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독일 표현주의 영화




내가 한국일보 서울본사에서 LA 미주본사 3년 근무를 자원한 이유 중 하나가 할리웃이 있는 이 도시에서 영화나 실컷 보겠다는 것이었다. LA로 옮긴지 얼마 안 돼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LACC 야간부 영화사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캠퍼스 생활 재경험이 참 흐뭇했었다.
그때 처음 보고 배운 영화들이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과 ‘불관용’ 그리고 루이스 부누엘의 충격적인 ‘안달루시아의 개’와 함께 독일 감독 로버트 뷔네가 만든 해괴한 무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관’(The Cabinet of Dr. Caligariㆍ1919ㆍ사진) 등이었다.
‘칼리가리 박사’는 1차 대전 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잠깐 만개했던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심신을 죄어들면서 협소감을 느끼게 하는 삐딱하고 비현실적적인 세트 디자인과 무대극과 같은 화면 구성 그리고 흑백명암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촬영과 조명 및 도발적인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 복잡하고 변태적이며 심리적인 주제를 다룬 악몽과도 같은 영화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스타일이 아주 고급이다.
나는 강의시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하고 영화의 신경지를 깨닫는 기쁨에 젖었었다.
대부분 무성영화들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전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와 온갖 악조건에 시달리던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또 어둡던 당시 독일의 시대상황의 산물로 1933년 히틀러의 득세와 함께 소멸됐다.
그러나 히틀러가 득세하면서 또 다른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 중 하나인 ‘M’(1931: 24일 하오 7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에서 1956년작 필름 느와르 ’도시가 잠 잘 때‘와 동시상영)을  감독한 프리츠 랭 등 많은 표현주의 영화인들이 할리웃으로 이주하면서 할리웃 영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 대표적 장르가 필름 느와르로 표현주의는 지금까지도 할리웃이 만드는 범죄영화와 공상과학영화 및 공포영화에서 자주 감지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전시회 ‘사로잡는 스크린: 1920년대 독일 영화’(Haunted Screens: German Cinema in the 1920’s)가 2015년 4월26일까지 LA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린다.
14명의 감독과 20명의 미술가 및 25편의 영화들과 관련된 250점의 영화 클립과 각본, 사진과 스케치와 포스터 그리고 문서와 카메라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회는 4개의 주제로 구분됐는데 표현주의의 태동을 보여주는 첫 번째 ‘광기와 마법’ 전시실에 들어서니 ‘칼리가리 박사’와 파울 베게너 감독의 ‘골렘’(The Golemㆍ1920) 및 로버트 뷔네가 연출한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ㆍ1923) 등의 정교한 세트 디자인 등이 눈길을 끈다.
둘째 전시실은 ‘신화와 전설’로 랭 감독의 ‘니벨룽겐’(Die Nibelungenㆍ1924)과 F.W. 무르나우의 ‘파우스트‘(Faustㆍ1926: 17일 하오 7시 빙극장에서 1994년작 ’파우스트‘와 동시상영) 등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의 각본과 스케치들이 전시된다.
이어 ‘도시와 거리’ 전시실로 들어가면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급팽창한 베를린 및 여러 도시들의 성장과 관련된 작품들의 각종 자료가 진열됐다. 무르나우의 걸작으로 에밀 야닝스가 주연하는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ㆍ1924)과 역시 야닝스와 토실토실 살이 찐 마를렌 디트릭이 공연한 ‘푸른 천사’(The Blue Angelㆍ1930) 및 제1회 오스카 여우주연상(재넷 게이너)과 촬영상 등을 받은 무르나우의 ‘해돋이’(Sunriseㆍ1927) 그리고 G.W. 팝스트의 ‘기쁨 없는 거리’(The Joyless Streetㆍ1925) 등의 세트사진과 스케치들이 급성장하는 도시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황량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은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에 의존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영화들에 관한 ‘기계와 살인자들.’ 이를 대표하는 영화는 두말 할 것 없이 랭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ㆍ1927). 이와 함께 ‘M’과 역시 랭 감독의 ’마부제 박사의 유언‘(The Testament of Dr. Mabuseㆍ1933) 등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보인다.
전시회에는 이들 외에 따로 ‘계단’이라는 주제로 표현주의 영화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계단 스케치와 세트디자인 사진들을 따로 마련했다. 이들 계단은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뒤틀리고 불안하며 또 소외당하는 감정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웃음’과 ‘죄와 벌’ ‘메트로폴리스’와 ‘기쁨 없는 거리’ 등의 계단들이 불길하고 위태로운 기운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형 포스터들도 구경거리다. ‘푸른 천사’와 ‘M’ 그리고 ‘메트로폴리스’와 요염한 단발머리 루이즈 브룩스가 주연한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ㆍ1929) 등의 포스터가 전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실 내 어두운 두 터널에서는 전시된 영화들의 발췌 필름이 상영된다. 지크프리트가 입에서 불을 뿜는 용을 죽이는 장면(‘니벨룽겐’)과 아동살인자인 M(피터 로레)이 거지와 도둑들에 의해 인민재판을 받는 모습 그리고 ‘해돋이’와 ‘마지막 웃음’의 장면들을 보면서 잠시 현재를 잊고 과거가 소용돌이치는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편 뮤지엄(5905 Wilshire Blvd.)내 빙극장에서는 전시회에 선보인 표현주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lacma.org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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