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과 김정일 같은 독재자들은 영화의 힘을 파악, 이를 통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내가 1991년 북한을 방문, 평양의 조선영화예술촬영소를 구경했을 때 안내를 맡은 공훈배우 김선남씨도 “김정일 동지는 영화를 통해 인민을 교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에 더 애착을 둔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괴물들이어서 풍자영화의 좋은 노리갯감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 북한이 전쟁 불사를 부르짖으며 노발대발하고 있는 미국제 코미디 ‘인터뷰’(10월10일 개봉ㆍ사진)도 북한이 하느님처럼 떠받들고 있는 김정은에 대한 암살시도를 다룬 것이다.
소니 작품인데 두 TV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프랭코와 세스 로겐(공동 각본 및 감독)이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되자 CIA가 둘에게 김정은 암살을 지시한다는 내용이다. 김정은으로는 한국계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랜달 박(40)이 나온다.
얼마 전에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자 북한 외무성은 “결정적이요 무자비한 반격을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은데 이어 최근에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주권국가의 현직 지도자에 대한 암살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것은 노골적인 테러리즘에 대한 후원이자 전쟁행위”라면서 “미국은 즉각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중단하라”는 항의편지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이에 대해 유엔이 아무 말이 없자 북한은 이번에는 백악관의 오바마에게 이 영화의 배급을 중단케 하라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이나 소니가 이런 공갈협박에 넘어갈 리가 없으니 ‘인터뷰’는 100만달러짜리 공짜 선전만 받은 셈인데 이 덕분에 영화의 예고편이 전 세계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평양에까지 상륙했다고 한다.
악몽이자 공포영화요 공상과학 영화이자 넌센스 다크 코미디와도 같은 북한은 철저한 비밀국가인 데다가 인민은 굶어죽는데 괴물 전직 미 프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을 초청해 경기를 즐기는 김정은의 기발 난 행동 탓에 풍자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정은의 아버지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도 2004년작 미국산 꼭두각시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에서 고독한 미치광이 지도자로 묘사돼 화가 난 북한 정부는 체코 정부에 영화의 상영금지 조치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했었다. 또 제임스 본드 팬이던 김정일은 007 시리즈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이 악의 국가로 그려진 것에 대해서도 크게 역정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같은 미제 영화라도 북한군이 미국을 침공한 ‘레드 던’과 북한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박살내는 ‘올림퍼스 함락되다’에 대해서는 아무 불평을 안 했다. 불평은커녕 북한은 영화의 부분을 북한의 막강한 무력을 과시하는 선전용 비디오로 쓰고 있다고 한다.
현직 국가수반인 독재자를 무차별 야유 비판한 걸작 코미디가 채플린이 제작ㆍ감독ㆍ작곡하고 각본을 쓰고 1인2역으로 주연한 ‘위대한 독재자’(1940)다. 영화를 만들기 전 이미 히틀러의 암살대상 리스트에 올랐던 채플린은 영화에서 콧수염을 한 독재자로 나와 이웃 국가들을 침략하는데 그 모습이나 행동이 히틀러를 똑 닮았다.
영화가 나오자 나치 정부가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 그래서 당시만 해도 독일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국무부는 “미국 정부와 이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성명까지 냈었다. 그리고 영국도 처음에는 영화 상영을 금지했다가 독일과 전쟁을 시작한 후에야 상영을 허락했다. 영화는 독일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상영이 금지됐는데 빅히트해 채플린의 영화로선 사상최대의 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히틀러뿐 아니라 무솔리니도 조롱하고 있는데 무솔리니는 막스 브라더스의 요절복통 코미디 ‘누워서 떡 먹기’에서도 가차 없이 야유를 받았다. 물론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상영이 금지됐었다.
‘인터뷰’ 때문에 골이 잔뜩 난 북한의 심기를 더욱 불편케 할 또 다른 영화가 ‘수용소의 노래’(해외 제목: ‘평양의 어항’)다. 현재 한국의 북한 전략센터 대표로 있는 강철환씨가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10년간의 경험을 다룬 책이 원작으로 최근 제작발표가 있었다. 강철환 역은 AMC-TV의 인기 산송장 시리즈 ‘워킹 데드’에 나와 호평을 받은 한국계 스티븐 연(30)이 맡는데 그는 제작도 겸한다.
북한으로선 또 하나의 ‘전쟁 불사’감이다. 우려이길 바라나 아이가 불장난하듯 노는 북한이 미국 대신 한국에 대해 국지전 형태의 ‘영화전쟁’이라도 일으키지나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그런데 과연 김정은은 ‘인터뷰’를 볼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인 북한-미 평화센터 김명철 사무국장은 한 인터뷰에서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자 로겐은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이 ‘인터뷰’를 볼 것이 분명하단다. 그가 영화를 좋아하길 바란다”고 능청을 떨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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