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행진은 계속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1965년 3월21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해 민권운동가들 및 지지자들과 함께 닷새에 걸쳐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까지 행진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2014년 11월29일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부터 제퍼슨시티 주지사 관저까지 7일간의 120마일에 걸친 ‘정의를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이 행진은 퍼거슨의 백인경관 대럴 윌슨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총기 살해사건을 계기로 백인 경관들의 흑인들에 대한 공권력 남용을 항의하는 걸음이다. NAACP의 행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행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은데 이야 말로 역사의 반추라고 하겠다.
흑인이 대통령이 됐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흑백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 문제인데 최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미국 경찰의 흑인 등 소수 인종 민족을 상대로 한 과잉대응 등을 지적하는 공식 보고서를 채택했을 정도다.
오바마는 최근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경찰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은 삼가고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셀마-몬고메리 행진에 관한 드라마 ‘셀마’(Selma)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말했듯이 “당신은 민권운동가이지만 나는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셀마’는 절묘하게 현실과 타이밍을 맞춰 나온다. 난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야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하면서 참담한 기운에 젖었었다. 그리고 도대체 인종차별 문제는 그동안 과연 얼마나 또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고 궁금해 했다.
퍼거슨시는 뒤늦게 흑인 경관을 더 많이 고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 남부에 뿌리 깊이 박힌 흑백차별 관념이 그것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이 번 퍼거슨-제퍼슨시티 행진에 관한 반응을 보니 많은 백인들이 행진자들을 ‘깡패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여서 웨스턴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총 잘 쏘는 사람이 영웅이다. 존 웨인이 그 대표적 인물로 보통 이들은 정의 구현자들이다. 대럴 윌슨도 자신을 정의 구현자라고 생각했음직한 데 웨스턴의 영웅들은 윌슨과는 달리 총 없는 사람은 쏴 죽이지 않았다.
나는 이번 퍼거슨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정의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었다. 결국 정의란 힘 센 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니 늘 골탕을 먹는 것이 소위 소수계들이다.
브래드 핏과 오프라 윈프리(출연 검) 등이 제작한 ‘셀마’(사진)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동지들과 함께 셀마-몬고메리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행진 그리고 그의 사적 생활을 고루 균형 있게 그린 감동적인 영화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영혼이 고양되는 스릴과 감격을 느끼게 된다.
미국은 1964년에 남부의 흑백 차별을 철폐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앨라배마 같은 주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온갖 방해공작과 탄압으로 유권자 등록을 못해 투표를 할 수가 없었다. ‘셀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고 흑인들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매우 지적이요 날카롭고 민감하게 서술한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의 영국 배우 데이빗 오이엘로의 연기다. 그는 생긴 것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많이 닮았는데 엄숙하고 무게 있는 민권운동가이자 개인적 문제와 자아 회의에 고뇌하는 사적 인물의 서로 다른 면을 빼어나게 보여준다.
흑인 여류 에이바 뒤버네이가 유연한 솜씨로 연출한 영화에서 충격적이요 참혹한 장면은 셀마-몬고메리 행진의 첫 번째 시도를 저지하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 행진자들이 셀마의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에 이르렀을 때 기마경관을 비롯한 경찰의 행진자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행사를 보면서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이를 ‘블러디 선데이’라고 부른다.
이 진압과정이 TV로 생중계 되면서 행진에 성직자들을 비롯한 많은 백인들이 동참하게 되고 결국 행렬은 몬고메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존슨 대통령은 그 해 흑인 투표권 법안에 서명한다.
마틴 루터 킹이 주 청사 앞에서 하는 연설 “하우 롱, 낫 롱”(‘우리들의 하나님은 행군한다!’ 라고도 부른다)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까닭은 아직도 이 땅에 인종차별이 생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홍해를 가르고 유대인들을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모세처럼 보였다. 오이엘로 외에도 존슨 역의 탐 윌킨슨, 조지 월래스 앨라배마 주지사 역의 팀 로스 그리고 코레타 스캇 킹 역의 카르멘 에조그 등 조연진의 연기도 훌륭하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반세기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들은 도대체 언제나 배울 것인가.”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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