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7월 18일 목요일

‘레토’(Leto)


아름다운 나타샤를 둘러싸고 두 록가수인  나타샤의 남편 마이크(왼쪽)와 빅토르가 삼각관계를 이룬다.

구 소련 젊은이의 해방구였던 록뮤직, 빅토르 최의 음악·사랑 흑백필름에 담아


1980년대 소련 록뮤직의 개척자로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밴드 ‘키노’의 창설자 중 하나인 한국계 록가수이자 작곡가요 배우였던 빅토르 최에 관한 기록영화 식의 흑백 드라마로 빅토르로는 독일 태생의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나온다. 빅토르와 유태오가 매우 닮았다. 
빅토르는 공산체제 말기인 1980년대 레닌그라드를 무대로 서방세계의 록뮤직을 들여와 소련 젊은이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서방세계의 록뮤직에 러시아적 분위기를 가미한 록뮤직을 작곡, 노래해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1990년 교통사고로 28세로 요절했다. 
영화는 빅토르와 처음에 그를 자기 그룹 안에 받아들인 록그룹 주파크의 리드싱어 마이크 나우멘코(로만 빌리크)의 우정과 마이크의 아름다운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쉔바움이 광채가 난다)를 둘러싼 3각 사랑을 실화와 허구를 섞어 얘기한다. 제목은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한다.
플롯은 없다시피 하다. 공산체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록뮤직으로 자유와 해방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반항과 음주파티 그리고 이들의 우정과 노래와 공연을 다소 에피소드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끔 환상적인 내용을 만화로 묘사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빅토르의 밴드는 공연할 노래의 가사를 미리 정부의 검열관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받는데 공연장에도 검열관이 참석해 청중이 박수를 치거나 몸을 흔드는 것을 중지시킨다. 박정희 정부 때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는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의 노래 뿐 아니라 빅토르가 작곡한 노래도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성을 별로 띠진 않았다. 그보다는 러시아 록뮤직의 자초지종과 함께 젊은이들의 록에 대한 갈망과 열광을 통해 구소련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플롯이 없다시피 하니 만큼 내용이 반복되고 후반 들어 진행이 처지는 감이 있지만 유태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비롯해 소련의 언더그라운드 록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어느 정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향수감이 짙은 청춘 찬가라 하겠다.
영화의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영화 제작 종료 직전에 예술지원금 횡령혐의로 가택연금에 처해졌는데 그의 동료들은 이 조치를 푸틴 정부의 비판자인 키릴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작년에 칸영화제서 상영됐을 때 키릴은 참석하지 못 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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