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이유 없는 반항’




제임스 딘을 영원한 청춘의 우상으로 만들어준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사진)을 LA필이 생으로 연주하는 영화음악과 함께 듣고 있자니 이젠 식어버린 10대의 열기와 반항감이 신기루처럼 아득하니 느껴진다.
술 취한 짐(딘)이 경찰서에 찾아온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당신들이 날 찢어 놓고 있어”라고 울부짖는 순간 레너드 로젠만의 재즈기가 섞인 날카로운 현대음악이 짐의 좌절감을 처절하게 부추긴다.
지난 17일 디즈니 컨서트홀에서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 ‘이유 없는 반항’이 상영되면서 LA필이 생으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영화 보랴 음악 들으랴 다소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영화의 내용과 무드를 LA필이 화면 밖으로 끌어내 생체이식적 생생한 사실감을 만끽했다.
청춘과 죽음에 관한 약간 염세주의로 채색된 낭만적인 이 영화의 음악은 ‘배리 린든’과 ‘바운드 포 글로리’ 등의 음악으로 오스카 음악상을 두 차례 받았고 ‘반지의 제왕’의 음악을 작곡한 레너드 로젠만이 지었다.
로젠만은 뉴욕에서 아놀드 쇤버그 밑에서 공부한 현대음악 작곡가.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맨해탄의 칵테일파티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한  파티에 참석했던 제임스 딘이 로젠만의 연주에 반해 로젠만의 집을 찾은 것을 계기로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가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그런데 로젠만은 늘 클래시컬 음악계에서 서자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한탄했다고 한다.
딘은 어느 날 느닷없이 로젠만의 집을 방문,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면서 둘은 친구가 되었고 이어 딘이 ‘에덴의 동쪽’(1955)에 나올 때 로젠만을 엘리아 카잔 감독에게 소개, 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로젠만은 딘의 생애 3편의 영화 중 2편의 음악을 작곡했다.
로젠만의 이런 과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유 없는 반항’의 음악은 그 때까지 할리웃 영화음악의 주도를 이루던 로맨티시즘을 절제하고 20세기 음악을 도입한 것이다. LA필의 연주한 음악은 로맨티시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재즈가 혼성된 것이었는데 짐과 주디(나탈리 우드)의 로맨스를 에워싸는 우수가 우거진 낭만적 멜로디가 심금을 뜯는다. 그리고 음계를 벗어난 듯이 저돌적인 색소폰 소리는 청춘의 고독과 반항과 분노를 마음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날 지휘한 할리웃보울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스캇 던은 “로젠만의 음악은 상심하는 낭만성과 음조에서 해방된 아방-가르드 정신이 절묘하게 혼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 없는 반항’은 폭력의 시라고나 할 정열적인 영화로 10대의 아픔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과 반항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린 멜로드라마다. 나도 이 영화를 10대 때 보면서 딘이 안으로 품었다 발산하는 이유 없는(사실은 이유가 있지) 반항과 그의 고독을 절감했었다. 10대의 경험과 감정에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영화는 LA가 무대다. 갓 이사온 짐이 도슨고교(존 마샬 하이와 샌타모니카 하이에서 촬영)에 등교한 첫날 학교 건달패두목 버즈가 휘두르는 잭나이프로 첫 상면 인사를 받은 곳이 LA 뒷동네 할리웃힐스에 있는 그리피스천문대. 이 천문대 옆에는 딘의 흉상이 있다.
버즈의 애인은 앳된 모습의 주디. 버즈는 영화 초반에 치키런(자동차를 절벽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몰다가 먼저 뛰어내리는 자가 비겁자)의 희생자가 되고 그 후 짐과 그의 애인이 된 주디의 동아리에 들어오는 것이 플레이토(샐 미네오). 짐과 주디는 다 부모와 대화가 안 통하는 소외된 아이들. 플레이토는 홀어머니뿐인데 그나마 어머니는 툭하면 집을 비워 플레이토는 고아나 마찬가지.
이런 고독한 3명이 자기들끼리 가족을 이뤄 버려진 별장에서 소꿉놀이 가족을 구성한다. 짐과  주디의 곁에서 잠이 드는 플레이토에게 주디가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콧노래로 불러주는 장면이 곱다. 짐과 주디의 부모는 도대체 자기들의 아이들이 왜 반항하고 방황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와 10대간의 소통의 다리는 늘 끊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딘의 연기야 말로 청춘의 좌절감을 저주 받은 듯이 격렬히 표현하고 있다. 설움 가득한 눈동자, 주저하고 생각에 잠긴 제스처, 수줍은 미소, 낄낄대며 웃고 울고 예민한가하면 진지하고 로맨틱한가하면 은밀하며 아울러 생기와 우울을 함께 머금은 표정이다. 소외된 모든 10대에게 소속감을 주는 매력적인 연기다.
감독(공동각본)은 니콜라스 레이(‘자니 기타’ ‘북경의 55일’). 레이는 영화의 극적 충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품의 사건을 하루 안에 묶고 사실감을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그런데 영화가 나오자 열렬히 호응한 10대들과 달리 이들의 부모는 “폭력과 광기와 죽음과 음산함으로 가득 찬 모든 부모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소”라고 들고 일어났었다. 10대들의 바이블이 된 이 영화가 지금에 와서도 유별나게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딘(개봉 한 달 전 사망)과 우드와 미네오가 모두 비운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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