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4월 1일 금요일

모니카 필름센터




LA의 양질 영화의 요새라 불리는 렘리극장 체인의 하나였던 모니카 4-플렉스가 지난 2년간의 개보수공사 끝에 최근 6개의 극장과 비어와 와인 바를 갖춘 모니카 필름센터(1332 2nd St. ^사진)로 새 모습을 드러냈다. 품질 좋은 독립영화와 기록영화 및 외국어영화들 상영하면서 지난 44년간 샌타모니카 예술현장의 전당 구실을 해온 모니카 4-플렉스가 이번에 안팎을 새롭게 단장, 명실 공히 아트 하우스 시네마의 본산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모니카 필름센터는 오는 연말에는 1층과 지붕 위에 식당도 마련해 영화 애호가들의 종합 휴식처로 만들 예정이다.
웨스트LA의 로열극장이 본부인 렘리체인은 현 체인의 주인인 그레고리 렘리가 엄선한 예술성이 강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는데 쾌적한 이웃 극장이자 아울러 최신 멀티플렉스 못지않은 고급 시설을 갖춘 LA의 유일한 아트 하우스 시네마다.
렘리극장의 창설자는 그레고리의 조부인 맥스 렘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성장한 맥스의 아저씨는 ‘아저씨 칼’이라 불린 유니버설사의 창립자인 칼 렘리다. 맥스는 베를린과 파리의 유니버설 지사에서 영화배급과 극장 운영 등을 실무경험 한 뒤 2차 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1938년에 LA로 이민, 곧 이어 렘리체인 설립에 들어갔다,
이 체인의 전진기지는 현재도 LA의 버몬트 길 북쪽에 있는 로스펠리즈 극장. 맥스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곤 했다. 관객의 특성과 기호를 파악해 관객을 찾아다니며 관객층을 형성한다는 렘리체인의 기본 모토는 이 때부터 생겼다,
문화의 선봉자요 정열적인 예술가이자 또 뛰어난 사업가였던 맥스는 이런 방식으로 아트 하우스 관객 확보에 성공, 1950년대 미국을 휩쓴 TV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주옥같은 외국어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 체인의 생명을 지켰다. 당시 렘리극장을 통해 미국에 선을 보인 외국인 감독들로는 쿠로사와 아키라, 자크 데미, 프랑솨 트뤼포, 아녜스 바르다 및 비토리오 데 시카 등이 있다.      
그동안 아버지 맥스 밑에서 수련한 로버트가 1960년대 들어 극장 운영에 합류했는데 당시 로스펠리즈에 있던 맥스의 집에서는 은퇴한 LA타임스의 영화평론가 케빈 토머스, 뉴요커지의 영화평론가 고 폴린 케이엘, 영화감독 프리츠 랭과 장 르놔르 등이 모여 매일 같이 영화와 예술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1972년 렘리체인은 본부를 로열극장으로 옮겼고 1987년 로버트의 아들 그레고리가 체인 운영에 가담, 체인은 렘리 가문의 3대째가 운영하고 있는 가족극장이다. 이 극장은 특히 우수한 외국어영화 상영으로 블락버스터 위주의 할리웃 메이저 영화에 식상한 예술영화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여기서 상영된 걸작 외국어영화들로는 ‘란’ ‘디바’ ‘시네마 파라디조’ ‘통곡과 속삭임’ ‘신이 미쳤나봐’ ‘광인들의 우리’ 및 ‘Z’ 등이 있는데 현재 로열극장에서 상영 중인 ‘산하고인’(Mountains May Depart)도 그 중 하나다.
나는 1990년대 중반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상오 10시에 로열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구경하곤 했다. 렘리체인을 통해 상영하는 영화의 기자용 시사회로 모두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들인 케빈 토머스, 앤디 클라인, F/X 피니 및 내 ‘영화 대모’인 해리엣 로빈스 등 6~7명의 기자들과 함께 영화를 열심히 봤다.
그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구 소련연방 소속국가들의 영화와 만든 지 반세기가 넘는 프랑스영화 및 극단적인 독립영화를 비롯해 온갖 희한한 실험영화 등을 봤다. 어떤 영화들은 너무 별나 아침부터 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LA에 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는 나로선 큰 축복이었다. 내가 1990년대 후반 LAFCA 회원이 된 이유 중 하나도 나와 함께 영화를 본 LAFCA 회원들이 나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멀티플렉스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LA의 예술영화 전용 독립극장은 전멸한 상태다. 한 때 영화계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족극장인 렘리체인이 이들 멀티플렉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렘리체인은 그 같은 경쟁을 물리치고 계속해 터전을 넓히고 있다. 2017년에는 글렌데일과 샌타클라리타에도 극장을 열 예정이다. 렘리체인은 로열과 모니카 필름센터 외에도 아리아 파인아츠와 뮤직홀 그리고 클레어몬트5와 플레이하우스7 및 타운센터5 등을 소유하고 있다. 렘리체인의 강한 생명력은 체인이 제공하는 예술성과 고전감각을 지닌 품위 있는 영화들을 사랑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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