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인천’은 터키다

캡션 추가

27일은 매사에 감사하면서 터키고기를 먹는 추수감사절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 산지 30년이 넘는데도 아직까지도 터키고기가 별로다. 먹긴 먹는데 그레이비 맛에 먹는다고 하겠다.
이런 터키고기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영화계서 흥행에 참패한 영화를 터키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부터 형편없는 연극이나 영화를 터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터키는 미련하기 때문이라고.
터키고기 먹으면서 구경할 만한(?) 할리웃 역사에 길이 남을 터키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먼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인천’(1982·사진)은 한국인들에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터키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장군으로 주연하고 토시로 미후네, 재클린 비셋 그리고 이낙훈과 남궁원이 공연했는데 혹평과 함께 흥행서도 망 했다.
통일교 돈으로 만들어 말이 많았는데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영화촬영차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에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어쩌자고 셰익스피어의 대가가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그러나 터키 중 터키로 영화사를 들어먹은 영화는 ‘디어 헌터’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Heaven’s Gate·1980)이다. 1880년 와이오밍주의 존슨카운티에서 일어난 유럽서 이민 온 농부들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돈과 권력을 쥔 목축업자들 간의 결전을 그린 웨스턴이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크리스토퍼 월큰 및 이자벨 위페르 등 호화 캐스트의 영화는 제작비 및 제작기간 초과로 화제가 됐었는데 완성된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219분.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악평을 듣고 며칠 만에 극장서 거둬들인 뒤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내놓았지만 비평가나 관객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유나이티드 아티스츠(UA)의 모회사인 투자보험회사 트랜스 아메리카는 UA를 MGM에게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 후 ‘천국의 문’은 지금까지 흥행 참패 영화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나는 219분짜리로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몇년 전에 한 파티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중이던 치미노를 만났을 때 그에게 “나는 ‘천국의 문’을 좋게 봤다”고 말했더니 치미노는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었다.
영화사상 최악의 캐스팅 영화라는 오명을 지닌 것이 ‘정복자’(The Conqueror·1956)다. 존 웨인이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오고 내가 좋아하던 빨강머리의 수전 헤이워드가 타타르족 공주로 나오는 해괴망측한 액션 사극이다.
하워드 휴즈가 제작한 영화는 네바다주의 핵폭탄 실험장소에서 가까운 유타주의 세인트로지에서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출연 배우들인 웨인과 헤이워드 및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그리고 감독 딕 파웰이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워렌 베이티와 더스틴 호프만이 공연한 코미디 ‘이쉬타’(Ishtar·1987)도 역사적인 터키다. 돈 벌어 보겠다고 모로코에 온 서푼짜리 라운지 가수들의 얘기로 베이티와 호프만의 연기가 가관이다. 5,5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4만3,700달러를 벌었다.
오리가 터키가 된 영화가 만화가 원작인 ‘오리 하워드’(Howard the Duck·1986)다. 무지무지하게 재미없고 엉성한 영화로 가혹한 평을 받아 주연 리아 탐슨 등 출연 배우들의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인천’처럼 종교단체가 만들어 구설수에 올랐다가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한 영화가 ‘배틀필드 어스’(Battlefield Earth·2000). 사이언톨로지 창시자 L. 론 허바드의 책을 원작으로 사이언톨로지의 신봉자인 존 트라볼타가 나온 공상과학 영화로 나는 영화를 보다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원초적 본능’을 만든 폴 베어호벤 감독이 연출한 ‘쇼걸즈’(Showgirls·1995)도 야한 터키다. 베가스 쇼걸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인데 본의 아니게 우습다. 혹평을 받아 주연 엘리자베스 버클리의 연기생활이 석양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스타들이 역 선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시 연인 사이였던 제니퍼 로페스와 벤 애플렉이 공연한 ‘질리’(Gigli·2003)는 하마터면 둘의 생애를 망쳐 놓을 뻔했던 악화다. 제작비 5,400만달러에 수입은 고작 600만달러. 버클리와 달리 ‘쇼걸즈’보다 더 나쁜 터키에 나오고도 정정한 여배우가 할리 베리다. 베리는 목불인견의 영화 ‘캣우먼’(Catwoman·2004)에 나와 공연히 몸을 비비 꼬아대 그 해 ‘래지’ 여우주연상을 탔다.
‘래지’(Razzies) 상은 해마다 오스카 시상식 전날 한 해 최악의 작품과 감독 그리고 배우 등에게 주는 상. 이상을 탄 배우들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패리스 힐튼 및 에디 머피 등이 있고 B급 배우 로널드 레이건은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할리웃 터키의 원조는 ‘글렌 또는 글렌다’(Glen or Glenda·1953)와  ‘외계로부터 온 플랜 9’(Plan 9 from outer Space·1959)을 감독한 에드 우드 주니어다. 돈도 재능도 없었던 그의 영화는 아이들의 홈무비 수준이다. 우드 주니어의 얘기는 팀 버튼이 감독하고 자니 뎁이 주연한 ‘에드 우드’(Ed Wood·1994)에서 재미있게 재현됐다. 해피 댕스기빙!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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