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는 2016년도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박찬욱 감독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음모와 배신과 욕망 그리고 욕정이 판을 치는 드라마 ‘아가씨’(The Handmaiden)를 선정했다. ‘아가씨’는 이 밖에도 최우수 미술부문에서도 선정됐다.
LAFCA가 한국영화에 상을 준 것은 ‘마더’의 김혜자가 최우수여배우로 뽑힌 것이 처음이었고 이어 윤정희가 ‘시’로 역시 최우수여배우로 선정된바 있다. LAFCA는 차점작과 차점자들도 발표하는데 외국어영화 부문의 차점작은 독일영화 ‘토니 에르드만’(Toni Erdmann)이고 미술부문 차점작은 ‘라 라 랜드’.
최우수작품으로는 마이애미의 리버티시티 인근을 무대로 한 젊은 흑인 동성애자의 삶을 세 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그린 가슴에 와 닿는 드라마 ‘문라이트’(Moonlight^사진)를 뽑았다. 이 영화는 이 밖에도 배리 젠킨스가 최우수감독으로 그리고 겉으로는 터프하나 마음은 인자한 드럭 딜러 역의 마헤르샬라 알리가 최우수 조연남우로 각기 선정됐고 촬영부문에서도 최우수작으로 뽑혀 4관왕이 됐다.
최우수영화 차점작은 LA를 무대로 한 향수 짙은 뮤지컬 ‘라 라 랜드’(La La Land)이고 감독부문 차점자는 ‘라 라 랜드’의 데이미안 차젤, 조연남우 차점자는 마틴 스코르세지의 17세기 일본을 무대로 한 엄숙한 종교영화 ‘침묵’(Silence)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을 핍박하는 일본의 고위관리 역의 이세이 오가타 그리고 촬영부문 차점작은 ‘라 라 랜드’.
최우수여배우로는 강간을 당한 여자의 후유증과 심리상태를 그린 ‘엘르’(Elle)와 느닷없이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대학 철학교수의 갈등과 자기치유를 묘사한 ‘딩스 투 컴’(Things to Come)에 나온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선정됐다.
이로써 위페르는 오스카상 부문에서도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그렇게 되면 노련한 연기파 위페르가 처음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이 부문 차점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크리스틴’(Christine)의 레베카 홀.
최우수 남자배우로는 ‘패터슨’(Patterson)에서 뉴저지주 패터슨의 버스운전사로 버스를 몰면서 지켜본 삶의 면모를 아름다운 시로 쓰는 패터슨(이름이 도시 이름과 같다)으로 나와 조용하고 깊은 연기를 한 애담 드라이버가 선정됐다. 차점자는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의 케이시 애플렉.
최우수 조연여배우로는 3편의 단편모음식의 ‘어떤 여자들’(Certain Women)에서 몬태나주의 말목장의 고독한 레즈비언 일꾼으로 나온 아메리칸 인디언의 피가 섞인 신인 릴리 글래드스톤이 뽑혔다.
LAFCA는 이렇게 본 사람들이 별로 없는 영화의 주인공을 뽑는 버릇(?)이 있는데 지난 2004년에도 ‘다운 투 본’의 베라 화미가를 최우수여배우로 뽑아 화제가 됐었다. 화미가는 이로 인해 빅 스타가 됐는데 글래드스톤도 이로써 스타로서의 앞길이 트이게 됐다. 이 부문 차점자는 ‘바닷가의 맨체스터’의 미셸 윌리엄스.
최우수 기록영화는 흑인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눈으로 본 미국의 인종차별을 다룬 ‘나는 너의 흑인이 아니다’(I Am Not Your Negro)가 선정됐는데 차점작은 ‘O.J.:미국산’.
최우수 각본으로는 ‘랍스터’(The Lobster)가 뽑혔다. 콜린 화렐과 레이철 바이스가 나오는 이 영화는 독신인 사람이 45일 만에 애인을 못 찾으면 짐승으로 변하는 세상의 이야기로 매우 독창적이다. 영화를 연출한 그리스인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가 에프티미스 필립푸와 함께 각본을 썼다. 차점작은 ‘바닷가의 맨체스터’.
편집부문에는 케이블채널 ESPN이 만든 O.J. 심슨에 관한 406분짜리 기록영화 ‘O.J.:미국산’( O.J.:Made in America)이 선정됐다. 미국의 인종문제와 유명세와 미디아 그리고 폭력과 사법제도에 관한 흥미진진한 영화다. 차점작은 ’라 라 랜드‘.
만화영화 부문에는 하야오 미야자키가 세운 스튜디오 기블리 작으로 각기 도쿄와 시골에 사는 10대 소년과 소녀가 서로 몸을 바꾸는 환상적이요 아름다운 일본영화 ‘너의 이름’(Your Name)이 뽑혔다. 음악부문에는 재즈와 스윙과 팝을 골고루 잘 섞은 ‘라 라 랜드’가 뽑혔고 차점작은 ‘재키’(Jackie).
신세대 부문에는 드라마 ‘크리샤’(Krisha)의 주연여우 크리샤 페어차일드와 감독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가 공동으로 선정됐다. 특별상은 고전영화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케이블TV 터너 클래식 무비즈에게 생애업적상은 셜리 매클레인에게 주기로 했다. 올 해 작고한 커티스 핸슨 감독을 기리는 LAFCA의 시상만찬은 1월 14일 센추리시티에서 열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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