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국민들의 오락인 야구의 시즌이 어느 듯 중반에 접어들었다. 비록 류현진은 10승 도전에 세 번째 실패했지만 LA 다저스는 10일 현재 내셔널리그 서부조 2위에 올라 있다.
7월4일은 미 독립기념일이기도 하지만 야구팬들에게는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뉴욕 양키즈의 강타자로 나이스 가이였던 루 게릭이 병으로 조기 은퇴하면서 남긴 감동적인 작별사로 기억되는 날이다.
‘철마’라 불렸던 퍼스트 베이스맨 게릭(1903~1941)은 선수생활 17년간 연속 2,130경기에 출전하면서 493개의 홈런과 3.40의 타율 그리고 1,995개의 타점을 낸 공포의 강타자였다. 이 같은 성적은 모두 당시 최고의 기록이었다.
그런데 게릭은 1939년 갑자기 슬럼프에 빠진다. 그 해 6월 병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치명적인 희귀병인 신경조직 붕괴병이라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이 병은 후에 게릭의 이름을 따 통상 루 게릭병이라고 불리고 있다.
게릭은 곧 은퇴를 선언했고 그의 은퇴기념식이 7월4일 양키스테디엄에서 6만1,00여명의 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워싱턴 세네터즈와의 더블헤더 중간에 열렸다. 평소 수줍음이 심했던 게릭은 선물을 받고 팬들에게 손인사만 하고 퇴장하려고 했으나 팬들이 “우린 루를 원해”라고 합창을 하는 바람에 마이크 앞에 섰다고 한다.
게릭은 목이 멘 음성으로 “지난 2주간 여러분들은 불운에 대해 읽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나 자신을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별사를 했다(사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미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고별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게릭은 이 고별사를 남긴지 2년 후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 지난 4일 다저스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유니폼에 ‘75’라는 숫자를 새긴 마크를 달고 경기를 한 것은 게릭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게릭의 삶은 그가 죽은 바로 다음 해 명 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이 제작하고 샘 우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감독한 흑백명화 ‘양키즈의 자랑’(The Pride of the Yankees)에서 약간 감상적이지만 고상하고 품위 있게 다루어졌다.
게릭 역은 자기를 닮은 게리 쿠퍼가 맡아 성실하게 표현했는데 게릭이 ‘인생의 반려자’로 지극히 사랑한 아내 엘리노어 역은 백합의 청순미를 지닌 테레사 라이트가 맡았다. 둘의 화학작용이 절묘하다.
전기영화요 스포츠영화이자 로맨스영화인 ‘양키즈의 자랑’은 게릭이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1920~30년대의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거쳐 그의 은퇴식으로 클라이맥스를 맺는다. 담담하고 진지한 영화로 물론 영화이니만큼 사실에 허구를 접목했다.
뉴욕 이스트할렘의 가난한 이민자 집에서 태어난 게릭은 컬럼비아대학에 다니면서 부모의 뜻대로 엔지니어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방망이질에 괴력을 보인 게릭은 틈만 나면 야구장을 찾는데 그의 실력을 목격한 스포츠 기자 샘(월터 브렌난)이 게릭을 양키즈에 소개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된다.
영화에는 게릭과 쌍벽을 이루던 강타자 베이브 루스와 명캐처 빌 딕키 및 마크 코닉 등 양키즈의 실제 선수들이 나와 사실감을 살리고 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유별나게 뛰어나거나 눈부신 것이 없다는 점이다. 게릭이라는 인물처럼 매우 평범하고 솔직한 영화로 유머가 있고 달콤 쌉싸래하며 로맨틱하고 자연스러운 데다가 아주 인간적이어서 친근감이 간다. 그리고 얘기가 진실해 믿음성이 있을 뿐 아니라 장면 하나 하나마다 정성이 깃들어져 있어 감동을 준다.
쿠퍼는 게릭 역을 맡게 되자 야구코치와 함께 몇 주간 피나는 연습을 한 뒤 촬영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오른손잡이인 쿠퍼가 왼손잡이인 게릭이 공을 때리거나 던지는 흉내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쿠퍼로 하여금 오른손으로 배팅을 하게한 뒤 그 장면을 찍은 필름을 역회전해 왼손잡이처럼 보이게 했다. 또 쿠퍼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장면은 대역을 썼다.
영화에 추억의 감미로운 기분을 주는 것은 어빙 벌린의 노래 ‘얼웨이즈’. 이 노래는 게릭과 엘리노어가 좋아하던 사랑의 노래다. 그런데 골드윈은 처음에 영화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흥행에 망할 아이디어”라면서 “사람들이 야구를 원하면 야구장에 간다”라고 콧방귀를 뀌었다고. ‘양키즈의 자랑’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작품과 남녀 주연 등 총 10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편집상 하나로 그치고 말았다.
둘 다 미 프로권투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록키 그라지아노와 제이크 라모타가 각기 그들의 삶을 그린 영화 ‘상처뿐인 영광’과 ‘성난 황소’로 인해 우리의 인식에 뚜렷이 남게 됐듯이 게릭도 ‘양키즈의 자랑’ 때문에 팬들의 기억에 더욱 깊이 머무르게 됐다고 하겠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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