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가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로 시작해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로 끝나는 마가렛 미첼의 영문 페이퍼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읽은 것은 서울의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이었다.      
방대하면서도 거센 물결처럼 굽이치는 흐름과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그리고 미 남부를 불사르는 전쟁의 화염 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과 갈등 등 극적인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글 솜씨에 휘말려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미첼이 35세 때 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글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현재도 매년 전 세계서 5만여권이 팔리는 성경 바로 다음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물론 소설을 비탕으로 만들어 1939년에 나온 영화는 책보다 훨씬 먼저 봤는데 지금까지 모두 열댓 번은 봤을 것이다.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으로 하나는 ‘GWTW’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이라는 말이 있다. ’GWTW‘의 뛰어난 장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했지만 진짜 창조자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이다. 그의 원 맨 쇼와도 같은 것으로 셀즈닉은 엑스트라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총 1만2,000여명의 인원을 마치 신이 인간을 부리듯 일사불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과 감독 및 여우주연상(비비언 리)과 조연상(스칼렛의 하녀 매미 역의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 사상 최초로 오스카 수상) 그리고 각본과 촬영 등 총 10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호걸형의 사업가 렛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와 농장 ‘트웰브 옥스’의 주인으로 골샌님형의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레즐리 하워드) 그리고 애슐리의 인간 천사와도 같은 아내 멜라니(올리비아 디 해빌랜드-현재 98세로 파리 거주) 및 목화농장 타라의 주인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의 딸로 애슐리를 짝사랑하는 요부형인 스칼렛(비비언 리)이 주인공들.
그러나 ‘GWTW’는 어디까지나 실로 당찬 여인 스칼렛의 얘기다. 스칼렛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여성으로 철딱서니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생존의 교본과도 같은 여자다.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불같은 정열적인 성질을 지닌 여자로 어떤 난관과 패배에도 다시 발딱 일어서는 오뚝이와도 같다.
참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애슐리에게 집념하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남편 렛을 향해 스칼렛은 처음에는 “난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라며 징징 울어댄다. 이에 렛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한 마디 “솔직히 말해 이 사람아, 난 당신 일에 전연 관심 없어”(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를 남기고 스칼렛에게 등을 돌린다.
이렇게 렛으로부터 치욕적인 한방을 얻어맞고도 스칼렛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스칼렛은 “전부 다 타라에서 내일 생각할 거야. 그땐 견딜 수 있을 거야. 내일 그를 되찾을 어떤 방안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라며 앙칼지게 다짐한다. 가공스럽기까지 한 억척스런 낙관론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에 ‘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셀즈닉이 검열기관에 5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이 단어를 썼고 가톨릭으로부터 금지딱지를 받았다.
영화의 무대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이나 전부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던 셀즈닉 스튜디오(이름만 바뀐채 현재도 있다)에서 찍었다. 나는 1987년 12월 이 영화를 취재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 들렀었다. 여직원이 나를 보고 대뜸 “타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러 왔지요”라며 웃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제일 먼저 타라의 소재지를 묻는다는 것.
그 때 애틀랜타 도서관의 ‘마가렛 미첼 기념관’을 둘러봤다. 4인치11피트의 단구에 단아한  모습의 미첼의 초상화를 보면서 멜라니가 연상됐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한 여자가 밀물치 듯 힘차고 거대하며 또 정열적인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매우 내성적이요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재의 액수로 국내 총수입 16억달러라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보유하고 있는 ‘GWTW’의 스칼렛 역에는 당대 모두 내로라하는 32명의 할리웃 스타들이 참가했었다.
캐서린 헵번, 수전 헤이워드, 폴렛 고다드, 진 아서 및 베티 데이비스 등이 스크린 테스트를 했지만 역은 비교적 신인인 비비언 리에게 돌아갔다. 스칼렛이야 말로 표독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개성 있는 얼굴과 작지만 탄력 있는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도전성을 지닌 리를 위해 만들어진 역이라고 해도 되겠다. 디 해빌랜드는 리가 지극히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노력파라고 칭찬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스칼렛 역에 미리암 합킨스를 그리고 렛 역에는 프랑스 배우 찰스 보이에를 원했다고 한다. 미첼은 클라크 게이블이 렛 역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이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 감상적일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바람처럼 도도한데 음악의 주제는 ‘마이 오운 트루 러브’라는 노래로 만들어졌다.  
올해로 ‘GWTW’ 개봉 75주년을 맞아 워너 홈 비디오는 영화와 함께 각종 부록을 담은 4장의 디스크와 36쪽의 책자 및 뮤직박스와 손수건 등 기념품이 담긴 블루-레이 박스셋(사진 50달러)을 출시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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