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오스카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몽땅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던 할리웃이 이번에는 2편의 메이저 영화에서 주요 아시안 역에 백인을 써 또 다른 구설수에 말려들고 있다.
오는 11월4일에 개봉될 마블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가 자기 계몽과 구제를 찾아 히말라야에 가 티벳인 여도사 에인션트 원 밑에서 수련 후 세상을 보호하는 마법사가 된다는 얘기. 그런데 이 아시안 도사 역을 순백의 틸다 스윈튼이 맡고 있다. 또 내년 3월에 개봉될 패라마운트의 공상과학 액션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은 일본의 인기 만화와 영화가 원전으로 여기서 초정밀 기계와도 같은 특수부대 요원 메이저 소령의 본명은 구사나기 모도꼬. 그런데 이 구사나기 역도 역시 순백의 스칼렛 조핸슨이 맡았다.
할리웃이 아시안 역에 백인배우들을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희극적인 것이 ‘정복자’에서 징기스칸으로 나온 존 웨인. 말론 브랜도도 ‘8월 달의 찻집’에서 찢어진 눈을 한 일본인 통역사로 나온다. 또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는 ‘대지’에서 중국인 부부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아시안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일본인으로 나온 미키 루니. 큰 뿔테안경에 기모노를 입고 뻐드렁니를 한 루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같은 아시안으로서 모멸감에 속이 다 메슥거린다.
할리웃은 백색지대여서 오래 전부터 아시안뿐 아니라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등 소수계 역을 백인배우들이 해왔다. 첫 유성영화 ‘재즈 싱어’에서는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백인배우들로 아메리칸 인디언 역을 한 사람들은 록 허드슨, 제프 챈들러, 찰스 브론슨, 버트 랜카스터와 오드리 헵번 및 데브라 패젯 등이 있다. 자니 뎁도 몇년 전에 ‘로운 레인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톤토로 나왔다. 백인 수퍼스타로 유명 멕시칸 실제인물 역을 한 것이 말론 브랜도. 그는 ‘비바 사파타!’에서 멕시코의 풍운아 사바타로 나왔다.
할리웃이 이렇게 제멋대로 피부색을 무시하는 이유는 물론 흥행 때문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에 인기 백인스타가 아닌 아시안을 비롯한 비백인을 썼을 경우 흥행에 실패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요즘 할리웃 흥행 총수입의 70%가 해외시장 몫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아시안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몫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도 할리웃은 영화의 중요한 역에 아시안 배우를 쓰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한국시장이 할리웃의 중요한 판매처로 등장하면서 최근 들어 할리웃은 한국 팬들 나아가서 아시아권 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양권에서 잘 알려진 한국 배우들을 더러 쓰고 있다.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이지만 아주 가끔 주연으로도 쓴다.
오래 전에 박중훈이 ‘찰리의 진실’에 조연으로 나왔고 가수 비도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새신’에서 각기 조연과 주연으로 나왔으며 장동건도 ‘워리어스 웨이’에서 주연을 맡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영화들은 다 평과 흥행면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한국 배우가 할리웃 영화에 조연으로 나와 빅히트한 것은 스칼렛 조핸슨이 나온 액션 스릴러 ‘루시’. 여기서 최민식이 킬러 두목으로 나와 칭찬을 받았는데 흥행성공은 물론 조핸슨 탓이다.
배두나도 2012년 탐 행스가 나온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조연했으나 이 영화는 평과 흥행이 다 나빴다.
한국 배우로 명실 공히 국제적 배우의 문턱에 올라선 사람이 이병헌이다. 물론 다 조연이나 그는 ‘G.I. 조’ ‘레드 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및 ‘미스칸덕트’ 등 여러 편의 할리웃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그의 할리웃 영화로 지금 기대되고 있는 것이 오는 9월23일에 개봉될 웨스턴 ‘황야의 7인’. 이 영화는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매퀸이 니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로 원작은 구로사와 아끼라의 ‘7인의 사무라이’. 안트완 후콰가 감독하는 리메이크에는 덴젤 워싱턴과 이산 호크 등이 나오는데 이병헌은 검은 옷차림의 건맨 빌리 락스(사진)로 나온다.
할리웃의 아시아계 배우 홀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타 아시안들보다 유난히 많이 할리웃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 마가렛 조, 켄 정, 릭 윤, 윌 윤 리, 성 강, 스티븐 연, 랜달 박, 존 조, C.S. 리, 대니얼 대 김, 그레이스 박, 샌드라 오, 제이미 정, 그레타 리 등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영화와 TV에서 활동하고 있다.
할리웃이 비백인 역에 백인을 쓸 때마다 내세우는 말이 “배역 선정은 색맹이다”라는 것. 그런데 이 말은 소위 유색인종 역에 백인배우를 쓸 때만 적용되는 일방통행용이다. 할리웃은 언제나 백색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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