서다.
후반 들어 영화가 신파조로 기우는데 볼만한 것은 무중력 상태의 수영장의 물에 갇힌 오로라의 모습을 비롯해 우주유영 등을 찍은 특수효과. 프로덕션 디자인도 좋다. 그러나 로렌스와 프랫의 연기는 무덤덤하고 둘 사이의 콤비도 화끈하진 못하다. 오락용이긴 하나 다소 심심하다. 로렌스와 프랫은 영화 홍보 차 최근 한국엘 다녀왔다. PG-13. Columbia.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시계’와‘에디 아빠의 구애’


올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연말 할러데이 시즌에 잘 어울릴 두 편의 영화를 선물로 보낸다. ‘시계’(The Clock·1945·사진)와 ‘에디 아빠의 구애’(The Courtship of Eddie‘s Father·1963).  모두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또 우습고 선한 영화들로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훈훈해져 가족이 모여 앉아 보기엔 안성맞춤인 클래식들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다 할리웃 황금기 명감독이었던 빈센트 미넬리가 만들었다. 뮤지컬과 코미디와 멜로드라마가 장기인  미넬리의 영화는 대부분 온순하고 편안하고 로맨틱하며 또 아늑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미넬리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밴드  왜건’ 및 ‘지지’ 등 명작 뮤지컬을 많이 만든 감독으로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삶의 열망’ ‘신부의 아버지’ ‘달려오는 사람들’ 및 ‘샌드파이퍼’ 등이 있다.
MGM작인 ’시계‘는 전쟁 중인 1945년에 만든 영화로 가수인 주디 갈랜드의 첫 드라마요 주연영화. 갈랜드가 영화에 적극적으로 나오려고 한 이유도 노래를 안 불러도 됐기 때문이다. 순진하고 깨끗한 이 영화는 뉴욕(컬버시티의 MGM 스튜디오에서 찍었다)의 펜스테이션에서 시작된다. 복잡한 퇴근길의 역 계단에서 앨리스(갈랜드)가 발을 헛디뎌 구두의 힐이 꺽어지며  뒤뚱거리는 것을 이틀간 휴가를 나온 군인 조(로버트 워커-히치콕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에서 킬러로 나온다)가 부축하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조가 구두수선점에서 앨리스의 구두를 수선해주자 앨리스는 조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뉴욕이 처음인 조는 갈 곳이 특별히 없다고 하자 앨리스는 집에 가는 길에 조에게 관광안내를 한다. 여기가 센트럴팍이요 저기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이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앨리스를 뛰어 따라온 조는 앨리스에게 저녁데이트를 신청한다. 애스토호텔(타임스 스퀘어 근방에 있던 이 호텔은 지금은 철거되고 오피스빌딩이 섰다)의 시계 아래가 약속장소.
약속 장소에서 만난 둘은 저녁을 먹고 데이트를 하다가 앨리스가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밤새 우유배달차를 타고 새벽까지 데이트를 즐긴다. 아침이 되어 출근인파로 붐비는 서브웨이에서 조와 앨리스는 사람들에 밀려 서로를 잃어버린다. 이를 어쩌나 둘은 상대방의 성도 모르는 처지니 어디서 서로를 찾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조를 측은히 여긴 기마경찰이 조에게 너희 둘이 처음 만난 곳에 가보라고 조언, 펜스테이션으로 달려간 조가 역시 역으로 자기를 찾으러 온 앨리스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그리고 조는 앨리스에게 구혼을 한다. 둘이 결혼하기 까진 또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야하는데. 신랑신부가 된 조와 앨리스는 초야 후 아침을 먹고 조는 다시 전장으로 나간다. 영화가 순진하고 깨끗해 보기 좋다.
뉴욕이 제 3의 인물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조와 앨리스의 첫 데이트 장소인 애스토호텔의 큰 시계와 함께 펜스테이션 안내소 위의 큰 시계가 영화제목을 뚜렷이 강조한다. 그런데 펜스테이션의 시계가 그랜드 센트럴스테이션의 시계를 닮았다.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뉴욕에 갔을 때 펜스테이션에 찾아가 큰 시계를 한참동안 쳐다봤었다.
이 영화 만들기 전 해에 역시 갈랜드를 써 빅히트작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를 감독한 미넬리와 갈랜드는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들의 딸이 가수요 배우인 라이자 미넬리다.    
‘에디 아빠의 구애’는 8세난 에디(론 하워드-‘뷰티플 마인드’로 오스카상을 탄 감독)가 홀아비인 아버지 탐(글렌 포드)의 중매쟁이 노릇을 하는 로맨틱 코미디로 미국의 황금기인 1960년대 중상류층 시민들의 만사 쾌적한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아들 에디를 극진히 사랑하는 탐은 상처 후 이 여자 저 여자와 교제를 하나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한다. 탐 외에 에디와 집안일을 정성껏 돌보는 사람이 가정부 리빙스턴 부인(로버타  셔우드). 에디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고 돌보는 또 다른 여자가 탐의 아파트 앞에 사는 아름다운 이혼녀 엘리자베스(셜리 존스). 에디도 엘리자베스를 자기 어머니처럼 좋아한다. 그런데 탐과 엘리자베스는 서로 친하면서도 의견 대립이 잦다.  
탐이 부유한 사교계 여자 리타(디나 메릴)와 본격적으로 교제를 하면서 결혼할 의사를 에디에게 알리자 에디의 고민이 시작된다. 에디는 리타가 무조건 싫은 것이다. 그리고 리타도 에디와 사귈 생각이 없다. 결국 탐이 냉정한 리타를 버리고 에디를 선택하면서 에디는 그 동안 궁리해온 아버지 결혼시키기 작전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에디의 새 어머니가 될까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제74회 골든 글로브 각 부문 후보작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등 총 6개 분문 후보에 오른‘문라이트’


지난 12일 발표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수여하는 골든 글로브상 각 부문 후보의 특징은 흑인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한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많다는 점이다.
주 조연을 비롯해 연기상 후보에 오른 이들은 ‘울타리’(Fences)의 덴젤 워싱턴과 바이올라 데이비스, ‘문라이트’(Moonlight)의 마헤르샬라 알리와 네이오미 해리스, ‘러빙’(Loving)의 루스 네가 및 ‘히든 피겨즈’(Hidden Figures)의 옥타비아 스펜서 등 모두 6명이다. ‘문라이트’로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함께 오른 배리 젠킨스도 흑인이다. 또 ‘라이언’(Lion)으로 남우 조연상 후보에 오른 데브 파텔은 인도계 영국인이다.
이 밖에도 파렐 윌리엄스 등이 작곡한 ‘히든 피겨즈’의 음악과 스티브 원더 등이 작곡한 만화영화 ‘싱(Sing)’의 노래 ‘페이스’(Faith)도 각기 해당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가히 흑인들의 잔치라 부를만한데 2년 연속 연기상 부문에서 흑인이 제외돼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비판을 받은 아카데미가 내년 오스카상 후보발표에서 HFPA의 선례를 따를지 궁금하다.
이번 발표의 또 다른 특색은 강한 내성과 독립심을 지닌 여성위주의 영화들이 여러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는 것. 음정과 박자가 전연 맞지 않게 노래를 부르는 뉴욕 사교계 여성이 이에 불구하고 자비로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실화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와 외아들을 파격적으로 키우는 자유사상을 지닌 독립적인 홀어머니의 드라마 ‘20세기 여자’(20th Century Woman), 며칠 전 작고한 존 글렌의 우주비행에 큰 기여를 한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드라마 ‘히든 피겨즈’ 및 워싱턴의 여자 로비이스트의 얘기 ‘미스 슬로운’(Miss Slone) 등이다.
HFPA는 작품과 남녀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HFPA는 매년 상을 다양한 작품에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경향이 있는데 올 해도 마찬 가지. 특히 올 해는 작품상 후보에 오른 많은 영화들이 메이저가 아닌 독립영화사들의 것들이다.
모두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최다 후보작이 된 ‘라 라 랜드’(La La Land)와 이에 이어 총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른 ‘문라이트’ 및 총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he Sea)등이 다 독립영화사 작품들이다. 이 세 영화는 오스카상 경쟁에서도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됐다. 이들에 이어 총 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라이언’과 텍사스의 형제 은행강도와 이를 추적하는 텍사스 레인저(제프 브리지스)의 현대판 웨스턴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도 마찬 가지.
이 영화들은 작은 규모의 성인용 영화들로 비평가들의 평에 의해 흥행의 성패가 달린 영화들이다. 이들은 이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앞으로 흥행 호조가 순풍에 돛을 올린 격이 됐다.
수상 후보 발표 때마다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뜻밖에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과 배우들이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폭력적이요 상스럽기 짝이 없는 ‘데드풀’(Deadpool)과 주연배우 라이언 레널즈가 각기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이와 함께 그 누구도 후보에 오르리라고 짐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전쟁의 개들’(War Dogs)의 주연배우(뮤지컬/코미디) 조나 힐. 이라크전쟁의 와중에 무기를 팔아 떼돈을 번 두 젊은이의 액션 코미디 드라마인 이 영화는 평과 흥행이 다 신통치 못해 힐의 후보 선정이 한층 더 화제가 되고 있다.
HFPA로부터 완전히 무시를 당한 두 베테런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코르세지.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탐 행스가 주연해 호평과 함께 빅히트한 여객기 사고영화 ‘설리’(Sully)와 스코르세지의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으로 17세기 일본에서 핍박을 받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드라마 ‘침묵’(Silence)도 외면을 받았다.
외면을 당한 또 다른 베테런들은 워렌 베이티와 로버트 드 니로. 베이티가 감독하고 하워드 휴즈로 나온 ‘룰스 돈 어플라이’(Rules Don‘t Apply)는 그가 1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작품으로 영화사 사장이었던 휴즈가 신인으로 발굴한 앳된 여배우 역의 릴리 칼린스가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 전부. 그리고 ‘코미디언’(The Comedian)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나와 상소리를 침 뱉듯 하는 로버트 드 니로도 제외됐다.
이들과 달리 할리웃의 망나니로 취급받아온 멜 깁슨은 자기 작품이 세 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그가 감독한 태평양전쟁을 다룬 실화 ‘핵소 리지’(Hacksaw Ridge)가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 감독 및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패션디자이너 탐 포드가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야행성 동물’(Nocturnal Animals)로 감독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작은 이변. HFPA가 사랑하다시피 하는 메릴 스트립은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로 주연상후보에 올랐는데 이번으로 총 30번째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스트립은 내년에 1월에 열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받는다.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2017년 1월 8일 지미 팰론의 사회로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다. NBC-TV가 전 세계로 생중계 한다.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 등 총 7개 분문 후보에 오른‘라라랜드’


<골든 글로브상 각 부문 후보 영화들>
▶작품(드라마)
‘핵소 리지’ ‘헬 오어 하이 워터’ ‘라이언’-어릴 때 길을 잃은 뒤 호주에 입양된 고아가 25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감상적인 드라마. ‘바닷가의 맨체스터’-가족의 처참한 사고 후 폐인처럼 살고 있는 남자의 후유증과 갱생의 드라마. ‘문라이트’-마이애미의 달동네에 사는 흑인 남자 동성애자의 갈등과 자아 인식을 세 시간대로 나누어 그렸다.

▶여우주연(드라마)
에이미 애담스-지구에 도착한 외계인과 소통하려고 애쓰는 언어학자의 드라마 ‘도착’(Arrival) 제시카 채스테인(미스 슬로운) 이자벨 위페르-강간당한 여사장의 후유증과 변태적 성적 호기심 그리고 반격을 그린 프랑스영화 ‘엘르’(Elle) 루스 네가-흑백결혼이 불법이던 버지니아주에서 백인 남자와 결혼한 흑인여자와 남편의 투쟁실화 ‘러빙’. 나탈리 포트만-케네디대통령 암살 작전과 직후의 재클린 케네디의 이야기 ‘재키’(Jackie)

▶남우주연(드라마)
케이시 애플렉(바닷가의 맨체스터) 조엘 에저턴(러빙) 앤드루 가필드(핵소 리지) 비고 모텐슨-숲 속에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히피 아버지의 드라마 ‘캡튼 팬태스틱’(Captain Fantastic) 덴젤 워싱턴-한과 분노에 묻혀 사는 피츠버그의 쓰레기 수거원의 드라마 ‘울타리’

▶작품(뮤지컬/코미디)
‘20세기 여자’ ‘데드풀’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라 라 랜드’-옛 할리웃과 뮤지컬에 바치는 로맨틱한 찬미. ‘싱 스트릿’(Sing Street)-1980년대 더블린의 14세난 소년이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밴드를 급조한다.

▶여우주연(뮤지컬/코미디)
엠마 스톤(라 라 랜드) 릴리 칼린스(룰즈 돈 어플라이) 헤일리 스타인펠드-여고 3년생의 성장기 ‘에지 오브 세븐틴’(Edge of Seventeen) 아넷 베닝(20세기 여자) 메릴 스트립(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남우주연(뮤지컬/코미디)
칼린 패럴-독신자가 45일 안에 새로운 짝을 못 찾으면 동물이 되는 우화 ‘랍스터’(LObster) 라이언 가슬링(라 라 랜드) 휴 그랜트(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조나 힐(전쟁의 개들) 라이언 레널즈(데드풀)

▶감독
데이미언 차젤(라 라랜드) 탐 포드(야행성 동물) 멜 깁슨(핵소 리지) 배리 젠킨스(문라이트) 케네스 로너갠(바닷가의 맨체스터)  

▶여우조연
바이올라 데이비스(울타리) 네이오미 해리스(문라이트) 니콜 키드만(라이언) 옥타비아 스펜서(히든 피겨즈) 미셸 윌리엄스(바닷가의 맨체스터)

▶남우조연
마헤르샬라 알리(문라이트) 제프 브리지스(헬 오어 하이 워터) 사이몬 헬버그(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데브 파텔(라이언) 아론 테일러-잔슨(야행성 동물)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울타리(Fences)


트로이 (왼쪽)과 로즈가 다정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유망한 야구 선수가 몰락한뒤 가족과 겪게 되는 갈등 



심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강력한 극적 경험과 흥분을 느끼게 하는 신맛 나고 유머가 있는 드라마로 호언장담 하는듯한 연기를 하는 덴젤 워싱턴이 감독하고 주연한다. 오거스트 윌슨의 펄리처상과 토니상을 받은 연극이 원작으로 긴 독백과 대화 위주인데 말의 성찬이라 할 만큼 언어가 풍성하고 다양하다.
12일 발표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서 워싱턴이 주연상(드라마부문) 그리고 워싱턴의 아내 로즈역의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조연상 후보로 올랐다. 
1950년대 피츠버그의 쓰레기 수거원인 트로이(워싱턴)는 한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집안의 독재자다. 그 이유는 니그로 리그의 야구선수였던 그가 프로가 되지 못한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트로이는 툭하면 과거의 자랑을 늘어놓는데 남편을 사랑하는 인내심 깊은 로즈는 남편의 이 같은 허세를 못 들은 척하고 지낸다. 트로이도 아내를 매우 사랑한다. 
트로이의 허세와 변덕 그리고 쓴 맛 나는 독설을 들으며 참아야하는 사람은 로즈 외에도 트로이의 고등학생 아들 코리(조반 아데포). 특히 코리는 아버지가 자기 꼴이 될 것을 우려, 풋볼선수가 되려는 것을 막아 아버지와 갈등이 심하다. 트로이는 “이 집의 주인은 나다”면서 독재자처럼 로즈와 코리를 다룬다. 트로이의 허세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사람이 그와 함께 쓰레기를 수거하는 나이 먹은 친구 보노(스티븐 헨더슨).
트로이의 주변 인물들로는 이들 외에 전처소생의 30대의 재즈음악가 라이언스(러셀 혼스비)와 전쟁에서 머리를 다쳐 정신박약자가 된 동생 게이브리엘(미켈티 윌리엄스)이 있는데 라이언스는 아직도 아버지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얘기는 거의 집안에서 진행되면서 상당 부분이 한과 분노와 좌절감에 가득 찬 트로이의 허세와 독설과 욕설과 주정 그리고 독백으로 이어지는데 그의 언어가 고약하고 때론 사악할 정도이나 또 한편으로는 유머가 배어있다. 이어 영화후반에 가서 트로이의 폭탄선언이 나온다. ‘울타리’는 트로이가 짓기를 계속해 미루는 자기 집 작은 뒷마당의 담장을 뜻하면서 아울러 그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를 상징한다. 
연기들이 좋은데 워싱턴의 연기는 거의 과장됐다고 할 만큼 화려하다. 자세와 태도와 걸음 그리고 제스처와 얼굴 표정이 득의양양하고 압도적이다. 이에 반해 데이비스의 자상하고 연민하며 참는 연기가 워싱턴의 오만한 연기와 좋은 대조를 이루며 화합한다. PG-13. Paramount.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네루다(Neruda)


동조자들과 함께 도주하는 파블로 네루다(앞).

1940년대 칠레… 노벨상 수상 시인 네루다의 삶


현재 상영 중인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전과 직후의 재클린 케네디의 모습과 심리상태를 사실과 상상력을 섞어 역사의 재해석 식으로 묘사한 ‘재키’를 연출한 칠레 감독 파블로 라레인의 영화다.
독특한 작품으로 ‘재키’처럼 칠레의 노벨상 수상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삶을 사실과 감독의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 했는데 거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애매모호하고 또 교묘히 직조된 심각하면서도 시치미 뚝 떼는 유머를 곁들인 영화로 작품의 음색이 고르지 못해 다소 혼란을 일으킨다.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1940년대 말. 공산당 출신의 상원의원으로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네루다(루이스 그네코)는 좌파에서 우파로 돌아선 가브리엘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알프레도 카스트로)이 공산당을 불법화 하면서 아내 델리아(메르세데스 모란)와 가까운 지지자들과 함께 지하로 잠적한다.
이어 야심에 찼으나 약간 덜 떨어진 형사 오스카 펠루초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네루다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많은 부분이 오스카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애증과 동경과 환상이 뒤엉킨 일종의 추적자와 도주자의 얘기이다.
오만하고 자기 영광을 마음껏 누리고자하는 민중의 영웅 네루다와 이런 거물을 추적하면서 보잘 것 없는 신분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보고자 하는 오스카(경찰간부와 창녀 사이에서 태어났다)의 관계가 영화의 중심 주제로 둘은 영화에서 거의 만나지 않으면서도 마치 몸이 붙은 쌍둥이처럼 연결된다.
잠복하고 도주하는 네루다는 아내와 동조자들을 돌려보내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안데스 산맥을 넘어 달아는데 그 뒤를 오스카가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그러나 오스카는 자신의 흔적을 일부러 남기고 도망가는 네루다의 은신처에 늘 한발 뒤 늦게 도착한다.
이런 과정에서 오스카는 네루다의 시 속의 인물처럼 변신한다. 어떻게 보면 네루다와 오스카는 한 인물로 둘이 혼연일체가 된다. 그네코의 밉상스러울 정도로 오만한 연기와 멕시코 배우 베르날의 서푼짜리 같은 어수선한 연기가 조화를 잘 이룬다. 희한한 영화다. R.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LAFCA의 베스트




필자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는 2016년도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박찬욱 감독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음모와 배신과 욕망 그리고 욕정이 판을 치는 드라마 ‘아가씨’(The Handmaiden)를 선정했다. ‘아가씨’는 이 밖에도 최우수 미술부문에서도 선정됐다.
LAFCA가 한국영화에 상을 준 것은 ‘마더’의 김혜자가 최우수여배우로 뽑힌 것이 처음이었고 이어 윤정희가 ‘시’로 역시 최우수여배우로 선정된바 있다. LAFCA는 차점작과 차점자들도 발표하는데 외국어영화 부문의 차점작은 독일영화 ‘토니 에르드만’(Toni Erdmann)이고 미술부문 차점작은 ‘라 라 랜드’.
최우수작품으로는 마이애미의 리버티시티 인근을 무대로 한 젊은 흑인 동성애자의 삶을 세 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그린 가슴에 와 닿는 드라마 ‘문라이트’(Moonlight^사진)를 뽑았다. 이 영화는 이 밖에도 배리 젠킨스가 최우수감독으로 그리고 겉으로는 터프하나 마음은 인자한 드럭 딜러 역의 마헤르샬라 알리가 최우수 조연남우로 각기 선정됐고 촬영부문에서도 최우수작으로 뽑혀 4관왕이 됐다.
최우수영화 차점작은 LA를 무대로 한 향수 짙은 뮤지컬 ‘라 라 랜드’(La La Land)이고 감독부문 차점자는 ‘라 라 랜드’의 데이미안 차젤, 조연남우 차점자는 마틴 스코르세지의 17세기 일본을 무대로 한 엄숙한 종교영화 ‘침묵’(Silence)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을 핍박하는 일본의 고위관리 역의 이세이 오가타 그리고 촬영부문 차점작은 ‘라 라 랜드’.
최우수여배우로는 강간을 당한 여자의 후유증과 심리상태를 그린 ‘엘르’(Elle)와 느닷없이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대학 철학교수의 갈등과 자기치유를 묘사한 ‘딩스 투 컴’(Things to Come)에 나온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선정됐다.
이로써 위페르는 오스카상 부문에서도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그렇게 되면 노련한 연기파 위페르가 처음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이 부문 차점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크리스틴’(Christine)의 레베카 홀.
최우수 남자배우로는 ‘패터슨’(Patterson)에서 뉴저지주 패터슨의 버스운전사로 버스를 몰면서 지켜본 삶의 면모를 아름다운 시로 쓰는 패터슨(이름이 도시 이름과 같다)으로 나와 조용하고 깊은 연기를 한 애담 드라이버가 선정됐다. 차점자는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의 케이시 애플렉.
최우수 조연여배우로는 3편의 단편모음식의 ‘어떤 여자들’(Certain Women)에서 몬태나주의 말목장의 고독한 레즈비언 일꾼으로 나온 아메리칸 인디언의 피가 섞인 신인 릴리 글래드스톤이 뽑혔다.
LAFCA는 이렇게 본 사람들이 별로 없는 영화의 주인공을 뽑는 버릇(?)이 있는데 지난 2004년에도 ‘다운 투 본’의 베라 화미가를 최우수여배우로 뽑아 화제가 됐었다. 화미가는 이로 인해 빅 스타가 됐는데 글래드스톤도 이로써 스타로서의 앞길이 트이게 됐다. 이 부문 차점자는 ‘바닷가의 맨체스터’의 미셸 윌리엄스.
최우수 기록영화는 흑인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눈으로 본 미국의 인종차별을 다룬 ‘나는 너의 흑인이 아니다’(I Am Not Your Negro)가 선정됐는데 차점작은 ‘O.J.:미국산’.
최우수 각본으로는 ‘랍스터’(The Lobster)가 뽑혔다. 콜린 화렐과 레이철 바이스가 나오는 이 영화는 독신인 사람이 45일 만에 애인을 못 찾으면 짐승으로 변하는 세상의 이야기로 매우 독창적이다. 영화를 연출한 그리스인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가 에프티미스 필립푸와 함께 각본을 썼다. 차점작은 ‘바닷가의 맨체스터’.
편집부문에는 케이블채널 ESPN이 만든 O.J. 심슨에 관한 406분짜리 기록영화 ‘O.J.:미국산’( O.J.:Made in America)이 선정됐다. 미국의 인종문제와 유명세와 미디아 그리고 폭력과 사법제도에 관한 흥미진진한 영화다. 차점작은 ’라 라 랜드‘.
만화영화 부문에는 하야오 미야자키가 세운 스튜디오 기블리 작으로 각기 도쿄와 시골에 사는 10대 소년과 소녀가 서로 몸을 바꾸는 환상적이요 아름다운 일본영화 ‘너의 이름’(Your Name)이 뽑혔다. 음악부문에는 재즈와 스윙과 팝을 골고루 잘 섞은 ‘라 라 랜드’가 뽑혔고 차점작은 ‘재키’(Jackie).
신세대 부문에는 드라마 ‘크리샤’(Krisha)의 주연여우 크리샤 페어차일드와 감독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가 공동으로 선정됐다. 특별상은 고전영화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케이블TV 터너 클래식 무비즈에게 생애업적상은 셜리 매클레인에게 주기로 했다. 올 해 작고한 커티스 핸슨 감독을 기리는 LAFCA의 시상만찬은 1월 14일 센추리시티에서 열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신비한 동물사전’에디 레드메인




어렸을 때 마술에 집착, 뉴트 역 맡아 너무 신나


현재 빅히트 중인 환상모험영화 ‘신비한 동물사전’(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에서 1920년대 뉴욕의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사는 비밀사회에 도착해 모험을 겪는 신비한 동물 연구가 겸 작가 뉴트 스카맨더로 나오는 에디 레드메인(34)과의 인터뷰가 최근 뉴욕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해리 포터’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이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다. 각본도 롤링이 썼다. 
레드메인은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자전적영화 ‘모든 것의 이론’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연기파 슈퍼스타이나 전연 스타티를 내지 않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사람이다. 항상 미소를 짓는 밝고 맑은 사람으로 겸손하고 상냥한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액센트가 있는 발음으로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질문에 유머와 위트를 섞어 속사포 쏘듯이 대답을 했는데 개인적인 물음에는 얼굴에 홍조를 띠어가면서 수줍어했다.    

▶온갖 신비한 동물들이 나오는 이 영화는 상상력을 마음껏 동원해야 되는 작품인데 그에 대해 말해 달라.
“내가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 가장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나는 인형극을 하는 사람과 안무가 등과 함께 상상의 동물들과 얘기를 하고 함께 행동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혼자 상대도 없는데 말하고 행동하자니 때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동물의 교미댄스는 유튜브를 보고 연습했다. 연습기간 동안 난 멍청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역을 선정하는데 과감하게 극과 극처럼 다른 것을 선택하는데.
“이 영화는 각본이 좋아서 역을 맡았다. 뉴트는 영웅적인 사람의 모든 자질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관계가 서툴고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 그의 걸음걸이 등 동작이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의 그 것을 닮았다는 것도 좋았다. 배우의 꿈과도 같은 역이다.”

▶뉴트처럼 동물들을 좋아하는가.  
“내가 어렸을 때 완전히 귀가 먹은 개 다비를 키웠다. 다비는 늘 뛰어다녀 집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곤 했는데 나는 그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난 고양이와 말에 대해선 알레르기반응을 보인다.”

▶생애에서 가장 환상적이요 마법적인 때는 언제였는가.
“한나(33)와 결혼 했을 때와 자난 6월에 딸 아이리스의 출생을 맞았을 때이다.”

▶마법적 힘을 지녔다면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그 건 너무 거대한 물음이다. 단지 이 세상을 보다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뉴욕에 도착한 뉴트는 가방에서 달아난 신비한 동물들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역을 어떻게 맡게 됐는가.
“내 에이전트가 전화를 걸어 데이빗 예이츠(영화의 감독)가 날 만나자고 한다고 말했다. 왜 그러는지 몰랐다. 그 때 조(롤링)는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을 때로 예이츠는 조가 쓴 만큼 내게 내용을 들려줬다. 우린 그러기를 몇 차례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난 얘기에 반해버렸다. 그리곤 오디션도 없이 역을 얻었다. 이어 뉴욕에 와서야 다른 배우들과 함께 오디션 과정을 거쳤는데 내 역을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배우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후 데이빗으로 부터 뉴트역을 잘 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맡은 역들의 대부분은 과거 사람들인데 과거에 대해 특별한 매력이라도 갖고 있는지.
“난 늘 역사를 사랑했다. 내가 역사에 접근한 것은 미술과 건축을 통해서인데 대학에서도 그 것을 공부했다. 미술과 건축의 상관관계야 말로 매력적인 것이다. 난 과거를 사랑하는데 미술을 통해 그 것과 교류한다. 내가 과거 인물 역을 맡을 때면 난 늘 맨 먼저 런던의 국립초상화미술관에 가서 연구를 하곤 한다.”

▶마술에 관심이 있는가.
“난 어렸을 때 마술에 집착했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할머니를 방문할 때면 졸라서 에딘버러에 있는 마술상을 찾아가곤 했다. 따라서 뉴트 역을 맡게 돼 너무 신난다. 할머니도 내가 언젠가는 마술사 역을 하리라고 믿으셨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느낀 감정을 기억하는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14살인가 15살 때 어머니와 함께 왔었다. 밤에 호텔의 21층 방의 커튼을 열자 고색창연한 세인트 패트릭교회가 보였고 그 뒤로 마천루들이 하늘로 솟아 오른 것을 보고 무릎이 얼어붙는 듯한 경이감을 느꼈다. 뉴욕은 에너지와 생동감과 흥분이 가득한 도시다.”

▶이 영화의 속편을 네 편이나 만든다고 하는데 전 편에 다 나오고 싶은가.
“소망사항이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것이 스릴러이자 어두우면서도 멋들어지게 경쾌하고 또 코미디와 함께 인간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속편과 관계없이 이 영화는 혼자서 독립해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해 속편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팬들의 호응 없이 속편이란 무의미하다.”

▶질적으로 우수한 영화가 아닌데도 자꾸만 보게 되는 영화라도 있는가.
“짐 캐리가 나온 ‘마스크’다. 얼마 전에도 또 봤다. 캐리의 연기야 말로 천재나 할 일이다. 그리고 캐리의 다른 영화 ‘덤 앤 더머’도 좋아한다.”

▶어디에서 사는가.
“런던에 산다. 난 그 도시의 에너지를 사랑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장소처럼 역사로 가득 찬 곳이다. 우린 또 시골에 집을 빌려 사는데 런던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지독히 조용하고 아름답다.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광적인 것이어서 조용히 쉴 곳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마법사처럼 사람을 보면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람을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론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 할 때가 많다. 난 사람을 쉽게 믿는데 종종 그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러나 난 늘 마음 문을 열어 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다. 
나보다  아내가 사람 판단을 더 잘한다.” 

▶내년에 35세가 되는데 생일 축하를 어떻게 할 예정인가.
“난 크리스마스 얼마 후인 1월 6일에 태어나 모두들 내 생일을 잊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와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선물로 일석이조 식으로 축하한다. 그래서 조용하게 보내는 편이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상냥하고 접근하기가 쉬운가.
“솔직히 말해 모르겠다. 매우 정직한 가족을 가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는가.
“나보다 여섯 살 아래인 남동생이 이 책의 열렬한 독자여서 내게도 권해 읽었다. 지금 생각하니 잘 한 일이다.”

▶맡은 역들의 대부분이 국외자들인데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는가.
“어떤 의미에서 우린 다 국외자들이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난 그들에 대해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간다. 뉴트를 비롯해 롤링 작품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국외자들이다.”

▶몹시 바쁜 생활에서 어떻게 한가로운 때를 찾는가.
“다행이도 난 이 영화 후에 다른 영화를 찍고 있지 않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하늘에라도 오른 기분이다. 그러나 배우란 내면에 늘 연기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어 휴식을 취하려면 단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유머감각이 풍부한데 왜 코미디에 안 나오나.
“이 영화에 코미디 요소가 많아 좋아했다. 나의 어머니도 내게 늘 코미디에 나올 의사가 있느냐고 물으신다. 스티븐 호킹도 꽤 우스운 영화다. 그런데 배우들에게 제공되는 각본이란 그들이 성공한 영화와 비슷한 성질의 것이 많아 내게도 자연 심각한 내용의 각본이 많이 제공된다.”

▶코미디를 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
“난 버디 코미디를(두 친구가 찧고 까부는 코미디) 좋아 한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 이후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배우란 떠도는 곡마단원과 같이 외로운 직업이다. 그런데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 혼자가 아니라 팀이 이뤄졌다. 매 경험이 다 특이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특별한 사람과 그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라 라 랜드(La La Land)


세바스찬과 미아(왼쪽)가 황혼 속에 할리웃힐스에서 스윙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황홀하고 아름답고 로맨틱한 뮤지컬 영화


‘라 라 랜드’라는 말은 화려 사치한 분위기에서 “니나노” 하면서 사는 영화인들의 동네 할리웃을 비웃는 말이나 이 영화는 그 조롱의 단어를 빌려 옛 할리웃의 영광과 화사함 그리고 영화와 음악에 대한 정열을 찬양한 헌사다.
할리웃 황금기 많이 만들어진 뮤지컬을 그리워하고 또 재현한 내용과 연기 및 촬영과 조명과 의상 그리고 프로덕션 디자인 등이 다 빼어난 로맨틱 뮤지컬이다. 프레드 애스테어와 시드 채리스 그리고 진 켈리와 레즐리 커론 커플의 기막히게 감미롭고 로맨틱한 콤비와 그들의 춤과 노래를 생각나게 만드는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내는 영화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노스탤지아가 가득한 황홀하고 아름답고 로맨틱하며 또 가슴 싸하게 만드는 진짜 명품으로 본격적인 뮤지컬이 외면을 받는 요즘에 이런 영화를 만든 데미안 차젤 감독(각본 겸-‘윕래쉬’)의 대담성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의 문제점은 과연 이 영화를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젊은 층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 주인공들로 젊은 팬들이 좋아하는 라이언 가슬링과 엠마 스톤을 기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첫 장면부터 화면에 확 빨려들게 된다. LA의 다운타운으로 가는 110번 프리웨이와 연결된 105번 프리웨이의 높고 커브 진 램프가 차량들로 마비된 상태. 기다리다 지친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남녀운전자들이 차 밖으로 나오더니 프리웨이와 차 위에서 빅밴드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직접 현장에서 찍은 이 장면이야 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뮤지컬 신이다. 여기서 두 주인공 세바스찬(가슬링)과 미아(스톤)가 차를 탄 채 스쳐 지나간다. 영화에는 스윙음악과 재즈 그리고 춤과 노래가 많이 나와 눈과 귀가 모두 즐겁다.
워나브라더스 스튜디오 카페 종업원으로 배우 지망생인 미아는 계속해 오디션에 나가나 채택에 안 된다. 그리고 콧대 높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술집과 식당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손님에게 불량하구 굴어 해고된다. 둘은 옛날이나 요즘에도 할리웃에 가면 얼마든지 보게 되는 이 동네서 성공하려고 몸부림치는 젊은이들.    
여러 해에 걸쳐 4계절을 지나 진행되는 내용은 두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어 문제가 생기면서 갈등이 이는 젊은 남녀에 관한 로맨스영화의 틀을 그대로 따랐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할리웃힐즈의 연예인 저택에서 열린 풀파티에서 처음 만나나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불손하게 군다. 그러나 미아의 아름답고 똘똘하고 세련된 미아에게 반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둘은 이어 불그스름한 황혼 속에 가로등이 로맨틱한 기운을 내는 할리웃힐스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LA를 배경으로 멋진 춤을 춘다. LA가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둘은 커플이 되면서 사랑에 빠져 사는데 미아가 오디션에서 계속해 딱지를 맞자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스스로 각본을 쓰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세바스찬이 성공한 밴드의 멤버가 돼 순회공연차 자주 집을 비우면서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스톤과 가슬링이 직접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데 프로 같지 않아 더 정답다. 가슬링은 직접 피아노도 친다. 그리고 둘의 콤비가 찰떡궁합이고 연기들도 잘 한다. 미풍처럼 경쾌하면서도 우수가 봄비처럼 배인 영화로 음악과 안무 그리고 색깔과 화면 구성 등도 다 훌륭하다. PG-13. Lionsgate.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재키(Jackie)


재키가 TV 방영을 위해  백악관안내를 하고 있다.


케네디 암살 후 아내 재키가 겪은 일을 재구성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전과 직후의 케네디 측근들의 모습 상황을 다큐드라마 식으로 다룬 지적이요 맑은 정신의 흥미 있는 작품으로 재클린 케네디의 눈으로 본 케네디의 죽음과 그 직후의 후유증을 다뤘다. 복잡한 구조를 갖춘 일종의 에세이 스타일의 영화로 시각 스타일이 특이하고 우아한데 너무 지적이요 고급이어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런 지적 접근으로 재키의 감정과 마음을 비롯해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칠레감독 파블로 라레인은 역사를 재해석하면서 재키라는 전설적 여자를 인간화 하고 있다. 
케네디 암살 후 매서추세츠주 하이아니스포트 저택에서 기자(빌리 크러덥)가 재키(나탈리 포트만)를 인터뷰 하면서 시작된다. 슬픔과 분노에 찬 재키는 인터뷰의 주도권을 잡는데 이어 장면은 유명한 재키의 백악관 내 가이드 TV촬영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침 떠는 재키가 가는 음성으로 현대판 ‘캐멜롯’을 소개하는 모습이 곱다. 
영화는 에피소드 식으로 마치 직소퍼즐 푸는듯한 구조를 지녔다. 달라스에서의 케네디 암살 직전과 직후의 긴박한 상황, 기내에서의 린든 존슨 부통령(존 캐롤 린치)의 대통령 취임 선서,케네디의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 재키와 가톨릭신부(존 허트)간의 오가는 재키의 결혼과 삶과 그것들의 의미 그리고 재키가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 등이 묘사된다.
나오는 인물들로는 케네디 대통령(캐스파 필립슨), 재키의 비서이자 친구인 낸시 터커맨(그레타 거윅) 그리고 바비 케네디 법무장관(피터 사스가드).       
‘캐멜롯’의 안 주인에서 갑자가 미망인이 되면서 영광과 꿈과 권력을 한꺼번에 잃은 재키의 고독과 좌절 그리고 분노와 슬픔을 가슴이 아프도록 절실하게 다루면서 전설의 파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이 같은 전설의 실상과 내막을 냉철하게 해부하고 있다.     영화에선 케네디가 좋아하던 뮤지컬 ‘캐멜롯’의 노래가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와 함께 내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깊은 향수에 젖게 된다.                   
훌륭한 것은 포트만의 고상하고 품위 있으면서 절제된 연기. 매우 차분하면서도 빈 틈 없는 알찬 연기인데 이미 ‘흑조’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그가 재키 역으로 다시 후보에 오를 것이 분명하다. 포트만은 뤽 브송 감독의 갱영화 ‘프로페셔날’의 아역 배우 출신이다. 촬영과 음악도 좋다. R.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승객’크리스 프랫




공상과학 액션 스릴러 ‘패신저스’(Passengers)의 주인공 짐 역의 크리스 프랫(37)과의 인터뷰가 7일 베벌리힐스의 한 식당에서 있었다. 수면상태에 들어간 5,0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다른 혹성으로 120년간이 걸리는 비행을 하던 우주선의 컴퓨터가 고장이 나자 승객 중 한명인 짐이 혼자 예정일보다 60년 일찍 깨어나면서 일어나는 얘기로 그의 상대 역 오로라로 제니퍼 로렌스가 나온다. 한편 프랫과 로렌스는 영화홍보 차 12일 한국을 방문한다.
늠름한 체구의 씩씩한 청년 같은 프랫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어가며 유머를 섞어 질문에 대답했는데 액션전문 배우답지 않게 점잖았다. 농담을 하면서도 매우 진지하고 신중했는데 호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 서울 가는 소감을 묻자 프랫은 “나는 정말 기대하고 있으며 흥분에 들떠 있다. 한국은 이번이 처음 방문인데 최근에 함께 일한 병헌(‘매그니피슨트 세븐’에서 공연한 이병헌)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헌이 당신 나라에서 빅 스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바라건대 그를 만나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고 덧 붙였다.
프랫은 “한편으로는 여러 나라에 들러 영화에 관해 얘기하고 또 파는 것이 상쾌한 일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체류 일정이 너무 짧아 그 나라에서의 진짜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프랫은 “호텔에서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하나의 일”이라면서 “그래서 내 일상에서 가장 바쁠 때인 요즘 서울을 가게 된 것은 불운이라고도 하겠다. 잠시 멈춰 서서 장미꽃 냄새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하다”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프랫은 “이번 서울 방문에서도 영화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전부일 것 같으나 잠시나마 머무는 동안 병헌도 만나고 또 한국문화를 가능한 한 많이 경험 하겠다”고 다짐했다.
프랫은 짐과 같이 고독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자신은 고독을 느끼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다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늘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혼자 낚시를 가거나 광야에 나가는 고독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프랫은 이 영화 외에도 ‘가디언스 오브 더 갤락시’ 등 여러 편의 공상과학 액션영화에 나왔는데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것이 독창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얘기보다 특수효과를 더 뽐내는 공상과학영화는 싫어한다고.
짐이 5,000여명의 승객 중 유일하게 깨어난 것에 대해 모든 것에는 그 어떤 목적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내가 깨어난 것도 내가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운명이 어떤 임무를 내게 부여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것이야 말로 신의 은총이라고 덧붙였다.
예정보다 60년이나 빨리 깨어난 것에 비유해 아침 일찍 일어날 때의 기분 상태를 묻자 그는 “난 아침을 좋아 한다”면서 “내 아내가 이 말을 들으면 눈알을 굴리겠지만 난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고 능청을 떨었다.
제니퍼 로렌스에 대해선 칭찬 일색. 제니퍼는 우습고 재미있고 멋있는 여자라면서 그의 존재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으로 곁에 있으면 그의 영혼에 감염이 되게 마련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프랫은 몇 달간 제니퍼와 거의 단 둘이 하루에 16-17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그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우린 만나자마자 즉각적으로 서로 통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무인도에 함께 있을 사람을 고르라면 내 아내(배우인 안나 화리스)와 가족이 먼저고 다음으로 제니퍼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비행기 승객으로서 가장 흥미 있었던 경험에 대해선 15여 년 전 암스테르담에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 30,000 피트 상공의 기내 화장실에서 섹스를 한 것이라고 깔깔대고 웃으면서 고백했다.
영화가 마치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이 나는데 대해선 불가능 한 것은 아니나 자신은 이 영화가 기승전결이 완벽한 하나의 완성품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제니퍼만 나온다면 속편을 열 개라도 만들 것이라고 이죽거렸다. 그리고 영화의 각본을 읽고 즉시로 매료돼 출연에 응했다면서 정말로 멋있고 독창적이요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이어 자기는 ‘메소드 액터’는 아니나 하루의 촬영이 끝나도 역을 집에까지 가지고 가서 아이디어를 곰곰 생각한다면서 자기는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리고 연기란 직업은 삶에 있어 생존의 기술이라면서 배우란 직업은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이 있는 중요한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내가 “당신 한국에 가면 술 많이 먹어야 해. 우리 나라 사람들 술 아주 좋아하지”라고 권주하자 프랫은 “정말이냐”고 반색을 했다. 내가 다시 “술 많이 먹겠다고 약속하지”라고 다그치자 프랫은 “그래 약속할게. 왕창 취해 한국에서의 경험 다  잊을 거야”라며 나와 같이 박장대소 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2월 6일 화요일

‘룰즈 돈 어플라이’워렌 베이티




"일한다는 것, 깨닫지 못 할 때 진짜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할리우드의 총아에서 기인이 되다시피 한 워렌 베이티(79)가 미 역사의 또 다른 기인인 하워드 휴즈로 나온 ‘룰즈 돈 어플라이’(Rules Don't Apply)는 베이티가 ‘타운 앤 컨트리’ 이후 15년 만에 만든 향수 짙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그가 감독(각본 겸)도 했다. 휴즈와 함께 영화사 사장이던 그가 고용한 젊고 예쁜 예비스타 말라(릴리 칼린스)와 말라의 젊은 미남 운전사 프랭크(알덴 에렌라익)의 로맨스와 이들 3인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인데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 영화에는 그의 아내 아넷 베닝이 말라의 어머니로 나온다. 
감색정장을 한 베이티는 나이답지 않게 정정하고 준수한 신사인데 비밀에 싸인 흉물이었던 휴즈 처럼 거의 음흉할 정도로 노련했다. 지적이요 유머와 위트도 있지만 질문에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 대답을 하는 것. 신중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질문에 엉뚱한 소리를 하거니 오리발을 내미는 식의 대답을 했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국인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자 베이티는 “한국엔 안 가봤는데 가보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과거가 그리운가.
“난 1961년에 나온 데뷔작 ‘초원의 빛’이 빅히트하면서 순조롭게 할리우드 생활을 시작한 행운아다. 그래서인지 난 늘 이 영화처럼 과거의 일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초원의 빛’ 성공 이후 난 다른 사람들처럼 영화에 계속해 나오지 않아도 됐다. 버지니아주 침례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여권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에 할리우드에 왔는데 그 때 영화사들은 성적 혁명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뤘다.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선 주저 없이 대응했다(플레이보이로 유명한 자기를 은근히 비꼰 말이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는가.
“난 늘 몇 개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 어느 영화의 첫 아이디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야 이거다’하고 짚이는 것을 만든다. 이 영화도 그렇다. 난 휴즈를 만나진 않았으나 그를 알던 많은 사람을 아는데 모두들 휴즈에 대해 좋게 말하더라. 난 늘 그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다.”

▶왜 영화를 그렇게 뜸하게 만드는가.
“영화 말고 인생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때론 일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할 때 진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난 때로 영화 만드는 일이 마치 구토와도 같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구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가 머리에서 뱅뱅 맴돌고 그런 것이 재미있다가도 그 일로 인해 고문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차라리 모든 것을 구토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베벌리힐스호텔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하워드 휴즈 역의 워렌 베이티.

▶이 영화는 화려한 할리우드에도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감독은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다는 말을 믿는가.
“그렇다. 이유는 묻지 말라.”

▶반세가 동안 할리우드에서 일하면서 감독으로서 또 영화계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명성 때문에 내 삶은 큰 변화를 겪었다. 명성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감독으로 말하자면 난 지금과 6개월 전이 다르다. 늘 변하고 적응해야 한다. 영화계도 디지털과 대규모 개봉 등 큰 변화를 보고 있다. 지금은 개봉일인 금요일과 그 주말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데 예전에는 비평가들의 의견이 영화의 장기 개봉에 큰 영향을 미쳤었다. 자연 감독도 현재의 관객의 취향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와 4자녀와의 관계는 어떤가.
“우린 모두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 아이들과는 협상을 한다. 다 훌륭한 아이들이다. 유명 부모를 가진 아이들의 삶은 쉽지가 않아 난 그들의 사생활 보호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난 완벽한 여자와 결혼했다.”

▶허구인 말라와 프랭크의 로맨스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을 했는가.
“유명 인사의 전기를 영화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허구가 섞여야한다. 단순히 휴즈에 관한 것이라면 난 안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휴즈의 본질만 사용하면서 두 청춘남녀의 사랑을 가미했다.”

▶부모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인가. 
“부모는 다 교육자였다. 아버지는 교육심리학박사였고 어머니는 연기 교사였다. 외할머니는 대학학장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내게 일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바이얼린을 켜는 바람에 나는 서푼짜리 피아니스트가 됐는데 그래서 뉴욕에 빈출했을 때 바에서 피아노를 쳤다.”

▶지나간 인생을 돌아 볼 때 과거와 달리 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없다.”

▶‘초원의 빛’이 한국에서 상영됐을 때 한국의 젊은 여자들은 물론이요 가정주부들까지도 워렌 비티에게 반해 난리가 났었다. 그야말로 열광이었는데 팬들의 그런 광적인 반응을 그리워하는가.
“아니 그럼 한국의 가정주부들이 나로 인해 마음으로 부정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고맙다. 난 팬들의 그런 열광을 처음부터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 

▶할리우드는 감독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난 할리우드를 사랑한다. 할리우드는 나를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리고 이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
“난 늘 몇 개의 영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난 느린데다가 꼭 그것들을 만들 필요성도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이디어 자체로 머물곤 한다. 그리고 내 아내와 아이들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내게 가져다 줘 영화보다는 그들과 함께 할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죽기 전에 하고픈 일은 무엇인가.
“며칠 전에 처음으로 소셜 미디를 이용해봤는데 앞으로 그 것이나 더 해보려고 한다.”

▶명성과 돈이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그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장점은 귀한 것이긴 하  나 조심해 다뤄야한다.”

▶당신은 과거 유명한 바람둥이였는데 재미로 여자들을 즐겼는가.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아무 질문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질문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도 난 안다. 그러나 난 당신 질문이 사실이 아니기에 대답을 거부하겠다.”

▶내년에 80이 되는데 나이란 무엇인가.
“모르겠다. 현명한 대답이 없다.”

▶처음 할리우드에 왔을 때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운이 좋았다.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 빌리 와일더, 프레드 진네만, 샘 골드윈, 데이빗 셀즈닉, 대릴 재넉 등이다. 이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들과 겨루려고 했다.”

▶지구녹화를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무엇이든지 하겠다.”

▶당신은 나르시스트인가.
“각본가로서 그렇다. 작가의 나르시즘은 모델이나 배우들의 그 것보다 훨씬 더 크다.” 
                                                   
----------------------------------------------------------------------------------------------

영화‘초원의 빛’으로 수퍼스타로 부상


제작자요 감독이요 또 각본가이며 배우인 워렌 베이티는 ‘초원의 빛’으로 대뜸 스타가 된 뒤 자신이 제작하고 주연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빅히트하면서 수퍼스타로 부상, 카리스마와 성적매력 그리고 지성과 영화에 대한 정열로 할리우드의 총아가 되었다.
그는 지난 1981년  미국인 공산주의자로 크렘린에 묻힌 존 리드의 실화 ‘레즈’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그의 누나도 오스카상을 탄 배우 셜리 매클레인이다.
골수분자 민주당원으로 한 때 대통령 후보 출마설까지 나돈 그는 모두 ‘인식’을 먹고 사는 정치인과 배우 모두에 적합한 인물. 그러나 베이티 하면 대뜸 떠오르는 단어가 플레이보이.
그는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성행위를 즐기는 정력가로 ‘움직이고 스커트만 둘렀으며 매력만 있다면 워렌은 그것을 가지려고 고심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를 사랑했는데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의 부인 데위와도 염문을 뿌렸다.
베이티와 공연한 여배우는 물론이요 다른 많은 연예인들도 다 그에게 함락됐는데 나탈리 우드, 페이 더나웨이, 골디 혼, 줄리 크리스티, 다이앤 키튼, 마돈나, 브리짓 바르도, 레슬리 커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진 시버그, 다이내나 로스 등이 그 일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라이언(Lion)


사루가 25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자기 집을 찾고 있다.

5살 때 길 잃은 인도 소년… 25년만에 고향에


인도의 5세난 소년이 집을 떠나 길을 잃은 뒤 25년 만에 부모와 상봉하는 믿지 못할 실화로 감정적이요 민감하며 사려 깊고 또 다소 감상적인 영화다. 끝을 알고 있어 다소 극적 긴장감이나 스릴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감동적이요 따스한 내용과 훌륭한 연기 그리고 잘 개발된 인물과 성격 묘사를 비롯해 뛰어난 촬영과 음악 등이 다 좋은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즐길 연말영화 다. 후반에 가서 얘기를 반복하는 결점은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사루 역을 역시 인도가 무대인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인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나온   데브 파텔이 맡은 데다 영화 첫 부분에서 ‘슬럼독’처럼 인도의 빈민촌의 각박한 삶이 그려져 자연 그 영화를 연상하게 된다.
자기를 몹시 사랑하는 형 구두(압히셱 바라트)와 야산에서 돌을 나르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와 인도 중부의 작은 빈민촌에 사는 어머니와 사는 5세난 사루(수니 파와르가 타고난 배우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를 한다)는 총명하고 즐거운 아이. 사루는 어느 날 형과 함께 도시로 나갔다가 형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사루는 빈 기차에 올라타 잠이 드는데 기차는 사루의 집에서 무려 1,6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캘커타에 도착한다.
자기 동네에서 쓰는 힌두어와 달리 벵갈어를 쓰는 번잡한 도시에서 방황하던 사루는 아동 밀매꾼에게 붙잡혔다가 탈출하기도 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고아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듬 해 여기서 호주의 타스마니아에서 온 인자한 수와 존 브리얼리 부부(니콜 키드만과 데이빗 웬햄)에게 입양된다.
이로부터 20년 훌륭한 청년이 된 사루(파텔)는 양부모의 자랑과 행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수 부부가 사루의 동생으로 입양한 만토시(데비안 라드와)는 험악한 과거로 인해 새 삶에 적응을 못해 양부모와 사루의 속을 태운다. 사루는 멜번의 대학에 입학, 미국서 온 루시(루니 마라)와 로맨스를 꽃 피우고 인도 태생의 친구들과 사귀면서 청춘을 즐긴다.
인도 친구들이 사루에게 구글 어스를 통해 고향을 찾아보라고 권유하면서 사루의 집요한 가족과 고향 찾기가 계속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루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형의 기억이 사루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광활한 인도대륙에서 5세 때 떠나온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지푸라기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 이로 인해 사루는 루시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수와도 거리를 두게 된다.
파텔이 깊고 강렬하며 또 가슴을 파고드는 연기를 뛰어나게 하고 키드만의 침착한 연기도 좋다. 영화 끝의 실제 사루와 친 어머니의 만남이 콧등을 시큰하게 만드는데 인도에서는 매년 80,000명의 아이들이 실종된다고 한다. 가스 데이비스 감독. PG-13.      Weinstein.★★★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딩스 투 컴(Things to Come)


 나탈리(왼쪽)와 화비앙이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의 평화롭던 삶이…“세상만사 다 그런 것이야”


프랑스의 뛰어난 연기파 이자벨 위페르가 50대의 파리 대학의 철학교수로 나와 느닷없이 동료 철학교수인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겪는 삶의 변화를 매우 사실적이요 통찰하면서 여유롭게 그린 좋은 드라마다. 위페르가 마치 자기 얘기 하듯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데 그의 연기가 대담무쌍한 다른 영화 ‘엘르’가 현재 상영 중이다.
시간의 흐름과 나이 먹음에 관한 영화로 그 것이 좋든 싫든 개인의 경험하는 일상사와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는 말인데 위페르가 비록 자기 삶이 엉망이 되었지만 고집 세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 삶을 이어가는 뚝심 있는 여인의 모습을 거의 능청맞을 정도로 유연하게 연기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으나 실은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매일의 얘기로 지적이요 희롱하듯 하며 또 날카로운 위트가 있는 진짜 어른들의 영화다.
남편 하인즈(앙드레 마르콩)와 25년째 무난히 잘 살고 있는 나탈리(위페르)는 책 속에 파묻혀 살면서 학생들 가르치는데서 행복감을 얻는다. 삶과 일에 대해 모두 사실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다. 그가 철학교수여서 영화에 파스칼이니 루소의 말들이 자주 나온다.
어느 날 하인즈가 나탈리에게 자기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면서 이별 선언을 한다. 그리고 많은 책을 가지고 집을 나간다. 청천벽력을 맞은 나탈리는 어안이 벙벙해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는데 울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는 격심한 감정적 몸살을 앓는다.
여기다 한 술 더 떠 치매에 걸린 나탈리의 어머니 이벳(에디트 스콥)이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대 몸살인 날 지경이다. 프랑스의 여류 감독 미아 한센-러브는 나탈리의 이런 불운한 일상을 무겁지 않고 세상만사 다 그런 것이야라는 식으로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또 가볍게 그려 마음에 와 닿는다.
삶이 왕창 엎질러진 나탈 리가 위안을 찾는 것이 자신의 전 제자로 학업을 중단하고 시골에서 집단을 이뤄 사는 지적인 무정부주의자들과 합류한 잘 생긴 화비앙(로망 콜링카). 나탈리가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그는 화비앙에게 더 끌려들어 나탈리는 마침내 화비앙이 사는 시골을 찾아간다. 영화의 후반부는 충격을 받은 나탈리의 회복과정을 그렸는데 전반에 비해 다소 처진다. 화비앙의 인물 개발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치 못해 나탈리의 그에 대한 관심에도 잘 수긍이 안 된다. 촬영이 따스하고 아름답다. PG-13.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쿠브릭 크리스마스




퀜틴 타란티노가 주인인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 323-938-4038)는 12월 한 달간 ‘인조이 어 쿠브릭 크리스마스’라는 제하에 명장 스탠리 쿠브릭의 걸작 6편을 그에 관한 기록영화 ‘스탠리 쿠브릭:영화 속의 인생’과 함께 상영한다.
40년의 감독생애를 통해 달랑 13편의 영화만 만든 쿠브릭은 생전 지성과 선견지명이 있는 귀재라 찬양받은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루한 자화자찬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영화가 내용과 기술면에서 도전적이요 비타협적이며 또 혁신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이야기나 인물을 무시한 기술적인 면에의 집착과 지나치게 냉정하고 염세적인 인간관 때문이었다.
17세 때 잡지 루크의 사진기자로 카메라활동을 시작한 쿠브릭의 이름을 할리웃에 본격적으로 내민 영화가 그의 세 번째 영화인 필름느와르 스릴러 ‘킬링’(The Killing·1953·사진)이다. 서푼짜리 전과자 자니(스털링 헤이든)와 그의 일당이 LA경마장의 현금을 터는 긴장감 팽팽한 영화로 마지막 장면이 허무하다.
이 영화는 11일과 12일 쿠브릭이 대하사극 ‘스파르타커스’를 감독하고 스튜디오의 간섭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 뒤 만든 ‘롤리타’(Lolita·1962)와 동시 상영한다. 40대 대학 문학교수 험버트 험버트의 “롤리타, 내 생의 빛, 내 허리의 불길, 내 죄악, 내 영혼”이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블라디미르 나브코브의 소설이 원작으로 험버트(제임스 메이슨)와 12세난 조숙한 소녀 롤리타(본명은 돌로레스 헤이즈로 험버트는 소녀를 롤리타 또는 로라고 부른다)와의 변태적이요 성적 기운이 가득한 애정행각을 그렸다.
중년의 험버트가 채 틴에이저도 못 된 롤리타(수 라이언)에게 집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측은한데 이런 험버트를 지배하면서 마치 종처럼 부려먹고 때로 조롱하는 성적으로 막 익어가는 앵두 모습의 롤리타야 말로 타고난 팜므 파탈이다.
쿠브릭의 다음 영화가 반전반핵 풍자영화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5일 상영). ‘또는 나는 어떻게 폭탄에 대해 걱정하기를 멈추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나’(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라는 긴 부제의 이 영화는 1960년대 미·소간 냉전의 기운이 고조에 이르렀을 때 양국의 핵경쟁과 자가당착적이요 자만에 빠진 정책과 군대식 사고방식을 대담하고 황당무계 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했다.
광적인 미 공군장성 잭 D. 리퍼(스털링 헤이든)가 자기 기지를 폐쇄한 뒤 핵폭탄을 적재한 폭격기들에 대해 소련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에 미 대통령(피터 셀러즈)이 전쟁상황실에서 비상각료 회의를 연 가운데 미·소 양국정상이 하틀라인을 통해 핵전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북한의 핵무장이 세계적 걱정거리로 떠오른 요즘 시의에도 딱 맞는 내용이다.
쿠브릭의 명함과도 같은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관한 철학적 영상시라 불리는 ‘2001:우주 오디세이’에 이어 만든 영화가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새디스틱한 ‘클라크웍 오렌지’(Clockwork Orange·1971-14일부터 17일까지). 가까운 미래사회의 무분별한 불량청년으로 베토벤을 사랑하는 알렉스(말콤 맥도웰)와 그의 일당의 묻지 마식의 만행을 통해 결함 있는 사회를 폭력적이요 희롱하듯이 거의 초현실적으로 매섭게 풍자하고 있다. 영화에서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가 알렉스에 대한 고문수단으로 사용된다.
이 영화 바로 다음에 나온 것이 시대극 ‘배리 린던’(Barry Lyndon·1975-7일과 8일과 10일). 18세기 상류사회로 진출하려는 아일랜드인 레드먼드 배리(라이언 오닐)의 야심과 모험과 사랑을 느린 속도로 그린 의상극으로 오스카상을 탄 촬영과 음악과 미술 및 의상 등이 다 훌륭하다.
28일부터 31일까지 상영되는 영화가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인 ‘샤이닝’(The  Shining·1980). 한 겨울에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산 속의 폐쇄된 여름휴가용 호텔을 돌보는 작가(잭 니콜슨)가 돌아버리면서 아내와 아들을 쫓아다니며 도끼를 휘두르는 으스스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공포환상영화다.
쿠브릭의 또 다른 걸작 반전영화가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제1차 세계대전을 시대로 한 ‘영광의 길’(1957). 그의 유작은 탐 크루즈와 그의 전처 니콜 키드만이 나온 섹스의 어두운 면을 다룬 심리스릴러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이다.
쿠브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조건 그리고 비인간화 되어가는 인간조건에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인간과 사회와 정치체제를 불신하고 혐오했던 역설적인 염세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이런 것들을 냉소하고 비관하고 또 어두운 유머로 풍자했는데 그의 작품 스타일과 인물들이 마치 외계인들처럼 소원하고 차가울 정도로 무감한 것도 이런데서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는 비범한 작품을 만든 기인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사랑이 이끄는 대로’(Un+Une) 감독 클로드 를루슈




지난 50여년 간 가장 큰 변화는 '남녀관계'


인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리엣과 로미오’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려고 인도에 간 약혼녀가 있는 프랑스 작곡가 앙트완(마크 뒤자르당)과 인도 주재 프랑스대사(크리스토퍼 램버트)의 부인 안나(엘사 질버스타인)와의 사랑을 코믹터치를 가해 로맨틱하게 그린 ‘사랑이 이끄는 대로’(Un+Une)의 감독인 프랑스의 노장 클로드 를루슈(79)와의 인터뷰가 최근 LA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본부에서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를루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사랑’에 대해 무척 강조했다. 철학이 있는 예술가의 깊이가 느껴져 감동적인 인터뷰였다. 그는 영어가 서툴러 질버스타인이 통역을 했다. 각기 남성 부정관사와 여성 부정관사를 뜻하는 프랑스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를루슈가 50년 전에 연출한 사랑의 명화 ‘남과 여’(A Man and a Woman·1966)의 변형이라고 하겠는데 음악 역시 ‘남과 여’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러브스토리’의 음악도 작곡)가 지었다.   

-영화 제목이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는 부정관사로 감독이 50년 전에 만든 ‘남과 여’를 연상시키는데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가.
“난 그 영화 이후 50여년 간에 걸친 남녀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50여년 간 가장 큰 변화를 본 것이 남녀관계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했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매우 강해졌다. 이젠 여자가 남자 없이도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난 이런 변화를 실제로 개인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다. 다섯 명의 다른 여자로부터 7명의 아이들을 보았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 여자들은 나보다 월등한 존재다. 이 영화는 내 개인적 얘기인 셈이다.”

-영화음악을 ‘남과 여’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가 작곡했는데 그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지.
“어떤 면에서 그는 또 다른 나다. 내가 이미지를 만들 듯이 그는 음악을 짓는다. 그동안 우린 함께 35편의 영화에서 일했다. 이 영화는 음악에 대한 오마지이자 프란시스 레이에 대한 오마지이다.”   
안나(왼쪽)와 앙트완은 인도여행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50여년 간의 남녀관계의 변화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앙트완은 어떤 면에서 아직도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마초맨(남성 우월주의자)이다. 그는 아직 어른이 덜 된 사람이다. 그동안 남녀 간의 문제는 엄청나게 변해 이젠 남자들이 여자를 무서워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남녀관계가 쉽지가 않다. 아직 서로 매력은 느낄지 몰라도 상호 신뢰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관계에 접어들기 전에 그 것의 안전을 위한 보험부터 생각한다. 그들은 과거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그 큰 잘못은 남자에게 있다. 나 자신도 죄의식을 느낀다. 영화에서 안은 앙트완의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도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앙트완은 진실로 안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앙트완은 안이 매우 강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여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젊었을 때보다 여자를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결코 여자를 무서워한 적이 없다. 난 여자를 날이면 날마다 더욱 더 사랑한다. 좌우간 내가 여자들이 얼마나 멋들어진 사람들인가를 이해하는데 평생이 걸렸다. 이 영화는 여자에 대한 오마지이기도 하다.”

-여자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난 내가 관계한 여자들로부터 늘 배운다. 매번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난 이제 함께 시간을 보낼 마지막 여인을 찾았다. 전에는 여자들이 매번 날 다른 여자들에게로 안내하는 일을 했는데 이제 바른 여자를 찾았다고 느낀다. 내가 만드는 러브 스토리는 또 다른 궁극적 러브 스토리를 위한 준비인 셈이다. 나의 러브 스토리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인해 러브 스토리가 매우 변질되고 있다. 그 것으로 사람 찾기가 쉬워졌는지는 몰라도 갈수록 올바른 사람을 찾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지금 세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쉬운 때라고 본다.”

-왜 인도로 장소를 정했는가.
“그동안 친구를 비롯한 사람들이 내게 계속해 인도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들은 나의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이 인도를 그리기에 아주 적합하다며 꼭 인도에 갈 것을 권유했다. 나도 인도처럼 죽음을 결코 믿지 않는다. 인도는 영원의 나라다. 난 그 점을 다루고 싶었다. 
인도가 또 하나 멋있는 점은 질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해야 배운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삶에 있어 가장 좋은 학교는 고통이다. 난 내 영화들 중 성공한 것들보다 실패작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우리를 보다 좋게 만든다. 모든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인도가 마음에 든다. 나도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자랐다. 내 영화들도 이런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난 단지 세상의 관람자일 뿐이다. 난 내 작품의 인물을 통해 내가 삶으로부터 느낀 점을 얘기하고 있다.”

-러브 스토리란 무엇인가.
“그 것은 두 사람간의 긴 대화다. 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사랑이며 침묵은 러브 스토리의 끝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계속해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우디 알렌을 좋아한다.”

-감독과 음악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음악은 우리의 무의식을 향해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룰 수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내게 음악은 신의 음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음악은 영원을 뜻한다. 거기엔 죽음이 없다. 나는 의기소침해지거나 기분이 상할 때면 음악을 듣는다. 그 것이 내 첫 번째 약이다. 스포츠인들 중에는 체육관에 들어가기 전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난 영화를 찍기 전에 음악부터 작곡하고 배우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한다. ‘남과 여’를 찍을 때도 세트에 음악을 보내 배우들이 걷고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을 듣도록 했다. 내 모든 영화에서 같은 방식을 취한다. 난 음악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말하는 하나의 인물로 쓰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전에 음악부터 녹음한다.”

-그러면 프란시스 레이는 각본에 따라 작곡을 하는가.
“내가 영화 내용을 맨 먼저 얘기해 주는 사람이 레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의 얘기를 음악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어 우린 함께 주제에 관해 일한다. 대작업이다. 우린 다른 방법으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는가.
“그 때가 바로 자신보다 남을 보다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때이기 때문이다. 우린 자신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면서 보다 관대해지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물은 러브 스토리로 사랑이란 연약하고 복잡한 것이나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것이 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사랑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의 완전범죄이다.”             

-자신이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는데 그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술가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영화인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정열적인 사람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힘들다. 정열은 다른 것과 공유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난 아이들보다 내 작품을 더 소중히 여겼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옆으로 달려갔지만 그 것이 해결되면 아이들 곁을 떠났다. 그래서 난 과거 한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배우나 감독이란 대중에게 자신들의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로 대중이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이다. 마릴린 몬로가 그 좋은 예다. 따라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행복하기가 힘들다. 내가 이제껏 만난 수퍼스타 중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장-폴 벨몽도다. 그는 아이로 머물러 살고 있는데 아이로 머물러 있으면 개인적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그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 미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어렸을 때 미국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의 나라로 난 미국에서 살 수는 없으나 이 나라를 사랑한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블락버스트들은 보고 있기가 쉽지 않다. 영화란 인물과 성격에 관한 것인데 미국영화보다는 유럽영화들이 이들을 지키고 있다. 물론 우디 알렌, 스코르세지, 코폴라 등은 다르다.” 

-이 영화는 매우 영적인데 감독도 영적인 사람인가.
“그럴 수 있다. 나는 모든 종교를 존경한다. 그 것은 슬프거나 방황하는 영혼을 지닌 사람들 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나도 영적인 순간을 가질 때가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앨라이드(Allied)


마리안(왼쪽)과 맥스가 카사블랑카 주재 나치 대사 살해 후 도주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나치의 첩자라고?


할리웃의 황금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스펙타클한 스파이로맨스영화로 두 수퍼스타 브래드 핏과 마리옹 코티야르가 나온 영화치곤 지극히 통상적인 작품이다. 
배우와 세트디자인을 비롯해 외양은 번드르르하나 내부가 부실한 영화로 액션과 스릴 그리고 로맨스를 비롯한 내용이 모두 어디서 많이 본 듯해 기시감이 가득하다. 그리고 얘기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 
액션이나 로맨스가 다 게으를 정도로 미적지근한 영화인데 핏과 코티야르의 화학작용도 미지근하고 연기도 마찬가지. 핏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마치 내가 왜 이 영화에 나왔나하고 궁금해 하는 모습이고 오스카 수상자인 프랑스 배우 코티야르도 마치 잘 차려 입은 할리웃의 B급배우가 메이저영화에 나온 것처럼 어수선하다.
1942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영국 주둔 캐나다군의 비행사 맥스(핏)가 프랑스인 사업가로 위장하고 모로코주재 나치대사를 암살하기 위해 도착한다. 
그의 파트너는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 레지스탕스요원 마리안(코티야르). 맥스와 마리안은 부부로 행세한다. 그런데 1942년은 영화 ‘카사블랑카’가 개봉된 해이고 영화 내용도 둘이 비슷한 데가 있어 이 영화는 마치 ‘카사블랑카’에 보내는 헌사 같다. 
잘 생긴 두 선남선녀가 만났으니 로맨스가 생길 것이 분명한데도 공연히 처음에는 뜸을 들인다. 영화의 매사가 이런 식으로 서툴다. 맥스는 임무에 매달리는 반면 마리안은 맥스에게 은근짜를 놓는다. 그러나 결국 맥스도 마리안의 매력에 굴복, 둘은 사랑에 빠지면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자동차 앞좌석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인다. 이 때 카메라가 360도 회전촬영을 하는데 이런 기법은 히치콕의 장기이다. 그런데 둘의 정사가 정열적이라기보다 마지못해 하는 식으로 어색하다.
이제 연인 사이가 된 둘은 대사관저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 임무를 수행하고 도주한다. 그리고 맥스는 마리안에게 함께 런던으로 가자고 제의한다. 여기서 장소는 나치공군의 무차별 폭격이 한창인 런던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맥스와 마리안은 결혼한다. 
만삭의 마리안은 입원한 병원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난리가 일어나는 순간 아기를 낳는다. 모든 것을 극적으로 만들려고 몹시도 애를 쓰고 있다. 
맥스와 마리안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어느 날 맥스의 상관 헤슬롭 대령(자레드 해리스)이 맥스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을 통보한다. 마리안이 나치의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물론 맥스는 이를 부인하면서 펄펄 뛰나 헤슬롭은 맥스에게 마리안을 시험하라면서 그 결과  마리안이 나치 첩자이면 맥스가 직접 죽이라고 명령한다. 맥스는 이 명령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자기 나름대로 마리안의 결백을 밝히려고 적지 프랑스에 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딴따라 신파극 식으로 끝이 나는데 보기에 어색할 정도로 유치하다.          
스파이 액션 로맨스 영화가 역동성이나 긴장감이 부족하고 사랑의 불길도 뜨뜻미지근하다. 촬영과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은 좋으나 매우 평범한 보통영화로 눈요기 거리는 된다. 로버트 즈멕키스(‘포레스트 검프’ ‘워크’) 감독. R. Paramount.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룰즈 돈 어플라이(Rules Don't Apply)


예비스타 말라가 휴즈의 호출을 받고 그의 호텔방에 서 있다.

기인으로 소문난 하워드 휴즈 얘기 영화로 만들어


이 멋없는 제목을 가진 영화는 할리웃의 총아에서 기인이 된 워렌 베이티(79)가 미 역사의 또 다른 기인 하워드 휴즈를 기려 감독(각본 겸)한 것으로 향수 짙은 심각한 로맨틱 코미디다. 장르 구별이 쉽지 않듯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또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인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다. 간혹 재미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제작자요 감독이요 배우인 베이티는 지난 1970년대부터 휴즈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구상해 오다 이제야 실행에 옮겼다(그의 마지막 영화는 2001년에 만든 졸작 ‘타운 앤 컨트리’.) 베이티는 휴즈와 함께 두 젊은 남녀 주인공을 내세우긴 했으나 그 어느 연령층에도 어필 할 것 같 지 않은 톤이 고르지 못한 작품이다.
1958년 할리웃. 휴즈영화사에 고용된 신앙심 돈독한 젊고 예쁜 말라 메이브리(릴리 칼린스-가수 폴 칼린스의 딸)가 어머니 루시(베이티의 아내 아넷 베닝)와 함께 이 곳에 도착, 할리웃보울 뒤 언덕 위에 있는 휴즈가 제공한 저택에 머문다. 그런데 말라 외에도 25명의 젊은 여자들이 스타의 꿈을 품고 휴즈와 계약하고 왔다.
말라의 운전사는 잘 생기고 젊음이 넘치는 프랭크 포브스(알덴 에렌라익). 두 순진하고 젊은 남녀는 서로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나 휴즈가 운전사와 예비스타와의 관계를 금지, 서로 눈치를 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스크린 테스트는 없고 대신 말라와 프랭크의 로맨스가 서서히 무르익는다.
영화가 시작한지 30분쯤 지나서야 휴즈(베이티)가 나타나는데 등장한 뒤에도 어둠 속에 얼굴을 가리면서 흉물스럽게 군다. 그리고 휴즈의 온갖 기행들이 자질구레하니 묘시된다. 마침내 ‘숫처녀 침례교인’ 말라가 베벌리힐즈호텔의 휴즈의 방에 호출된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술을 마신 말라가 취해 휴즈에게 성적으로 도전한다.
휴즈가 주인공인지 아니면 말라와 프랭크가 주인공인지 애매모호한데 휴즈가 정면으로 등장하면서 얘기의 핵심을 이루던 말라와 프랭크가 뒷전으로 물러난다. 말라와 프랭크의 인물개발도 미적지근하고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영화다. 알렉 볼드윈, 매튜 브로데릭, 마틴 쉰 공연. 촬영과 옛 할리웃을 재생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등은 좋다. 영화에서 로맨틱한 분위기 고취용으로 말러의 제5번 교향곡의 아다지에토가 흐르는데 너무 자주 쓴다. PG-13. Fox.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


리와 그의 전처 랜디가 가슴 아픈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족의 죽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남자 이야기

보스턴 인근 바닷가의 작은 도시 맨체스터를 무대로 일어나는 가슴 아픈 가족 드라마로 고통과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유머와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을 잃지 않은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16년 전에 역시 가족얘기인 ‘유 캔 카운트 온 미’로 데뷔한 케네스 로너갠의 세 번째 영화로 로너갠이 쓴 각본이 사실적이요 꾸밈이 없어 인물들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게 된다. 
거의 연극풍의 작품인데 로너갠은 서두르지 않고 얘기를 서서히 풀어나가면서 인물들의 성격이나 감정적 모양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도 심사숙고하듯이 여유를 갖춰 묘사하고 있다. 허구 같지가 않고 마치 내 이웃의 얘기인양 근접감이 강한 준수한 영화다. 
주인공은 보스턴에서 혼자 살면서 아파트 청소부로 일하는 리 챈들러(케이시 애플렉-벤 애플렉의 동생). 리는 침울하고 무뚝뚝하며 자학적인데 잠깐 플래시백으로 리가 자신과 사이가 매우 가까운 형 조(카일 챈들러)와 어린 조카 패트릭과 함께 바다낚시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리의 가족의 일부가 소개된다. 
그런데 조가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리는 느닷없이 16세난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보호자가 된다. 패트릭의 어머니 엘리즈(그레첸 몰)는 일찌감치 가족을 떠났다. 리는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전연 후견인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법적으로 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를 계기로 리의 복잡다단한 가족문제들이 그를 둘러싼 소문 식으로 노출되나 리는 모든 면에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영육이 완전히 무기력해진 사람. 
여기서 리와 그의 전처 랜디(미셸 윌리엄스)와 어린 두 딸과의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과 함께 엘리즈의 얘기도 잠깐 소개되는데 이들 보통 사람들의 인물 묘사가 아주 흥미 있고 보는 사람의 관심을 끌도록 그려졌다. 감독의 이런 얘기와 인물을 펼쳐 놓는 솜씨가 주도면밀하면서도 느긋하다. 
그리고 리의 엄청난 비극적 사건이 묘사되면서 리가 왜 자포자기적 인간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사람이 틴에이저 조카의 보호자 노릇을 하려니 책임감 때문에 죽을 맛인데 패트릭은 동료 여학생을 비롯해 이 여자 저 여자와 사귀면서 리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런 리와 패트릭의 심리적 감정적 상호관계가 중점적으로 묘사되면서 영화는 코믹한 분위기마저 띤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요 강렬한 장면은 아직도 리를 사랑하는 랜디와 리의 해후 장면. 랜디는 리와의 재연결을 바라나 리는 이를 물리치느라 안간힘을 쓴다. 이 때 미셸 윌리엄스가 보여주는 연기가 보는 사람의 가슴을 헤집는다. 
쉰 목소리를 내면서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와 안으로 파고드는 자세와 분위기를 발산하는 애플렉의 깊은 연기가 정말로 훌륭하다. 또 헤지스도 잘 한다. 
사족이라 할 것은 패트릭이 어머니 집을 방문, 어머니와 어머니의 새 남편(매튜 브로데릭)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 영화의 제작자는 맷 데이먼으로 당초 그가 리의 역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애플렉이 맡게 됐다. 성인용. Amazon/Roadside Attraction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엘르(Elle)


미셸은 겁탈을 당하고도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강간범 기다리는 섹시하고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


변태적이요 폭력적이며 세이도매조키스틱한 섹스영화로 얄궂은 성적 흥분감과 쾌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다크 코미디요 스릴러이자 여성 파워의 승전가다. ‘여자의 영화’인 ‘원초적 본능’과 ‘쇼걸즈’를 만든 네덜란드의 폴 베어호벤의 첫 프랑스어 영화로 대담무쌍한 연기파 이자벨 위페르가 기차게 섹시하고 용감한 연기를 보여준다.             
성적 공격의 피해자가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의연하고 교활하게 이에 대처하면서 오히려 승자가 되는 스타일 멋진 음탕한 영화로 어둡고 폭력적인데도 사뿐하고 고약한 유머를 갖춰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다. 
파리 교외의 대저택에서 사는 50대의 비디오게임 회사 사장으로 이혼녀인 미셸(위페르)이 집에서 대낮에 복면을 한 남자에게 폭력적인 겁탈을 당한다. 미셸은 공포와 고통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데 과연 이 비명은 반드시 공포와 고통때문 만일까 아니면 쾌감에 내지르는 것일까. 사건 후에도 미셸은 큰 집의 자물쇠만 바꾼 뒤 혼자서 산다. 미셸은 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강간범을 다시 기다리는 것일까.  
이어 미셸은 같은 범인에게 겁탈을 또 당한다. 미셸은 그러나 이에 공포와 분노 그리고 성적 흥분을 동시에 느끼면서 결코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서서히 자기 주변의 남자들을 자신의 희롱의 제물로 삼는다. 
이들은 이웃집의 멋쟁이 유부남 파트릭(로랑 라피트), 유순한 전 남편 리샤르(샤를르 베를링), 미셸의 파트타임 애인으로 미셸의 친구이자 회사 파트너인 안나(안 콩시니)의 남편 로베르(크리스티앙 베르켈) 및 임신한 독설가 애인 조지(알리스 이삭)를 둔 20대의 자기 아들 뱅상(조나스 블로케). 이 중 어느 한 명이 강간범일까.
여성의 본성과 섹스가 가진 막강한 힘을 자학적인 방법으로 발휘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중년의 삶의 위기와 성적으로 갈급한 여자의 도도한 심적 육체적 태도를 위페르가 위엄 있고 강인하게 표현한다. 기차게 의기양양하고 약은 연기로 별 표정도 없이 해내는 그의 연기는 가히 상감이다. 
위페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로 ‘피아노 선생’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연기를 했었다. 브라바! 으스스한 음악과 따스한 색깔의 촬영도 좋다. 
R. Sony Classic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유 없는 반항’




제임스 딘을 영원한 청춘의 우상으로 만들어준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사진)을 LA필이 생으로 연주하는 영화음악과 함께 듣고 있자니 이젠 식어버린 10대의 열기와 반항감이 신기루처럼 아득하니 느껴진다.
술 취한 짐(딘)이 경찰서에 찾아온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당신들이 날 찢어 놓고 있어”라고 울부짖는 순간 레너드 로젠만의 재즈기가 섞인 날카로운 현대음악이 짐의 좌절감을 처절하게 부추긴다.
지난 17일 디즈니 컨서트홀에서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 ‘이유 없는 반항’이 상영되면서 LA필이 생으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영화 보랴 음악 들으랴 다소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영화의 내용과 무드를 LA필이 화면 밖으로 끌어내 생체이식적 생생한 사실감을 만끽했다.
청춘과 죽음에 관한 약간 염세주의로 채색된 낭만적인 이 영화의 음악은 ‘배리 린든’과 ‘바운드 포 글로리’ 등의 음악으로 오스카 음악상을 두 차례 받았고 ‘반지의 제왕’의 음악을 작곡한 레너드 로젠만이 지었다.
로젠만은 뉴욕에서 아놀드 쇤버그 밑에서 공부한 현대음악 작곡가.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맨해탄의 칵테일파티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한  파티에 참석했던 제임스 딘이 로젠만의 연주에 반해 로젠만의 집을 찾은 것을 계기로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가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그런데 로젠만은 늘 클래시컬 음악계에서 서자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한탄했다고 한다.
딘은 어느 날 느닷없이 로젠만의 집을 방문,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면서 둘은 친구가 되었고 이어 딘이 ‘에덴의 동쪽’(1955)에 나올 때 로젠만을 엘리아 카잔 감독에게 소개, 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로젠만은 딘의 생애 3편의 영화 중 2편의 음악을 작곡했다.
로젠만의 이런 과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유 없는 반항’의 음악은 그 때까지 할리웃 영화음악의 주도를 이루던 로맨티시즘을 절제하고 20세기 음악을 도입한 것이다. LA필의 연주한 음악은 로맨티시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재즈가 혼성된 것이었는데 짐과 주디(나탈리 우드)의 로맨스를 에워싸는 우수가 우거진 낭만적 멜로디가 심금을 뜯는다. 그리고 음계를 벗어난 듯이 저돌적인 색소폰 소리는 청춘의 고독과 반항과 분노를 마음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날 지휘한 할리웃보울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스캇 던은 “로젠만의 음악은 상심하는 낭만성과 음조에서 해방된 아방-가르드 정신이 절묘하게 혼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 없는 반항’은 폭력의 시라고나 할 정열적인 영화로 10대의 아픔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과 반항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린 멜로드라마다. 나도 이 영화를 10대 때 보면서 딘이 안으로 품었다 발산하는 이유 없는(사실은 이유가 있지) 반항과 그의 고독을 절감했었다. 10대의 경험과 감정에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영화는 LA가 무대다. 갓 이사온 짐이 도슨고교(존 마샬 하이와 샌타모니카 하이에서 촬영)에 등교한 첫날 학교 건달패두목 버즈가 휘두르는 잭나이프로 첫 상면 인사를 받은 곳이 LA 뒷동네 할리웃힐스에 있는 그리피스천문대. 이 천문대 옆에는 딘의 흉상이 있다.
버즈의 애인은 앳된 모습의 주디. 버즈는 영화 초반에 치키런(자동차를 절벽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몰다가 먼저 뛰어내리는 자가 비겁자)의 희생자가 되고 그 후 짐과 그의 애인이 된 주디의 동아리에 들어오는 것이 플레이토(샐 미네오). 짐과 주디는 다 부모와 대화가 안 통하는 소외된 아이들. 플레이토는 홀어머니뿐인데 그나마 어머니는 툭하면 집을 비워 플레이토는 고아나 마찬가지.
이런 고독한 3명이 자기들끼리 가족을 이뤄 버려진 별장에서 소꿉놀이 가족을 구성한다. 짐과  주디의 곁에서 잠이 드는 플레이토에게 주디가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콧노래로 불러주는 장면이 곱다. 짐과 주디의 부모는 도대체 자기들의 아이들이 왜 반항하고 방황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와 10대간의 소통의 다리는 늘 끊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딘의 연기야 말로 청춘의 좌절감을 저주 받은 듯이 격렬히 표현하고 있다. 설움 가득한 눈동자, 주저하고 생각에 잠긴 제스처, 수줍은 미소, 낄낄대며 웃고 울고 예민한가하면 진지하고 로맨틱한가하면 은밀하며 아울러 생기와 우울을 함께 머금은 표정이다. 소외된 모든 10대에게 소속감을 주는 매력적인 연기다.
감독(공동각본)은 니콜라스 레이(‘자니 기타’ ‘북경의 55일’). 레이는 영화의 극적 충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품의 사건을 하루 안에 묶고 사실감을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그런데 영화가 나오자 열렬히 호응한 10대들과 달리 이들의 부모는 “폭력과 광기와 죽음과 음산함으로 가득 찬 모든 부모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소”라고 들고 일어났었다. 10대들의 바이블이 된 이 영화가 지금에 와서도 유별나게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딘(개봉 한 달 전 사망)과 우드와 미네오가 모두 비운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폴레온 솔로 가다


미소 간 냉전의 기운이 한창이던 1960년대 전 세계 팬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누렸던 스파이 액션 TV시리즈 ‘맨 프롬 U.N.C.L.E.’(The Man From U.N.C.L.E.)의 미국 스파이 나폴레온 솔로로 나왔던 로버트 본(사진)이 지난 11일 백혈병으로 83세로 타계했다.
그는 생애 70여편의 영화와 여러 TV 작품에 나왔지만 로버트 본 하면 본명보다 더 유명한 것이 나폴레온 솔로다. NBC-TV가 지난 1964~68년 방영한 이 시리즈는 국제적 스파이들로 구성된 첩보기구 U.N.C.L.E.(‘법과 집행을 위한 연합 네트웍 사령부’의 머리글자)에 소속된 솔로와 그의 동료인 소련 스파이 일리아 쿠리아킨(데이빗 매컬럼·83)의 활약을 그린 것.
시리즈가 방영되자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두 배우에게 한 달에 7만여 통의 팬레터가 날아들었고 1965년 비틀즈가 LA를 방문했을 때 본과 매컬럼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시리즈가 성공을 한 배경에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히트가 놓여 있다. 냉전 분위기에 걸맞는 ‘007’시리즈가 히트하면서 이 시리즈를 본 따거나 풍자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솔로’ 시리즈도 그 중 하나다.
이 때 나와 인기를 얻은 또 다른 TV 시리즈로는 흑백 2인조 스파이 빌 코스비와 로버트 컬프가 나온 ‘아이 스파이’와 단 애담스가 실수연발의 스파이 맥스웰 스마트로 나온 ‘겟 스마트’ 등이 있다. 그리고 본드영화를 모방한 다른 영화들로는 딘 마틴 주연의 ‘맷 헬름’ 시리즈와 제임스 코번이 나온 ‘플린트’ 시리즈 등이 있다.
‘본드’ 시리즈가 어른들을 위한 첩보물이라면 ‘솔로’ 시리즈는 아이들 장난처럼 가볍고 경쾌하고 코믹한데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TV판을 확대한 영화를 무려 8편이나 제작, 개봉해 이 역시 히트했다. 나도 대학생 때 단성사에서 시리즈 중 하나인 ‘내 얼굴을 한 스파이’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나폴레온 솔로라는 이름과 본드 역의 션 코너리를 연상시키는 세련되고 멋진 모습의 본, 그리고 본과 노랑머리의 똑똑하고 야무지게 생긴 앳된 얼굴의 매컬럼의 찰떡콤비 및 냉전시대 적지간인 미국과 소련의 스파이가 동지가 돼 세계를 말아먹으려는 악인들을 처치한다는 얘기도 흥밋거리였다.
솔로와 쿠리아킨의 뉴욕 본부는 위장한 양복점으로 둘의 상관은 영국인 웨이벌리. 웨이벌리는 본드의 상관인 M이요 솔로의 적 ‘스러시’는 본드의 적 ‘스펙터’이며 웨이벌리의 비서 겸 교환수는 M의 비서 모니페니인 셈이다. 이 밖에도 솔로가 플레이보이라는 점과 솔로가 쓰는 펜라디오와 단추폭탄을 비롯해 메인 타이틀 전의 액션 시퀀스와 제리 골드스미스의 박력 있는 음악 등 ‘솔로’ 시리즈는 철저히 ‘본드’ 시리즈를 모방하고 있다. ‘본드’ 소설을 쓴 이안 플레밍이 TV 시리즈 시작에 관여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로버트 본을 처음 보고 매력을 느꼈던 것은 ‘솔로’ 영화가 아니고 율 브린너가 주연한 ‘황야의 7인’(1960)이었다. 그는 여기서 일곱 명의 건맨 중 한 명인 리로 나온다. 말끔한 차림의 리는 술에 취한 채 맨 손으로 테이블 위의 파리 세 마리를 잡으려다 두 마리만 잡는다. 그는 이에 “옛날엔 세 마리 다 잡았다”고 자신의 무디어진 손놀림을 자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또 영화에서 멕시칸 산적들의 총을 맞고 죽을 때도 매우 극적으로 죽는다.
본은 이 역으로 골든 글로브 신인상 후보에 올랐었다. 본은 이밖에도 ‘솔로시리즈로 두 차례 TV 시리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폴 뉴만이 주연한 영화 ‘젊은 필라델피아인’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오스카 조연상 후보작이기도 하다)에 오르는 등 영화와 TV를 합해 총 네 차례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었다. 본의 영화로 잘 알려진 것은 ‘황야의 7인’ 외에 스티브 매퀸이 나온 ‘불릿’과 역시 매퀸이 나온 올스타 캐스트의 ‘타워링’ 등이 있다.
뉴욕에서 모두 배우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본은 어렸을 때부터 연기에 소질이 있었다. 5세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햄릿’의 독백 “투 비 오어 낫 투 비”를 극적으로 외웠다. 본이 6세 때 시카고에서 이 독백을 외웠을 때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브로드웨이에서 햄릿 역을 한 유명한 연극과 영화배우 존 배리모어. 배리모어는 본의 독백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더 해, 아이야, 더 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본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맹렬한 반전논자로 린든 존슨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 살해위협과 FBI의 뒷조사를 받기도 했다. ‘맨 프롬 U.N.C.L.E.’은 지난해에 솔로로 헨리 캐빌 그리고 쿠리아킨으로 아미 해머가 각기 주연한 동명영화로 만들어졌으나 평과 흥행이 모두 안 좋은 졸작이었다. 온갖 위험과 음모를 물리치고 빗발치듯하는 총알을 피해 동부서주 하던 수퍼 스파이 솔로도 세월의 힘 앞엔 무기력하구나. 페어웰 나폴레온 솔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도착 (Arrival)


루이즈 박사가 외계인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외계인 정체와 언어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언어학자


스필버그의 ‘제3 세계와의 조우’를 연상케 하는 엄숙하고 아름다운 외계인 지구 도착에 관한 공상과학 영화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얘기가 서술되고 내용이 무척 심각해 정신을 집중하고 봐야 한다. 쉬운 팝콘용 오락영화는 아니지만 마음을 비운 채 얘기에 함몰할 용의가 있다면 끝에 가서 정신적으로 희열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외계인의 정체와 언어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언어학자를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를 묻고 있는 방대하고 심미적이자 숙연하고 철학적이며 또 거룩한 우화다. 캐나다 감독 드니 비앙뇌브(‘사카리오’)의 절제되고 대담 하면서도 정밀한 연출력이 뛰어난데 연기와 음향디자인과 음악 그리고 시각적 특수효과도 매우 훌륭하다. 
지구에 12개의 검은 회색의 거대한 콘택렌즈 모양의 우주선이 각기 다른 장소에 도착한다. 공중에 떠 있는 우주선이 잘 다듬은 자갈처럼 매끈하다. 이에 미군이 외계인들의 언어를 파악하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즈 뱅스 박사(에이미 애담스)를 초청한다. 영화는 처음에 루이즈가 겪은 심각한 개인적 고통을 보여주면서 마치 수수께끼 풀듯이 이어진다.
영리하고 사실적이며 주도면밀한 루이즈는 이 때부터 거대한 머리와 7개의 다리를 가진 주름투성이의 외계인들이 내뱉는 신음소리와도 같은 언어를 이해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루이즈를 돕는 사람이 이론물리학자 이안 다넬리(제레미 레너).
외계인들의 글은 마치 먹물을 뿌려 쓴 것 같은 글자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루이즈가 이들의 뜻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 동안 우주선이 도착한 나라들에서는 나름대로 이에 대처할 방안을 강구하느라 난리법석들을 떤다. 중국은 우주선들을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미국도 그럴 생각이다.
시간이 촉박한 중에 루이즈와 이안은 오렌지색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입구로 다가가 우주인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이안은 루이즈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이 인간과 외계인의 조우 장면이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답고 신성하다. 영화는 마치 윤회설처럼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맴을 도는데 감독이 너무 지고한 아이디어를 지녀 얘기가 때로 하늘에 닿아 있는 것 같은 것이 흠이라면 흠.
야무지고 똘똘하게 생긴 애담스가 탄탄한 연기로 초현실적인 것같은 얘기를 땅에 매어 잡아놓고 있다. 애담스는 무슨 역을 맡아도 다 잘 해내는 믿음직한 배우다. 보고 영적 의문과 흥분을 함께 경험토록 권한다. PG-13.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빌리 린의 긴 해프타임 행진(Billy Lynn’s Long Halftime Walk)


달라스 카우보이즈 풋볼 스테디엄에서 전우들과 함께 선 빌리 린.

미국의 과도한 애국심·자본주의를 풍자한 영화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대만 태생의 앙리 감독의 야심작인데 결과가 미숙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입체영화이자 초당 프레임 회전속도가 120프레임으로 찍어 극사실적 감을 시도했는데 기술이 인물들의 개발이나 내용을 앞서가는 우를 저지르고 있다.
화면이 지극히 맑고 세밀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보이긴 하지만 왜 극영화에 이런 기술을 도입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마치 앙리의 새 기술 실험용 영화 같아서 감정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영화에 인간적 온기가 부족해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과도 유대감을 가지게 되지 않는다. 
미국의 과도한 애국심을 풍자한 영화로 이와 함께 모든 것을 장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은 19세의 텍사스 태생의 육군 졸병 빌리 린(영국인 신인배우 조 올윈). 빌리가 이라크전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면서 빌리는 자기 소속 브라보 분대원들과 함께 귀국해 전국순회 승전 투어에 참석한다. 육군이 마련한 이 전쟁고무 투어는 추수감사절 달라스 카우보이즈의 경기 중간 휴게시간에 스테디엄에 치어리더들과 데스트니즈 차일드가 동석한 가운데 끝나게 된다. 
한편 할리웃 제작자(크리스 터커)는 빌리의 무공을 영화로 만들 구상을 하면서 카우보이즈의 주인 노만(스티브 마틴)을 물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빌리는 치어리더 중 한 명(매켄지 리)과 짧은 로맨스를 나눈다.   
빌리가 전국을 돌고 달라스에 도착해 마지막 화려한 퍼레이드를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회상으로 그의 용감한 투혼과 전우애 그리고 치열한 이라크 전투가 묘사된다. 여기서 빌리의 리더인 쉬룸 상사로 빈 디즐이 나온다. 그러나 새 기술로 찍은 이 전투장면은 여느 전쟁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용이 특별히 관심을 끌거나 재미가 있는 영화가 아닌데 그런 중에 가장 인간적인 것은 회상으로 그려지는 빌리와 빌리의 참전을 반대하는 그의 누나 캐스린(크리스튼 스튜어트)과의 관계와 대화. 올윈이 연기를 잘 하는데 특히 스튜어트가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 기술 때문에 인물들이 희생된 설익은 영화다. R. Sony.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