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남 남쪽 섬의 나라’



40여년 전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늦게 군에 가 동해안 야간보초를 서고 있는데 분초에서 즉시 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렸다. 월남 파병령이 떨어졌으니 더플백을 싸놓고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었다. 전쟁에 나가게 됐구나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돌연 이 명령이 취소됐다는 연락이 왔다. 난 다시 M16 소총을 메고 허리에 수류탄을 매달고 해안으로 보초를 서러 나갔다. 그 때 내가 월남전에 갔더라면 난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대리전을 치른 베트남에 갔다 왔다. 윤일로가 ‘남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이라며 지리학상으로 틀린 노래를 부른 베트남의 항구도시 다낭에서 열린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이 마련한 기내식과 영화 관계자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베트남하면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본 살육의 땅이라는 선입견부터 떠오른다. 둘 다 내 중ㆍ고등학교 친구들인 황석영이가 글을 쓰기 위해 자진 입대해 전쟁을 겪었고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신양호가 소대를 이끌고 치열한 전투 끝에 부상을 입었던 전쟁터로 기억되는 것이 베트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6.25를 모르듯이 베트남 젊은이들도 그들의 전쟁에 무심했다. 내가 묵은 올라라니 호텔의 청년 직원에게 “한국이 월남전 때 너의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싸운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공산국가였던 적의 나라에 관광객으로 찾아와 한국 주인의 해변식당에서 해산물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청춘 남녀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광란의 춤을 추는 클럽 인파 속에 서 있던 나는 역사의 역설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젠 사회주의 국가가 돼 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민들이 돈벌이에 치열하다는 것이 오랜 역사를 지닌 무역항 도시 호이안으로 가는 관광버스 안내원의 말이다. 그는 “모두 돈과 집과 차가 있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이다”고 알려줬다. 호이안의 노점에서 국가의 영웅인 호치민의 얼굴이 새겨진 매그닛을 사면서 새삼 자본주의의 위력을 실감했다.
호이안은 ‘귀신 잡는 해병’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 다낭에는 아직도 미 해병이 썼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전쟁이 남기고 간 오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매우 동경하고 있다고 현지 한국인이 알려줬다. 한류바람 외에도 전쟁을 겪고도 잘 사는 한국의 발전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조반으로 매일 맛있는 쌀국수만 먹은 숙소의 아오자이를 입은 리셉셔니스트는 “A급 리조트호텔에 취업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호텔 식당에서는 ‘언체인드 멜로디’와 ‘리듬 오브 더 레인’ 같은 옛날 미국 팝송을 계속해 틀어댔다.  
그런데 객실이 300여개나 되는 호텔이 텅텅 비어 이유를 물었더니 최근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중국 관광객들과 안전을 우려한 다른 외국인들이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한강(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다)을 건너 다운타운에 가는 길에 오토바이가 넘쳐흐른다. 아빠 엄마 아이가 탄 가족용 자가용인데 거리에 신호등이 많지가 않다. 베트남 제3의 도시 다낭은 사방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붐타운으로 한국의 1960년대를 연상시킨다.
다낭보다는 유서 깊은 호이안이 진짜 구경거리다. 호이안 올드시티는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명된 후 관광으로 먹고 사는데 작은 도시에 호텔만 줄잡아 70여개요 연중 관광객이 300여만명에 이른다고. 관광객들로 거리가 바글바글 댄다.
전쟁에도 파괴 안 된 옛 모습 그대로로 시장바닥에 들어서는데 삿갓을 쓰고 베트남 지게에 바나나 등 과일을 담아 파는 아주머니들이(사진) 사달라는 미소를 보낸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에서 영어를 기차게 잘 하는 허슬러 같은 젊은 주인으로부터 매그닛과 기념품을 사고 값은 달러로 냈다. 1달러가 2만동으로 어디서나 달러가 통용됐다. 달러벌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낮이고 밤이고 덥고 끈끈하다. 걷는데 온몸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옛날에 에어컨 없던 서울의 여름밤 더위와 습기에 지쳐 후줄근하니 가사상태에 빠졌던 무기력감이 사로잡는다.  
다낭에 도착한 이튿날 새벽 바다로 면한 호텔방 창문이 노랗게 달아오른다. 커튼을 여니 바다 아래서 불뚝불뚝 치솟아 오르는 태양이 자기 몸을 붉게 태우다 못해 백열을 내뿜으며 치를 떤다. 문득 강원도 해안 보초 생각이 났다. 그 때 난 매일 아침 저 불덩어리를 봤다. 베트남은 정말로 덥고 끈적끈적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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