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연말 할러데이 시즌에 잘 어울릴 두 편의 영화를 선물로 보낸다. ‘시계’(The Clock·1945·사진)와 ‘에디 아빠의 구애’(The Courtship of Eddie‘s Father·1963). 모두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또 우습고 선한 영화들로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훈훈해져 가족이 모여 앉아 보기엔 안성맞춤인 클래식들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다 할리웃 황금기 명감독이었던 빈센트 미넬리가 만들었다. 뮤지컬과 코미디와 멜로드라마가 장기인 미넬리의 영화는 대부분 온순하고 편안하고 로맨틱하며 또 아늑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미넬리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밴드 왜건’ 및 ‘지지’ 등 명작 뮤지컬을 많이 만든 감독으로 그의 다른 영화들로는 ‘삶의 열망’ ‘신부의 아버지’ ‘달려오는 사람들’ 및 ‘샌드파이퍼’ 등이 있다.
MGM작인 ’시계‘는 전쟁 중인 1945년에 만든 영화로 가수인 주디 갈랜드의 첫 드라마요 주연영화. 갈랜드가 영화에 적극적으로 나오려고 한 이유도 노래를 안 불러도 됐기 때문이다. 순진하고 깨끗한 이 영화는 뉴욕(컬버시티의 MGM 스튜디오에서 찍었다)의 펜스테이션에서 시작된다. 복잡한 퇴근길의 역 계단에서 앨리스(갈랜드)가 발을 헛디뎌 구두의 힐이 꺽어지며 뒤뚱거리는 것을 이틀간 휴가를 나온 군인 조(로버트 워커-히치콕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에서 킬러로 나온다)가 부축하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조가 구두수선점에서 앨리스의 구두를 수선해주자 앨리스는 조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뉴욕이 처음인 조는 갈 곳이 특별히 없다고 하자 앨리스는 집에 가는 길에 조에게 관광안내를 한다. 여기가 센트럴팍이요 저기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이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앨리스를 뛰어 따라온 조는 앨리스에게 저녁데이트를 신청한다. 애스토호텔(타임스 스퀘어 근방에 있던 이 호텔은 지금은 철거되고 오피스빌딩이 섰다)의 시계 아래가 약속장소.
약속 장소에서 만난 둘은 저녁을 먹고 데이트를 하다가 앨리스가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밤새 우유배달차를 타고 새벽까지 데이트를 즐긴다. 아침이 되어 출근인파로 붐비는 서브웨이에서 조와 앨리스는 사람들에 밀려 서로를 잃어버린다. 이를 어쩌나 둘은 상대방의 성도 모르는 처지니 어디서 서로를 찾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조를 측은히 여긴 기마경찰이 조에게 너희 둘이 처음 만난 곳에 가보라고 조언, 펜스테이션으로 달려간 조가 역시 역으로 자기를 찾으러 온 앨리스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그리고 조는 앨리스에게 구혼을 한다. 둘이 결혼하기 까진 또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야하는데. 신랑신부가 된 조와 앨리스는 초야 후 아침을 먹고 조는 다시 전장으로 나간다. 영화가 순진하고 깨끗해 보기 좋다.
뉴욕이 제 3의 인물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조와 앨리스의 첫 데이트 장소인 애스토호텔의 큰 시계와 함께 펜스테이션 안내소 위의 큰 시계가 영화제목을 뚜렷이 강조한다. 그런데 펜스테이션의 시계가 그랜드 센트럴스테이션의 시계를 닮았다.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뉴욕에 갔을 때 펜스테이션에 찾아가 큰 시계를 한참동안 쳐다봤었다.
이 영화 만들기 전 해에 역시 갈랜드를 써 빅히트작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를 감독한 미넬리와 갈랜드는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들의 딸이 가수요 배우인 라이자 미넬리다.
‘에디 아빠의 구애’는 8세난 에디(론 하워드-‘뷰티플 마인드’로 오스카상을 탄 감독)가 홀아비인 아버지 탐(글렌 포드)의 중매쟁이 노릇을 하는 로맨틱 코미디로 미국의 황금기인 1960년대 중상류층 시민들의 만사 쾌적한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외아들 에디를 극진히 사랑하는 탐은 상처 후 이 여자 저 여자와 교제를 하나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한다. 탐 외에 에디와 집안일을 정성껏 돌보는 사람이 가정부 리빙스턴 부인(로버타 셔우드). 에디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고 돌보는 또 다른 여자가 탐의 아파트 앞에 사는 아름다운 이혼녀 엘리자베스(셜리 존스). 에디도 엘리자베스를 자기 어머니처럼 좋아한다. 그런데 탐과 엘리자베스는 서로 친하면서도 의견 대립이 잦다.
탐이 부유한 사교계 여자 리타(디나 메릴)와 본격적으로 교제를 하면서 결혼할 의사를 에디에게 알리자 에디의 고민이 시작된다. 에디는 리타가 무조건 싫은 것이다. 그리고 리타도 에디와 사귈 생각이 없다. 결국 탐이 냉정한 리타를 버리고 에디를 선택하면서 에디는 그 동안 궁리해온 아버지 결혼시키기 작전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에디의 새 어머니가 될까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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