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걷던 ‘고통의 길’은 좁은 길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상점에서 외치는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가게는 자기 전생활비인 동전 두 닢을 연보한 과부를 칭찬한 예수의 말을 적은 입간판(사진)을 세워놓고 기념동전을 팔고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고 질책했었다. 2,000년이 지나도록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을 상품화해 팔아먹는 아이러니는 여전했다.
텔아비브에서 각기 찍는 USA와 FX-TV의 ‘딕’(Dig)과 ‘독재자’(Tyrant) 세트 방문차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지중해변의 숙소인 데이빗 인터콘티넨탈 호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이 구약성서로부터 기인하는 이 ‘성지’에 발을 딛는 순간 마치 신과 접촉이나 한 듯한 흥분감을 느꼈다.
비록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분쟁의 땅이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원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며칠 전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에서 3명의 10대 유대인 소년들이 납치돼 이스라엘은 초비상사태였다.
우리는 이런 긴장상태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올드시티를 찾아갔다. ‘성의’와 ‘벤-허’ 등 많은 성경영화에서 본 돌로 깐 보도와 굽어진 골목들이 낯설지 않다. 시온 문을 지나 2,000년 전의 장터를 거쳐 ‘통곡의 벽’으로 가는 길에 야물케를 쓰고 검은 정장을 한 걸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걸을 한다.
나는 1회용 흰색 야물케를 머리에 쓰고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다윗이 통곡으로 속죄하며 십계명이 든 성궤에 두 손을 짚는 모습이 그려졌다. 종이에 ‘나의 가족을 축복해 달라’는 글을 적어 벽 틈에 꽂고 기도했다. 특히 목사인 아들을 부탁했다.
벽 바로 뒤에 황금돔을 머리에 인 회교성전이 보인다. 벽을 사이에 두고 유대교와 회교가 공존하고 있지만 그 공존은 언제든지 갈등으로 갈 수 있는 불안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종교가 불러일으킨 많은 전쟁의 역설의 땅이자 영혼의 집결지요 또 인류 역사의 개요의 현장이다.
엄격한 마음으로 ‘고통의 길’로 들어섰다. 언덕길을 가득 메운 인파와 소음 속에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고통에 통곡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야유하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예수가 힘에 겨워 처음으로 쓰러진 곳과 그가 잠시 쉬려고 벽을 짚은 손자국 자리를 지나 골고다 언덕 위의 성묘교회에 들어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곳과 그의 매장을 준비한 자리 그리고 무덤이 다 이 교회 안에 있다.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나도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꼈다. 예수의 무덤에서 기도를 하면서도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아내는 디즈니랜드 같은 분위기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난장판 관광지 기운 탓에 거룩하고 성스러워야할 가슴이 피해를 입는 기분이었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 방과 다윗의 무덤(진짜는 어딘지 모른다)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 모든 장소에 대해선 이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 장소라기보다 믿는 마음이다. 자기 마음이 교회일 테니.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성경체험을 하면서 예수는 어떻게 40일간 광야에서 이 뜨거움을 견뎌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 한복판을 갈라놓은 ‘벽’이 보인다. 안내원이 “벽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덕분에 자살폭탄 차량이 없어졌다”고 자랑한다. 남의 집과 정원을 한 가운데서 갈라놓은 횡포의 물증을 보면서 남북한 간의 분단의 벽을 비롯한 모든 분리의 상징인 벽의 존재가 미웠다. 벽들은 허물어져야 한다.
귀국 전날 예수도 먹었을 마른 빵과 양고기와 포도주를 먹는 자리에서 하이파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 정치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했다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청년과 얘기를 나눴다. 내가 그에게 “너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원치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 자리에 혹시 유대인이 없느냐”고 속삭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스라엘인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던 청년의 이런 태도에서 속박 받는 사람들의 피해의식을 봤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입국은 쉬운데 오히려 출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리고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을 찍는 대신 체류허가증을 주었다. 일생에 한 번 있을 영적 경험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예루살렘, 예루살렘”을 속으로 되뇌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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