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웃의 스크린을 주름 잡는 영웅들은 한두 명이 아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원시적이요 멋들어진 자는 아마도 몸 아래 중요한 것만 가린 늠름한 체구의 타잔일 것이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1912년에 쓴 소설 ‘원숭이들의 타잔’으로 태어난 타잔이 처음 스크린에 등장한 것이 1918년. 소설과 같은 이름의 무성영화로 타잔 역은 엘모 링컨이 맡았다. 그런데 LA 인근 도시 타자나는 버로스가 이 곳에 살며 소유했던 타자나 목장 이름을 딴 것이다.
‘원숭이들의 타잔’에 이어 현재 상영 중인 ‘타잔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타잔영화는 무려 50여편에 이르고 최근의 타잔 역을 하고 있는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포함해 그 동안 타잔 노릇을 한 배우는 총 25명에 이른다.
정글을 누비고 다니며 액션과 모험으로 남녀노소를 흥분과 즐거움 속으로 안내했던 많은 타잔 배우들 중에 기억될 만한 사람들로는 버스터 크랩, 고든 스캇, 론 엘리, 렉스 바커, 족 마호니 및 크리스토퍼 램버트 등이 있다.
그러나 타잔 하면 대뜸 떠오르는 배우는 잘 생긴 자니 와이스멀러(사진)다. 그는 ‘유인원 타잔’(1932)으로부터 시작해 지난 1930~40년대 무려 12편의 타잔영화에 나와 타잔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나도 꼬마 때 부산 피난시절 이 영화를 보면서 타잔의 정글모험에 넋을 잃었었다. 얼마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스카스가드도 “어렸을 때 타잔 팬인 아버지(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본 와이스멀러의 타잔이 최고”라고 말했다.
와이스멀러(1984년 78세로 사망)는 오스트리아-헝가리계 미국인으로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다. 떡 벌어진 알몸 가슴이 난공불락의 성벽과도 같은 강건한 근육질의 신체를 지녔었다. 타잔의 애인으로 도시인인 제인이 타잔에게 반한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그의 이 늠름한 가슴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간다.
타잔과 제인은 잉꼬 한 쌍인데 재미 있는 것은 제인이 타잔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모습. 제인이 타잔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쿡 찌르면서 “유 타잔, 미 제인”하고 통성명을 하자 타잔이 역시 손가락으로 제인의 가슴을 찌르면서 “미 타잔, 유 제인”이라고 응답한다. 아이들 소꿉장난 하는 것 같다. 와이스멀러의 제인 역은 미아 패로의 어머니인 모린 오설리반이 했다.
타잔 노릇을 한 배우 중 특이한 사람이 프랑스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다. 그는 지난 1984년작 ‘그레이스토크: 타잔의 전설, 원숭이들의 지배자’라는 영화에 나와 셰익스피어의 연극에나 나온 듯이 시종일관 인상을 쓰면서 심각하게 굴었다. 영화도 액션과 모험보다 내면성찰적인 심각한 것으로 타잔영화로선 최초로 오스카 남우 조연상(영국의 명우 랄프 리처드슨의 사후 지명)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올랐었다.
그런데 지금 상영 중인 타잔 영화의 스카스가드가 생긴 것이나 연기가 램버트를 닮았는데 램버트가 한 수 위다. 이 영화는 내용과 연기가 별 볼품이 없는데도 흥행이 잘 되고 있다.
타잔의 인간 짝이 제인이라면 그의 동물 단짝은 자기를 키워준 원숭이들의 무리에 속한 꼬마 침팬지 치타다. 똑똑하기가 사람 못지 않은 치타는 재롱꾼이어서 영화에 코믹터치를 가미하는데 재롱만 떨 뿐 아니라 ‘타잔과 그의 배우자’에서처럼 타잔을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준다.
와이스멀러의 치타는 지난 2012년 80세로 영면했는데 당시 동물학자들이 치타는 평균수명이 40년이어서 이 치타가 와이스멀러의 치타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한편 치타의 부음이 전해지자 패로는 제인 역을 한 자기 어머니 모린이 “치타는 기회만 있으면 무는 후레새끼”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정글 스피크’로 코끼리 등 온갖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타잔의 가족인 제인과 치타 외에 새 가족이 된 것이 소년 ‘보이’. 타잔과 제인은 ‘타잔 아들을 발견하다’에서 정글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아기를 입양해 ‘보이’라고 명명, 세 식구가 네 식구가 된다.
와이스멀러의 타잔 영화 중 이색적인 것이 ‘타잔의 뉴욕 모험’. 타잔과 제인이 뉴욕으로 돌아간 ‘보이’를 찾아 맨해턴으로 오는데 신사복을 입은 타잔이 처음 보는 문명세계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우습다.
와이스멀러의 타잔영화를 보면 타잔은 물론이요 제인도 거의 전라에 가까운 차림으로 수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1930년대 초만 해도 할리웃에 검열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타잔 하면 또 잊지 못할 것이 “아 아 아 아”하며 내지르는 타잔의 요델 고함소리. 이 소리는 와이스멀러의 육성으로 그 후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 타잔영화에서도 사용됐다.
수퍼맨, 뱃맨, 아이언 맨 등 할리웃의 스크린을 누비는 수퍼히로들이 많기도 하지만 타잔만큼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영웅도 없다. 타잔은 영원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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