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바그너의 유대인들’



옛날에 한국의 한 여류작가는 바그너의 음악을 ‘도도히 흐르는 강’에 비유했지만 난 바그너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압도적이요 장엄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또 깊고 두렵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마치 막중한 문제를 풀듯이 신열마저 나는데 이런 고난 끝에 깨닫게 되는 선험적이요 지고한 아름다움과 거의 여성적인 음의 몸매를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의 큰 희열이다.
바그너의 음악을 얘기할 때면 항상 논란되는 것이 그의 반유대주의다. 바그너의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에 관한 글은 히틀러와 나치즘에 의해 수용돼 유대인 박해의 교본처럼 이용됐다.
바그너가 “유대인들은 음악을 창작할 능력이 없으며 그들은 모방자이자 기생충이고 또 안 보이는 독”이라면서 “유대인들을 독일의 삶에서 제거해야 된다”고 유대인들을 증오한 이유는 바그너가 오랫동안 자신을 유대인의 후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로엔그린은 “내 이름과 나의 민족에 관해 묻지를 말라”고 노래 부르고 있다. 바그너의 심정을 나타낸 노래다.
그러나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반면 그에 가까운 많은 음악인들이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유대인 음악인들이 바그너에 헌신하며 그의 작품활동을 도왔고 바그너 역시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들을 받아들이고 키웠다.
이런 사실은 최근 나온 1시간짜리 DVD ‘바그너의 유대인들’(Wagner’s Jewsㆍ사진)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바이얼리니스트인 힐란 와쇼가 감독한 이 기록영화는 바그너와 유대인들과의 복잡한 개인적 관계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 음악에 관한 작품이다.
과연 숭고한 음악은 편견과 편협 그리고 역사의 무게를 초월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데 바그너를 반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를 옹호하는 이스라엘 및 비유대인 음악인들의 의견을 공평히 다룬 사려 깊고 흥미 있는 영화다.        
영화는 처음에 텔아비브에 사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내가 살아 있는 한 바그너가 결코 이스라엘에서 연주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영구 객원지휘자인 레온 보트슈타인은 바그너의 음악은 이스라엘에서 연주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나는 바그너를 결코 인간으로서는 존경하지 않지만 그의 음악을 떠나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 주빈 메이타와 다른 이스라엘 지휘자와 작곡가들도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를 강조하면서도 그의 음악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구원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현지 촬영한 영화는 바그너와 그의 첫째 부인 미나(역시 유대인을 증오했다)와 둘째 부인 코지마 및 리스트 등의 편지와 함께 문헌과 인터뷰와 과거 사실의 재현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연주 등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리스트와 쇼팽도 모두 반유대주의자들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스라엘에도 바그너 음악 애호가 단체인 바그너 소사이어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그너는 실패한 독일혁명 후 도주해 살고 있던 스위스에 있을 때 유대인인 폴란드 태생의 젊고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후에 자신의 많은 오페라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칼 타우직과 부자지간과도 같은 우정의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역시 유대인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젭 루빈슈타인은 자기 집에 묵게 하면서 돌봤는데 둘은 모두 바그너에게 헌신했고 루빈슈타인은 바그너가 1883년 베니스에서 사망하자 그 다음 해 총으로 자살했다. 루빈슈타인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피아노곡으로 만들어 연주한 사람이다.
특히 진기한 내용은 바그너와 유대인으로 뮤닉 로열오페라의 지휘자였던 헤르만 레비와의 관계. 바그너는 레비에게 자신의 오페라 ‘파르지팔’의 초연 지휘를 맡기기로 한 다음 그가 세례를 받고 개종하도록 온갖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기독교 얘기인 이 오페라를 유대인에게 맡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비는 후에 바그너의 성지가 된 바이로이트의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를 지휘했는데 바그너는 이 공연 후 1년이 채 못돼 사망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뒤 바그너를 사랑하는 내 친구 C에게 예술가의 인성과 그의 작품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친구의 대답이다.
“창작자와 그의 작품은 별개의 것이다. 동양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전통이 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나도 이에 동의한다. 예술가와 그의 작품의 분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쁜 정치가라도 그의 업적이 그의 좋지 못한 성품을 초월할 경우 그를 받아들이듯이 예술가의 경우에도 바그너처럼 성품에 단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이 우리의 기대를 넘어설 경우 그 같은 단점마저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했고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사실이 사람들이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겨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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