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해방자’



올 여름 할리웃보울 프로그램 중 이색적인 것 중 하나가 LA필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작곡한 영화음악 ‘해방자’(The Liberator-7월31일 연주)다. 영화 ‘해방자’(8월22일 개봉)는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베네수엘라 태생의 국민영웅 시몬 볼리바(1783~1830년)의 삶을 그린 대하드라마다.
두다멜도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그는 조국의 시몬 볼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두다멜은 4월에 할리웃보울에서 있은 시즌 프로 소개 때 “할리웃에 살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었다.
베네수엘라 배우 에드가 라미레스가 시몬 볼리바로 나온 ‘해방자’(사진)를 봤는데 영화나 음악이나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영화와 음악이 모두 전형적인 고전 로맨틱 대하 서사극의 틀을 답습하고 있어 기시감이 가득하다. 영화는 덩지는 크나 심지가 굳질 못했다. 음악이 영화가 서정적이요 로맨틱한 부분에서는 장면에 끌려가듯이 달콤 나긋하다가 장엄하고 박력 있는 액션 신에서는 너무 앞서 나갔다.
소위 예술적인 클래시컬 음악은 영화음악을 2류 상품으로 얕잡아 보는 것이 요즘 추세이지만 2차 대전 전만해도 뉴욕 필 등 미국의 저명한 교향악단들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을 서슴없이 연주했다.
자료에 의하면 1940년대만 해도 뉴욕 필은 히치콕의 ‘사이코’ 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칸타타 ‘모비 딕’과 비엔나 태생으로 에롤 플린이 주연한 칼부림 영화들인 ‘로빈 후드의 모험’과 ‘시호크’의 음악을 작곡한 에리히 볼프강 콘골트와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모리스 자르의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연주했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독일 음악계의 영향을 받은 편견적인 이상주의가 대두하면서 영화음악을 마치 클래시컬 음악의 서자 취급하게 됐고 이런 생각이 아직까지 음악계에 팽배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런 편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벤자민 브리튼, 아론 코플랜드, 프로코피에프 및 쇼스타코비치 등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안드레 프레빈 및 토루 타케미추 등도 다 두 분야의 음악을 작곡했다.
특히 할리웃의 영화음악은 히틀러를 피해 LA로 도망 온 많은 유럽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 중에서 영화 음악인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콘골트로 ‘로빈 후드의 모험’의 음악은 하나의 장려한 교향곡이나 다름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브 송 ‘세프템버 송’을 작곡한 쿠르트 바일도 역시 망명 작곡가다.
이들 망명 음악가들은 영화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성립시키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음악을 대중음악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겼다.
두다멜에게 LA 필의 지휘봉을 넘겨준 살로넨도 한때 영화와 콘서트 간의 간격을 이어 보자는 뜻으로 ‘필름하모닉’이라는 시리즈를 시도했었다. 살로넨이 ‘영화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라고 명명한 시리즈는 영화음악 작곡가와 그가 선택한 영화감독이 서로 협력해 작품을 만든 뒤 스크린의 영상과 함께 LA 필의 연주로 음악을 감상하게 꾸며졌었다.
시리즈 첫 작품은 데이빗 뉴만(‘차이나타운’)이 작곡하고 일본의 미술가 요시타가 아마노가 그린 초현실적 애니메이션으로 마이크 스미스가 감독한 ‘천일야화’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시리즈는 첫 회를 끝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듯이 영화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도 클래시컬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5월 초 오렌지카운티의 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칼 세인트 클레어는 저명한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지은 클래시컬 음악을 연주했다.
존 윌리엄스(‘조스’)와 제임스 호너(‘타이태닉’) 그리고 하워드 쇼(‘반지의 제왕’) 및 엘리옷 골덴탈(‘프리다’)의 작품이 연주됐다. 이들은 다 클래시컬 음악으로 훈련된 작곡가들로 4명이 통틀어 받은 오스카상은 무려 11개에 달한다.
요즘처럼 영화가 단순한 오락상품으로 취급 받기 전 할리웃 황금기에는 영화음악가들은 감독 못지않은 독립을 누리고 또 존경을 받았었다. 1930~40년대만 해도 스튜디오들은 자체 오케스트라를 보유하고 또 작곡가들을 계약 고용해 주옥같은 음악들을 창조해 냈었다.
버나드 허만은 늘 “영화음악 작곡가와 오페라 작곡가라는 것은 따로 없다. 그들은 모두 작곡가들이다”라고 강조했었다. 골덴탈도 “영화음악 작곡가들에 대한 편견이 쉽게 없어지진 않겠지만 대중이 즐기는 한 결국 이런 편견은 서서히 무뎌지게 될 것이다”고 내다 봤다. 그렇다. 음악은 음악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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