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7월 25일 월요일

‘카페 소사이어티’감독 우디 앨런




"사랑은 할 때마다 늘 새롭고 20대처럼 흥분되는 것"


1930년대 LA와 뉴욕을 무대로 청년과 그의 삼촌의 한 여자를 둘러싼 달콤쌉싸름한 로맨스 코미디‘카페 소사이어티’를 감독한 노장 우디 앨런(80)과의 인터뷰가 지난 11일 뉴욕의 콘래드 호텔에서 있었다. 자기 브랜드인 굵은 테 안경을 쓴 백발의 앨런은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을 할 때면 큰 소리를 내야 했지만 건강해 보였다. 놀란 토끼 모습의 앨런은 두 손 제스처를 써가면서 조용한 음성으로 유머와 위트를 구사, 시치미 뚝 떼고 농담을 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놓았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으면서 필자가 그에게“순이(앨런의 한국계 부인) 잘 있나요. 내 안부 전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그러마”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 다짐을 그가 지켰는지는 미지수지만.         

△‘사랑 박사’인 감독의 많은 영화들은 사랑에 관한 것인데 남자가 여자를 몇 번이나 사랑할 수가 있다고 보는가.
“사랑하고 싶은 대로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사랑은 단 한 번 만이라는 것을 안 믿는다. 사랑은 할 때마다 늘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자 흥분되는 것이다. 난 80인데도 20대처럼 흥분된다.”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매우 행복한 결혼을 해 그런 것 생각할 수 없다. 난 지극히 운이 좋은 사람으로 대박이 터진 셈이다. 그러나 가상해 내 아내가 트럭에 치여 죽는다면 그 땐 다시 사랑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영화들은 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얘기인데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난 도시인으로 도시를 사랑한다. 휴가 때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가나 난 아니다. 난 파리나 런던 또 마드리드나 로마로 간다. 대부분들 딴 도시에 가면 대뜸 미술관에 들르지만 난 그냥 시내를 걸어다니거나 카페에 앉아 집과 사람들을 보면서 즐긴다. 내가 아마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다. 좌우간 난 시골엔 관심이 없다.”

△왜 한 여자를 놓고 두 남자가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게 했는가.
“그것이 극적으로 흥미 있지 않은가. 극적인 재미는 갈등과 긴장에서 온다. 영화에서 결혼한 삼촌이 젊은 여자를 사랑하게 한 것도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이 만나 아무 탈 없이 사랑을 즐긴다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전쟁과 평화’의 주제도 다 이런 갈등과 기만에서 오는 긴장이다.”
브루클린의 바비(왼쪽)가 LA의 바니와 키스를 하고 있다.

△고급 카페 ‘카페 소사이어티’에는 갱스터들이 자주 들르는데 당신이 옛날에 클럽에서 코미디를 했을 때도 갱스터들을 자주 봤는가.
“아니다. 난 그 시대를 조금 지나서 클럽에서 일했다. 내가 일한 클럽들은 포크 싱어들과 신성 코미디언들이 일한 작은 곳이어서 갱스터들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라스 베가스에서 코미디를 할 때는 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늘 인심 좋고 매력적이요 친절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정이 지나 한 일에 대해선 난 모른다.”   

△8순에도 어떻게 매년 한 편씩 영화를 찍는가.
“난 건강이 유지되는 한 계속해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내 아버지는 100세가 넘게 살았고 어머니도 100세 가까이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장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것이다. 난 영화로 만들 아이디어가 많은데 내가 매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까닭은 나는 스튜디오와 관계없는 독립제작사의 영화를 만들고 아울러 내 영화는 제작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할리웃 여름영화의 제작비는 보통 1억달러가 넘는데 난 그에 비하면 아주 싸게 영화를 만든다.”

△돈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난 16세 때부터 농담을 써 부모가 합해 버는 돈보다 더 벌었고 그 후 늘 누군가에 의해 고용돼 돈을 벌었다. 난 여태껏 단 한 번도 일자리가 없어본 적도 없고 돈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탐을 낸 적도 없다. 그리고 난 영화를 돈 벌려고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가장 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난 학교 선생들보다는 잘 살지만 다른 감독들에 비하면 부자가 아니다. 그냥 괜찮게 살고 있다. 어머니 말대로 약사가 되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 것이다.”

△선거철인데 누굴 지지하는가.
“난 타고난 민주당원이어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한다. 난 같은 뉴요커인 도널드 트럼프를 다소 알고 있다. 그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또 예의 바른 사람이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우린 뉴질랜드로 이민 갈 필요가 없다. 힐러리가 이길 것이니 걱정 마라. 난 그녀를 만난 적은 없으나 힐러리를 좋아한다.”

△돈이 중요하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한가.
“난 겁쟁이로 내게 진짜로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아침에 일어나 무슨 병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무섭다. 나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도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아내와 아이들로 이뤄진 가족이다. 그 다음에는 일이다. 난 아주 간단한 사람이다. 일 하기를 좋아하고 야구와 농구를 좋아하고 클라리넷 불기를 좋아한다(*그는 프로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로 매주 월요일 뉴욕의 카페 칼라일에서 자신의 밴드와 함께 공연한다). 또 아내와 함께 이웃 산책을 즐긴다. 난 집안에 있기를 좋아해 글도 내 방에서 쓴다. 그러다 심심하면 집안을 오락가락 하면서 아이들이나 아내를 끌어안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뭘 원해요’라고 핀잔을 준다.”         

△요즘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 흑백대결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납치해 노예로 만들어 학대하고 오랜 세월 인종차별 해온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년간 다른 인종에 대해 무지해온 나라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지금 사태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한 법으로 인종통합을 시도한다는 일은 성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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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만난 것“대박 터진 것”이라며 자랑


우디 앨런의 현 한국계 부인 순이(44)는 앨런의 양녀였다. 순이는 후에 알렌의 동거녀가 됐던 미아 패로가 지휘자 안드레 프레빈의 아내였을 때 한국에서 입양한 고아다. 패로가 프레빈과 이혼 후 앨런과 살면서 자연히 순이는 앨런의 딸이 된 셈. 
지난 1992년 앨런이 당시 대학생이던 순이와 연애를 하던 것이 들통이 나면서 알렌은 온 세상으로부터 비도덕적 인간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둘은 지난 1997년 결혼한 뒤 두 딸을 입양해 키우면서 현재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알렌의 세 번째 결혼이다. 
앨런은 인터뷰 때마다 순이를 만난 것을 “대박이 터진 것”이라며 아내 자랑에 열을 내곤 한다. 필자가 봐도 그는 순이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기운이 역력하다. 둘 사이에 의견 차가 있는 것은 김치. 앨런은 “김치는 너무 매워 못 먹겠다”면서 “그러나 순이와 아이들은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오랜 행복을 기원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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