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7월 18일 목요일

지하실의‘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올 해 칸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 종려상’을 받은 ‘기생충’(Parasite)은 지하실에서 시작돼 지하실에서 끝난다. 지하실에는 지지리도 궁색한 김기택(송강호) 네 네 가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기를 쓰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질식할 것만 같은 비좁은 지하실의 셋방에 사는 김 씨네를 보자니 한국의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탈출구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 참담한 심정이 된다.
‘기생충’은 봉감독의 여느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오락성이 강하고 재미있다. 가족 및 사회비판 드라마요 공포스릴러이며 블랙 코미디이자 비극으로 앙상블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봉감독은 ‘헬 조선’ 한국의 심한 빈부격차를 거의 분노에 찬 심정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 씨네가 모두 신분을 위장한 사기꾼들이어서 지난 해 칸영화제서 대상을 받은 일본의 히로카즈 코레-에다 감독의 도둑 일가족 드라마 ‘어느 가족’을 생각나게 한다.
기택과 그의 욕 잘하는 아내 충숙(장혜진) 및 대입시험에 네 번이나 낙방한 아들 기우(최우식) 그리고 미술에 뛰어난 재질을 지닌 딸 기정(박소담)은 모두 백수들로 현 직업(?)은 집에서 피자 상자 접는 일.(사진)
어느 날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기우의 친구가 기우에게 자기가 가정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는 박동일 사장(이선균)의 딸 고 2년생 다혜(정지소)를 자기 대신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기우는 기정이 위조한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의 집엘 찾아가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를 만난다. 면접에서 연교는 “이즈 잇 오케이 위드 유”라며 영어를 쓴다. 그리고 기우를 케빈이라고 부르겠다고 영어 작명까지 해준다. 
박사장 네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초현대식 건물에 살면서 벤츠를 타고 다니는 엄청난 부자로 어린 외아들 다송(정현준)의 장난감도 미제다. 대사 간간이 영어가 툭툭 사용되면서 미국 물 먹은 한국인들의 풍토를 보여준다.
기우가 박사장 집에 고용되면서 김씨네 일가족이 한 사람씩 차례로 박사장 네 집에 스며들어 본격적인 기생충 노릇을 시작한다. 먼저 기정이 일리노이대학서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했다며 아주 어렸을 때 귀신(?)을 보고 경기를 낸 다송의 미술선생 겸 치료사로 고용된다. 기정의 영어이름은 제시카. 이어 기정은 자기가 입고 있던 팬티를 사용해 박사장의 운전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기택이 차지한다.     
그리고 김 씨네는 오랫동안 박사장네 살림을 맡아온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복숭아 앨러지를 이용해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충숙이 차지한다. 타고난 사기꾼들인 김씨네 일가가 꾸며내는 간계가 발칙하면서도 경탄스럽다. 물론 이들은 자기들이 한 가족임을 숨긴다.
이렇게 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김 씨네 네 마리의 기생충들은 박사장 네에 기생하면서 모처럼 태평성대를 누린다. 그러나 박사장 네가 여름 캠프를 간 사이 어느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문광이 챙기지 못한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대문을 두드리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공포 스릴러 식으로 변한다.
박사장 네는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김 씨네에게도  존대 말을 하면서 깍듯이 예의범절을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록 박사장과 그의 부인은 갑질은 안 하지만 김씨네를 완전히 하류인간들로 여긴다. 김 씨네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행주 삶는 냄새가 나고 저들처럼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도 특이한 냄새가 난다고 부자 대 빈자의 서로 다른 냄새론을 펼친다. 이를 엿듣는 기택과 충숙. 이 대사 듣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속이 다소 언짢았겠다.                   
그러고 보면 표면상으로는 김 씨네를 자기들과 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듯이 보이는 박 씨네의 친절과 예우는 그런 척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 김 씨네도 전부 자기들 신분을 위장하고 척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이 영화는 ‘프리텐드’(척하는) 영화임에 진배없다. 결국 기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철저히 멸시 당하면서 증오심에 눈이 뒤집혀 유혈참극이 일어난다.
그러나 김 씨네를 두둔할 것도 아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사기꾼들로 입심들도 좋고 상소리들도 잘 한다. 이들이 가난에 지쳐 사기꾼들이 된 것을 환경의 탓이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아무리 살 길이 막막하고 가난에 쪼들리면서 남의 집 지하실 방에 세 들어 산다고 하지만 모두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별로 힘 안들이고 사기와 거짓을 해서라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그 것은 부자의 것은 빨아먹고 살아도 좋다는 기생충적 사고방식이다. 김 씨네는 모두 건강들 하던데 막노동이라도 해볼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지하실에서 나온 기택 네는 잠시 지상에서 햇볕을 즐기다가 다시 지하실로 내려간다. 특히 기택의 모습은 기생충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다. 영화는 기우의 “돈이 최고다”라는 말로 끝난다. 그다지 좋은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기생충’은 현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향해 빅히트 중인데 미국에서는 10월에 개봉된다.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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