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열기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와 투쟁 그리고 영혼에 관한 얘기로 그것은 이런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할리웃의 스포츠 영화는 당연히 미국인들의 기호에 맞춰 야구, 농구, 아메리칸 풋볼 등에 관한 것이 많다. 또 액션이 치열한 권투도 즐겨 선택되는 경기다. 이 밖에도 골프, 자동차와 자전거 경주, 스키, 승마 및 서핑마저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유독 서자 취급받는 것이 전 세계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로 이에 관한 할리웃 영화는 눈을 비비고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을 정도다. 황소 눈알의 코미디언 로드니 데인저필드가 소녀 사커(미국에서는 풋볼이 아니라 이렇게 부른다)팀 코치로 나온 ‘레이디 벅스’는 졸작. 키라 나이틀리가 스타가 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한 ‘베컴처럼 차라’는 영미 합작이긴 하나 사실 영국 영화다.
이밖에 세인트루이스의 이탈리안 아메리칸 선수들이 주축이 된 미 대표팀이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경기에 출전, 선전한 언더독 실화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가 있지만 이것 역시 타작이다.
거장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빅토리’는 펠레를 비롯한 왕년의 전 세계 A급 축구선수들이 나온 B급 정도의 영화다. 전쟁포로 얘기를 스포츠 시각에서 다룬 일종의 ‘축구전쟁’ 드라마다.
1943년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 신임 소장(맥스 본 시도)은 왕년의 축구선수로 영국군 포로이자 역시 축구선수였던 존 콜비대위(마이클 케인)에게 축구경기를 제의한다. 이에 케인은 전 세계 전직 축구선수들로 팀을 구성, 독일 대표팀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한편 연합군 사령부는 이를 기회로 포로선수들의 탈출계획을 마련한다.
파리의 콜롱브 경기장.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적간의 올스타게임이 벌어지고 독일팀이 전반을 4대1로 리드한다. 해프타임을 이용해 탈출키로 했던 포로팀은 자유를 포기하고 후반전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이기겠는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빌 콘티(‘로키’의 음악)의 승천감 드는 음악을 깔고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펠레의 마이너스킥 등 경기장면이 박력 있고 멋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20분간의 경기장면을 빼고는 명장 휴스턴의 영화치곤 시종일관 힘이 없고 내용도 엉성하다.
펠레 외에도 바비 모어(영국), 오스발도 아딜레스(아르헨티나), 파울 반 힘스트(벨기에) 등 일류 선수들이 나와 묘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스탤론이 아무리 수퍼스타라고는 하지만 축구 문외한이 짧은 연습 후 신기의 골키퍼로 맹활약하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
내가 경이의 눈으로 뜨거운 감동을 느끼며 본 축구영화는 미국 영화와 제목이 같은 기록영화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ㆍ2002ㆍ사진)다. 영국의 댄 고든이 감독한 영화는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북한의 천리마 축구팀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물리친 사실을 담은 것이다.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길 확률은 1,000대1로 이런 확률을 뒤엎고 북한이 승리,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충격’으로 불리고 있다. 고든은 북한에 들어가 코치 등 당시 경기에 참가했던 7명의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이들을 경기가 열렸던 영국의 미들스브로로 초청, 과거 북한 선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을 자기 팀처럼 응원했던 마을 주민들과의 감격적인 재회의 장면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북한 카메라 팀이 찍은 컬러 경기장면도 흥미진진하다.
이탈리아전에서 득점한 선수는 배번 7번의 박두익으로 그는 “영국인들은 우리를 그들의 가슴으로 맞아주었고 우리도 그랬다. 나는 축구가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추억했다.
팀웍과 개인기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축구가 할리웃의 괄시를 받고 있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먼저 이 경기가 미국의 토착경기가 아니라는 데서 찾고 있다. 그리고 축구는 순간 경기이며 득점수가 적고 아메리칸 풋볼과 야구와 농구가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쉬는 시간이 많은 반면 축구는 90분간을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는 것도 그 이유로 든다. 또 배우들이 효과적으로 경기를 진짜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할리웃이 축구를 포용하지 않는 이유는 명 영화제작자요 미 프로축구팀 시애틀 사운더스의 공동 소유주인 조 로스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외국 기피증자들로 자기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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