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존 윌리엄스 축하

(Mathew Imaging)


마치 중세 기사영화의 나팔수들처럼 기를 단 트럼핏을 들고 무대 좌우의 객석에 서있던 14명의 미군 헤럴드 트럼핏 팀은 LA필과 함께 존 윌리엄스가 1984년 LA올림픽을 위해 작곡한 ‘올림픽 팡파르와 주제’를 요란하게 불어댔다.
30일 LA 다운타운의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열린 LA필의 시즌 개막 연주회는 오스카상을 5번이나 탄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82)를 축하하는 행사로 진행됐다. 연주곡은 모두 그의 것으로 발췌곡식으로 연주됐다. 그런데 나는 발췌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짜깁기 형식이어서 완성된 음악적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팡파르에 이어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디즈니 홀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영사되고 윌리엄스가 이 콘서트홀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현대 음악풍의 ‘사운딩스’가 연주됐다. 이어 바이얼리니스트 이츠학 펄만이 등장,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과 윌리엄스의 첫 오스카 수상 음악인 ‘지붕 위의 바이얼린’의 카덴자를 연주했다. 아름답고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다.
윌리엄스의 녹음된 육성이 “난 어렸을 때 칼싸움 영화를 좋아했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필버그의 만화영화 ‘틴 틴의 모험’ 중 결투장면을 그린 음악이 “휙 휙”하고 칼바람 소리를 내면서 홀을 메웠다.
화면에는 진 켈리, 타이론 파워, 버트 랭카스터, 스튜어트 그레인저, 에롤 플린 등 왕년의 펜싱영화의 스타들과 요즘의 해리슨 포드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나온 ‘스와시버클러’의 장면들의 몽타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 날 영화장면이 영사된 것은 이 때 뿐인데 아마도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영화장면을 보여주면 청중들이 음악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해서인 것 같다.
윌리엄스와 스필버그는 단짝이어서 이 날도 여러 편의 스필버그 영화의 음악이 연주됐다. 이어 연주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곁들인 장난기 짙은 재즈풍의 음악이 있는 ‘캐치 미 이프 유 캔’도 스필버그의 영화다.
두다멜이 마이크를 집어 들더니 오케스트라 석에 부인과 함께 앉아 있는 윌리엄스를 향해 “우리는 음악하면 바흐와 말러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를 생각하지만 오늘 바로 여기에 존 윌리엄스가 있다”면서 “그는 위대한 음악가이자 위대한 인간”이라고 윌리엄스를 찬양했다.
그런데 두다멜도 3일 개봉된 남미 해방의 영웅 시몬 볼리바의 삶을 그린 영화 ‘해방자’(‘위크엔드’판 영화평 참조)의 음악을 작곡, 영화음악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어 두다멜은 “여러분이 잘 아는 음악”이라더니 ‘스타 워즈’의 음악을 전신운동 하듯이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힘차게 연주했다. 화면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된 영화장면의 스케치가 음악에 맞춰 우주선의 속도로 맹렬히 달려갔다.
앙코르는 LA 아동합창단과 엔젤레스 코랄이 부른 서정적이요 아름다운 ‘아미스태드’의 노래 ‘너의 눈물을 말려라 아프리카.’ 음악이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더니 두다멜이 ‘조스’의 겁나는 첫 소절을 짧게 연주했다. 무대 위에 있던 아동합창단원들이 “악 악”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퇴장했다. 이날 연주회는 이렇게 쇼 기분이 다분했다.
이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두다멜은 윌리엄스에게 다가가 그를 무대 위로 안내하면서 바톤을 넘겼다. 윌리엄스는 ‘스타 워즈’의 유명한 ‘제국의 행진’을 위풍당당하게 연주했다(사진). 음악 속에 영화에 나온 백색제복의 ‘제국의 스톰트루퍼’들과 함께 흑색망토에 흑색헬멧을 쓴 다트 베이더가 적색 광선검을 휘두르면서 무대에 등장,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천장에서 색종이가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청중들이 기립박수로 노 음악가의 업적을 치하했다.
원래 이런 갈라 스타일의 음악회는 진짜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보기엔 화려한데 내실이 아쉽게 마련이다. 뭘 먹긴 먹었는데 여전히 허기가 지는 느낌이다.
연주회 내내 기다린 것이 ‘E.T.’와 ‘잃어버린 성궤의 약탈자’ 그리고 ‘제3 세계와의 조우’의 음악인데 이들과 함께 ‘스타 워즈’와 ‘조스’의 음악을 조곡식으로 연주했더라면 훨씬 더 즐거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작년에 ‘책 도둑’의 음악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를 인터뷰했다. 인자한 미소를 띤 윌리엄스는 자상하고 친절한데다가 매우 겸손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윌리엄스는 그때 “내가 작곡한 음악은 다 내 자식과 같아 모두 사랑스럽다”면서 “그 중에서 특별히 고르라면 ‘스타 워즈’와 ‘제3 세계와의 조우’”라고 말했다.
연필로 종이 위에 작곡을 한다는 그는 “8순에도 여전히 작곡을 할 때면 도전과 흥분을 느끼곤 한다”면서 “밤 9시에 작곡을 시작해 새벽 3시에 끝낸다”고. 그래서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음악가들을 만날 때면 늘 영감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라고 묻는다. 윌리엄스는 이 질문에 “번뜩 악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주간에 걸친 노력 끝에 나온다”면서 “작곡은 내게 하나의 발견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