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8월 8일 목요일

‘옛날 옛적 할리웃에’(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TV 웨스턴 배우 릭과 그의 오랜 대역 클립(왼쪽)이 지금도 있는 할리웃의 유서 깊은 식당 ‘무소 앤 프랭크’의 바에 앉아 담소하고 있다.

히피시대 할리웃 배경 디카프리오- 피트 연기 대결


이탈리안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와 ‘옛날 옛적 미국에’를 연상케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각본 겸)이 과거 할리웃에 바치는 헌사요 연서이다. 할리웃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히피시대인 1969년을 시간대로 설정, 지나간 할리웃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연기와 과거 할리웃 거리를 재연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고고 부츠와 히피 패션 등이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질서정연한 얘기 서술보다 장면 장면을 짜깁기하는데 더 능한 감독으로 이 영화도 플롯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과거 영화와 TV 장면 등을 흘러간 팝송과 함께 계속해 보여주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중구난방 식이다.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영화로 마치 자신의 할리웃에 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듯 하다. 과거 할리웃 영화와 TV프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필하겠지만 이를 전연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어필할지 의문이다. 
어색한 것은 영화에서 TV 웨스턴의 주연배우로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가 카우보이 모자에 부츠를 신고 권총을 뽑아 속사로 상대를 황천으로 보내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 권총 장난하듯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연기는 맹렬하면서도 민감하게 잘 하지만 미스 캐스팅 같다.
릭 달턴(디카프리오)은 TV 웨스턴 시리즈 ‘바운티 로’의 주연배우로 인기가 하락세로 접어든 채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는 할리우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이런 그와 동병상련하는 사람이 릭의 오랜 대역 클립 부스(브래드 피트). 클립은 릭의 운전사 노릇까지 하지만 둘은 절친한 친구로 서로에 대한 충성이 지극하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 가끔 눈물을 짜는 디카프리오와 느긋하고 약간 으스대는 연기를 하는 피트의 화학작용이 좋긴 하나 아무리 봐도 디카프리오는 웨스턴 건맨으론 안 보인다.
영화는 릭과 클립의 촬영장과 둘의 집을 오락가락하며 보여주는데 트레일러에 사는 클립은 맹견 로트와일러 브랜디를 애지중지한다. 이들의 애기와 병행해 1969년 8월에 맨슨 일가에 의해 살해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의 얘기가 서술된다. 샤론은 릭의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그런데 샤론의 얘기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로비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샤론이 플레이보이 맨션 파티에 참석한 장면에서 데이미언 루이스가 스티브 맥퀸으로 나와 기차게 잘 하는데 죽은 맥퀸이 환생한 줄 알았다.
릭은 자기 위치에 불안을 느껴 폭음을 하면서 촬영 때 대사마저 잊어버리는데 궁여지책으로 자기 에이전트(알 파치노)가 주선한 스파게티 웨스턴에 나오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 6개월 간 싸구려 스파게티 웨스턴과 제임스 본드 모조품에 나온다. 이 부분은 TV 웨스턴 ‘로하이드’에 나온 뒤 이탈리아에 가서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에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생각나게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이니 만큼 유혈 낭자한 폭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끝에 가서 사람과 개가 동원된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이 자행된다. 불필요한 폭력의 과용이다. 파치노 외에도 커트 러셀을 비롯한 유명 배우들이 많이 카메오로 나오는데 촬영장에서 릭에게 연기와 인생철학을 일장 연설하는 여덟 살짜리 아역배우로 나온 줄리아 버터스가 경탄할 연기를 한다. 이와 함께 클립이 촬영장에서 만난 브루스 리와 한판 겨루는 장면도 웃기는게 브루스로 나오는 한국계 마이크 모도 재치와 맵시를 겸비한 연기를 한다. 타란티노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도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썼는데 여기서도 그런다. 상영시간 159분은 너무 긴데 타란티노가 여러 면에서 과욕을 부린 영화다. R등급. Son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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