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4월 12일 화요일

파괴(Demolition)


데이비스가 정장을 한 채 도구로 주택을 파괴하고 있다.

부인을 잃은 상실감 어떻게 치유하는지에 관한 영화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은 남자가 슬픔과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별난 영화로 부분이 전체보다 낫지만 희한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에너지 가득한 작품이다. ‘딜라스 바이어즈 클럽’과 ‘와일드’를 감독한 캐나다 퀘백 출신의 장-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최근 잇달아 영육을 크게 소모시키는 영화에 나온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하는데 보편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질렌할의 전력투구의 연기와 함께 매우 기이한 방법으로 상심과 생존과 치유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주인공의 소란하고 파괴적이나 결국은 공허한 행동에 눈이 간다. 매우 특이한 영화로 묻지 마식의 파괴에서 혐오감보다 오히려 활력이 솟아나는 블랙 코미디다.        
잘 나가는 젊은 투자전문가 데이비스(질렌할)가 교통사고로 아내 줄리아(헤더 린드)를 잃고 정신이 나간 채 병원의 벤딩머신에서 M&M을 사려고 돈을 기계 속에 넣었으나 기계는 돈만 먹고 M&M은 안 준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에 돌아온 데이비스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벤딩머신사에 자신의 불상사와 함께 기계문제를 편지로 쓴다. 그는 편지를 잇달아 써 보내면서 이와 함께 장인(크리스 쿠퍼)의 “네 삶을 조각조각 뜯어낸 뒤 재조립하라”는 조언을 듣고 문자 그대로 뜯어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집의 연장통에서 도구를 꺼낸 뒤 먼저 새는 냉장고부터 분해한다. 이어 회사에 가서 삐걱대는 변소 문을 뜯어내고 툭하면 얼어붙는 컴퓨터도 박살낸다.
파괴증세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데이비스는 집의 고급가구를 비롯해 벽까지 뜯어내면서 상실과 아픔과 공허를 해소하는데 이런 파괴행위는 데이비스의 잔인하도록 솔직한 성질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런데 데이비스의 이런 파괴행위 뒤에는 그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다.    
한편 데이비스는 자기 편지를 접수한 벤딩머신사의 여직원 캐런(네이오미 와츠가 덜 쓰여졌다)과의 전화통화에 이어 직접 만나면서 둘이 관계를 맺는다. 캐런은 12세난 괴팍하고 조숙한 아들 크리스(신인 주다 루이스가 뛰어난 연기를 한다)를 둔 외로운 여자. 두 고독한 사람끼리여서 관계가 급속히 진전한다. 그러나 캐런을 알고도 데이비스의 파괴행위는 계속되는데 그는 심지어 주택철거 현장에 가서 신사복을 입은 채 무료로 철거작업을 돕는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최신 고급주택은 완전히 넝마가 되어버린다.    
데이비스와 캐런의 관계보다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데이비스와 그의 파괴행위의 단짝이 된 크리스와의 관계인데 둘이 나누는 동성애에 관한 대화와 방탄조끼와 실탄실험 장면이 고약하게 우스우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한 남자의 자기 구제와 정화의 건설과정을 파괴로 이룩한 역설적인 내용으로 끝을 전체적인 톤과 달리 미국식으로 말끔히 맺은 것이 마음에 안 든다. R. Fox Searchligh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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