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타계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지상의 삶 졸업하고‘전설이 된 예술가’

 오스카·에미·토니·그래미 모두 수상 기록
‘졸업’‘버드케이지’등 무수한 명작들 남겨


니콜스는 독일서 유대계 러시안 아버지와 유대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7세 때 나치를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받고 자랐다.
니콜스는 16세 때 데이트 상대와 함께 브로드웨이에서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의대를 가기로 했던 생각을 바꿨다. 그 뒤로 다니던 시카고의 대학교 연극에 나왔고 뉴욕의 리 스트라스버그 연기학원에서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니콜스의 이름이 연예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1950년대 말부터 여류 코미디언 일레인 메이와 팀을 이뤄 스케치 코미디를 공연하면서였다. 둘의 공연은 무대와 TV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둘은 1960년대 초 해산했다. 둘은 이 쇼로 그래미상을 탔다. 
이어 니콜스는 연극계에 데뷔 첫 작품으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맨발로 공원을’을 연출했다. 닐 사이먼이 쓴 이 연극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빅히트를 했고 니콜스는 1964년 첫 토니상을 탔다.
니콜스의 첫 영화는 에드워드 앨비의 연극이 원작인 흑백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1966).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움을 하는 중년부부로 나온 이 영화는 테일러의 오스카 주연상과 샌디 데니스의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이어 만든 영화가 찰스 웹의 소설이 원작으로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졸업’(1967). 원래 호프만 역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니콜스가 과감히 당시만 해도 무명씨였던 호프만을 기용해 호평과 함께 빅히트를 했다.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성격파 배우인 호프만의 기용은 그 후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성격파 배우들이 할리웃의 빅 무비에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방향을 못 찾고 빈둥거리는 캘리포니아의 중상층 청년이 자기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의 아내인 로빈슨 부인(앤 밴크로프트)의 섹스놀이개로 지내다가 로빈슨의 대학생 딸(캐서린 로스)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으로 ‘플래스틱이라는 말을 미 대중문화의 사전에 올린 영화다. 
영화에서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한 ‘미시즈 로빈슨’과 ‘스카보로 페어’ 및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등이 효과적으로 사용돼 음반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니콜스는 이 영화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았다.
니콜스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자주 브로드웨이로 돌아가 많은 명작들을 감독했다. 모두 닐 사이먼의 대본이 원작인 ‘아드 커플’(1965)과 ‘플라자 스위트’(1968) 및 ‘2번가의 포로’(1972)로 토니상을 탔다. 이밖에도 ‘리얼 싱’(1984)과 뮤지컬 ‘스패마랏’(2005)으로 역시 토니상을 받았다. 니콜스가 마지막으로 토니상을 탄 연극은 올해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나온 ‘세일즈맨의 죽음’(2012)이다.  
니콜스는 많은 TV 명작도 남겼는데 2001년에는 HBO 영화 ‘위트’와 역시 HBO의 미니 시리즈 ‘미국의 천사들’로 에미상을 탔다. 
생애 모두 22편의 영화를 만든 니콜스의 대표작들로는 ‘카날 날리지’ ‘실크우드’ ‘워킹 걸’ 및 ‘버드케이지’ 등이 있다. 그의 흥행 실패작으로는 오손 웰즈가 나온 ‘캐치-22’와 ‘포천’ 및 ‘어느 혹성서 왔소?’ 등이 있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탐 행스가 나온 ‘찰리 윌슨의 전쟁’(2007)이다. 
나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니콜스를 인터뷰 했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당신의 어렸을 때의 어려운 경험이 당신을 이토록 성공시킨 창조적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고 물었었다. 
이에 대해 니콜스는 “어려운 환경 속의 어린 피난민이었던 나는 새 나라 미국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호기심과 능력을 가졌던 같다”면서 “심지어 나는 사람들의 생각마저 들을 줄 아는 강력한 예술 감각을 지녔었던 것으로 안다”고 대답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이 자기가 고안한 암호해독기 앞에 서 있다.

나치 패망에 공헌한 천재 동성애자 이야기


2차 대전 때 나치의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군사용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를 발명해 종전을 앞당기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긴 영국의 천재 알란 튜링(베네딕 컴버배치)의 삶을 다룬 준수한 전기 드라마다. 
오만한 천재 튜링은 동성애자였는데 (그리고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나치 패망의 원동력이 된 ‘에니그마’ 해독기를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성적 기호 때문에 경찰에 체포됐고 그 후 자살했다. 2009년 당시 영국 수상이던 고든 브라운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에 튜링을 사면했다.
영화는 튜링이 극비로 구성된 동료들과 함께 암호를 풀 기계를 고안하는 과정과 그의 개인적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매우 짜임새가 좋고 내용도 재미있고 연기도 좋으며 모양새도 반듯하나 영화가 일종의 전쟁영화 치고는 너무 말끔해 보통 잘 만든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영화가 너무 현대적인 것도 결점이긴 하지만 매우 지적이며 오락적이요 흥미 있는 작품으로 볼만하다.
오만불손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의 튜링은 남이 못 보는 것을 볼 줄 아는 탁월한 두뇌를 지닌 천재. 그는 나치가 매일 새로 바꿔 자국 해군에 보낸 암호에 따라 공격을 받고 영국과 연합군의 선박들이 무참하게 수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극비리에 조직된 암호 해독팀에 합류한다. 6명으로 구성된 팀은 모두 수학과 체스의 천재들.
고전 스타일의 지휘관 데니스턴(찰스 댄스)이 총괄하고 체스 챔피언 휴 알렉잰더(매투 굿)가 리드하는 팀은 처음부터 무례하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튜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튜링이 지나치게 독단적인 행동을 하자 데니스턴은 그를 해고하나 튜링은 처칠에게 편지를 써 물질적 재정적 지원의 약속을 받아낸다.
팀의 리더가 된 튜링은 통상적인 수단으로 해독하려면 수십년이 걸리는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여러 개의 디스크와 손잡이들이 있는 기계를 조립하는데 이것이 컴퓨터의 원조다. 
이 팀에 유일한 여자인 조운 클라크(키라 나이틀리)가 참여하면서 영화에 감정적 깊이를 주는데 튜링은 유독 조운과만 다정하게 지낸다. 그리고 튜링은 자신의 성적 기호를 아는 조운의 종용에 따라 이 여자와 형식적인 결혼을 한다. 
영화는 많은 시간을 보통 사람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전문용어들을 사용하면서 팀이 암호 해독기를 고안하는 과정에 할애하는데 일반 관객이 좀 이해하기 쉽게 이 부분을 다뤘어야 했다. 여하튼 팀은 2년이 훨씬 지나서야 마침내 해독기를 완성하는데 런던의 정보부 MI6의 국장 스튜어트 멘지시(마크 스트롱)의 지시에 따라 이를 극비에 부친다. 
그리고 나치가 눈치 못 채도록 독일 함정에 대한 공격도 선발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튜링이 고안한 인공두뇌인 기계는 나치의 공격을 받는 연합국 선박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신적인 구실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카리스마 있는 컴버배치의 연기다. 그는 BBC의 TV 시리즈 ‘셜록 홈즈’에서도 천재적인 현대판 탐정 역을 멋있게 해내는데 여기서도 지와 감정을 겸비한 사람의 내적·외적 면모를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가 동성애자로서 고뇌하고 갈등하며 또 아파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감독은 노르웨이 태생의 모르텐 틸둠.
PG-13. Weinstein.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5개 만점)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호러블 보스 2 (Horrible Bosses 2)

사장 아들 렉스(오른쪽)가 데일(왼쪽부터), 커트, 닉에게 가짜 납치극을 설명하고 있다.

억지 웃음 강요하는 낡고 엉성한 코미디


2011년에 나와 빅 히트를 한 고약한 사장들에게 시달리는 세 명의 어수룩한 봉급쟁이의 시련과 역습을 다룬 코미디의 속편으로 옛 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신선감이 모자란다. 웃기긴 하지만 자연스런 웃음이라기보다 강제된 웃음이라고 해야 옳겠는데 반복되는 플롯을 에피소드 식으로 늘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초호화 조연진의 모습과 연기. 갱스터 지망생의 제이미 팍스, 상소리를 내뱉는 투옥 중인 케빈 스페이시, 섹스광 치과의사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간악한 사장과 그의 겉멋 들린 아들로 나오는 크리스토프 월츠 및 크리스 파인 등이 엉성한 영화를 빛내준다.
멍청이라 부를 만한 3인조 닉(제이슨 베이트맨)과 셋 중에 제일 멍청한 데일(찰리 데이) 및 커트(제이슨 서디키스)는 비누와 샴푸와 컨디셔너를 동시에 분사하는 ‘샤워 버디’를 발명한 뒤 물주를 찾는다.
이들이 찾아간 사람이 우편주문 캐털로그사의 간교한 사장 버트(월츠). 버트는 이들에게 샤워버디 10만개를 살 테니 만들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3인은 은행서 50만달러를 융자하고 오합지졸 같은 직원들을 뽑아 주문량을 완성한다.
그런데 교활한 버트가 이들을 파산시키기 위해 주문을 취소하면서 닉과 그의 동지는 큰 일이 났다.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아이디어가 버트의 으스대는 아들 렉스(파인)을 납치해 몸값을 받자는 것.
그래서 납치 아닌 납치를 하는데 렉스가 오히려 자기 아버지를 사기 칠 계획을 마련한 뒤 닉 일행에게 협조해 돈을 나눠 먹자고 꼬득인다. 이에 세 멍청이가 마지못해 범행에 참여하면서 온갖 해프닝이 일어난다. 그런데 렉스는 진짜 나쁜 놈이다.    
닉과 그의 친구들은 렉스를 납치하기 전에 흑인 동네의 딘(팍스)과 살인죄로 복역중인 닉의 전직 사장 데이브(스페이시)를 찾아가 범행에 쓸 물건을 구하고 또 자문을 구하는데 이 부분이 웃긴다.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부분 부분은 웃기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짜임새가 전연 없는 넌센스다. 션 앤더스 감독. R. New Line. 전지역. ★★½(5개 만점)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흑과 백



둘 다 흑인인 덴젤 워싱턴과 오프라 윈프리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워싱턴에게 “당신은 인종차별을 불치의 병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에 “그렇다”면서 “아마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그 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었다.
나는 윈프리에게는 “당신은 흑백차별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윈프리는 정색을 하면서 “아니다. 그것은 교육에 달린 문제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나는 윈프리와는 생각이 다르다. 나는 인종차별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동물적인 반응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거부반응은 관용과 인내와 인간성 그리고 사랑과 연민 또 윈프리의 말처럼 교육으로 휴면시키는 수밖에 없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퍼거슨시의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총격 사망케 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퍼거슨을 비롯해 전미 대도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면서 약탈행위도 자행되고 있다. TV로 이를 보면서 4.29폭동이 생각났다.
그 때 사우스LA의 한인 가게들이 흑인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다가 애꿎게 흑인들의 분풀이 상대가 된 한인 가게가 나오는 영화가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고 주연도 한 ‘똑바로 살아’(Do the Right Thing·1989)이다.
뜨거운 여름 브룩클린의 흑인 동네에서 일어나는 인종갈등을 그린 화끈한 영화로 난동 흑인이 한인 가게에 들어가 마구 기물을 파괴한다. 난 언젠가 리를 인터뷰했을 때 그에게 이 장면에 대해 물었더니 리는 “어, 그 거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면서 “어쨌든 미안하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미국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할리웃에서도 무성영화 때부터 있어 왔다. D.W. 그리피스의 걸작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1915)도 흑인 박해 단체인 KKK를 찬양해 지금까지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또 할리웃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가수’(Jazz Singer·1927)에서는 백인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노래를 불러 구설수에 올랐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스칼렛의 흑인 하녀들인 매미와 프리시가 하잘 것 없거나 맹하게 묘사돼 흑인차별 영화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미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때문에 라나 터너가 주연한 영화 ‘인생의 모방’(Imitation of Life·1959)에서는 흑인 가정부의 백색 피부를 지닌 딸(수전 코너)이 어머니를 외면했다가 뒤늦게 후회하고 대성통곡을 한다. 또 ‘핑키’(Pinky·1949)에서도 하얀 피부 때문에 백인 행세를 하던 젊은 여인 핑키(진 크레인)가 고향인 남부에 돌아왔다가 자신의 정체를 인식하고 고향에 봉사하기 위해 정착한다.
내가 어렸을 때 본 영화로 백인의 흑인에 대한 혐오에 혀를 찬 것이 한국전 영화 ‘모든 젊은 남자들’(All the Young Men·1960)이다. 인종차별주의자인 미군 하사관 킨케이드(앨란 래드)가 적의 탱크에 팔이 깔려 절단되면서 수술을 받는다.
이 때 킨케이드에게 수혈을 해주는 전우가 킨케이드가 증오하는 흑인 하사관 에디(시드니 포이티에)다. 에디의 피가 킨케이드의 혈관 내로 들어가면서 흑백통합이 이뤄진다.
영화 ‘흑과 백’(The Defiant Ones· 1958)에서는 흑인을 사갈시 하던 탈옥수 존(토니 커티스)이 쇠사슬에 매인 수갑으로 서로 연결된 흑인 노아(시드니 포이티에)와 같이 숨이 턱에 차도록 도주를 하다가 노아의 인간성에 감복, 흑인에 대한 증오감을 저버리게 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긴장감 있고 훌륭한 연기를 볼 수 있는 드라마다.
포이티에는 흑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탄 배우로 여러 편의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에 나왔다. 그 중에서도 역시 크레이머가 감독하고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이 공연한 ‘초대 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은 흑백문제를 다룬 명화들 중의 하나다.
백인 처녀(캐서린 휴턴-헵번의 실제 질녀)가 약혼자인 흑인 변호사(포이티에)를 처음으로 부모에게 소개시키는 드라마로 당시만 해도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흑백 결혼이 불법이어서 큰 화제가 됐었다. 트레이시의 유작으로 그의 마지막 인간성에 대한 긴 대사는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2015년 1월에 나올 ‘흑이냐 백이냐’(Black or White·사진)도 흑백문제를 솔직하게 다룬 준수하고 재미있는 드라마다. 태어났을 때부터 흑인 손녀를 혼자 키워온 외조부(케빈 코스너)가 갑자기 손녀의 흑인 친할머니(옥테이비아 스펜서)로부터 손녀 양육권에 대해 소송을 당하면서 흑백문제가 야기되는 좋은 얘기다.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퓨리’ 브래드 핏



“난 언제나 본능에 따라 사는 게 생활지침”


현재 상영 중인‘퓨리’에서 1945년 4월 2차 대전 종전 직전 독일전선에 투입된 미군의 셔만탱크를 4명의 전우들과 함께 몰고 독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고참상사 단‘워 대디’ 칼리어로 나온 브래드 핏(50)과의 인터뷰가 뉴욕에서 있었다.“늦어 미안하다”며 보무당당하게 인터뷰장에 들어선 콧수염을 한 핏은 작은 모자에 엷은 갈색 선글라스를 썼는데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였다. 씩씩한 청년 같았는데 제스처와 함께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농담을 섞어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영화에서 당신의 전우들로 나온 배우들과의 관계는 어땠는가.
“데이빗 에이어 감독은 우리를 급박한 상황에 넣어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배우도록 했다. 영화를 찍는 3개월 동안 우리는 맹훈련을 해 탄탄한 동아리로 뭉쳤다. 각기 성격과 배경이 다른 우리는 일종의 찢어진 가족으로 전쟁의 정신적 타격과 전쟁의 공포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지도자여서 내 약점을 전우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당신은 여기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미군으로 나와 독일군을 때려잡는데 ‘인글로리어스 배스타즈’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당신의 전쟁영화다. 당신과 독일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독일어 하느라 땀깨나 흘렸다. 나는 독일 미술의 열렬한 팬이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한 이념에 매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화는 인간의 공포에 흠집을 내는 전쟁의 충격을 다루고 있다. 난 독일어를 좋아하는데 부드럽게 말할 땐 아주 아름다워 고운 음악 같다.”

―2차 대전 참전 군인들의 자문을 받았는지.
“벌지 전투에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에 의하면 독일 탱크가 우리 것보다 성능이 월등했다고 한다. 그들의 포탄은 우리 탱크를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 그래서 우리 탱크 병사들이 많이 전사했는데 많은 군인들이 탱크 안에서 소사했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과 2차 대전과 어떤 상관관계라도 있다고 보는가.
“그것에 대한 명답은 모르겠다. 그 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전쟁명분이 뚜렷했던 반면 지금은 그것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여하튼 나는 이 영화처럼 탱크부대를 자세히 묘사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잠수함 전투를 그린 독일 영화 ‘보트’의 탱크판이라고 하겠다. 나는 영화를 찍는 동안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책은 독일 보병의 얘기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얘기와 너무나 같다는데 놀랐다.”
‘워 대디’(앞줄 왼쪽)가 이끄는 미군 탱크가 적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당신이 유럽에서 이 영화를 찍을 때 당신의 부인 앤젤리나는 호주에서 또 다른 전쟁영화를 찍으면서 서로 사랑의 편지를 교환했다고 들었는데.
“우린 동시에 일하지 않는데 이번엔 스케줄이 잘 못돼 나는 유럽에서 앤젤리나는 태평양에서 일하게 됐다(연말에 개봉될 태평양전쟁 실화인 ‘언브로큰’을 감독). 그래서 우리는 옛날에 군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듯이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편지를 교환했다.”

―얼마 전의 결혼을 축하한다. 그 후로 뭐 변한 것이라도 있는가.
“이제 진짜로 결혼한 남자처럼 느껴진다. 우린 이미 아이가 여섯이나 있어서 결혼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우리가 결혼하기를 원했다. 결혼 후 그것이 단지 하나의 축하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언약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시상시즌에 앤젤리나의 영화와 경쟁을 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영화는 종종 내 친구들의 것과 상을 놓고 경쟁을 하는 수가 있었다. 그것은 나로서나 내 친구로서나 다 축하할 일이다. 앤젤리나의 영화는 엄청난 난관을 이겨낸 인간 정신의 승리에 관한 것으로 규모가 크고 매우 훌륭하다. 우린 서로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나는 앤젤리나가 모든 상을 다 타기를 바란다.”              

―당신과 앤젤리나는 어떻게 서로 스케줄을 조절하는가.
“언제나 누군가는 아이들과 같이 있도록 번갈아가면서 일하도록 짠다. 내가 배우로 일할 때는 앤젤리나가 감독으로 일하는 식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 아이들을 반씩 나눠 돌보면서 시간이 나면 서로 방문하는 식으로 보냈는데 시간 짜기가 쉽질 않았다.”     

―당신은 제작자이기도 한데 제작자와 배우가 서로 다른 점은 무엇이며 감독도 하겠는가.
“감독은 시간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일이어서 다른 할 일이 많은 나로선 할 생각이 없다.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고 싶다. 제작자로선 뭔가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난 내 견해와 취향에 맞는 얘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주관이 뚜렷하다.”     
―당신은 지금 아내가 감독하고 공연도 하는 영화 ‘바이 더 시’(By the Sea)에 나오고 있는데 아내는 세트에서 어떤 주인 노릇을 하는가.
“엄청나게 엄격하다. 유럽을 무대로 슬픔을 다루는 부부에 관한 아름답고 우아하며 또 내밀한 얘기다. 굉장히 도전적인 작품이다. 아내가 하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결혼 14년에 접어든 부부의 미래에 대한 회의와 그들 주변 사람들에 관한 매우 고상한 얘기다.”

―어렸을 때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는가.
“우리는 언제나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 시간이야 말로 각자의 느낌과 하루의 일을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다른 모든 가족처럼 어쩌다 식탁에 모여 다툴 때가 있었다.”

―앤젤리니와 함께 한국에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지.
“앤젤리나의 ‘언브로큰’ 스케줄을 몰라 함께 갈지는 모르겠지만 난 가려고 한다.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다시 그 곳에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11월 중순 쯤이 될 것 같다.”

―당신은 이제 50세인데 25세 때 당신이 생각한 50세의 당신은 어떤 모습이며 지금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감을 느끼는가.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고 또 나의 아이들과 아내로부터 무엇을 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있다. 난 5년 또는 10년 앞을 계획하고 살지는 않는다. 난 언제나 본능에 따라 살았고 또 그것을 믿는다. 그것이 나의 생활 지침입니다.”

―당신은 지난해에 오스카 작품상(12년 노예생활)을 탔고 앤젤리나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는데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아내가 훈장 받은 것 정말로 훈훈한 일이다.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날이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왕실 접견을 했는데 아이들이 고개를 숙여 ‘여왕 폐하’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당신 아내보다 12살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확히 말해 11살 반이다. 그러나 우린 다 같은 성숙한 나이다. 그것이 우리 부부간 조화의 비결이다. 우린 전연 다른 점을 못 느낀다. 난 언제라도 젊음과 지혜를 바꿀 용의가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직 거기까진 안 생각했지만 일을 잠시 접어놓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 

―밀폐된 탱크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탱크 안은 사실 평화로웠다. 마치 수영장 물에 머리를 담근 기분이었다. 비록 냄새가 나는 좁은 공간 안에 다섯 명이 비비고 앉아 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사흘이 지나니 아주 편하더라. 마치 자궁 안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탱크 안에 들어가 저녁에 나올 때도 있었는데 점심도 그 안에서 먹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당신의 연기를 연마하는가. 영화를 보는가.
“영화를 본다. 각본을 읽고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영화 출연에 마음을 안 둔다. 일단 출연을 정하면 준비를 하는데 준비야 말로 모든 것이다.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은 연기와 진짜로 좋은 연기의 차가 난다. 그래서 나는 역을 위해 연구하고 조사하기를 부단히 한다.”   

―앞으로 더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영화인과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동반자로서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열망을 이루고 싶다.”

―배우로서 어떻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기능과 재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난 요즘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개발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소모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배우란 자기 기능을 부단히 연마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가 있다.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도 같은데 난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면 이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몰두하곤 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헝거 게임: 목킹제이 제1부’ (Hunger Games: Mockingjay Part 1)

캐트니스(제니퍼 로렌스·앞)와 게일(리암 헴스워드)이 캐피톨의 공습을 피해 도주하고 있다.

“캐트니스,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주오”


 3부작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만든 빅히트작의 제3편으로 ‘해리 포터’와 ‘트와일라이트’ 시리즈 마지막 편이 둘로 나뉘어 만들어졌듯이 이것도 제1부와 제2부로 갈라서 만들었다. 시리즈 종결편인 제2부는 내년 11월에 개봉되는데 돈벌이가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영화사(이 영화는 Lionsgate가 배급)의 탐욕이 관객을 우롱하는 행패다.
‘헝거 게임’은 골수팬들이나 즐길 영화로 시리즈를 계속 따라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제니퍼 로렌스를 비롯한 올스타 캐스트가 나오는데다가 모양새도 좋고 액션과 드라마를 고루 섞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나 제2부를 위한 2시간짜리 예고편 같은데 생명력이나 살아 숨 쉬는 기운이 결여돼 그냥 손상된 곳 없이 만들어진 물품 같다.
제2편은 주인공인 캐트니스 에버딘(로렌스)에 의해 헝거 게임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끝난다. 제3편의 제1부는 억눌린 자들의 혁명 봉기를 고취시키는 역을 맡은 일종의 잔 다크로 나오는 캐트니스의 혁명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캐트니스가 캐피톨의 독재자 스노(도널드 서덜랜드)의 공격을 피해 지하 깊숙이 콘크리트 벙커를 만들어 사는 피압박자들의 본거지로 혁명의 온상인 디스트릭 13에서 충격과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스노의 지배하에 있는 파넴의 한 부분인 디스트릭 13의 대통령은 알마 코인(줄리안 모어). 
알마의 목표는 캐트니스를 캐피톨을 전복시킬 혁명의 지도자가 되도록 설득시키는 것. 알마와 함께 캐트니스를 설득하는 사람들은 스노를 배신한 헝거 게임 고안자 플루타크(필립 시모어 하프만-영화를 올해 마약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그에게 헌정했다)와 컴퓨터 귀재 비티(제프리 라이트). 
이들은 캐피톨을 뒤엎을 혁명을 학수고대하는 디스트릭 13의 주민들을 위해 캐트니스가 지도자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나 캐트니스는 처음에 이를 거절한다. 이런 캐트니스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이 죽은 줄 알았던 사랑하는 피타(조쉬 허처슨)의 TV 방송 인터뷰. 그런데 캐피톨의 포로가 된 피타는 방송을 통해 디스트릭 13 주민들에게 봉기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세뇌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캐트니스는 피타의 이런 말에 실망을 하지만 그를 구하겠다는 일념과 자기가 살던 디스트릭 12가 캐피톨의 공격을 받고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피난민들이 된 참혹한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이런 캐트니스의 옆을 바짝 따르는 남자가 캐트니스의 충실한 친구 게일(리암 헴스워드). 
그리고 알마는 캐트니스의 일거수일투족을 크레시다(나탈리 도머)가 이끄는 4인조 비디오카메라 촬영팀으로 하여금 영상으로 담게 한 뒤 이를 파넴 전체 주민들의 혁명분위기 고취용으로 쓴다. 우디 해럴슨과 엘리자베스 뱅스가 전편에 이어 다시 나온다. 배우들의 연기를 거론할 그런 영화는 아니다.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천’은 터키다

캡션 추가

27일은 매사에 감사하면서 터키고기를 먹는 추수감사절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 산지 30년이 넘는데도 아직까지도 터키고기가 별로다. 먹긴 먹는데 그레이비 맛에 먹는다고 하겠다.
이런 터키고기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영화계서 흥행에 참패한 영화를 터키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부터 형편없는 연극이나 영화를 터키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터키는 미련하기 때문이라고.
터키고기 먹으면서 구경할 만한(?) 할리웃 역사에 길이 남을 터키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먼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인천’(1982·사진)은 한국인들에겐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터키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아더 장군으로 주연하고 토시로 미후네, 재클린 비셋 그리고 이낙훈과 남궁원이 공연했는데 혹평과 함께 흥행서도 망 했다.
통일교 돈으로 만들어 말이 많았는데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영화촬영차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에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어쩌자고 셰익스피어의 대가가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그러나 터키 중 터키로 영화사를 들어먹은 영화는 ‘디어 헌터’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Heaven’s Gate·1980)이다. 1880년 와이오밍주의 존슨카운티에서 일어난 유럽서 이민 온 농부들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돈과 권력을 쥔 목축업자들 간의 결전을 그린 웨스턴이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크리스토퍼 월큰 및 이자벨 위페르 등 호화 캐스트의 영화는 제작비 및 제작기간 초과로 화제가 됐었는데 완성된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219분. 개봉되면서 비평가들의 악평을 듣고 며칠 만에 극장서 거둬들인 뒤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내놓았지만 비평가나 관객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유나이티드 아티스츠(UA)의 모회사인 투자보험회사 트랜스 아메리카는 UA를 MGM에게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 후 ‘천국의 문’은 지금까지 흥행 참패 영화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나는 219분짜리로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몇년 전에 한 파티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중이던 치미노를 만났을 때 그에게 “나는 ‘천국의 문’을 좋게 봤다”고 말했더니 치미노는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었다.
영화사상 최악의 캐스팅 영화라는 오명을 지닌 것이 ‘정복자’(The Conqueror·1956)다. 존 웨인이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오고 내가 좋아하던 빨강머리의 수전 헤이워드가 타타르족 공주로 나오는 해괴망측한 액션 사극이다.
하워드 휴즈가 제작한 영화는 네바다주의 핵폭탄 실험장소에서 가까운 유타주의 세인트로지에서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출연 배우들인 웨인과 헤이워드 및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그리고 감독 딕 파웰이 모두 암으로 사망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워렌 베이티와 더스틴 호프만이 공연한 코미디 ‘이쉬타’(Ishtar·1987)도 역사적인 터키다. 돈 벌어 보겠다고 모로코에 온 서푼짜리 라운지 가수들의 얘기로 베이티와 호프만의 연기가 가관이다. 5,5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4만3,700달러를 벌었다.
오리가 터키가 된 영화가 만화가 원작인 ‘오리 하워드’(Howard the Duck·1986)다. 무지무지하게 재미없고 엉성한 영화로 가혹한 평을 받아 주연 리아 탐슨 등 출연 배우들의 할리웃 생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인천’처럼 종교단체가 만들어 구설수에 올랐다가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한 영화가 ‘배틀필드 어스’(Battlefield Earth·2000). 사이언톨로지 창시자 L. 론 허바드의 책을 원작으로 사이언톨로지의 신봉자인 존 트라볼타가 나온 공상과학 영화로 나는 영화를 보다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원초적 본능’을 만든 폴 베어호벤 감독이 연출한 ‘쇼걸즈’(Showgirls·1995)도 야한 터키다. 베가스 쇼걸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인데 본의 아니게 우습다. 혹평을 받아 주연 엘리자베스 버클리의 연기생활이 석양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스타들이 역 선정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시 연인 사이였던 제니퍼 로페스와 벤 애플렉이 공연한 ‘질리’(Gigli·2003)는 하마터면 둘의 생애를 망쳐 놓을 뻔했던 악화다. 제작비 5,400만달러에 수입은 고작 600만달러. 버클리와 달리 ‘쇼걸즈’보다 더 나쁜 터키에 나오고도 정정한 여배우가 할리 베리다. 베리는 목불인견의 영화 ‘캣우먼’(Catwoman·2004)에 나와 공연히 몸을 비비 꼬아대 그 해 ‘래지’ 여우주연상을 탔다.
‘래지’(Razzies) 상은 해마다 오스카 시상식 전날 한 해 최악의 작품과 감독 그리고 배우 등에게 주는 상. 이상을 탄 배우들로는 실베스터 스탤론, 패리스 힐튼 및 에디 머피 등이 있고 B급 배우 로널드 레이건은 생애업적상을 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할리웃 터키의 원조는 ‘글렌 또는 글렌다’(Glen or Glenda·1953)와  ‘외계로부터 온 플랜 9’(Plan 9 from outer Space·1959)을 감독한 에드 우드 주니어다. 돈도 재능도 없었던 그의 영화는 아이들의 홈무비 수준이다. 우드 주니어의 얘기는 팀 버튼이 감독하고 자니 뎁이 주연한 ‘에드 우드’(Ed Wood·1994)에서 재미있게 재현됐다. 해피 댕스기빙!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타이론 파워 탄생 100주년

 ‘카스틸의 캡튼’. 여배우는 진 피터스.

잘 생긴 게 ‘핸디캡’... ‘진지한 배우 꿈’ 못 이루고 44세에 요절


할리웃에서 잘 생긴 얼굴 때문에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 못 받고 또 통속적인 오락영화에만 나와야 했던 대표적인 배우가 할리웃 황금기의 수퍼스타 타이론 파워였다. 6피트 키에 새카만 눈썹과 깊고 큰 눈 그리고 코끝이 약간 도드라진 절세 미남이자 매력 만점인 파워하면 대뜸 떠오르는 영화가 스와시버클러인 칼싸움 영화다. 그의 많은 스와시버클러 중에서도 가장 유명 것은 아마도‘조로의 마크’(The Mark of Zorro·1940)일 것이다. 여기서 조로로 나오는 파워가 사악한 라이벌 바질 래스본과 칼부림을 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칼싸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파워는 22세 때 영국의 보험회사에 관한 드라마인 ‘런던의 로이즈’(Lloyd’s of London·1936)에 나오면서 대뜸 할리웃의 스타로 부상했는데 이 영화의 프리미어 후 6개월이 채 안 돼 차이니스극장 앞 콘크리트에 손과 발자국을 남겼다.
1939년에 이르러 그는 미키 루니에 이어 두 번째로 흥행성적이 좋은 남자 배우로 부상했는데 이 해 나온 그의 두 영화로 웨스턴인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멜로드라마 ‘비가 내렸다’(The Rains Came)는 그 해 최고 흥행성적 4위권 안에 들었다.
그러나 연극계서 활동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워는 스타로서만 만족 못하고 진지한 배우로 인정  받으려고 노력했으나 당시 배우를 전속으로 계약한 뒤 회사 마음대로 사용하던 스튜디오 체제 때문에 제대로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파워는 생전 배우가 되기 훨씬 이전에 스타가 된 사람이다.
파워는 1914년 5월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출생해 1958년 11월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44세로 요절했다.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공연하던 ‘솔로몬과 시바’(Solomon and Sheba)를 촬영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파워의 대타로 율 브린너가 솔로몬으로 나왔다.
올 해로 파워 출생 100주년을 맞아 할리웃 뮤지엄(1660 노스 하일랜드)에서는 ‘타이론 파워: 남자, 신화 & 영화 우상’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연말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는 파워의 개인적 및 영화인으로서의 삶과 세 번의 결혼과 세 명의 자녀에 관한 자료를 비롯해 그가 나온 영화들의 각종 기념물 등 총 40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품들 중에는 파워가 투우사로 나온 ‘혈과 사’(Blood and Sand·1941)의 의상과 다른 영화들의 로비 카드와 포스터와 프레스킷과 책자 및 영화음악의 악보와 각본들이 선보인다.
이와 함께 14일에는 반스달 갤러리 극장(4800 할리웃·전화번호 323-644-6275)에서는 파워가 나온 뮤지컬 ‘알렉잰더의 랙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1938)를 그리고 15일에는 그의 또 다른 명작 스와시버클러 ‘카스틸의 캡튼’(Captain from Castile·1947)이 각기 상영된다. 또 15일 오전에는 할리웃의 할리웃 포레버 장지에 있는 파워의 무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다. 
전문가들은 파워가 진지한 배우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를 그가 너무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워도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진지하고 심각한 역을 맡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의 전속사인 폭스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워는 2차 대전에 해병으로 근무한 뒤 제대해 할리웃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칼싸움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폭스사 사장에게 “5편 이상의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올 테니 대신 내가 원하는 영화에도 나오게 해 달라”고 간청, 뛰어난 느와르 영화 ‘악몽의 골목길’(Nightmare’s Alley·1947)에 나왔다. 
여기서 파워는 순회곡예단의 손님 끄는 남자로 나와 마음을 읽는 여자와 짜고 목적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훌륭한 연기를 한다. 그러나 폭스는 이 영화를 위해 선전도 하지 않고 일찍 극장에서 철시를 한 뒤 ‘카스틸의 캡튼’을 예정보다 빨리 개봉했다. 
파워가 나온 또 다른 훌륭한 드라마로는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검사 측 증언’(Witness of the Prosecution·1957)과 진 티어니와 공연한 서머셋 모음의 소설이 원작인 ‘면도날’(Razor’s Edge·1946)이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폭스캐처 USA(Foxcatcher USA)

마크(채닝 테이텀·왼쪽)가 존(스티브 카렐)으로부터 레슬링 지도를 받고 있다.

긴장… 갈등… 마치 스릴러 같은 레슬링 영화


1996년에 발생한 펜실베니아주의 억만장자 존 E. 뒤판트의 미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 데이브 슐츠 살인사건을 다룬 단단히 조여진 어둡고 긴장감 가득한 심리드라마이자 성격탐구 영화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지녔다.
묵직한 영화로 내용과 연기와 연출 그리고 촬영 등 여러 부문에서 상감인데 특히 볼만한 것은 코미디언 스티브 카렐과 별로 무거운 역을 하지 않았던 테이텀 채닝의 극적인 변용. 둘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 보여주는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둘 다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인 데이브와 그의 동생 마크 그리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존의 삼각관계를 다루었는데 상영시간이 134분인데도 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해괴한 얘기를 심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바짝 조인 베넷 밀러 감독(‘카포티’ ‘머니볼’-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의 완숙되고 튼튼한 연출력 때문에 무슨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한기마저 느끼게 된다.
둘 다 1984년 LA 올림픽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브(마크 러팔로)와 마크(테이텀)는 형제.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데이브는 자신들의 부모가 이혼한 뒤로 동생 마크를 돌봤는데 둘은 형제애가 돈독하면서도 침울한 성격의 마크는 늘 형의 그림자를 못 벗어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 있다.
데이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코치로서 마크와 맹훈련에 들어가는데 영화는 둘의 레슬링 장면을 통해 형제간의 사랑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펜실베니아의 밸리포지에 대규모 저택과 경마용 녹초지 폭스캐처를 소유한 존(카렐)에게서 마크에게 초청장이 날아든다.
폭스캐처에 있는 자신의 체육관에서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 훈련 중인 레슬링 팀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이에 마크는 데이브에게 함께 가자고 종용하나 아내(시에나 밀러)와 어린 두 아이가 있는 가정적인 데이브는 집을 떠날 수 없다고 사양한다.
마크가 혼자 폭스캐처에 도착하면서 존의 영접을 받는다. 존으로 분장한 카렐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커다란 가짜 코에 눈썹이 거의 없는 창백한 색깔의 얼굴을 한 존은 마치 인조인간처럼 괴이하고 병적인 모습. 게다가 이상한 억양으로 말까지 느리게 해 보고 있자니 기분이 으스스하다.
존은 일종의 과대망상증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성취해야 만족하는 이고 투성이의 인간으로 마크와 팀을 가혹하게 훈련시킨다. 그리고 팀의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마크에게 데이브를 코치로서 폭스캐처로 오게 하라고 보챈다. 이에 데이브가 가족과 함께 폭스캐처로 이사 오면서 3인 간에 깊은 관계가 맺어진다.
그러나 다시 형의 후광에 자신이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마크는 개인적으로 선수로서 타락의 길을 걷는데 데이브는 이런 동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려고 모진 애를 쓴다. 여기에 존이 데이브를 무시하고 팀의 코치 노릇을 자처하면서 존과 데이브의 관계에 갈등이 인다. 마크를 비롯한 폭스캐처 팀은 존을 코치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나 메달권에서 밀려났다.
연기들이 모두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것은 카렐의 연기. 완전히 자신의 생애를 뒤바꾸어 놓을 경탄할 연기로 살아 있는 괴물을 보는 것 같다. 
R. Sony Classics. 랜드마크(310 -470-0492),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888- AMC-4FUN)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홈스맨(Homesman)

조지(왼쪽)가 메리 비에게 험한 여정에 대해 훈시를 하고 있다.

‘다시 동부로’여성들의 거친 여정 담은 이색 웨스턴


2005년 웨스턴 ‘멜퀴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 타미 리 존스의 두 번째 감독작품으로 그가 주연도 한 이색적인 웨스턴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척시대 서부정착에 실패하고 동부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그린 영화로 서부 광야처럼 거칠고 에누리 없이 각박하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환경 속에 인간적인 면을 강조해 오히려 훈기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영화는 서부개척 시대의 여자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웨스턴 ‘서부로 가는 여자들’(Westward the Womanㆍ1951)을 연상케 한다. 비록 ‘홈스맨’의 여자들은 서부를 떠나 동부로 가고 있긴 하지만.
네브래스카주에서 농장을 일궈 성공한 신심과 정의감이 강한 31세의 노처녀 메리 비 커디(힐라리 스왱크)는 열심히 남편감을 물색하나 누구도 줏대가 센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 메리의 이웃들인 세 여자가 혹독한 서부환경에 지쳐 정신이상자들이 된다. 아라벨라(그레이스 거머-메릴 스트립의 딸)는 장질부사로 세 아이를 잃었고 테올린(미란다 오토)은 갓난아기를 변기통에 내던졌고 그로(손자 릭터)는 귀신에 씌었다. 
동네 목사(존 리트가우)의 주선으로 아이오와주의 목사 부인(메릴 스트립)이 이들을 받아주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들을 아이오와주까지 데리고 갈 남자가 없다는 점. 미친 여자들 수송을 자원한 사람이 메리 비. 
메리 비는 미친 여자들을 태운 마차를 몰고 길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탈영병이자 타인 명의의 광구횡령자로 목에 밧줄이 감긴 채 말에 앉아 있는 조지 브릭스(타미 리 존스)를 만난다. 그리고 조지를 살려주는 대신 그가 아이오와까지 함께 간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서부 광야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로드 무비’로 여기서부터 아이오와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가 지 에피소드로 꾸며진다. 이 부분에서 전형적인 웨스턴의 내용을 과감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어 기시감이 있다.              
좋은 점은 메리 비와 조지의 성격묘사가 뚜렷한 것. 둘의 개성과 내면이 매우 풍부하게 그려졌는데 연기파들인 스왱크와 타미 리 존스가 깊이 있는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다. 특히 스왱크의 튼튼한 연기가 출중하다. 심술첨지 모습의 타미 리도 무뚝뚝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잘 하는데 둘의 콤비가 썩 잘 어울린다. 이와 함께 서부를 미화하지 않고 삭막한 모습 그대로 잡아낸 촬영과 음악도 인상적이다. R. Roadside. 랜드마크극장과 아크라이트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새벽’



졸린 눈에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 그리고 주먹코를 한 과묵한 프랑스 명우 장 가방은 1930년대 로맨틱한 염세주의를 상징했던 프랑스 영화의 동의어와도 같은 배우였다. 그는 운명을 트렌치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는 저주받은 반영웅처럼 기억될 만큼 숙명적이요 비극적이며 어두운 영화에 많이 나왔다. 장 가방 하면 세속적인 국외자요 고독자가 연상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방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흐름이었던 ‘시적 사실주의’(Poetic Realism)의 대표적인 스타로 많은 영화에서 자기를 파괴하려는 잔인한 운명과 투쟁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나왔다. 고독이라는 병을 앓은 뒤 순수한 사랑을 찾아 잠시 위로를 받으나 또 다시 기만당하고 자신의 꿈을 빼앗겨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시적 사실주의’는 주로 파리 주변을 무대로 한 노동자 계급의 도시 드라마로 매우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 신화 속 존재 같은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때로 범죄를 저지르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대부분 처절한 종말을 맞는다.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뒤덮은 당시 프랑스의 시민들의 절망과 허무를 대변했는데 뛰어난 형식미 속에 각박한 일상과 서정적이요 감정적인 것의 이중성을 담고 있다. 회색으로 채색된 실존적 영화다.
가방이 나온 ‘사적 사실주의’의 걸작 중 하나가 살인자 프랑스와의 하룻밤을 그린 ‘새벽’(Le Jour se Leve·1939·사진)이다. 노르망디 교외의 노동자층이 사는 6층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분노한 음성과 함께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아파트의 좁은 계단 아래로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가 굴러 떨어져 내린다.
이어 아파트에 들이닥친 경찰들이 프랑스와가 바리케이드를 친 아파트 문을 향해 총알을 쏟아 붓는다(실탄이 사용됐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프링스와의 현재와 그가 회상하는 과거가 교차되면서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권총자살로 끝난다.
공장 노동자인 프랑스와와 그가 사랑하는 가녀린 꽃가게 여점원 프링스와즈(자클린 로랑) 그리고 프랑스와를 사랑하는 클럽 쇼걸 클라라(아를레티) 및 이 두 여인을 소유하다시피 한 쇼맨 발랑탕(쥘르 베리) 등 4인이 맺는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흑백 촬영이 뛰어난 이 영화의 감독은 마르셀 카르네이고 각본가는 시인이기도 한 자크 프레베르인데 프레베르의 아름다운 글이 자칫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절망적인 얘기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시적 사실주의’의 또 다른 걸작으로 역시 가방이 나오고 호심 같은 눈을 지녔던 미셸 모르강이 공연한 음습한 분위기의 ‘안개 낀 부두’(Le Quais des Brumes·1938)와 이 영화사조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마르셀 마르소와 아를레티가 나오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1943-45)도 같이 만들었다.    
‘새벽’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장이 ‘우리 시대 영화의 비극적 영웅’이라고 칭한 가방이 사랑과 희망을 잃고 살인을 한 뒤 스스로를 자기 아파트에 가두어 놓은 킬러의 연기를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치명상을 입은 짐승처럼 불안하고 절실하게 보여준 명화다.
영화는 개봉되면서 당시 나치의 프랑스 괴뢰정부였던 비시 정부의 혹독한 검열을 받고 아를레티의 나신장면과 경찰을 파시스트에 비유한 대사를 비롯해 둘 다 유대인이었던 촬영감독 쿠르트 쿠란트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트러네의 이름이 잘려 나갔다. 그러다가 곧 이어서는 영화가 ‘지나치게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아예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가방의 신화를 창조한 ‘시적 사실주의’의 첫 영화는 쥘리앙 뒤비비에가 감독(공동 각색 겸)한 운명이 판을 치는 로맨틱한 갱스터 영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7)다. 파리에서 은행강도를 한 뒤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항구도시 알지에의 언덕 위 아랍계들이 사는 치외법권 지대나 마찬가지인 달동네 카스바에 숨어 사는 플레이보이 페페의 이야기다.
하구한날 항구를 바라다보며 파리를 그리워하던 페페가 파리에서 놀러와 구경 차 카스바로 올라온 돈 많은 늙은이의 정부로 깊은 눈동자를 지닌 가비(미레유 발랑)을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암흑세계의 갱스터에 대한 동경이요 미녀와 야수의 드라마로 페페가 고동소리를 내며 항구를 떠나가는 귀국선을 탄 가비를 향해 “가비”하고 외치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손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라스트신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이 영화는 1938년 샤를르 봐이에와 헤디 라마 주연의 흑백 미국 영화 ‘앨지어즈’(Algiers)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도 삼삼하다.
가방이 저주 받은 사랑을 하는 남자로 나와 치열한 연기를 한 또 하나의 1930년대의 명작이 장 르느와르(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가 감독한 ‘인간 짐승’(La Bete Humaine· 1938)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에서 열차 기관사인 가방은 역장인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는 요부(시몬 시몽)를 사랑하다가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자기는 달려오는 기차에 투신자살한다.  
‘새벽’ 개봉 7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잘려나간 장면과 대사 그리고 크레딧이 복원된 새 프린트로 14일부터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플레이하우스(패사디나).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잔 윅’ 키아누 리브스


“색다른 범죄자들 이야기에 끌려 출연”


현재 상영 중인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스릴러‘잔 윅’(John Wick)에서 개인적 복수를 위해 은퇴에서 다시 범죄의 세계로 돌아온 무자비한 킬러로 나온 키아누 리브스(50)와의 인터뷰가 최근 LA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덥수룩한 검은 수염만 없었다면 50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청년의 모습을 한 리브스는 단단한 체구의 늘씬한 미남으로 수줍음을 많아 타 질문에 자주 얼굴을 붉히면서 차분히 답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경직돼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이 풀린 듯 잔잔한 미소와 함께 가끔 유머를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응했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당신이 50세라고, 내가 보기엔 소년 같다”고 말했더니 리브스는“오, 노 노”하면서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리브스는 이 영화 홍보차 12월 둘째 주 한국을 방문한다.    

-어떻게 이 영화에 출연을 응했는가.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명예를 존중하는 범죄자들의 지하세계의 얘기로 유머와 인간적인 면이 있는 글이었다. 여태껏 나온 영화들과는 다른 특별나고 신선한 점이 있었다. 액션도 아주 다르다. 모든 것이 당신 앞에서 일어나는 듯이 사실적이다. 그 사실을 바짝 긴장도를 높인 것이다.”

-액션을 위해 어떤 훈련을 했는가.
“주지추와 유도를 짬뽕한 ‘건 후’라는 무술을 익히라고 해서 연습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권총 다루는 방법을 연습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악인들을 살해하는데 몇 명인지 아는가.
“감독이 나더러 70명 이상 죽였다고 하더라. 존 윅은 그래서 매우 바빴다.”

-이 영화는 배우인 에바 롱고리아가 제작을 했는데 에바는 영화제작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에바는 제작에 실제로 참여하진 않았다. 다만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당신의 밴드는 지금 어떻게 됐는가.
“수년 동안 해산된 상태다. 몇 주 전에 즉흥 연습연주를 했다. 아주 오래간만인데 이상했지만 즐거웠다. 새로운 곡을 지어보려고 구상 중이나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밴드가 다시 구성돼 연주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 차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당신은 어떤 차를 모는가.
“2013년도 포셰다. 아름다운 기계로 이 차는 내 친구다. 

-당신은 궁지에 몰릴 때 누구를 찾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변호사나 경찰도 찾는다.”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들을 쿵후로 때려누이고 싶지 않은가.
“그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파파라치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댈 때면 겁이 난다.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란다.”

-존 윅의 가까운 친구는 개와 자동차 그리고 총인데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다. 특히 고르라면 모터사이클들이다.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 얻은 물건들을 아끼는데 그런 것으로 두 개의 타이프라이터가 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벌의 양복이 있고 친구들의 사진과 내 경험을 찍은 사진들 및 내가 나온 몇 편의 영화들이 내 친구들이다.”

-애완동물이 있는가.
“없다.”

-요즘도 모터사이클을 타는가.
“탄다. 나는 실제로 모터사이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름은 아치 모터사이클로 동업인데 6주 전부터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만드는 모터사이클들은 아주 멋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과거를 돌아보건대 당신은 지금 당신이 원했던 배우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과거를 회상하자면 그 동안 배우로서 일할 수 있었고 내가 사랑하고 또 어떤 것은 팬들이 사랑하는 영화에 나왔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나는 1985년 할리웃에서 일하기 위해 토론토를 떠났다. 그동안 목적이 이뤄졌고 또 현재도 나는 좋은 영화와 역을 찾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러 가지의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하는 정열과 희망 및 이유는 늘 같다.”

-어느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가.
“난 모든 장르를 좋아한다. 영화는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흥미 있는 감독이나 내용의 영화를 발견하면 구경 간다.”

-당신의 러시아어 구사 능력이 썩 괜찮던데.
“액센트가 너무 심하지 않고 약간 있는 러시아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스타일 있는 폭력을 구사하는 아시아적 주제를 지닌 영화에 여러 번 나왔는데 그런 영화들이 미국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가.
“스타일 있는 영화 폭력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무성영화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멋있는 죽이고 패는 폭력영화는 샘 페킨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와 스타일 있는 유럽 폭력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 분명한 것은 홍콩의 쿵푸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당신은 로맨틱한 사람인가.
“존 윅 역을 맡은 것은 그가 로맨틱하기 때문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로맨틱하다기보다 장난기가 있다고 하겠다.”

-모든 면에서 영화가 매우 과장돼 마치 비디오게임을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확실히 스타일 있는 폭력을 내포한 게임이자 현실을 한 단계 높인 영화라고 하겠다. 마치 자신이 하는 게임을 보는 것과도 같다.”

-영화의 프로 킬러들은 나름대로의 윤리강령이 있는데 영화사 고급 간부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가.
“내가 아는 킬러들이 없으니 그들의 윤리에 대해선 알 바 없지만 영화사 간부들 중에는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영화사 간부들에 의해 데인 적이라도 있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 쇼 비즈니스다.”

-당신은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액션영화를 만들 때 엄격하고 힘든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조상의 유전자 탓도 있으니 그들에게 감사한다.”

-당신은 70명밖에 안 죽였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온 ‘익스펜다블스’에선 그것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죽는데 그 영화의 속편에 나올 뜻이라도 있는가.
“내게 빈자리가 주어진다면 서슴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로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가 내게 그의 영화에 나올 것을 제의한다면 나로선 하나의 큰 영광이다.”

-이것은 당신의 무술영화인데 무술에 대해 늘 열정이 있었는가.
“난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와 가짜 싸움을 즐겼었다. 우리가 연극을 할 때면 늘 칼싸움이 있는 것을 했다. 내게 있어 그것은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싸움이었다.”

-언제부터 모터사이클을 탔으며 그것을 타고 멋진 여행이라도 해 봤는가.
“처음에 독일서 배웠다. 미국에 와 처음 타고 간 곳은 선셋 블러버드와 퍼시픽코스트 하이웨이와 샌타모니카 산이었다. 그것을 반복했다. 프랑스와 호주에서 멋진 여행을 즐겼고 미 동부에서도 신나게 달렸다. 샌프란시스코 연안을 달린 것도 좋았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터사이클은 무엇이며 그것을 타고 여행을 할 때 혼자 하는가 여럿이 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턴 코맨도다. 프랑스와 호주 여행 땐 친구들과 같이 달렸다. 미국에서도 혼자 탈 때가 있고 여러 명이 함께 탈 때도 있다.”

-몇 대가 있는가.
“모두 4대다.”

-당신이 나온 ‘포인트 브레이크’의 신판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저 잘 만들고 만들면서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과 존 윅은 닮은 데라도 있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존 윅 역을 하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강한 힘을 지녔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요새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영화 나오느라 바빠서 사랑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저 가족과 친구와 함께 있기를 즐긴다. 현재 애인은 없다. 슬픈 일이다. 친구들이 나를 여자와 연결시켜 주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포기했다.”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쿠퍼(매튜 매코너헤이)가 우주여행 끝에 빙하가 된 혹성에 도착했다.


인류의 새 정착지 찾아서… 눈부신 우주탐험


두뇌를 요구하는 영화를 만드는 영국의 크리스 놀란 감독(‘배트맨’ ‘인셉션’)의 사랑과 희생의 주제를 곁들인 대규모 스펙태클 공상과학 우주탐험 드라마로 놀란의 ‘2001: 우주 오디세이’다. 대단한 야심작으로 아찔한 시각효과와 아름다운 촬영 그리고 고상한 아이디어와 스타일 및 주인공의 좋은 연기를 비롯해 칭찬 받을만한 점이 많긴 하나 문제는 이야기 서술과 터무니없이 복잡한 플롯(놀란이 동생 조나산과 함께 각본을 썼다) 그리고 궁극적 연출 결과가 야심과 아이디어를 못 따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온갖 이론 물리학을 잘 알아도 이해할까 말까 할 지나치게 많은 천문과학적 용어와 함께 마치 관객의 지능을 시험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늘어놓은 플롯 그리고 감독의 부푼 이고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려다가도 주춤하고 물러서게 된다.
무슨 요설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속임수에 당하는 기분이기도 한데 놀란은 ‘2001’을 능가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암호로 만든 듯한 장광설을 늘어놓아 짜증마저 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느껴라”면서 잘 모르겠으면 두 번, 세 번이라도 보라고 영화사 홍보인 같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영화에 우주인으로 나온 앤 헤사웨이도 “나도 영화를 완전히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지구가 흙모래 폭풍으로 황폐해가면서 식량이 모자라는 가까운 미래. 전직 우주비행사로 홀아비인 쿠퍼(매튜 매코너헤이)는 시골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으면서 장인(존 리트고우)과 두 남매 탐(어릴 때는 티모데 샬라메, 성인 역은 케이시 애플렉)과 머피(어릴 때는 맥켄지 포이, 성인 역은 제시카 채스테인)와 함께 살고 있다.
쿠퍼가 우연히 위치를 숨긴 마지막 남은 미 국립우주항공국(NASA-식량 조달이 우선이어서 모든 NASA 기지는 폐쇄됐다)을 발견하면서 거기서 자신의 옛 스승인 우주공학자 브랜드(마이클 케인)를 만난다. 브랜드는 쿠퍼에게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이 있는지를 탐험해 달라고 부탁한다.
쿠퍼는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우주여행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인류를 위해 자기희생을 할 것이냐 아니면 떠나지 말라고 우는 딸이 있는 가정을 지킬 것이냐. 영화는 흥분되고 선험적인 우주모험에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고 있다.
그리고 쿠퍼는 브랜드의 딸 아멜리아(해사웨이)와 다른 2명의 우주인들과 함께 우주탐험을 떠난다. 우주선에는 냉소적인 걸어 다니는 검은 고체상자와 같은 로봇이 동승하는데 이 로봇은 ‘2001’의 비석 모양의 검은 물체를 연상케 한다. 
우주선은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통하는 관문인 웜호울을 빛의 속도를 초월해 비행하면서 토성 인근의 빙하가 된 혹성(이 부분이 인상적이다)에 도착한다. 눈부신 시각효과를 사용해 보여주는 이 우주여행이 장관인데 70mm 대형화면을 가득 메운 방대한 우주 속의 모험이 스릴 만점이다. 
감탄할 부분도 적지 않고 작품제작 의도도 가상한 영화이긴 하나 결점도 많은 일종의 미완성대작이다. 그리고 매코너헤이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매코너헤이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 좀 과다하긴 하나 오르간을 주로 사용한 한스 짐머의 음악이 효과적이다.
PG-13. Paramoun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모든 것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

제인(왼쪽)과 호킹이 서로 사랑의 눈길을 즐기고 있다.

스티븐 호킹의 업적과 25년에 걸친 사랑과 이별 


블랙홀과 우주의 기원에 관해 연구하고 베스트셀러 ‘시간의 짧은 역사“를 쓴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에 관한 드라마로 말끔하고 확실하게 잘 만들었으나 특별히 뛰어난 점은 없는 전형적인 전기 드라마다. 호킹의 업적과 25년간에 걸친 그와 아내 제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을 고루 다루고 있는데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이와 함께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재미있는 내용과 영국 현지에서 찍은 촬영 그리고 음악 등이 다 좋아 권하고 볼만한 영화이긴 하지만 작품이 현존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어서 그런지 얘기를 너무 조심해서 다뤄 극적인 높낮이를 충분히 즐기기는 힘들다.
시간대를 따라 진행되는 영화는 1963년 호킹(에디 레드메인)이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학의 한 파티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제인(펠리시티 존스)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둘은 순진한 아이들처럼 사랑에 빠지는데 이와 함께 호킹의 연구생활이 교차로 묘사된다. 그리고 호킹은 수학에 남다른 이해력과 통찰력을 지녀 담당교수 데니스(데이빗 튤리스)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호킹은 근위축증(루게릭병)에 걸리고 의사로부터 2년밖에 더 못 산다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호킹은 제인마저 외면하나 호킹을 진실로 사랑하고 강단이 있는 제인은 호킹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둘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즐긴다.
호킹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제인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남편을 돌봐야 하는 부담도 따라서 증가하나 제인은 굳세게 남편을 지킨다. 영화는 이런 제인의 처지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제인은 교회의 합창단 지휘자 조나산(찰리 칵스)을 사랑하게 된다. 이와 함께 둘의 결혼생활은 호킹이 자기를 돌보는 특별 간호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호킹의 과학적 업적과 결혼생활 그리고 이 결혼의 해체를 균형 있게 다루려고 무척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한데 좀 과감했더라면 영화가 훨씬 더 힘 있고 극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레드메인의 연기다. 몸의 연기라기보다 얼굴의 연기로 눈동자와 입술과 안면근육을 사용해 매우 우아하고 완벽하게 호킹을 재현하고 있다. 총명하고 또렷한 연기로 레드메인의 ‘나의 왼발’이라고 하겠다. 이와 함께 존스의 연기도 단단하면서도 고상하다. 제임스 마쉬 감독. PG-13. Focus.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황야의 결투’



웨스턴의 장인 존 포드는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여기는 서부야. 전설이 사실이 되면 전설을 인쇄하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실과 전설이 뒤엉켜 사실이 전설이 되다시피 한  미 서부의 총격전의 대표적 사건이 1881년 10월26일 이른 아침 애리조나주 툼스톤에서 일어난 O.K. 목장의 결투다.
연방 보안관 와이엇 어프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와이엇의 친구로 전직 치과의사인 폐병환자 킬러 닥 할러데이 대 소도둑 일가 클랜턴 가족 간에 벌어졌던 총격전으로 단 30여초 만에 끝났다,
미 서부사의 마지막 대결이라 불리는 이 전설적인 사건은 하도 유명해 수많은 책과 TV 작품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대중적인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나온 ‘O.K. 목장의 결투’(1957)다.
이 밖에도 이 결투는 제임스 가너와 제이슨 로바즈가 공연한 ‘총의 시간’과 커트 러셀과 발 킬머가 나온 ‘툼스톤’ 그리고 케빈 코스너와 데니스 퀘이드가 공연한 ‘와이엇 어프’ 등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와 내 친구 C가 가장 좋아는 웨스턴이자 O.K. 목장의 결투 얘기는 존 포드가 감독한 흑백 서정시와도 같은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ㆍ1946ㆍ사진)이다. 이 영화는 와이엇 어프를 개인적으로 알았던 포드가 그에게 바치는 헌사다.
내용과 연기와 액션과 함께 포드가 여러 편의 웨스턴을 찍은 애리조나와 유타주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찍은 촬영 등 모든 것이 준수한 작품이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을 다소 전설화 했지만 가급적 사실에 충실한 영화로 느린 템포로 서술되고 있다.
많은 포드의 웨스턴에서 볼 수 있는 활짝 트인 하늘과 떠 있는 뭉게구름 그리고 광활한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극적인 얘기로 우수와 노스탤지어가 촉촉이 배어 있다. 특히 인상에 깊이 남는 것은 침울한 흑백 명암을 뛰어나게 처리한 촬영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화면 안에 마치 서부 전체를 떠다 옮겨 놓은 듯한 무한광대하고 흙먼지 일어나는 사실적인 촬영으로 영상시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툼스톤은 모뉴먼트 밸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포드가 매우 좋아한 곳이어서 영화를 여기서 찍었는데 그는 자신의 다른 웨스턴인 ‘역마차’와 ‘황색 리번’ 및 ‘수색자’ 등도 역시 이 곳에서 찍었다. 그래서 모뉴먼트 밸리에는 포드를 기리는 ‘존 포드 포인트’가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역마차’의 현장 취재차 모뉴먼트 밸리를 방문했었다. 황토의 언덕 위에서 아래로 가없이 물러선 광야를 바라보면서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허공중에 떠도는 듯한 신비한 감동을 느꼈었다. 왜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화에서 참 보기 좋은 것은 ‘신사 건맨’ 와이엇 어프 역의 헨리 폰다의 과묵한 모습과 절제된 연기다. 콧수염을 한 폰다의 침착하고 평온한 연기는 거의 단조로울 지경인데 대사의 억양 역시 높낮이가 거의 없다. 완벽한 연기로 수필과도 같은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 못지않게 멋진 인물이 닥 할러데이로 나온 빅터 마추어다. 폐병으로 심한 기침을 할 때마다 목에 감은 스카프로 입을 틀어막는 닥은 이 기침을 위스키로 진정시키곤 한다. 그런데 사실과 달리 닥은 영화에서 이 기침 때문에 클랜턴 일가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마추어는 쓴맛 다시는 표정으로 시한부 인생의 건맨 모습을 윤곽이 뚜렷하게 표현하는데 “투 비 오어 낫 투 비”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구절을 줄줄이 외워 살육의 영화에 문학적 기운마저 부여한다.
제목의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즈)은 닥의 전 애인으로 그녀는 자기를 피해 서부로 달아난 닥을 찾아 툼스톤에 도착한다. 그런데 어수룩할 정도로 순진한 와이엇이 이 참한 색시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영화에서 간간이 하모니카로 불어대는 미국 민요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의 선율이 차마 자기 사랑을 제대로 고백 못하는 와이엇의 마음을 감상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클레멘타인과는 정반대로 정열적인 여인이 닥을 사랑하는 술집가수인 멕시칸 치와와(린다 다넬)다. 눈이 큰 다넬이 닥을 사랑하는 여인의 역을 뜨겁게 보여주고 있다. 멕시칸고추처럼 입안이 화끈해지는 연기다.
영화는 포드의 많은 다른 웨스턴들처럼 주인공이 먼 지평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와이엇은 마을에 학교 선생으로 남는 클레멘타인의 볼에 입을 맞춘 뒤 “맴, 나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좋습니다”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이어 카메라가 말을 타고 떠나가는 폰다의 뒷모습을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따라간다. 과연 와이엇은 클레멘타인을 찾아 다시 툼스톤으로 돌아올 것인가.
와이엇 어프는 생애 모두 100여회의 결투를 했는데 건맨으로는 보기 드물게 장수하다가 1929년 81세로 LA에서 사망했다. 닥 할러데이(본명 존 H. 할러데이)는 조지아주 명문 태생으로 폐병으로 치과를 문 닫고 서부로 방랑길에 올랐다. 총과 칼에 능했는데 1887년 35세로 숨지기까지 모두 30명을 황천으로 보냈다. ‘황야의 결투’가 새로 프린트돼 Criterion에 의해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나이트크럴러(Nightcrawler)

루(제이크 길렌할)가 사전현장에 도착, 현장을 엿보고 있다.

도덕성? 양심? 웃기지들 마, 대중은 피를 원해!


태블로이드 저널리즘 특히 시청률에 매어달려 센세이셔널한 사건에만 집착하는 TV 저널리즘과 이런 뉴스를 즐기는 시청자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어둡고 폭력적이며 고약하도록 우스운 스릴러다.
 TV방송국의 이면을 파헤친 영화‘네트웍’의 시궁창 냄새가 나는 새카만 풍자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로 생존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지 마다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한 야행성 들쥐 같은 인간을 통해 빗나간 아메리칸 드림을 조소하고도 있다.
영화가 다소 과장되고 야단스럽긴 하지만 흡혈귀 노스페라투 같은 모습으로 필사적인 연기를 하는 주인공 제이크 길렌할과 조연진의 좋은 연기 그리고 LA(여러 장면을 코리아타운에서 찍었다)의 밤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찍은 촬영과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 등 대중에게 어필할 흥분되는 영화다.
루 블룸(길렌할)은 LA의 밤을 헤매는 도둑이자 날치기요 사기꾼으로 시궁창 쥐와도 같은 영혼에서 도덕성이 빠져나간 자다. 살기 위해선 어떤 짓이라도 하는 루는 어느 날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프리랜서 비디오 카메라맨들이 현장을 찍어 TV 방송국에 팔아먹는다는 것을 배운다.
루는 이어 베니스비치에서 비싼 자전거를 훔쳐 전당포에 가 자전거를 비디오카메라와 경찰 호출 스캐너와 바꾼 뒤 야간 사고현장에 들이닥친다. 앰뷸런스 뒤를 쫓는 프리랜서다.
루가 처음 찍은 것은 카재킹 피해자 모습. 그는 이것을 시청률 꼴찌인 TV 방송국의 심야 뉴스제작자로 시청률 상승에 혈안이 된 니나(르네 루소가 오래간 만에 영화에 나와 섹시하면서도 절박한 연기를 잘 한다)에게 팔아먹는다.
‘대중은 피를 원한다’는 것이 자신의 좌우명인 니나는 루에게 더 화끈한 필름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루는 밤새 LA의 사건과 사고현장을 쫓아다니면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리고 루는 장래를 보장한다는 온갖 감언이설과 요설을 늘어놓으면서 싼 값으로 릭(리즈 아메드도 잘 한다)을 조수로 고용한다.
둘은 밤의 LA를 헤매고 다니면서 피투성이의 교통사고나 총격사건 따위를 카메라에 담는데 루는 사고를 보다 드러매틱하게 찍기 위해 시체를 조명 밝은 곳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그리고 경찰보다 먼저 삼중 살인사건 현장에 도착, 참혹한 현장을 찍어 니나에게 판다. 이 때문에 루와 니나는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내면이 심각하게 썩어 문드러진 루는 보다 충격적인 필름을 요구하는 니나에게 자기와 데이트를 안 하면 필름을 다른데 팔겠다고 공갈을 한다. 돈 독이 오르고 아울러 끔찍한 사고와 사건을 찍으면서 흥분감을 즐기게 된 루는 충격적인 물품을 내놓기 위해 현장 훼손을 밥 먹듯이 하는데 급기야는 준 살인행위마저 저지른다.
길렌할은 영화를 위해 체중을 많이 줄였는데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뚫린 두 눈이 마치 해골을 보는 것 같다. 필사적인 연기인데 대단한 배우라고 감탄하게 된다. 좀 도가 넘었지만 그런대로 사실감마저 있는 사납고 재미있는 영화다. 댄 길로이 감독(각본 겸). R. Open Road.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뿔(Horns)


이마에 뿔 난 이그는 자기 애인 살해자를 찾는다.

갑자기 뿔이 나면서 독심술 능력 생기는데… 


초현실적인 공포 우화이자 로맨스 이야기요 또 블랙 코미디로 성경을 빗댄 내용이 담긴 괴이한 영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과 지옥 같은 어둡고 두려운 장면을 뒤섞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해리 포터’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주연하는데 그는 ‘킬 유어 달링스’와 ‘왓 이프’ 그리고 이 영화로 세 번째 해리 포터의 이미지를 벗어버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그의 ‘해리 포터’ 후의 영화들이 흥행이 부진한 점. 이 영화도 크게 흥행이 잘 될 것 같지 않다.
미 북태평양 연안의 작은 동네에 사는 이그 페리쉬(래드클리프)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랑해 온 애인 메린(주노 템플)이 살해되면서 애인 살해자로 몰려 동네에서 왕따를 당한다. 영화는 이그와 메린이 마치 애담과 이브처럼 따뜻한 태양빛 아래 초원에 누워 사랑에 잠긴 플래시백 장면으로 시작된다.
경찰도 이그가 범인이라고 단정하나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한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감싸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이그의 편을 드는 사람이 그의 어릴 때부터 친구로 공익 변호사인 리(맥스 밍겔라).
어느 날 이그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이마 양쪽에 작은 뿔이 난 것을 발견한다. 병원에서도 뿔난 이유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요 제거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뿔은 자꾸 자라 이그는 동안의 마귀 모습이 된다.
뿔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던 이그는 뿔이 다른 사람들의 어두운 비밀과 충동을 간파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것을 깨닫는다. 이그는 남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그래서 이그는 이 신통력을 이용해 메린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선다.       
괴상하지만 악의 없는 동화 같은 얘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지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공포영화로 발전한다. 특히 이그가 수많은 뱀들을 풀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는 장면은 겁난다. 래드클리프가 이 장면을 즐기면서 해낸다. 
마침내 이그는 메린을 죽인 자를 찾아내는데 여기서 특수효과가 이용되고 이어 다시 영화의 평화로운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얄궂은 작품이다. 알렉산더 아자 감독. R. Dimension.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바그너의 유대인들’



옛날에 한국의 한 여류작가는 바그너의 음악을 ‘도도히 흐르는 강’에 비유했지만 난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압도적이요 장엄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또 깊고 두렵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마치 막중한 문제를 풀듯이 신열마저 나는데 이런 고난 끝에 깨닫게 되는 선험적이요 지고한 아름다움과 거의 여성적인 음의 몸매를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의 큰 희열이다.
바그너의 음악을 얘기할 때면 항상 논란되는 것이 그의 반유대주의다. 바그너의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에 관한 글은 히틀러와 나치즘에 의해 수용돼 유대인 박해의 교본처럼 이용됐다.
바그너가 “유대인들은 음악을 창작할 능력이 없으며 그들은 모방자이자 기생충이고 또 안 보이는 독”이라면서 “유대인들을 독일의 삶에서 제거해야 된다”고 유대인들을 증오한 이유는 바그너가 오랫동안 자신을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로엔그린은 “내 이름과 나의 민족에 관해 묻지를 말라”고 노래 부르고 있다. 바그너의 심정을 나타낸 노래다.
그러나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반면 그에 가까운 많은 음악인들이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유대인 음악인들이 바그너에 헌신하며 그의 작품활동을 도왔고 바그너 역시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을 받아들이고 키웠다.
이런 사실은 최근 나온 1시간짜리 DVD ‘바그너의 유대인들’(Wagner’s Jewsㆍ사진)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바이얼리니스트인 힐란 와쇼가 감독한 이 기록영화는 바그너와 유대인들과의 복잡한 개인적 관계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 음악에 관한 작품이다.
과연 숭고한 음악은 편견과 편협 그리고 역사의 무게를 초월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데 바그너를 반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를 옹호하는 이스라엘 및 비유대인 음악인들의 의견을 공평히 다룬 사려 깊고 흥미 있는 영화다.        
영화는 처음에 텔아비브에 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내가 살아 있는 한 바그너가 결코 이스라엘에서 연주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영구 객원지휘자인 레온 보트슈타인은 바그너의 음악은 이스라엘에서 연주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나는 바그너를 결코 인간으로서는 존경하지 않지만 그의 음악을 떠나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 주빈 메이타와 다른 이스라엘 지휘자와 작곡가들도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그의 음악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구원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현지 촬영한 영화는 바그너와 그의 첫째 부인 미나(역시 유대인을 증오했다)와 둘째 부인 코지마 및 리스트 등의 편지와 함께 문헌과 인터뷰와 과거 사실의 재현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연주 등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리스트와 쇼팽도 모두 반유대주의자들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스라엘에도 바그너 음악 애호가 단체인 바그너 소사이어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그너는 실패한 독일혁명 후 도주해 살고 있던 스위스에 있을 때 유대인인 폴란드 태생의 젊고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후에 자신의 많은 오페라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칼 타우직과 부자지간과도 같은 우정의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역시 유대인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젭 루빈슈타인은 자기 집에 묵게 하면서 돌봤는데 둘은 모두 바그너에게 헌신했고 루빈슈타인은 바그너가 1883년 베니스에서 사망하자 그 다음 해 총으로 자살했다. 루빈슈타인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피아노곡으로 만들어 연주한 사람이다.
특히 진기한 내용은 바그너와 유대인으로 뮤닉 로열오페라의 지휘자였던 헤르만 레비와의 관계. 바그너는 레비에게 자신의 오페라 ‘파르지팔’의 초연 지휘를 맡기기로 한 다음 그가 세례를 받고 개종하도록 온갖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기독교 얘기인 이 오페라를 유대인에게 맡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비는 후에 바그너의 성지가 된 바이로이트의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를 지휘했는데 바그너는 이 공연 후 1년이 채 못돼 사망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바그너를 사랑하는 내 친구 C에게 예술가의 인성과 그의 작품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친구의 대답이다.
“창작자와 그의 작품은 별개의 것이다. 동양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전통이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나도 이에 동의한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의 분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쁜 정치가라도 그의 업적이 그의 좋지 못한 성품을 초월할 경우 그를 받아들이듯이 예술가의 경우에도 바그너처럼 성품에 단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이 우리의 기대를 넘어설 경우 그 같은 단점마저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했고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이 사람들이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