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늙은이와 이웃 여자의 느지막 사랑 웃음터치
오렌(마이클 더글러스·왼쪽)과 레아(다이앤 키튼)가 담소를 즐기고 있다. |
60대 말의 심술첨지 홀아비가 있는 줄도 몰랐던 손녀와 자기 나이 또래의 착한 이웃 과부로 인해 대인기피적이요 냉소적인 마음이 눈 녹듯 녹아 좋은 할아버지와 로맨스의 대상이 된다는 새로울 것이 없는 틀에 박힌 얘기.
이런 뻔한 내용과 결말을 지녔지만 두 베테런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다이앤 키튼의 누워서 떡 먹기 식의 연기와 찰떡궁합 그리고 온건하고 무해한 코미디와 드라마를 잘 만드는 로브 라이너 감독의 스무스한 연출력에 의해 그냥 편안히 보고 즐길 만한 영화가 됐다.
제임스 L. 브룩스가 감독하고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 주연한 ‘애즈 굿 애즈 잇 게츠’와 라이너가 감독하고 역시 잭 니콜슨이 나온 ‘버켓 리스트’를 두루 뭉실 짬뽕한 기운이 느껴진다. 60세 넘은 사람들을 위한 느지막하게 사랑을 찾아 불태우는 조부모의 러브 스토리로 늘 먹어 그 맛을 잘 아는 디저트 같은 영화다.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코네티컷주의 해변 아파트에 사는 오렌 리틀(더글러스)은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부동산 업자. 이기적이요 고집불통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인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지금 자기와 아내가 살던 고급주택이 팔리면 타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통 소식이 없던 마약중독 전력이 있는 오렌의 아들 루크(스캇 셰퍼드)가 10세난 딸 새라(스털링 제린스)를 데리고 오렌의 아파트를 찾아온다. 마약관계로 실형을 선고 받고 9개월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새라를 돌봐달라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손녀를 느닷없이 맡아 키우게 된 오렌은 어쩔 줄을 모르고 공포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오렌은 새라를 자기 옆 아파트에 사는 미망인으로 늙었지만 아직도 아름답고 신선하면서 약간 말괄량이 기질이 있는 라운지 가수 레아(키튼)에게 거의 반강제적으로 떠맡긴다.
착하고 영리하고 조숙한 새라와 마음이 고운 레아는 시간이 가면서 정이 들어 할머니와 손녀 같은 관계를 맺게 된다. 사실 오렌과 레아는 만나기만 하면 사사건건 시비가 붙는 사이인데 이런 앙숙과도 같은 관계는 결국 새라로 인해 사랑으로 변화하고 오렌의 마음도 달라진다.
이런 중심 얘기를 에워싸고 오렌의 자기 집을 사러온 각 인종에 대한 편견과 부동산 회사의 고참 할머니 직원(프랜시스 스턴헤이건이 깨물듯이 우스운 대사와 연기를 구사한다)과의 관계 그리고 그와 아파트 이웃과의 관계 등이 에피소드 식으로 묘사된다.
그 중에서 보기 좋은 것은 레아의 라운지 공연과 오디션. 언제나 멋있는 의상을 입을 줄 아는 키튼은 여기서도 산뜻하게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노래하는데 흘러간 무드 짙은 로맨틱한 노래들이 듣기 좋다.
대머리 라이너가 잘 어울리지 않는 가발을 쓰고 레아의 피아노 반주자로 나오고 ‘빅 걸즈 돈 크라이’ 등 1960년대 빅히트 곡을 양산한 ‘포 시즌스’의 프론트맨 프랭키 밸리가 레아를 고용하는 라운지 주인으로 캐미오 출연한다. 더글러스와 키튼의 화학작용이 일품이고 꼬마 제린스도 아주 잘한다. PG-13.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