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7월 25일 월요일

‘카페 소사이어티’감독 우디 앨런




"사랑은 할 때마다 늘 새롭고 20대처럼 흥분되는 것"


1930년대 LA와 뉴욕을 무대로 청년과 그의 삼촌의 한 여자를 둘러싼 달콤쌉싸름한 로맨스 코미디‘카페 소사이어티’를 감독한 노장 우디 앨런(80)과의 인터뷰가 지난 11일 뉴욕의 콘래드 호텔에서 있었다. 자기 브랜드인 굵은 테 안경을 쓴 백발의 앨런은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을 할 때면 큰 소리를 내야 했지만 건강해 보였다. 놀란 토끼 모습의 앨런은 두 손 제스처를 써가면서 조용한 음성으로 유머와 위트를 구사, 시치미 뚝 떼고 농담을 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놓았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으면서 필자가 그에게“순이(앨런의 한국계 부인) 잘 있나요. 내 안부 전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그러마”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 다짐을 그가 지켰는지는 미지수지만.         

△‘사랑 박사’인 감독의 많은 영화들은 사랑에 관한 것인데 남자가 여자를 몇 번이나 사랑할 수가 있다고 보는가.
“사랑하고 싶은 대로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사랑은 단 한 번 만이라는 것을 안 믿는다. 사랑은 할 때마다 늘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자 흥분되는 것이다. 난 80인데도 20대처럼 흥분된다.”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매우 행복한 결혼을 해 그런 것 생각할 수 없다. 난 지극히 운이 좋은 사람으로 대박이 터진 셈이다. 그러나 가상해 내 아내가 트럭에 치여 죽는다면 그 땐 다시 사랑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영화들은 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얘기인데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난 도시인으로 도시를 사랑한다. 휴가 때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가나 난 아니다. 난 파리나 런던 또 마드리드나 로마로 간다. 대부분들 딴 도시에 가면 대뜸 미술관에 들르지만 난 그냥 시내를 걸어다니거나 카페에 앉아 집과 사람들을 보면서 즐긴다. 내가 아마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좌우간 난 시골엔 관심이 없다.”

△왜 한 여자를 놓고 두 남자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게 했는가.
“그것이 극적으로 흥미 있지 않은가. 극적인 재미는 갈등과 긴장에서 온다. 영화에서 결혼한 삼촌이 젊은 여자를 사랑하게 한 것도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만나 아무 탈 없이 사랑을 즐긴다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전쟁과 평화’의 주제도 다 이런 갈등과 기만에서 오는 긴장이다.”
브루클린의 바비(왼쪽)가 LA의 바니와 키스를 하고 있다.

△고급 카페 ‘카페 소사이어티’에는 갱스터들이 자주 들르는데 당신이 옛날에 클럽에서 코미디를 했을 때도 갱스터들을 자주 봤는가.
“아니다. 난 그 시대를 조금 지나서 클럽에서 일했다. 내가 일한 클럽들은 포크 싱어들과 신성 코미디언들이 일한 작은 곳이어서 갱스터들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라스 베가스에서 코미디를 할 때는 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늘 인심 좋고 매력적이요 친절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정이 지나 한 일에 대해선 난 모른다.”   

△8순에도 어떻게 매년 한 편씩 영화를 찍는가.
“난 건강이 유지되는 한 계속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내 아버지는 100세가 넘게 살았고 어머니도 100세 가까이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장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것이다. 난 영화로 만들 아이디어가 많은데 내가 매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까닭은 나는 스튜디오와 관계없는 독립제작사의 영화를 만들고 아울러 내 영화는 제작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할리웃 여름영화의 제작비는 보통 1억달러가 넘는데 난 그에 비하면 아주 싸게 영화를 만든다.”

△돈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난 16세 때부터 농담을 써 부모가 합해 버는 돈보다 더 벌었고 그 후 늘 누군가에 의해 고용돼 돈을 벌었다. 난 여태껏 단 한 번도 일자리가 없어본 적도 없고 돈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탐을 낸 적도 없다. 그리고 난 영화를 돈 벌려고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가장 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난 학교 선생들보다는 잘 살지만 다른 감독들에 비하면 부자가 아니다. 그냥 괜찮게 살고 있다. 어머니 말대로 약사가 되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 것이다.”

△선거철인데 누굴 지지하는가.
“난 타고난 민주당원이어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한다. 난 같은 뉴요커인 도널드 트럼프를 다소 알고 있다. 그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또 예의 바른 사람이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우린 뉴질랜드로 이민 갈 필요가 없다. 힐러리가 이길 것이니 걱정 마라. 난 그녀를 만난 적은 없으나 힐러리를 좋아한다.”

△돈이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한가.
“난 겁쟁이로 내게 진짜로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아침에 일어나 무슨 병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무섭다. 나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도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아내와 아이들로 이뤄진 가족이다. 그 다음에는 일이다. 난 아주 간단한 사람이다. 일 하기를 좋아하고 야구와 농구를 좋아하고 클라리넷 불기를 좋아한다(*그는 프로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로 매주 월요일 뉴욕의 카페 칼라일에서 자신의 밴드와 함께 공연한다). 또 아내와 함께 이웃 산책을 즐긴다. 난 집안에 있기를 좋아해 글도 내 방에서 쓴다. 그러다 심심하면 집안을 오락가락 하면서 아이들이나 아내를 끌어안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뭘 원해요’라고 핀잔을 준다.”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 흑백대결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납치해 노예로 만들어 학대하고 오랜 세월 인종차별 해온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년간 다른 인종에 대해 무지해온 나라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지금 사태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법으로 인종통합을 시도한다는 일은 성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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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만난 것“대박 터진 것”이라며 자랑


우디 앨런의 현 한국계 부인 순이(44)는 앨런의 양녀였다. 순이는 후에 알렌의 동거녀가 됐던 미아 패로가 지휘자 안드레 프레빈의 아내였을 때 한국에서 입양한 고아다. 패로가 프레빈과 이혼 후 앨런과 살면서 자연히 순이는 앨런의 딸이 된 셈. 
지난 1992년 앨런이 당시 대학생이던 순이와 연애를 하던 것이 들통이 나면서 알렌은 온 세상으로부터 비도덕적 인간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둘은 지난 1997년 결혼한 뒤 두 딸을 입양해 키우면서 현재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알렌의 세 번째 결혼이다. 
앨런은 인터뷰 때마다 순이를 만난 것을 “대박이 터진 것”이라며 아내 자랑에 열을 내곤 한다. 필자가 봐도 그는 순이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기운이 역력하다. 둘 사이에 의견 차가 있는 것은 김치. 앨런은 “김치는 너무 매워 못 먹겠다”면서 “그러나 순이와 아이들은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오랜 행복을 기원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이스 에이지:충돌 코스(Ice Age: Collision Course)


맘모스를 비롯한 빙하시대의 온갖 동물들이 불덩이 운석을 피해 이주하고 있다.


맘모스 매니 가족과 이웃들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


빙하시대에 사는 맘모스 매니(레이 로마노 음성)의 가족과 그의 이웃들의 삶과 이들이 악화하는 환경을 피해 끊임 없이 이주하면서 겪는 모험과 액션을 그린 폭스의 인기 컴퓨터 만화영화 ‘빙하시대’ 시리즈의 제5편이다. 첫 편이 나온 지 올해로 15년째로 이제 그만 만들 때가 온 것 같다.
보고 즐길 만은 하나(아이들이야 말할 것 없지만) 내용이나 캐릭터들의 개성 묘사 그리고 독창성과 서술 동력이 주인공 매니처럼 느리고 굼뜬데다가 노쇠현상마저 보여 어른들이 보기엔 녹작지근하게 게으른 영화다. 
매니 가족과 그의 이웃들은 이번에도 지구가 맞는 대재앙을 피해 여러 가지 위험한 지경을 헤치고 안전한 곳으로 움직이는데 이런 얘기는 전편들과 거의 같은 것이어서 이젠 식상하다. 참신성이 아쉽다. 
‘아이스 에이지’에서 진짜로 재미있는 것은 칼날 같은 이빨을 하고 눈알이 튀어나온 실수 연발의 다람쥐 스크랫이 벌이는 도토리와의 투쟁. 본 영화 전에 시작되는 이 단편에서 스크랫은 늘 지상에 단 하나뿐인 도토리가 자기 소유권을 벗어나 계속해 굴러가는 바람에 이를 잡으려고 죽을 고생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크랫의 역할이 많이 넓혀져 영화 서막뿐만이 아니라 영화 내내 중간 중간 나온다. 처음에 스크랫은 달아나는 도토리를 잡으려다 우주로까지 날아가 행성들의 충돌을 야기하고 이로 인해 불덩이 운석이 지구로 떨어지면서 매니 일행이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스크랫의 우주액션은 영화 ‘그래비티’를 여러 모로 풍자하고 있다. 
매니와 그의 아내 엘리(퀸 라티파)는 장성한 딸 피치스(키키 팔머)가 천하의 낙천가인 줄리안(애담 디바인)을 사랑해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외동딸을 잃기 싫어 이를 자꾸 말린다. 그러나 결혼이 있기 전 불덩이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면서 매니 가족과 그의 온 이웃은 안전한 곳을 찾아 대장정에 오른다. 
매니 가족에 동행하는 짐승들로 눈에 익은 것들이 나무늘보 시드(존 레구이자모)와 날카롭고 긴 칼날이빨을 한 호랑이 디에고(데니스 리어리) 그리고 간교한 외눈의 족제비 벅(사이먼 펙). 이들 외에도 시드의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완다 사익스)와 쉬라(제니퍼 로페스) 등 처음 보는 동물들이 여럿 있다. 길 안내자는 시드.      
이들은 가고 가고 또 가면서 여러 가지 난관과 위험을 극복하느라 난리법석을 떠는데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우주에 떠 있는 스크랫의 근황을 보여주면서 그나마 가느다란 얘기의 서술을 방해한다. 끝은 성대하고 요란한 피치스와 줄리안의 결혼식으로 장식된다. 입체영화다. 마이크 터마이어와 개일런 탄 추 공동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쉐르부르의 우산(The Umbrellas of Cherbourg·1964)


즈느비에브가 군에 가는 기를 기차역에서 전송하고 있다.

자크 데미 감독의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뮤지컬 영화


알록달록한 색깔과 미셸 르그랑이 작곡한 감미로운 멜로디 그리고 카트린 드뇌브의 천사와도 같은 깨끗한 모습이 아름다운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뮤지컬이다. 자크 데미가 각본을 쓰고 감독, 칸 영화제서 대상을 탔다. 대사가 전부 노래로 말해지는 오페라형식으로 3막으로 구성됐다. 
*제 1막 ‘출발’
10대 후반의 즈느비에브(드뇌브)는 우산가게 여주인으로 미망인인 에메리의 외동딸. 즈느비에브의 애인은 자동차 정비공인 기(니노 카스텔누오보). 기는 병상의 아주머니 엘리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엘리즈를 알뜰히 돌보는 여자가 마들렌(엘랑 파르네르). 기에게 징집영장이 날아들면서 둘은 이별을 하는데 기가 떠나는 날 즈느비에브는 역 카페에서 유명한 노래 ‘아 윌 웨이트 포 유’를 부른다.
*제 2막 ‘님의 없음’
기가 떠난 뒤 즈느비에브는 기의 아기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는데 기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 시름에 빠진다. 한편 에메리는 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나이 먹은 다이아몬드상 롤랑(마르크 미셸)과 결혼하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즈느비에브는 이에 따른다.
*제 3막 ‘귀향’
귀향한 기는 즈느비에브를 못 잊어 상심에 젖는다. 그리고 엘리즈가 사망하면서 마들렌도 떠나려하자 기는 마들렌이 자기를 사랑해 왔음을 깨닫는다. 기는 마들렌과 결혼, 유산으로 주유소를 차리고 아들을 낳고 행복히 산다. 함박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주유소 앞에 고급차가 멈추고 차에서 즈느비에브가 내린다. 차 안에 한 소녀가 앉아 있는데 기를 닮았다. 기와 즈느비에브는 인사말만 나눈 뒤 헤어진다.  
때로 우울하고 가슴 아픈 낭만적이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사뿐하게 전개되는 총천연색 꿈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와 함께 역시 데미가 감독하고 드뇌브가 나오는 뮤지컬 ‘로쉬포르의 젊은 여인들’(The Young Girls of Rochefort·1968)가 상영된다. 28일(하오 7시30분) 에어로(Aero) 극장. 1328 Montana Ave.(샌타모니카). (310)260-1528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흑과 백’




미국은 지금 흑과 백이 전쟁 중이다. 백인 경찰이 검문과정에서 흑인들을 사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텍사스주 달라스와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각기 흑인이 경찰을 살해(총 8명의 피해자 중 1명은 흑인), 또 다시 흑백문제가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흑백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민권법안이 통과된 지 반세기가 되는 요즘에 와서도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피가 피를 부르는 유혈폭력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달라스와 배턴루지의 총격사건은 다시 한 번 흑백 간에 깊이 패인 증오와 불신과 대결의식의 골을 노정시킨 것이다.
현실이라기보다 영화와도 같은 두 도시의 총격사건을 보면서 언뜻 흑백문제를 다룬 2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흑백문제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흥미진진하고 또 의미심장한 것이 모두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컸던 스탠리 크레이머가 제작하고 감독한 ‘흑과 백’(The Defiant Ones·1958)과 ‘초대 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이다.
‘흑과 백’(사진)은 토니 커티스와 시드니 포이티에가 주연한 흑백 드라마로 쇠사슬에 함께 묶인 흑과 백의 두 죄수의 탈출기이다. 미 남부의 두 죄수 백인 존과 흑인 노아를 수송하던 트럭이 전복하면서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함께 팔목이 묶여진 둘은 도주한다.
둘은 서로를 죽도록 증오하면서도 자유를 향한 도주를 위해 이를 억제한다. 둘은 서로 육박전을 벌이고 욕설을 주고 받다가도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휴전에 들어간다. 존과 노아는 도중에 동네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한 농가의 섹스에 굶주린 젊은 홀어머니로 인해 배신의 유혹을 받기도 하지만 둘은 서로를 묶은 쇠사슬을 끊은 후에도 함께 달아난다. 둘을 묶었던 쇠사슬이 존과 노아를 친구이자 동료로 만들어준 것이다.
라스트 신이 인상적이다. 달리는 화물열차에 먼저 올라탄 노아가 안간힘을 쓰면서 뒤따라 달려오는 존을 향해 팔을 길게 내뻗지만 존이 이를 잡지 못하자 노아는 존을 버리지 못해 기차 밖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노아는 존을 품에 안고 흑인 노래를 부른다. 동료애에 의한 흑백통합이다.
형제애와 우정, 증오와 편견 그리고 인종간 대결의식과 가혹한 미 형벌제도를 고찰한 작품으로 모질고 가혹하면서도 얄궂은 유머와 박력 있는 액션을 지닌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 남부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대부분 다른 곳에서는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 됐다.
커티스와 포이티에의 연기가 강렬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쁜 남자로 취급받던 커티스가 사납고 거친 연기를 맹렬히 해낸다. 포이티에 역시 훌륭한데 그는 이 역으로 베를린영화제서 주연상을 탔다. 둘은 이 영화로 빅스타가 된다. 영화는 오스카 각본과 촬영상을 받았다.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은 제작 당시만 해도 미 17개 주에서 불법화하던 흑백 간 결혼문제를 다룬 드라마다. 진보적인 미 상류층 부부로 평소 인종간 평등의 이념을 지녔던 백인 부부 맷과 크리스티나(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자신들의 딸 조앤나(헵번의 질녀 캐서린 하우턴)가 흑인 변호사 존(시드니 포이티에)과의 결혼을 선언하자 당황해 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특히 이 결합에 크게 실망하는 사람이 맷. 흑백평등 의식을 딸에게 심어준 그가 막상 딸이 흑인과 결혼하게 되자 심한 갈등에 빠지나 뒤늦게 사랑의 중요함을 깨닫고 딸과 존을 받아들인다.
아마도 이런 다른 인종 간의 결합문제는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인 부모들도 겪었고 또 겪을 일이어서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많은 한국인 부모들도 자기 자녀들이 타인종과 결혼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인종차별이란 이렇게 우리 모두 내부에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다.
감동적인 것은 존이 자신에게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아버지에게 하는 말. “아버지는 자신을 흑인남자로 생각하지만 나는 자신을 남자로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오스카 각본상과 함께 헵번이 주연상을 탔는데 헵번의 연인인 트레이시는 영화촬영이 끝난지 2주 후 사망했다.
과연 흑백문제에는 해답이 있는가. 최근 뉴욕에서 만난 우디 앨런의 말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는 미국이 노예소유 국가로 세워졌고 또 여러 세대에 걸쳐 인종편견으로 채워진 나라라는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다. 수백년 간을 인종문제에 대해 무감각해 온 나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현 폭력적인 사태는 인종 간에 깊이 뿌리 박힌 반감이 고르게 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때까지 우리가 물어야 할 대가다. 우리가 여전히 타인종을 증오한다면 법으로 인종통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7월 17일 일요일

카페 소사이어티(Cafe Society)


바비(왼쪽)가 바니의 안내로 베벌리힐스의 스타들의 집을 구경하고 있다.

우디 알렌의 향수감 짙은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 영화


우디는 언제까지나 그리고 또 어디까지나 우디다. 우디 알렌의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향수감 짙은 달콤 쌉싸름한 로맨스 얘기로 약간 가볍긴 하나 그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사랑타령이 사뿐하고 감칠맛나게 그려진 코미디 드라마다. 
우디가 내레이션을 하면서 영화가 서술되는데 1930년대 할리웃 황금기의 LA와 뉴욕의 얘기여서 나이가 듬직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영화다.
철저한 뉴요커로 LA가 문화적으로 깨인 점은 빨간 신호등에 우회전할 수 있는 것 하나 라고 주장하는 우디가 40년 전에 ‘애니 홀’을  찍은 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LA서 찍은 작품이기도 한데 명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촬영이 황금빛과 꿀빛으로 화면을 흥건히 적신다.
우디 영화의 재미는 냉소적이요 위트 있고 또 우습고 신랄하면서도 철학이 담긴 대사. 이 영화에도 젊은 주인공 바비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우디가 쓴 대사를 끊임 없이 재잘대는데 약간 말장난하는 것 같이 들린다. 
8순에도 매년 한 편씩 영화(사랑 얘기가 많다)를 찍는 우디의 정력에 혀를 차게 되는데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우디가 관객들보다 자기를 위해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그저 덤으로 보고 즐기면 된다는 식으로.
브루클린에 사는 청년 바비 도프만(제시 아이젠버그)은 할리웃의 막강한 탤런트 에이전트인 외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한다. 필은 입만 열면 자기가 관리하는 할리웃의 수퍼스타들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는 에이전트 중의 에이전트로 우선 바비에게 잔심부름을 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젊고 예쁜 여비서 바니(크리스튼 스튜어트)에게 바비를 데리고 나가 할리웃과 베벌리힐스를 구경시켜 주라고 시킨다. 그런데 바니는 결혼한 필의 애인. 필은 바니를 지극히 사랑해 바니에게 아내와 헤어지겠다고 몇 번씩 다짐했으나 아직 실행에 못 옮긴 상태. 바니도 필을 사랑해 갈팡질팡하는 상태. 이런 바니에게 바비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촌극이 일어난다.
그러나 바비는 할리웃의 ‘개가 개 잡아 먹는’(우디의 할리웃 경멸의 표현) 풍토에 질려 뉴욕으로 돌아와 갱스터인 형 벤(코리 스톨)이 경영하는 고급 나이트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의 매니저가 된다. 여기서부터 과거와 현재가 오락가락 하면서 애기가 진행되는데 바비는 늘씬한 미녀 베로니카(블레이크 라이블리-왕년의 스타 베로니카 레이크 모양을 냈다)를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비가 아직도 바니를 못 잊고 있으며 바니도 마찬가지라는 점. 라스트신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우디의 젊은 판이라고 해도 좋을 아이젠버그가 어깨를 안으로 숙이고 신경과민한 좌불안석 스타일로 재잘대는 연기를 아주 잘하고 스튜어트도 예쁘고 사랑에 시달리는 연기를 잘 한다. 이와 함께 카렐도 호연한다. 1930년대의 로맨틱한 음악들로 장식된 사운드트랙도 향수감에 잠기게 하는데 오프닝 크레닷의 클라리넷연주는 재즈음악가로 클라리넷을 부는 우디의 것이다.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도 일품이다.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부자(The Infiltrator)


메데인 카르텔 내부로 잠입한 세관 수사관 밥 메이저.

마약 카르텔에 잠입한 수사관 실화 얘기 미국판 ‘내부자’


콜롬비아의 악명 높은 마약 카르텔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마약거래의 숨통을 조르기 위해 조직의 검은 돈을 세탁하는 은행의 부정을 파헤쳐낸 미 연방세관 소속 수사관 밥 메이저의 실화로 미국판 ‘내부자’라고 하겠다.
메이저는 카르텔과 은행의 내막을 수사하기 위해 돈 세탁자로 위장, 많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카르텔의 고위인사의 깊은 신뢰를 사 그와 친구지간까지 되는데 이런 스릴과 긴장감이 있고 흥미진진한 얘기가 지극히 평범한 마약 드라마로 그치고 말았다.
연기파인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노련한 연기를 잘 하지만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와 마약 딜러의 이중생활에서 오는 갈등과 카르텔의 무자비성 및 얘기인 시간대인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의 열기 같은 것들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이런 내용의 영화로선 극적 충격이 모자라는 직선적이요 통속적인 드라마이지만 볼만은 하다. 
전직 미 국세청 회계사인 메이저는 연방 세관 수사관이 된 후 플로리다주 탬파의 마약조직을 분쇄하기 위해 돈세탁자로 위장한다. 그를 돕는 것이 그의 약혼녀로 위장한 아름다운 풋내기 수사관 캐시 어츠(다이앤 크루거). 메이저는 에스코바르에게 접근하기 위해 에스코바르의 고위급 부두목 로베르토 알카이노(벤자민 브렛)에게 접근, 그의 신임을 산다. 
영화는 메이저의 충실한 가정생활과 위험과 유혹과 돈과 사치가 넘쳐 흐르는 마약집단의 세계를 오락가락 하면서 진행되는데 이런 상반된 세상을 매일 같이 왕래하는 메이저의 삶이 너무 평범하게 그려져 극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겠다. 
특히 메이저와 캐시 그리고 로베르트와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얘기되는데 메이저와 캐시는 로맨스를 꽃 피울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이르나 어디까지나 철저한 가정인인 메이저는 유혹을 물리친다. 흥미 있는 것은 메이저와 로베르토와의 관계. 둘은 친구지간이 될 정도로 가까워지면서 메이저는 로베르토의 가족의 사랑까지 얻는데 로베르토를 때려잡아야 할 메이저가 그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면서 마음에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두 플롯 역시 어떤 성적 긴장감이 있거나 극적 깊이나 강렬성은 모자라게 그려졌다.
크랜스턴의 연기가 좋긴 하나 내적 갈등을 겪는 사람의 고뇌가 완벽하게 묘사되진 못했다. 크루거의 연기는 무난하고 브렛이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상하다가 가혹한 드럭 딜러로 변신하는 매서운 모습을 돋보이게 표현한다. 브래드 퍼맨 감독.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 타잔, 유 제인”




할리웃의 스크린을 주름 잡는 영웅들은 한두 명이 아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원시적이요 멋들어진 자는 아마도 몸 아래 중요한 것만 가린 늠름한 체구의 타잔일 것이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1912년에 쓴 소설 ‘원숭이들의 타잔’으로 태어난 타잔이 처음 스크린에 등장한 것이 1918년. 소설과 같은 이름의 무성영화로 타잔 역은 엘모 링컨이 맡았다. 그런데 LA 인근 도시 타자나는 버로스가 이 곳에 살며 소유했던 타자나 목장 이름을 딴 것이다.
‘원숭이들의 타잔’에 이어 현재 상영 중인 ‘타잔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타잔영화는 무려 50여편에 이르고 최근의 타잔 역을 하고 있는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포함해 그 동안 타잔 노릇을 한 배우는 총 25명에 이른다.
정글을 누비고 다니며 액션과 모험으로 남녀노소를 흥분과 즐거움 속으로 안내했던 많은 타잔 배우들 중에 기억될 만한 사람들로는 버스터 크랩, 고든 스캇, 론 엘리, 렉스 바커, 족 마호니 및 크리스토퍼 램버트 등이 있다. 
그러나 타잔 하면 대뜸 떠오르는 배우는 잘 생긴 자니 와이스멀러(사진)다. 그는 ‘유인원 타잔’(1932)으로부터 시작해 지난 1930~40년대 무려 12편의 타잔영화에 나와 타잔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나도 꼬마 때 부산 피난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타잔의 정글모험에 넋을 잃었었다. 얼마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카스가드도 “어렸을 때 타잔 팬인 아버지(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본 와이스멀러의 타잔이 최고”라고 말했다.
와이스멀러(1984년 78세로 사망)는 오스트리아-헝가리계 미국인으로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다. 떡 벌어진 알몸 가슴이 난공불락의 성벽과도 같은 강건한 근육질의 신체를 지녔었다. 타잔의 애인으로 도시인인 제인이 타잔에게 반한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그의 이 늠름한 가슴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간다.
타잔과 제인은 잉꼬 한 쌍인데 재미 있는 것은 제인이 타잔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 제인이 타잔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쿡 찌르면서 “유 타잔, 미 제인”하고 통성명을 하자 타잔이 역시 손가락으로 제인의 가슴을 찌르면서 “미 타잔, 유 제인”이라고 응답한다. 아이들 소꿉장난 하는 것 같다. 와이스멀러의 제인 역은 미아 패로의 어머니인 모린 오설리반이 했다.
타잔 노릇을 한 배우 중 특이한 사람이 프랑스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다. 그는 지난 1984년작 ‘그레이스토크: 타잔의 전설, 원숭이들의 지배자’라는 영화에 나와 셰익스피어의 연극에나 나온 듯이 시종일관 인상을 쓰면서 심각하게 굴었다. 영화도 액션과 모험보다 내면성찰적인 심각한 것으로 타잔영화로선 최초로 오스카 남우 조연상(영국의 명우 랄프 리처드슨의 사후 지명)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랐었다.
그런데 지금 상영 중인 타잔 영화의 스카스가드가 생긴 것이나 연기가 램버트를 닮았는데 램버트가 한 수 위다. 이 영화는 내용과 연기가 별 볼품이 없는데도 흥행이 잘 되고 있다.
타잔의 인간 짝이 제인이라면 그의 동물 단짝은 자기를 키워준 원숭이들의 무리에 속한 꼬마 침팬지 치타다. 똑똑하기가 사람 못지 않은 치타는 재롱꾼이어서 영화에 코믹터치를 가미하는데 재롱만 떨 뿐 아니라 ‘타잔과 그의 배우자’에서처럼 타잔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다.
와이스멀러의 치타는 지난 2012년 80세로 영면했는데 당시 동물학자들이 치타는 평균수명이 40년이어서 이 치타가 와이스멀러의 치타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한편 치타의 부음이 전해지자 패로는 제인 역을 한 자기 어머니 모린이 “치타는 기회만 있으면 무는 후레새끼”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정글 스피크’로 코끼리 등 온갖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타잔의 가족인 제인과 치타 외에 새 가족이 된 것이 소년 ‘보이’. 타잔과 제인은 ‘타잔 아들을 발견하다’에서 정글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아기를 입양해 ‘보이’라고 명명, 세 식구가 네 식구가 된다. 
와이스멀러의 타잔 영화 중 이색적인 것이 ‘타잔의 뉴욕 모험’. 타잔과 제인이 뉴욕으로 돌아간 ‘보이’를 찾아 맨해턴으로 오는데 신사복을 입은 타잔이 처음 보는 문명세계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우습다. 
와이스멀러의 타잔영화를 보면 타잔은 물론이요 제인도 거의 전라에 가까운 차림으로 수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1930년대 초만 해도 할리웃에 검열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타잔 하면 또 잊지 못할 것이 “아 아 아 아”하며 내지르는 타잔의 요델 고함소리. 이 소리는 와이스멀러의 육성으로 그 후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 타잔영화에서도 사용됐다. 
수퍼맨, 뱃맨, 아이언 맨 등 할리웃의 스크린을 누비는 수퍼히로들이 많기도 하지만 타잔만큼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영웅도 없다. 타잔은 영원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캡튼 팬태스틱(Captain Fantastic)


‘파파 베어’같은 아버지 벤과 그가 자연 속에서 키우는 6남매.

6명의 아이를 매우 독특하게 키우는 아버지


루소의 가르침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연 속에서 혼자 고교 3년생 나이의 아들에서부터 코흘리개 어린 딸까지 6남매를 키우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를 다룬 매우 독특한 얘기로 보고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다.
독소가 만연한 세상과 그것의 문화로부터 이탈해 아이들과 숲속에 살면서 그들을 학습시키고 또 생존의 방법을 가르치면서 키우는 반문화적인 히피 아버지는 과연 좋은 아버지인가 아니면 거의 아동학대와도 같은 자녀 양육은 비판 받아야 하는 것인가.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이 같은 양육의 문제점은 언젠가 아이들이 숲을 떠나 세상에 나가 살기로 했을 경우 부닥쳐야 하는 대인관계. 이런 난관은 영화에서 아주 코믹하고 재치 있게 묘사된다. 여느 영화들과 아주 다른 상당히 재미있고 또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에 워싱턴주 숲속에 사는 벤(비고 모텐슨)이 그의 6남매와 함께 장남 보데반(조지 매케이)의 성년의식을 치르는 사냥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의식을 보는 것 같다. 아이들의 어머니 레즐리는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다.
벤은 ‘파파 베어’로 아이들에게 육체적으로 강훈련을 시키고(맨손 암벽등반은 너무했다) 자기방어술과 함께 자연 속에서의 생존방법 등을 가르치고 아울러 각종 책을 읽게 하고 또 아이들의 지능을 존중해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면서 모두를 젊은 성인처럼 취급한다.
어린 딸에게 강간, 성교, 성기 그리고 출산 등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롤리타’도 읽게 허락하는데 그래서 아이들은 엄청나게 박식하다. 벤의 일가가 이모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집의 아이폰 중독자들인 두 아들과 벤의 어린 딸의 대조적인 지식의 깊이가 재미있다.
그런데 레즐리가 자살하면서 벤의 가족은 바깥세상의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레즐리는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화장을 해달라고 벤에게 부탁했는데 이와 반대로 뉴멕시코에 사는 레즐리의 완고한 아버지(프랭크 란젤라)는 매장을 강행하면서 벤은 일가족을 버스에 태우고 뉴멕시코로 간다. 이 과정에서 보데반의 첫 키스를 비롯해 여러 에피소드가 일어나는데 모든 것을 대인관계와 경험이 아닌 책에서 배운 아이들(레이디 가가도 ‘스타 트렉’도 모른다)의 바깥세상과의 엉뚱한 대면이 우습다.    
보데반은 어머니의 격려로 벤 모르게 각종 대학에 지원해 하버드를 비롯해 모든 아이비리그로부터 합격통지를 받고 고민하는데 영화는 자연 대 속세의 대립을 이런 식으로 깊이와 재치를 가미해 잘 표현하고 있다. 해변에서 치르는 벤과 아이들의 레즐리 장례식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지적인 배우 모텐슨이 영혼이 가득한 연기를 하는데 자기 성기까지 보여준다. 그와 함께 아역 배우들이 한결 같이 뛰어난 연기를 하고 촬영도 유려하다. 맷 로스 감독(각본 겸). R. Bleecker Street.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우리들의 작은 여동생(Our Little Sister)


고다 네 자매가 정원에서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인물과 풍경과 내용이 아름다운 4자매의 가족영화


‘부전자전’과 ‘아무도 몰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관계와 버려진 아이들에 관한 영화를 잘 만드는 일본의 코레-에다 히로까주 감독(각본 겸)의 조용하고 투명한 또 다른 가족영화로 4자매의 얘기여서 이치가와 콘 감독의 ‘마끼오카 자매들’을 연상시킨다. 인물과 풍경과 내용이 모두 아름다운 영화로 특히 고운 촬영은 역시 가족영화를 많이 만든 오주 야수지로의 영화를 닮았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자연스런 연기가 좋은 작품이나 너무 차분하고 감정 노출을 극도로 억제해 극적 흥분을 느끼기가 힘든 것이 결점이다. 따라서 인내심이 요구되는데 때로 답답할 정도로 서술이 지지부진한 감마저 있다. 그러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상하는 듯한 작품이다.  
도쿄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해변 마을 가마꾸라(오주가 여기 살았다)의 큰 저택에서 사는 고다 3자매는 29세난 간호사 사찌(아야세 하루카)와 22세난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와 19세난 지까(가호). 엄격하고 침착한 모범여성 사찌는 두 동생의 어머니와도 같은 역을 한다. 이들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다른 여자에 반해 집을 나갔는데 이 여자가 죽자 멀리 북쪽에 사는 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 미야꼬(오따께 시노부)도 15년 전에 남자를 만나 가출해 버렸다. 이 영화는 따라서 어른들에 의해 엉망이 된 자신들의 삶과 화해를 하는 자식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다 자매의 아버지의 부음이 날아든다. 자매들은 이 소식에 시큰둥하나 사찌는 자기는 일을 핑계대고 두 동생을 아버지 장례식에 보낸다. 뒤늦게 사찌도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여기서 이들은 13세난 수줍음 타는 이복 여동생 수주(히로세 수주)를 처음 만난다. 그리고 사찌는 대뜸 수주에게 함께 살자고 제의한다. 그래서 세 자매가 네 자매가 된다.
이어 얘기는 가마꾸라에서의 네 자매의 삶과 희롱과 자매애 그리고 작은 다툼과 갈등 같은 것으로 점철되는데 소소한 얘기들이 아기자기하다. 그리고 사찌와 그녀를 사랑하는 의사의 관계와 자유분방한 요시노의 남자관계와 함께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 등이 잔가지를 치나 애정문제는 슬쩍 지나쳐 가는 식으로 비중이 약하다.        
이렇게 별 큰 변동이 없던 자매들의 삶은 갑자기 이들의 어머니가 나타나 용서를 구하면서 극적인 파랑을 일으킨다. 그림 같은 해변마을 풍경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기모노를 입은 자매들의 불꽃놀이와 음식장만 장면 등을 찍은 촬영이 참으로 곱고 아야세의 연기가 빛난다. 성인용. Sony Classics.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디어 헌터’마이클 치미노 감독 77세로 사망


베트남전 영화‘디어 헌터’(Deer Hunter·1978)로 영화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인 오스카 감독상을 탄지 불과 3년만에 할리웃 사상 최악의 불상사로 일컬어지는 서부 개척시대 영화‘천국의 문’(Heaven’s Gate)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 쓴 마이클 치미노가 지난 2일 77세로 LA에서 사망했다.
‘천국의 문’은 할리웃의 과도 과다와 오스카상을 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감독의 통제할 수 없는 자신 자만감이 낳은 기형적 산물로 꼽히면서 할리웃의 무절제를 경고하는 하나의 교본이 되다시피 한 영화다. 그래서 그 뒤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놓고 그 제목 뒤에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붙이게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치적 스캔들 뒤에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과 같다.
치미노는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광고영화를 만들다가 LA로 와 각본을 쓰면서 할리웃에 데뷔했다. 그가 쓴 최초의 작품은 환경문제 공상과학 영화 ‘사일런트 런닝’(Silent Running·1971). 이어 ‘더티 해리’(Dirty Harry)의 속편인 ‘매그넘 포스’(Magnum Force·1973)의 각본을 썼다.
치미노의 감독 데뷔작은 반문화적 분위기를 지닌 로드무비이자 버디무비요 또한 털이영화인 ‘선더볼트와 라이트후트’(Thunderbolt and Lightfoot·1974).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가 나오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브리지스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그가 두 번째로 감독한 영화가 ‘디어 헌터’다. 펜실베니아주의 한 철강도시를 무대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자들과 도시에 남은 사람들에게 이 전쟁이 미치는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다룬 걸작이다.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크리스토퍼 월큰(오스카 조연상 수상), 존 새비지 및 존 카제일 등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장면은 충격적인 ‘러시안 룰렛’ 장면. 필자도 이 영화를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보면서 ‘러시안 룰렛’ 장면에서 엄청난 공포 속에 빠져 깊은 충격을 받았었다.    
‘디어 헌터’는 총 9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과 감독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상을 받았고 치미노는 골든 글로브 감독상도 받았다.
이 영화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 치미노의 다음 영화가 그의 야심작 ‘천국의 문’이다.  19세기 말 와이오밍주에서 벌어지는 농부들과 영토를 확장하려는 권력 있는 목장주들 간의 사투를 그린 실화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자벨 위페르, 크리스토퍼 월큰, 존 허트, 제프 브리지스 및 샘 워터스톤 등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치미노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다고 1800년대 말에 쓰던 기차를 촬영 현장에 옮겨 오는 등 막대한 경비를 소비하면서 당초 1,150만달러로 예상했던 제작비가 무려4,000만달러로 뛰어 오르고 제작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매스컴의 달갑지 않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치미노의 완벽성 때문에 개봉이 1년씩이나 지연된 뒤 마침내 216분짜리로 개봉됐으나 비평가들의 악평을 받으며 관객의 외면을 받자 영화 제작사인 United Artists(UA)는 개봉 직후 영화를 극장에서 거둬들였다. 그리고 치미노는 영화를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다시 극장에 내놓았지만 이 역시 비평가들과 관객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UA의 모회사인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보험회사 트랜스아메리카는 UA를 MGM에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와이오밍주에서‘천국의 문’을 찍고 있는 마이클 치미노(왼쪽 모자 쓴 여자 뒤).
필자는 216분짜리로 이 영화를 봤는데 매우 훌륭한 영화로 여기고 있다. 와이오밍 현지에서 찍은 빌모스 지그몬드의 수려한 촬영과 대규모 엑스트라를 동원한 박력 있는 액션장면 그리고 장엄한 스케일 및 역사적 냄새가 가득한 세트와 의상 등이 다 좋은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장점보다 단점을 즐기는 매스컴의 희생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영화가 지난 2012년에 디렉터스 컷으로 복원돼 재상영됐을 때 비평가들이 영화의 가치를 재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온갖 가십거리가 된 이 영화에 관해 전 UA의 고급 간부 스티븐 바흐가 <파이널 컷: ‘천국의 문’ 제작의 꿈과 재앙>(Final Cut: Dreams and Disaster in the Making of ‘Heaven’s Gat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영화로 할리웃의 언터처블이 된 치미노의 다음 영화는 또 다른 물의를 일으킨 ‘용의 해’(Year of the Dragon·1985). 미키 로크가 뉴욕의 차이나타운의 중국계 갱과 대결하는 형사로 나온 이 영화는 중국계 미국인들을 버러지와도 같은 범죄자들로 몰아 묘사해 중국계 커뮤니티로부터 대대적인 항의를 받았었다.
이 영화 후로 치미노는 달랑 3편의 영화를 만들고 본의 아니게 감독으로서의 생애를 마감했 다. 1987년에 만든 ‘시실리안’(The Sicilian)은 ‘대부’를 쓴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원작으로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주연했는데 졸작이다. 이어 윌리엄 와일러가 1955년에 만든 ‘필사의 도주’(Desperate Hours·1990)의 신판을 역시 로크를 사용해 만들었으나 원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치미노의 마지막 영화는 우디 해럴슨이 불치의 병에 걸린 갱스터에게 납치되는 의사로 나온 ‘선체이서’(Sunchaser·1996). 이 역시 졸작이다.
치미노는 지난해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한 파티에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성형수술을 받아 여자 같은 모습(사진)이었는데 내가 “나는 ‘천국의 문’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자 “고맙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한 음성으로 답례를 했다. 그는 이런 여성적인 모습 때문에 한 때 여자로 성전환한다는 낭설에 시달려야 했다. ‘천국의 문’은 다시 한 번 더 재평가 받아야 될 영화로 DVD로 출시됐으니 구해 보기를 권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와이의 골디




나는 여름과 태양과 피서인파로 북적거리는 바다를 싫어한다. 내가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어쩌면 그가 ‘묻지 마 살인’ 식으로 아랍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범행동기에 대해 한다는 소리가 열기와 밝은 햇빛 때문이라고 태양을 탓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열하는 태양을 불편해한 또 다른 주인공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주꾼 미스터 리플리’를 원작으로 르네 클레망이 만든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살인자 탐 리플리다. 리플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 카페에 앉아 “불편한데 없으세요”라고 묻는 웨이트리스에게 “태양 때문이에요. 너무 밝아요. 그 외엔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니노 로타의 음악이 빅히트한 영화에서 리플리 역은 알랭 들롱이 했는데 그의 비수 같은 푸른 눈동자와 맨발로 신은 간편화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여름과 태양을 싫어하는 대신 겨울과 그 바람을 좋아한다. 내가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창 문학청년으로 시를 쓰던 대학시절에 사학을 전공하던 친구 P와 함께 가끔 인천 송도로 겨울바다 바람을 쐬러 가곤 했었다. 둘이 방파제에 앉아 소주를 마시면서 겨울바람이 싹 쓸어간 세속과 인파가 종적을 감춘 겨울바다를 바라보면서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에 잠기곤 했었다.
그런 내가 지난 주말 복중에 하와이에 간 것은 왕년에 할리웃을 주름잡던 왕눈이 코미디언 골디 혼(70·사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난 ‘졸병 벤자민’으로 유명한 골디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다 그녀가 지금 하와이에서 찍고 있는 영화가 그녀로선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것이어서 만나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하와이가 어린 내게 영화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어서 난 하와이하면 대뜸 이 영화부터 생각난다. 나는 지난 1987년 이 영화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와이에 가 주인공들인 군인들이 주둔한 스코필드 병영과 유부녀 데보라 카와 말뚝상사 버트 랜카스터가 달밤에 온 몸에 파도를 뒤집어쓰며 뜨거운 키스를 나눈 와이키키 해변을 둘러보았었다.
이번에 근 30년만에 하와이를 찾으면서 밤의 와이키키를 다시 한 번 거닐겠다고 다짐했었으나 숙소가 외딴 유원지 내에 있어서 뜻을 못 이뤘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와이의 바람이다. 여인의 감촉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야자수가 긴 머리를 풀어 밤바람에 씻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도착한 날 해변 잔디에서 하와이 전통 노래와 훌라춤을 듣고 봤는데 하와이를 비롯해 피지, 사모아, 타히티 및 폴리네시아의 특성을 보여주는 춤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온 ‘블루 하와이’에서 본 것 그대로다.
그런데 내가 염세적이어서 그런지 내겐 하와이안 송이 슬프게 들렸다. 그래서 노래하는 원주민 트리오에게 다가가 “왜 내겐 당신들의 노래가 슬프게 들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슬프다기보다 로맨틱하지 않으냐”고 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로맨스와 슬픔은 잘 어울리는 것인 만큼 슬프게 들릴 수도 있다는데 동의했다.
내가 피해망상증자인지는 몰라도 코코넛 브래지어를 한 여자들과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남자들이 추는 춤을 보면서 즐겁다기보다 오히려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영광과 패기를 분실당한 것 같은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 미소를 지으면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뭔가 가슴에 걸리는 것 같았다.
30년 전에 영화 ‘역마차’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작품의 무대인 모뉴먼트 밸리에 갔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안내원이 티피 안에서 피륙을 짜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 여자를 보여줬는데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선 장사꾼이 된 인디언들이 좌판에 돌 보석을 놓고 팔고 있었다. 그 용맹무쌍하던 사람들의 초라해진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었다.
골디가 나오는 영화는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액션 코미디이자 모녀관계의 얘기다. 락뮤지션인 애인과 에콰도르(하와이가 에콰도르를 대신한다)로 여행 가기 직전 애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여자(에이미 슈머)가 꿩 대신 닭이라고 자기 어머니(골디 혼)와 함께 남미로 내려갔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곤욕을 치르면서 모녀관계를 새삼 추스른다는 내용. 인터뷰 내용은 엠바고가 걸려 쓸 수 없다.
이마를 가린 채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특유의 헤픈 듯한 웃음인 “헤 헤 헤”를 연발하면서 우리와 만난 골디는 아직도 귀염성을 지니곤 있었으나 나이는 못 속인다고 늙었다. 그러나 건강미와 함께 밝고 명랑했는데 스타 티를 내지 않아 친근감이 갔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커트(지난 34년간 동거하고 있는 배우 커트 러셀) 요즘 뭘 하나요”하고 물으니 ‘분노의 질주’ 제8편을 찍고 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7월 5일 화요일

‘머니 몬스터’ 감독 조디 포스터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둘을 같이 취급"


스릴러 드라마‘머니 몬스터’(Money Monster)를 감독한 조디 포스터(53)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머니 몬스터’는 TV의 재정전문 쇼 호스트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의 제안에 따라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젊은 카일 버드웰이 방송국에 침입, 생방 중인 호스트를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리는 얘기로 쇼의 제작자로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다. 여고생 스타일의 포스터는 똑똑 소리가 날 것처럼 총명했는데 매우 차가운 인상이었으나 질문에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작고 가는 참새를 연상케 하는 포스터는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내 영화 제작에 한국인들이 여러 명 참여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멀리서 보기와 달리 주름살이 많이 졌다. 포스터는 아역 배우 출신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두 번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모험이었다. 만드는데 4년이나 걸렸다. 조지(클루니)가 각본을 읽고 나오기로 결정한 뒤로는 만사가 빨리 진행됐다. 이 영화는 여러 개의 얘기를 내포한 지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이다. 실시간에 일어나는 얘기여서 편집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이 영화는 또  내겐 최초의 주류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들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옛날에는 사람이 좌절감을 느끼면 대화를 나눠 그것을 해소하려고 했으나 요즘에는 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좌절감을 과격하게 푸는 영화는 내가 처음이 나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드니 루멧의 ‘네트웍’이다. 내 영화의 인물들은 다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다 실패했다는 느낌과 기준치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각자가 나름대로 이에 대처하고 있는데 유독 젊은이만이 원시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요즘의 돈과 인간과의 관계가 당신이 젊었을 때와 달라졌다고 보는가.
“이 영화에서 돈은 하나의 아이디어요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 돈과 가치는 같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둘을 같이 취급한다. 나는 이만큼 돈이 있으니 가치가 있고 또 나는 이런 차를 가지고 있으니 가치가 있다고들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해 걱정해야 했다. 내가 우리 집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저 직업을 못 얻게 되면 우리 가족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돈은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 A를 맞아야 했고 또 직업에 있어서도 최고가 돼야 했다. 돈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그와 같은 목표를 가져야 했다. 돈이란 이렇게 동기가 될 수 있으나 늘 공허한 것이다.”

-요즘에도 돈에 대해 걱정하는가. 
투자에 실패한 카일이 방송국에 난입, 리를 총으로 위협하고 있다.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덜 걱정하게 된다.”

-지난해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 가장 강렬한 영향을 받은 영화로 당신이 미성년자 창녀로 나온‘택시 운전사’라고 말했는데 그 영화가 당신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그 영화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와 같은 미국의 고전에 참여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0년대는 미국 영화계의 황금기였다. 난 그 시기의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당시 활약한 시드니 루멧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이 영화도 루멧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때는 영화 속의 인물들이 보다 중요한 구실을 했다.”

-돈을 가졌다가 잃는 것과 아예 갖지를 못하고 원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못한 것이라고 보는가.       
“모르겠다. 난 그에 대해 어떤 큰 철학도 없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기소가 아니다. 나는 그 체제를 믿는다. 문제는 그것을 과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박을 할 때 25센트에서 시작해 3달러를 만들었다가 다시 잃고 본전이 됐는데도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돈을 외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만이 월스트릿을 비판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난 정치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토론을 보는 것은 진짜 흥미 있다. 그것을 보면 정치와 재정과 연예가 모두 한 덩어리가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내 영화와 같은 얘기다. 난 내 아들이 정치에 관여하려고 해서 염려스럽다. 아들은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번 선거가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유발시킨다면 좋은 일이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난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림과 사진을 좋아한다. 내 집이 무너진다면 그것부터 먼저 건질 것이다. 그러나 난 소유욕이 별로 없다. 나이가 먹을수록 더 그렇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쾌적한 집이면 된다.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난 맛있는 음식을 정말로 좋아해 아무리 비싸도 좋아하는 음식은 사 먹는다.”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이며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1960년대부터 영화에 관계했으니 참 오랜 세월이다. 자랑스러운 것은 ‘택시 운전사’처럼 1970년대 영화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감독한 ‘리틀 맨 테이트’다. 불완전하나 내가 100% 느끼는 것을 화면에 올린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난 별로 후회할 일이 없는데 있다면 내 경력과 흥행만을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 다시는 그런 선택을 안 할 것이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남녀 간에 봉급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아직도 차별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계에 여성 감독이 별로 없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유럽과 다른 곳 그리고 TV에서는 진전이 있으나 유독 주류 영화계만이 남성위주다. 그러나 이것도 서서히 변하고 있긴 하다. 남녀 고용에 관한 통계나 배분율을 더 이상 보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예술은 결코 그런 것들에 의해 통제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여자 감독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여자는 감독을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난 평생에 딱 한 번 여자 감독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것도 내가 그와 친구이고 그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말로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직면해야 할 때이다.”

-당신은 유럽에서 오래 살았는데 미국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다른 점은 미국에는 귀족체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다 자기를 재창조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자손에게 물려줄 수가 없으니 케네디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면 이렇게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돈을 번다는 것으로 우리 문화의 전체적 가치는 금전적 가치를 둘러싸고 돌아가고 있다.”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중에 당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너무 많다. 내 어머니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묻는 윤리의식이다. 그리고 가족을 버리지 않고 단단히 결합한다는 것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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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때 광고모델로 시작 영화배우로 성공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는 조디 포스터(53)는 3세 때 광고모델로 시작해 5세 때 TV에 데뷔, 이어 영화의 아역을 거쳐 성인배우로 성공한 자기 세대 중 가장 유명한 스타의 하나다. 
포스터를 대뜸 스타의 위치에 올려놓은 영화는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폭력적인 ‘택시 운전사’(1976). 여기서 포스터는 12세난 맨해턴의 창녀(사진)로 나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를 보고 포스터에게 집념하게 된 존 힝클리가 포스터가 예일대 1학년일 때인 1981년 포스터에게 짙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당시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했다.   
포스터는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탔고 이어 자신의 제작사 에그픽처스를 설립, ‘넬’ 등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2000년 초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영화사가 문을 닫았다. 
포스터는 현재 감독활동에 주력하고 있는데 지난 2013년 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생애업적상 세실 B. 드밀상 수상소감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포스터는 2014년 배우이자 사진작가인 알렉산드라 헤디슨과 결혼했고 전 애인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The BFG


BFG와 소피가 꿈을 채취하러 가고 있다.

꿈과 환상과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동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고 아늑하며 또 다정한 온 가족용 동화로 원작은 롤드 달의 1982년작 동화. ‘E.T.’에서 알 수 있듯이 스필버그는 영원한 동심의 소유자다. 필자는 오래 전에 스필버그에게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다. “당신의 동심은 어디서 오는가.” 그는 이에 대해 “그것은 나의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꿈과 환상과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쾌적한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스필버그의 동심에 사로잡혀 영화를 보면서 서슴없이 아이가 되어 즐겼다. 아이 같은 마음이 얼마나 흐뭇한 지를 되새기게 해주는 고마운 영화다.
실사영화와 컴퓨터로 인물을 확대해 만든 애니메이션이 함께 있는 작품으로 변덕스럽고 장난기 있으며 또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상냥한 영화로 각본은 지난해에 작고한 멜리사 매티슨(‘E.T.’의 각본도 쓴 매티슨은 해리슨 포드의 전처)이 썼다. 이 영화에서 ‘E.T.’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인공은 ‘니콜라스 니클비’를 읽기 좋아하는 런던 고아원의 귀엽고 조숙한 고아소녀 소피(루비 반힐이 아주 잘 한다). 어느 날 꼬부랑 할아버지 같이 생긴 거인(마크 라일런스-올해 ‘스파이들의 다리’로 오스카 조연상)이 나타나 소피를 납치해 가면서 소피의 모험이 시작된다. 소피는 처음에 거인이 자기를 프라이팬에 올려놓았을 때만해도 자신이 거인의 밥이 되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거인은 베지테리언으로 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소피는 거인을 BFG(크고 친절한 거인)라고 부른다.
BFG가 사는 나라는 거인들의 나라로 거인들 중에서 가장 작은 BFG는 자기보다 엄청나게 크고 성질 고약하고 식인을 즐기는 다른 거인들(그 중 하나는 빌 헤이더의 음성)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 BFG의 하는 일은 채로 꿈을 채취해 병 속에 담았다가(총천연색 꿈들이 마구 움직인다) 큰 나팔을 이용해 잠자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 넣는 것.         
소피와 BFG는 친구가 돼 함께 꿈을 채취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게 사는데 BFG는 배운 것이 없어 말과 단어가 미숙하다. “아이 이즈, 유 이즈“하는가 하면 ‘마제스티’를 마제스터‘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라일런스의 음성과 어조는 마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소피는 다른 거인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 BFG를 보다 못해 머리를 짜 계획을 마련한다. 여왕(페넬로피 윌튼)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고 우스운 부분이 BFG가 버킹엄궁에서 여왕을 만나는 장면. BFG가 좋아하는 푸른색의 음료수를 마신 여왕을 비롯해 여왕의 부름을 받은 각 군 고위 장성들이 방귀를 뀌는 모습이 배꼽을 빼게 한다. 그리고 여왕의  명령에 나쁜 거인들을 절해고도로 이주시키기 위해 군대가 거인의 나라로 출동한다.
영화가 이토록 정답고 가깝게 느껴지며 또 순진한 이유 중 하나는 라일런스의 음성과 슬프면서도 따스한 눈의 연기 탓이다. 마음을 포근케 해주는 연기다. PG.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순결한 사람들(The Innocents)


마틸드(왼쪽)와 마리아는 임신한 수녀들을 극진히 돌본다.

추운 겨울 외딴 수녀원서 일어나는 음울한 얘기



거룩하고 엄격하다. 잔인과 야만성과 폭력의 뒤에 베풀어지는 사랑과 자비와 인류애의 영화로 프랑스 여류감독 안 폰텐이 연출하고 출연진이 모두 여성인 여자의 영화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 외딴 검소한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음울한 얘기로 마음이 몹시 스산하고 한기를 느끼면서 아울러 고뇌와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되나 주인공들인 수녀들처럼 고행 끝에 구원과 광명을 경험하게 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외적으로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얘기이나 내면적으로는 엄청나게 폭이 넓고 섬세하고 민감하며 복잡한 작품으로 믿음과 회의에 관한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자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볼 만한 영화다.
1945년 종전 직후의 폴란드. 프랑스 의대생 마틸드(루 드 라지)는 적십자 활동에 자원해 유대인 의사 사무엘(뱅상 마케뉴)의 조수로 이곳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프랑스 군인들을 치료한다. 마틸드의 부모는 공산주의자로 마틸드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느 날 마틸드가 일하는 임시병원에 인근 수녀원의 젊은 수녀 마리아(아가타 부젝)가 찾아온다. 동료 수녀가 만삭이 돼 고통을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 이 수녀원에 몇 달 전 소련군이 침입, 수녀들을 겁탈해 현재 여러 명이 임신 중으로 이들은 거의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쉬쉬하는 원장을 설득해 혼자 출산 임산부들을 돕던 마틸드는 여러 명이 동시에 출산을 하게 되자 사무엘의 도움을 청한다.          
종교를 믿지 않는 마틸드와 사무엘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에 회의하고 고뇌하는 수녀들을 구원하는 역설적인 종교영화라고도 하겠는데 영화는 믿음과 생명과 독선적인 종교적 규칙 그리고 수녀원 테두리를 벗어난 개인적 삶에 대해 조용하나 진지하게 천착하고 있다.
많은 수녀들이 개별적으로 특색 있게 성격 묘사가 잘 됐고 특히 반항적이요 독립적이며 인간적인 마리아 역의 부젝의 연기와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마틸드 역의 드 라지의 연기가 훌륭하다. 이와 함께 자연광을 이용해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잘 조화시킨 촬영도 뛰어난 안팎으로 아름다운 영화다. 성인용.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퇴짜 맞은 존 웨인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왕년에 할리웃의 스크린을 군림했던 거구의 존 웨인이 자기가 자라고 활동하고 또 땅에 묻힌 캘리포니아의 주 의회로부터 사후 불명예스런 대접을 받았다. 최근 주 하원이 웨인의 생일인 2016년 5월26일을 ‘존 웨인 데이’로 지정, 기념하자는 결의안을 부결한 것이다. 이유는 웨인의 인종적 편견 때문이다.
많은 웨스턴에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수 없이 쏴 죽인 웨인은 실제로도 인디언들을 멸시했다. 그는 지난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식민지 개척자들의 원주민에 대한 취급에 관해 “소위 우리가 그들의 땅을 훔쳤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일 뿐”이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 땅이 필요했는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자기들만이 땅을 간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비록 영화이긴 하나 인디언들을 파리 잡듯 하던 것이 이유가 있었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발언으로 웨인은 존 포드가 감독한 걸작 웨스턴 ‘수색자’에서는 땅에 묻힌 인디언의 사체에다 대고 총질을 하기도 했다.
웨인은 인디언뿐 아니라 흑인도 하급 인간으로 여겼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지지하면서 “흑인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도록 교육을 받기 전까지는 무책임한 그들에게 권한을 주고 또 지도하고 판단하는 자리를 준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결의안이 부결되자 안을 제안한 매튜 하퍼 의원(공화)은 “존 웨인을 기리는 날에 반대하는 것은 파이와 불꽃놀이와 야구와 자유기업 그리고 7월4일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웨인의 아들 이산도 성명을 통해 “나의 아버지는 색깔과 인종과 성적 기호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매우 존경했다”며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기인 44년 전의 발언을 놓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고 말했다.
생전 ‘듀크’라 불리면서 포드와 함께 만든 ‘역마차’와 기병대 3부작인 ‘아파치 요새’ ‘황색 리번을 한 여자’ ‘리오 그랜드’ 그리고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및 ‘수색자’ 등 여러 편의 웨스턴으로 유명한 웨인은 기독교 신자로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이었다.
웨인은 공산당과 진보파 민주당원을 증오했는데 그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에 이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 ‘그린 베레’를 직접 감독하고 주연한 이유도 이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 대형 졸작에는 웨인의 아들 패트릭도 나왔다.  
웨인과 동시대에 활약한 지미 스튜어트도 웨인만큼이나 보수적인 공화당원으로 둘은 친구였다. 그런데 스튜어트는 2차 대전 때 자원입대, 폭격기 조종사로 혁혁한 무공을 세웠으나 웨인은 징집을 연기해 가면서 할리웃에서 활동했다. 그런 웨인이 태평양 전쟁영화 ‘유황도의 모래’에서 용감한 해병으로 나온 것이야 말로 거짓에 가까운 역설이다.
웨인의 이번 사후 불명예사건 만큼이나 아름답지 못했던 그의 생전 꼴불견 사건(?)은 그가 ‘정복자’에 나온 일이다. 하워드 휴즈가 주인이었던 RKO가 제작한 이 영화에서 웨인은 찢어진 눈에 콧수염을 한 징기스칸으로 나와 세인의 조롱거리가 되다시피 했었다. 나도 이 영화를 서울의 명보극장에서 보면서 실소를 터뜨린 기억이 나는데 웨인은 웨스턴에 싫증이 났는지 감독 딕 파웰이 말리는 데도 우겨서 징기스칸으로 나왔다.
아시안 배우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에는 코가 오똑한 수전 헤이워드가 징기스칸의 애인으로 나오고 그밖에도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존 호이트 및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등이 나오는 호화 올스타 캐스트이지만 비평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당했다. 웨인이 생애 나온 173편의 영화 중 최악의 것이자 1950년대 나온 최고 졸작 중 하나로 공교롭게도 웨인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수색자’가 개봉된 1956년에 나왔다.
‘정복자’는 암의 저주를 받은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는 원폭 실험지에서 멀지 않은 유타주의 사막에서 찍었는데 감독 피웰을 비롯해 웨인과 헤이워드 그리고 모어헤드와 호이트 및 아르멘다리스(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자살했다) 외에도 촬영현장에서 일했던 220여명의 사람들 중 90여명이 후에 암에 걸려 사망했다. 술꾼에 담배를 하루에 6갑 이상 태웠던 웨인은 1979년 72세로 위암으로 숨졌다.
LA에서 웨인을 만나려면 윌셔와 라시에네가 코너에 있는 펜트하우스 본부 건물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카우보이모자를 쓴 웨인이 말을 탄 동상(사진)이 있는데 한때 웨인의 팬들이 도색잡지사 앞에 미국의 영웅이 웬 말이냐며 동상을 그가 살았던 오렌지카운티로 옮기자는 운동이 있었으나 유야무야 됐다. 그러나 비록 자기 이름을 딴 기념일 제정에는 퇴짜를 맞았지만 웨인으로서는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 승객들의 이용이 많은 오렌지카운티 국제공항 이름이 존 웨인 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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