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8월 31일 월요일

노 에스케이프(No Escape)


잭(왼쪽)과 아내가 두 딸을 안고 폭도를 피해 도주하고 있다.

스릴마저 삼켜버린‘폭력을 위한 폭력’


코미디언으로 더 잘 알려진 부러진 코의 사나이 오웬 윌슨(현재 상영 중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앙상블 코미디 ‘쉬즈 퍼니 댓 웨이’에 출연)이 시종일관 뛰고 달리는 액션 스릴러다. 태국에서 찍은 이국적 경치와 함께 잔인무도한 폭력과 액션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몸의 피를 끓게 만드는 오락영화지만 모든 것이 도를 지나쳐 거부감이 인다.
특히 이 영화는 아동학대 죄로 고발을 받아 마땅할 것으로 두 어린 소녀가 살인마들로 변한 폭도들을 피해 부모와 함께 도주하면서 겪는 수난이 몸서리가 처질만큼 가혹해 두 소녀로 나오는 아역 배우들의 부모가 과연 자기들의 딸들이 이런 폭력영화에 나오는지를 알고 출연케 했는지 궁금하다.
인물이나 성격 개발과는 무관한 추격과 도주와 살인과 폭력과 액션의 영화로 두뇌와는 거리가 먼 말초 신경적 감정을 구타하는 철저히 액션 팬을 위해 만든 영화다. 서방국가들의 저개발국가 착취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영화라고도 하겠지만 그 같은 내용은 단순히 액션을 위한 핑계에 불과해 큰 설득력을 가지진 못한다.
최근 직장을 잃은 미국인 잭(윌슨)은 아내 애니(레이크 벨)와 두 어린 딸(스털링 제린스와 클레어 기어)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베트남과 인접한 ‘제4 세계’ 국가(태국과 캄보디아를 연상시키는데 동남아 국가에 대한 묘사가 매우 모욕적이다)의 미국 회사 직원으로 취직해 온다. 이 회사는 이 나라의 수원지를 사유화한 회사다. 
잭은 비행 중에 행동과 언사가 요란한 영국인 관광객 해몬드(피어스 브로스난-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인물이다)를 만난다. 해몬드는 밤의 쾌락 때문에 이 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자랑한다.
서론식으로 이 나라의 독재자인 군부 통치자가 무자비한 혁명세력에 의해 암살되는 장면이 묘사된다. 고급 호텔에 여장을 푼 잭이 신문을 사려고 호텔 주변의 동네로 나갔다가 정부와 서방국가에 반대하는 시위군중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 사이에 말려든다. 폭도로 변한 군중들은 외국인을 가차 없이 살해하는데 간신히 호텔로 돌아온 잭은 호텔로 침입한 폭도들을 피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이들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 넘고 어둡고 좁은 골목에 몸을 숨기면서 달아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도저히 내용이 믿어지지가 않아 긴장과 스릴을 느낀다기보다 공소가 터져 나올 지경이다.
처음에 나왔다가 사라진 해몬드(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가 후반부에 불쑥 나타나 폭도들에 의해 살해되기 직전의 잭의 가족을 구하면서 브로스난이 호연한 과장된 연기가 뽐을 낸다. 이 영화는 극영화라기보다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러야 더 알맞을 것으로 이렇게 폭력적인 영화도 보기 드물다. 음악도 폭격하듯이 요란하다. 
존 에릭 다우들 감독. R. Wein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히치콕의 로맨틱 스릴러 2편


케리 그랜트(왼쪽부터), 잉그릿 버그만, (한 사람 건너)클로드 레인즈.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 323-938-4038)에서는 28일과 29일 알프렛 히치콕의 2편의 걸작 서스펜스 스릴러를 상영한다. 2편 모두 케리 그랜트가 주연한다. 

*‘의혹’(Suspicion·1941)
로맨틱 심리 스릴러로 케리 그랜트의 아내로 나온 조운 폰테인이 오스카 주연상을 받았다. 수줍고 소심한 부잣집 딸 리나는 기차 안에서 만난 무책임한 멋쟁이 플레이보이 자니에게 반해 사랑의 줄행랑 끝에 결혼한다.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리나의 아버지 맥레이들로 장군(세드릭 하드윅 경). 결혼 후 리나는 자니가 직업도 돈도 없는 빚 투성이의 남자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자니는 도박꾼으로 도박 빚을 갚는다고 리나의 아버지가 결혼선물로 준 고가의 오래된 의자 2개를 팔아먹는다. 
리나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딸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은 것을 안 자니는 크게 실망한다. 한편 자니의 절친한 친구인 비키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리나는 자니가 친구도 죽이고 또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노려 자기마저 죽이려 한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리나는 자니가 자기에게 가져다주는 우유에 독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리나는 자니에게 어머니 집에서 며칠 머무르겠다고 말하자 자니가 자기가 차를 몰겠다고 제의, 리나를 태우고 절벽가의 좁은 길을 과속으로 달린다.
*‘오명’(Notorious·1946)  
잉그릿 버그만을 둘러싼 삼각관계의 러브 스토리가 있는 스파이 스릴러로 지적이요 멋이 있는 스릴러다. 이 영화는 영화사상 가장 길고 에로틱한 키스신이 있는 영화의 하나로 그랜트와 버그만의 키스 신은 자그마치 2분30초나 된다.
당시 검열에 따르면 키스 신은 30초 이상을 초과해서는 안 됐기 때문에 굉장히 약은 히치콕은 그랜트와 버그만이 우선 3초간 키스를 한 뒤 입술을 떼게 하고 잠시 대사를 나누거나 서로의 얼굴을 얼굴로 문지르면서 사랑의 유희를 하다가 다시 3초간 키스를 하는 식으로 키스 신을 연장했다.
미 정보부 요원 데블린은 과거 자기 아버지가 나치 동조자였던 알리시아를 설득해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나치 추종자인 세바스찬(클로드 레인즈)을 유혹케 한다. 이 과정에서 데블린과 알리시아는 사랑에 빠진다. 세바스찬이 알리시아에게 청혼을 하고 데블린은 알리시아에게 그것을 수락하라고 지시한다.
세바스찬 일당은 핵을 만들 수 있는 우라늄을 저장하고 있는데 이를 알리시아가 알아내자 그녀를 제거하려고 차에 서서히 효력을 발휘하는 독약을 탄다. 이를 안 데블린이 알리시아를 구하기 위해 세바스찬의 집으로 찾아간다. 라스트 신이 긴장감 가득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금지된 장난 (Forbidden Games·1952)


미셸이 십자가를 만드는 것을 폴렛이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워서 더 슬픈 소년소녀의 순수와 우정


알랑 들롱이 주연한 범죄스릴러 ‘태양은 가득히’(Purple Noon·1960)를 만든 프랑스의 르네 클레망이 감독한 전화 속 어린 아이들의 순수와 어른들의 우행과 배신을 강렬하고 시적이며 아름답고 또 가슴을 쥐어뜯듯이 슬프게 그린 흑백 명작이다. 아이들의 순수(순수의 상실)와 정직을 어른들의 기만과 이기심과 대조해 조용히 설득하듯이 얘기하고 있는데 결코 설교적이 아니요 꾸밈없이 사실적이자 거의 초현실적으로 그린 일종의 반전영화다.
5세난 폴렛과 11세난 미셸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특히 연기 경험이 없는 지상에 막 내려와 모든 것이 낯선 듯한 천사의 얼굴을 한 폴렛 역의 브리짓 포시의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민감하고 앙증맞은 무표정의 연기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숨이 막히도록 가슴 아픈 연기로 보는 즉시로 보호 본능과 연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연기다. 
1940년 6월. 나치의 프랑스 침공을 피해 파리로부터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5세난 폴렛과 소녀의 애견 족크 그리고 폴렛의 부모(실제 포시의 부모)가 나치 공군의 공습(이 장면이 마치 기록영화를 찍듯이 사실감 있다)을 받고 폴렛만 살아남는다. 
졸지에 고아가 된 폴렛은 피난민이 강에 집어 던진 족크를 찾으러 난민들을 떠났다가 동네 농부 돌레(뤼시앙 위베르)의 11세난 막내아들 미셸(조르지 푸졸리)을 만나 미셸의 집으로 함께 간다. 미셸의 가족은 폴렛을 따뜻이 맞아들이며 위로하고 돌보면서 폴렛은 이 집의 한 가족처럼 지낸다. 그리고 미셸과 폴렛은 떨어져선 못살 오빠와 동생처럼 짙은 정으로 맺어진다. 
한편 돌레 가족과 바로 이웃의 구아르 가족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다투는데 클레망 감독은 이 두 가족의 이런 어리석은 다툼과 증오를 통해 어린 미셸과 폴렛과는 다른 다 큰 인간의 기만적인 가치관을 코믹하게 조롱하고 있다.
미셸과 폴렛은 족크를 버려진 물방앗간 안에 묻는데 폴렛이 족크가 외로울 것을 걱정하자 미셸은 방앗간 안에 둘만이 아는 무덤을 만들어 죽은 두더지와 곤충과 병아리와 쥐들을 묻어 족크가 외롭지 않게 하겠다고 폴렛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무덤을 십자가와 꽃들로 장식하겠다고 약속한다. 
이 때부터 미셸은 무덤에 꽂을 십자가들을 훔치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말에 채여 죽은 자기 맏형 조르지의 관을 나르는 영구마차에 장식된 십자가를 훔친다. 미셸은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하자마자 성당 제단에 있는 십자가까지 훔치다가 신부에게 걸려 혼이 난다. 
그런데 방앗간 안의 무덤이 늘어나면서 거기에 꽂을 십자가가 모자라자 미셸과 폴렛은 조르지의 것을 비롯해 성당 옆 공동묘지에 있는 십자가들을 대량으로 훔쳐 손수레에 싣고 자기들만의 묘지로 이송한다. 이 같은 두 아이의 십자가 도둑질이 ‘금지된 장난’인데 클레망은 자기가 가장 앞세워 내 놓은 금지된 장난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자기 아들 조르지의 것을 비롯해 공동묘지의 십자가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돌레는 신부로부터 십자가 도둑이 미셸이라는 말을 듣고 미셸을 마구 두들겨 패면서 십자가들의 행방을 다그치나 미셸은 결사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 때 프랑스 경찰이 폴렛을 고아원에 보내기 위해 돌레 집을 찾아온다. 안 가겠다고 우는 폴렛과 떨어지기 싫은 미셸은 아버지에게 십자가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폴렛을 보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돌레가 이에 응하자 미셸은 아버지에게 십자가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 그런데 아버지가 약속을 안 지키고 폴렛을 경찰에 넘기자 미셸은 묘지로 달려가 십자가들을 모두 파괴한다.
인파로 붐비는 기차역. 불안과 슬픔에 젖은 눈동자를 한 폴렛은 역사에 앉아 수녀원의 고아원으로 자기를 데려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 누군가가 “미셸”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폴렛은 벌떡 일어나 “미셸”하고 부르나 그 미셸은 다른 남자의 이름. 폴렛이 계속해 “미셸”을 찾으면서 역 안의 인파를 헤집고 뛰어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서서히 공중으로 오르면서 찍은 마지막 장면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다분히 감상적이 될 수 있는 내용인데도 철저히 감상성을 배제하고 연기를 비롯해 모든 것을  자연적으로 그린 것이 이 영화를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남게 만든 요인이다. 베니스 영화제 대상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 영화는 인간의 잔인성과 어리석음과 공포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강력하고 도전적으로 기소한 작품으로 기타로 연주되는 유일한 음악인 나르시소 예페스의 ‘로망스’가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 빅히트했고 한국에서도 왕년에 큰 인기를 모았었다. 
클레망은 폴렛 역을 위해 니스에서 수백명의 소녀들을 테스트 했는데 우연히 그 때 칸에서 아주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내던 5세난 포시(1947년생)를 발견했다. 클레망은 처음에는 포시가 폴렛의 역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쓰기를 주저했으나 곧 이어 포시의 지능과 섬세한 감정적 성분에 감동,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클레망은 세세한 것에까지 주도면밀하고 사실적으로 충실하기 위해 진력했는데 특히 시각적 면에 신경을 많이 써 실내장면의 빛을 만들 때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미어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냈다고 한다. 
‘금지된 장난’이 새 번역과 자막과 함께 디지털로 만들어져 28일부터 9월3일까지 뉴아트극장(11272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상영시간 86분. 310-281-8223.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롬 글렌 투 글렌



“오 대니 보이, 더 파입스, 더 파입스 아 콜링/프롬 글렌 투 글렌 다운 더 마운튼 사이드.” 노래는 아일랜드 민요지만 갤릭어로 계곡을 뜻하는 ‘글렌’(glen)은 스코틀랜드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킬트를 입은 점잖은 포터가 수문장 노릇을 하는 퍼드의 숙소 이름도 ‘글렌이글즈’(교회의 계곡) 호텔이요 이 나라의 명품인 스카치위스키의 이름들도 ‘글렌피딕’(사진) ‘글렌리벳’ ‘글렌킨치’ ‘글렌고인’ 등 글렌 일색이다. 
실제로도 계곡이 많은 한 여름 스코틀랜드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거울로 삼고 진초록으로 몸을 단장하고 있었다. 존 포드의 명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언뜻 떠올랐다. 영화의 무대는 웨일즈이지만 외지인에겐 웨일즈와 스코틀랜드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케이블TV 스타즈(Starz)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아웃랜더’(Outlander)의 컴버널드에 있는 촬영현장 방문과 배우 인터뷰 차 지난주 스코틀랜드엘 다녀왔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한 부분이나 내가 나라라고 부른 것은 이 곳 사람들이 스코틀랜드를 완전히 독립국가로 여기기 때문이다. 
건물에 게양된 기도 유니언잭이 아니라 푸른 바탕에 X자 모양의 십자가가 그려진 스코틀랜드기다. 시리즈에 나오는 그랜트 오로크에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진정한 차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술꾼인 그는 박지성 때문에 한국 이름에 익숙하다면서 이왕 스코틀랜드에 왔으니 종류 불문하고 스카치를 많이 마시라고 종용했다.
우리가 방문한 스코틀랜드기가 펄럭이는 귀족 호프 가문의 대저택 호프툰하우스에 있는 여자 안내원도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우리는 스카티시”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션 코너리도 열렬한 스코틀랜드 독립파다. 독립 문제를 놓고 지난해에 국민투표가 시행됐지만 근소한 차로 부결됐다. 스카티시들은 모두 잉글리시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는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원치 않는 사람은 비애국자로 여겨지는 것이 두려워 함구한다고 안내원이 말했다.  
목이 달아난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의 대관식이 열렸던 스털링성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에 침공하는 잉글랜드군을 맞아 싸운 스코틀랜드의 국민영웅 윌리엄 월래스의 기념 건조물이 위풍당당하다. 월래스의 얘기는 멜 깁슨이 감독 주연해 오스카상을 탄 ‘브레이브하트’에서 극적으로 그려졌다.
스코틀랜드는 전쟁과 참수의 나라이자 계곡과 위스키와 성의 고장으로 잔해뿐인 것을 합해 성이 자그마치 3,000여개나 되는데 특히 빅토리아 여왕이 매우 사랑했다고 안내원이 알려줬다. 케케묵은 땅으로 어디를 가나 퀴퀴한 역사의 곰팡이 냄새가 난다. ‘아웃랜더’의 여주인공처럼 시간여행을 하고 다녔다.
‘아웃랜더’는 2차 대전에서 간호사로 일한 클레어가 종전 후 남편 프랭크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제2의 신혼여행을 왔다가 혼자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서 겪는 로맨틱 액션 모험극이다. 클레어는 1743년으로 돌아가 침략군인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우는 늠름한 스코틀랜드 사나이 제이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현재 제2 시즌을 촬영 중인데 세트와 의상과 현지 촬영 및 내용 등이 모두 훌륭한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스코틀랜드에 왔으니 스카치위스키를 아니 마실 수가 없는 일. 스카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인데다가 오로크의 충고도 있고 해서 다양한 종류의 스카치를 음주했다. 향기가 여인의 체취 같이 유혹적이다.            
스코틀랜드에 들르기 전 케이블TV FX가 방영할 14세기 역사극 ‘배스타드 처형자’(The Bastard Executioner)의 촬영지 방문과 배우 인터뷰 차 웨일즈의 카르디프에 먼저 들렀다. 용이 상징인 웨일즈는 모든 안내문을 영어와 웰시로 적은 것이 눈에 띄는데 도심 한복판에 11세기에 이 곳을 침공한 노만족이 세운 카르디프성이 우뚝 서 있다. 영국에서 11세기 얘기 듣는 것은 이제 옛날 같지도 않다.
못으로 둘러싼 성은 나무다리로 땅과 연결됐는데 보고 있자니 로빈 후드가 공격한 노팅엄의 성이 연상됐다. 성루에서 병사들이 화살을 쏴댈 것 같은 역사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성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2차 대전 때 나치의 공습에 대비, 성벽을 따라 길게 만든 좁은 대피소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대피소에는 벽을 따라 벤치와 철제 침대가 놓여 있고 벽에는 경고문과 사기 진작용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당시의 주방과 메뉴판 그리고 군복과 군모와 라디오도 보인다.
대피소를 걷고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 나치 공군의 폭격소리와 함께 처칠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말합니다. 오늘 부로 영국은 독일과 교전상태에 들어갑니다”라는 대국민 발표가 나온다. 이어 2차 대전 때 크게 유행한 베라 린이 부른 멜랑콜리한 ‘위일 밋 어겐’이 흘러나왔다. “위일 밋 어겐, 아이 돈 노 웨어, 아이 돈 노 웬.” 노래를 들으면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의 물리칠 수 없는 광기를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8월 23일 일요일

‘비이성적인 남자’ 감독 우디 알렌




“더 이상 웃음만 위한 영화는 원치 않아”


지금 뉴욕엔 부자와 빈민 두 계층만 있어 아주 슬픈 일
아내 순이가 늘 서울 가자 조르는데 난 가능한 미루려해


삶과 자기 직업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작은 마을 대학의 철학교수(와킨 피닉스)가 여제자(엠마 스톤)와의 로맨틱한 관계와 함께 뜻밖의 끔찍한 실존적 행위를 저지르면서 다시 생의 활기를 찾는 어두운 드라마‘비이성적인 남자’(Irrational Man)를 감독한 우디 알렌(79)과의 인터뷰가 7월25일 뉴욕의 런던 호텔에서 있었다. 알렌은 한국계 순이(44)의 남편. 안경 속에 놀란 토끼 눈을 한 알렌은 청력이 나빠서 손으로 귀를 감싼 채 질문을 듣고 대답을 했는데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시치미 뚝 떼고 하면서 인터뷰를 즐겼다. 재치와 유머가 대단해 인터뷰가 재미 만점이었는데 순이 얘기를 할 때는 두 손으로 야단스러울 정도의 제스처를 써가면서 젊은 아내를 찬양했다. 둘이 굉장히 행복한 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와는 구면인 데다가 필자 역시 한국 사람이어서 그는 필자를 만나자 반색을 하면서“할로”하고 인사를 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그의 손을 꼭 잡자 알렌은“만나서 반갑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의 교수는 창조적 능력을 상실한 채 허우적대는데 당신이 그런 경우에 처할 때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 나오는가.
“난 다행이 그렇게 심하게 글이 안 써지거나 작품을 만들지 못해 허우적댄 경험을 하진 않았다. 내가 정신적으로 침체되거나 우울하거나 또는 의기소침해 질 때면 난 일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낸다.”

작은 결정이 때론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그렇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결정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 결정은 때론 큰 보상을 가져다주기도 하나 또 때론 평생을 저주처럼 따라다니기도 한다.”

뉴요커 영화인으로서 옛 뉴욕과 요즘 뉴욕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는지.
“살기가 더 비싸졌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도시 자체는 변함없다. 9.11사태가 일어난 후 사람들이 나보고 ‘뉴욕이 이 이후로 과거와 같을 수가 있겠느냐’고 묻더라. 그에 대해 난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극장과 식당엘 가면서 왕성한 에너지와 열광과 더불어 살고 있다. 뉴욕은 여전히 창조적이며 로맨틱하고 살기에 위대한 도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빈부 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뉴욕에는 부자와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두 계층만이 있다. 아주 슬픈 일로 뉴욕에 중산층이 되살아나야 도시도 중흥하게 될 것이다.”

오랜 감독생활을 해오면서 당신의 스타일에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지.
“세트에선 변함없다. 난 조용한 편이고 별로 재미없는 개성을 지닌 것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외엔 모든 것이 변했다. 난 지금까지 45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다보면 경험상 기술과 지식을 얻게 마련이다. 내가 위대한 감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나 1969년의 데뷔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를 만들었을 때보다는 나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연출기법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이제 난 생의 문제에 처한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 따라서 영화가 옛날 것처럼 속도가 빠를 필요도 없다. 난 아직도 웃음을 사랑하나 옛날처럼 웃음만을 위한 웃음을 원치는 않는다.”

요즘 정치·사회문제 중 관심이 있는 것이 있는지.
“난 예술가로서 그런데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시민으로선 우리 정부와 대통령과 나의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민주당원으로서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 등 제반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영화로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난 늘 철학적 심리적 문제와 인간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문제들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사에 더 신경을 쓴다.”

순이 잘 있는지요.
삶의 의미를 잃은 철학교수 와킨 피닉스(왼쪽)는 제자 엠마 스톤을 사랑한다.
“잘 있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 ‘파리의 미국인’을 구경하고 있다. 그들이 집에 없으니 혼자 조용히 각본을 쓸 수 있어 아주 좋다. 그런데 사실 나 오늘 여기 오는 것 깜빡 까먹었었다. 집에서 각본을 쓰고 있는데 내 언론담당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아니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기자회견에 와야 해요’라고 말해 부랴부랴 달려 왔다.”

당신은 2년 전에 내게 순이 때문에 둘이 함께 서울에 간다고 해놓고 안 갔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다. 우선 내 딸이 한국에 가 고아원에서 봉사하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순이가 몸살 나게 서울에 가고 싶어 한다. 모두들 순이에게 ‘너 꼭 서울에 가야해’라고 부추기는데 난 정말로 별로 가고 싶지가 않거든. 그러나 순이가 몇 년째 조르고 있어 결국은 가야 할 줄 안다. 나는 순이에게 ‘우리 파리나 바르셀로나에 가자’고 제의를 하지만 순이는 ‘거긴 그만 가도 돼’라면서 ‘당신 12월에 80세가 되고 곧 죽을 텐데 그 전에 서울 가고 싶어’라고 조른다. 따라서 불원 순이를 데리고 가야할 줄 알지만 가능한 한 지연작전을 쓰고 있다. 운이 좋으면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

인생에서 돌연한 우연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많다. 우린 살면서 모두 수백만 번의 우연한 순간을 경험한다고 본다. 내게 있어 그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이다. 예를 들지. 내가 옛날에 신년파티를 열었을 때다. 파티 후 며칠 지나 미아 패로로부터 초청해 주어 고맙다는 감사선물로 책이 왔다. 그래서 답을 한다고 전화를 걸다가 ‘다음 주에 점심이나 할까요’라고 제안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세계적인 뉴스가 됐지 (배우인 패로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앙드레 프레빈의 전처로 그녀가 한국 고아원으로부터 입양한 아이가 순이다. 알렌은 패로와 애인 사이였을 때 순이와도 관계를 가져 큰 화제가 됐었다).

80세 생일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다섯 살 때부터 죽음에 집착해 왔다.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난 늘 죽음에 문턱에 섰다고 느껴왔고 그러면 공포에 휩싸여 몸이 굳어진다. 생일파티는 전연 계획이 없다. 난 그런 것 별로 안 좋아한다.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면서 ‘자 이제 너는 80이다, 70이다, 또는 90이다’라면서 축하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 분위기는 불안만 조성할 뿐으로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가족과 식당에 기서 조용히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건강이 지속되는 한 일을 계속해 하고 싶을 뿐이다. 내 아버지는 100세까지 살았으니 나도 그러고 싶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보다 나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술의 발전으로 곧 사람들이 극장에 안 가고 집에서 큰 스크린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볼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극장에 갈 생각에 흥분했었다. 크고 아름다운 극장에서 수백명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법적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젠 랩탑으로들 영화를 본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옛날 영화에 관해 애기하면 그들은 ‘시민 케인’과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봤다고 하는데 극장이 아니라 전화기로 본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밖으로 나가 어딘가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극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너무 이성적이다. 그래서 난 예술가보다는 선생 타입이다. 내가 조금만 더 비이성적이었다면 보다 나은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너무 중간층이고 이성적이고 조직적이며 비겁하다. 이성적인 것은 나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어떤 면에선 좋다. 그런데 너무 정신이 멀쩡한 것은 예술가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다.”

여전히 왕성한 당신의 창작활동의 근원은 무엇인가.
“건강이 좋았고 이 나이에도 활동적이요 정력적인 것은 유전인자 탓이다. 운동하고 잘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또 건강을 해치는 어떤 나쁜 습관도 없다. 난 일하기를 좋아하고 또 즐긴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내 아버지처럼 90 넘게 살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나도 그렇게 산다면 계속해 쓰고 영화를 만들 것이다. 난 백만 가지의 아이디어가 있거든. 난 쓰고 영화 만드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   

영화의 주인공은 대학 교수인데 당신은 좋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논리적이요 생각이 분명하고 또 가르칠 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자신이 영화인으로서보다 선생으로서 더 잘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아주 불량한 대학생이었다. 뉴욕대의 영화제작과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부모 탓이다. 그러나 1학년 때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해 퇴학당했다. 그런데 요즘 미국 대학교육은 아주 엉망이다. 어떻게 가르칠지를 모른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를 배운 학생들이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미워해 다시는 그 근처에 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랜드마 (Grandma)


엘리가 손녀 세이지(왼쪽)와 함께 돈 빌릴 사람을 찾아 차를 몰고 있다.

레즈비언 할머니와 고교생 손녀의‘낙태비용 구걸기’


내용과 대사와 연기가 모두 훌륭하고 사실적이며 또 마음이 따스한 소품으로 성질 고약한 레즈비언 할머니와 고교 3년생인 임신한 손녀의 하루에 걸친 돈 구걸 오디세이다. 우습고 가슴 사무치게 만드는 코미디 드라마로 여자 3대의 이야기이자 레즈비언 영화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나이 먹음이 가져다주는 득과 상실을 솔직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는 베테런 레즈비언 코미디언인 릴리 탐린(75-영화 ‘9 투 5’)이 혼자 말아 먹다시피 하는데 우습고 연민스럽고 또 때론 거칠다가도 인자한 연기로 보기에 아주 좋다. 손녀 역의 신인 줄리아 가너와 함께 한국계 존 조를 비롯한 탐린을 둘러싼 여러 배우들의 알찬 연기가 탐린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뒤에서 받쳐 준다. 
LA 북쪽 로스펠리츠에 사는 엘리(탐린)는 왕년의 유명한 시인이었으나 지금은 대학 시간강사로 근근이 연명한다. 영화는 처음에 엘리가 지난 4개월 간 동거하던 애인 올리비아(주디 그리어)에게서 버림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슬픔과 시름에 젖어 있는 엘리 앞에 느닷없이 고교 3년생인 손녀 세이지(가너)가 나타나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 600달러가 필요하다고 사정을 한다. 세이지의 어머니 주디(마시아 게이 하든이 맹렬하면서도 민감한 연기를 아주 잘 한다)는 막강한 변호사이지만 세이지는 군림하는 엄마가 싫어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엘리와 주디 간의 사이도 별로 안 좋다. 
그래서 돈이 없는 엘리와 세이지는 병원이 문을 닫기 전에 돈을 구하기 위해 엘리의 구닥다리 차(진짜 탐린의 고물차다)를 몰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평소 알던 성전환을 한 문신가게 주인도 찾아가고 다음 사람을 찾아가다 들른 카페에서는 꽤 까다로운 젊은 주인(존 조)과 말다툼을 하면서 입이 건 엘리의 입에서 막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엘리는 에누리 없이 완고한 책방 여주인(고 엘리자베스 페냐)에게 자기 책의 초판을 팔려고 하나 주인은 거들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어 엘리와 세이지는 아기 아빠인 새파랗게 젊은 백수건달 캠(냇 울프)을 찾아가 협조를 구하나 오히려 캠으로부터 조롱만 당한다. 이에 화가 난 엘리는 하키 스틱으로 캠을 구타한 뒤 전리품으로 마리화나가 든 백을 들고 나온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감정적으로 무게와 깊이를 지닌 것은 엘리의 옛 애인 칼(샘 엘리옷)과의 대면. 엘리와 칼의 재회는 30년만에 이뤄지는 것인데 칼은 처음에 엘리에게 돈을 빌려 주기로 했다가 과거 둘 간의 고통스런 사연이 개입되면서 엘리는 빈손으로 떠난다. 두 사람의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과 대화가 가슴을 파고든다.
시간이 자꾸 가면서 엘리와 세이지는 마음이 급해지고 둘은 결국 마지못해 주디를 찾아간다. 여기서 여자 3대 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가 진지하면서도 우습고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세 여자는 잠정적 합의와 이해에 도달한다.     
성격위주의 드라마로 꾸밈이 없고 신선한데 대사가 진실하고 연기는 아름답다. 세이지 역의 줄리아 가너가 실팍한 연기를 하는데 앞으로 빛을 볼 배우다. 폴 와이츠 각본 및 감독.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운전교습 (Learning to Drive)


다완(왼쪽)이 웬디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있다.


“운전은 인생살이와 다를 바 없다우”


두 베테런 배우 벤 킹슬리와 패트리샤 클락슨이 보기 좋은 균형을 이루고는 있지만 이 영화는 운전교습은 인생수업이라는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는 말캉한 작품이다. 맨해턴의 문학 평론가인 개인주의에 물든 백인 여자와 그녀의 인도계 미국인 운전선생 간의 문화의 차이를 넘어선 관계와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다룬 영화로 두 배우의 상호교류가 보기엔 좋으나 영화 자체로선 타작에 지나지 않는다.
제시카 탠디와 모간 프리만이 나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생각나게 하는데 깊이나 예술적 면에서 옛 영화가 월등히 낫다. 두 배우를 제외하곤 내용이나 외모가 다 매우 싱거워 간을 좀 쳐야 할 영화로 경쾌하질 못하고 발걸음이 무겁고 또 감정적이라기보다 감상적이다. 그러나 보고 즐길 만은 하다.
맨해턴에 사는 문학평론가 웬디(클락슨)는 느닷없이 21년간 살던 남편 테드(제이크 웨버)로 부터 버림을 받는다. 둘의 말다툼은 인도계 미국인으로 정치망명한 시크교도 다완(킹슬리)이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일어난다. 
운전을 못하는 웬디가 운전을 배우기로 한 까닭은 버몬트에 사는 딸 타샤(그레이스 거머-메릴 스트립의 딸)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부업으로 운전을 가르치는 다완을 부른다. 다완은 원리 원칙적이지만 민감하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 여기서부터 머리에 터번을 쓴 시크교도로서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종차별과 여러 가지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삶에 대해 철학적 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와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백인 여자 간에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리고 다완은 운전은 인생살이와 같다는 것을 웬디에게 주지시키면서 참을성 있게 그녀를 지도한다. 둘이 이렇게 함께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삶과 사랑에 관해 주고받으면서 둘간에 감지하기 힘든 감정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완은 인도에서 온 자슬린(사리타 추두리)과 중매결혼을 한다. 이에 웬디는 어떻게 해서 얼굴 한 번 본 여자와 결혼을 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이에 다완은 연애결혼 끝에 망가진 웬디의 현실을 생각하며 고개를 내젓는다. 
다완의 엄하나 자상한 지도 끝에 웬디는 운전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 이 교습으로 인해 삶을 다시 추스르게 된다. 
다소 경직된 킹슬리보다는 우아하게 아름다운 클락슨의 연기가 빛난다. 그런데 다완에 대한 묘사가 모범적인 소수계를 너무 판에 박은 듯해 보기에 오히려 민망하다. 이자벨 코이셋 감독. 성인용. Broad Green.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암살’




최근 현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암살’을 비롯해 한국 영화 여러 편을 몰아서 봤다. 최동훈이 감독하고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등 한국의 수퍼스타들이 나오는 ‘암살’(사진)은 일제강점기 때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본 측 요인과 한국의 매국노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한 투사들의 활약을 그린 다소 코믹터치를 섞은 액션 스릴러다.
여자 암살자를 등장시킨 점이 이색적인 액션이 콩 튀듯 하는 철저한 오락영화로 재미는 있지만 예술성이나 세련미는 부족하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서두 부분이 장황하고 혼란스러운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보면 국적불명이라고 하겠는데 ‘황야의 무법자’와 주윤발 느와르 식의 만화 같은 액션과 ‘제3의 사나이’의 하수구 도주장면과 나치의 유대인 즉결처형까지 빌려다 쓴 액션 멜로드라마다.
그러다보니 자연 인물들의 성격묘사가 피상적인데 인물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보기엔 멀끔하나 너무 오락성에 치중해 깊이나 진지성이 모자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영화도 한국 영화의 고질인 사족을 겸해 상영시간이 140분이나 되는데 20분은 잘라도 된다.
‘암살’이 한국서 빅 히트를 하고 있는 까닭에는 국민적 반일감정도 한몫했음에 분명하다. 히틀러 같은 아베 탓에 대일감정이 악화하고 있을 때 한국의 열사들이 일본군을 때려잡고 있으니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베가 영화의 히트에 일조를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명량’과 ‘연평해전’의 히트와도 일맥상통한다. 두 영화 역시 평범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몰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적들인 일본과 북한에 대한 반격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김무열이 주연하는 ‘연평해전’은 마지막 전투장면이 있기 전까지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 함정 해군들 간의 이야기를 장황하고 단편적으로 늘어놓은 별 재미도 없는 타작이다.  
이런 영화들의 흥행 성공은 할리웃에서의 블락버스터 영화들의 히트와도 같다. 재미가 예술성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 범지구적인 영화계의 현실이다.
한국의 요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그린 두 영화가 ‘산다’와 ‘마돈나’이다. 박정범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산다’는 강원도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의 생존투쟁을 아플 정도로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철저히 절망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의 함정에 갇힌 바닥인생의 일상을 매우 어둡고 실존적으로 그린 진지한 영화다. 그러나 2시간40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너무 길어 강력한 현실 고발이 가난의 장탄식이 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여류 신수원이 감독한 ‘마돈나’는 부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마저 빼앗을 수 있는 젊은이를 통해 부자들의 탐욕을 스릴러 터치를 섞어 비판하고 있으나 내용이 믿어지지도 않고 값싼 화장품 냄새가 난다.    
한국의 베테런 임권택이 감독하고 안성기와 김규리가 주연하는 ‘화장’은 일종의 메이-디셈버 로맨스를 흉내 낸 멜로물이다. 상처한 중년의 회사 간부가 딸 나이의 신입사원을 몰래 연모하는 얘기인데 도무지 극적인 굴곡이 부족해 무미건조하다.
임 감독은 표현 못할 남자의 감정을 수심의 고요로 그리려고 한 것 같은데 그 고요 속에 갇힌 감정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아 애타는 연모의 내연성이 간 곳이 없다. 로맨스 영화치곤 우아한 멋도 없는데 안성기는 완전히 미스 캐스팅이다. 그는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아서 도무지 연애영화 보는 기분이 안 난다.
장인 임감독의 솜씨가 세월과 함께 조금씩 쇠약해 지는 느낌이다. 나는 안성기를 부산과 LA에서 각기 만난 적이 있는데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 착한 시람 영화 흉봐서 미안하지만 ‘화장’은 그야말로 물에 물 탄 듯한 영화다.  
‘화장’처럼 소품인 ‘봄’은 손이 불편한 조각가가 불현듯 나타난 모델로 인해 창작욕구가 재점화하는 차분하고 고운 영화. 아트하우스용이다.
한국 영화는 할리웃 쪽인 박찬욱과 봉준호 그리고 유럽파인 홍상수와 김기덕 때문에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 영화하면 폭력적인 스릴러 전문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박찬욱의 ‘올드 보이’ 때문이다.
나는 할리웃 배우들과의 인터뷰 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임 프롬 코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럴 때마다 많은 스타들이 “아, 나 한국 영화 좋아해. ‘올드 보이’ 잘 만들었더라”고 대답한다. ‘올드 보이’가 도대체 언제적 영화인데. 도대체 한국 영화는 언제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것인지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나오는 물음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8월 17일 월요일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레베카 퍼거슨



“매일 6시간씩 훈련, 스턴트 연기 직접 해”

촬영 후도 액션 분위기서 벗어나느라 한동안 고생

탐은 남을 배려하는 신사이며 일을 사랑하고 즐겨


현재 미국과 한국 등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하고 있는 탐 크루즈 주연의 스파이 액션 스릴러‘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에서 정체불명의 스파이 일사로 나와 당찬 연기와 함께 박력 있는 액션을 연기한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의 레베카 퍼거슨(32)과의 인터뷰가 지난 4월 시네마콘이 열린 라스베가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있었다. 저 세상적인 이름다움과 왕족의 품위를 지닌 퍼거슨은 단구에 작은 체격을 지녔지만 놀라울 정도로 멋있고 강렬한 액션과 함께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매우 쿨했다. 이 영화는‘허큘리스’에 이어 퍼거슨의 두 번째 할리웃 스튜디오 영화로 앞으로 대성할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다. 퍼거슨은 2013년에 영국의 BBC-TV가 방영한 화려한 궁중 미니시리즈‘와이트 퀸’(The White Queen)으로 잘 알려졌다. 예쁘장한 얼굴에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인터뷰에 응한 퍼거슨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액센트가 있는 발음으로 질문에 위트를 섞어가면서 조용하게 대답했다. 겸손했지만 우아한 품위를 지닌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게 됐는가.
“먼저 런던에 가서 캐스팅을 위한 테입을 찍었다. 그리고 그 때 출연 중이던 라이프타임의 미니시리즈 ‘붉은 텐트’를 계속하기 위해 모로코에 돌아가 낙타를 타고 연기했는데 탐 크루즈와 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날 보자고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난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런던으로 갔다. 그리고 탐과 크리스를 만나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서 한 달 후 이 영화에 나와 역시 모로코에서 모터바이크를 타고 달리게 됐다.”

-스턴트를 자신이 직접 했는가.
“나를 위한 스턴트 더블이 있었지만 탐이 전적으로 직접 스턴트를 하는 바람에 나도 따라 하기로 했다. 상처는 났지만 다치진 않았는데 매우 즐겼다.”

-액션훈련을 얼마나 했는가.
“1주 6일간 매일 6시간의 훈련이었다. 댄스동작과 무술과 스턴트 훈련이었다. 수중 장면이 있어 호흡중단법도 배웠다.”

-당신의 역은 정체가 불분명한데 그에 대해 말해 달라.
“물론 내 역은 각본에 미리 쓰여 있었지만 탐과 크리스는 그 역에 내 생각과 아이디어를 첨가했다. 무자비한 여자로 이산 헌트(크루즈 역)의 여성판이라고 하겠다. 일사를 알쏭달쏭한 첩보원으로 만든 것은 내용상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일사는 신비와 우아함을 두루 갖췄던 잉그릿 버그만의 2015년 판이라고 하겠다.”

-탐과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우아한 신사이며 남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 같이 이런 액션 대작에 전연 경험이 없는 사람을 받아들여 함께 협조하고 또 자신의 예를 보여주면서 지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함께 있기가 편한 사람이다. 그것이 그의 마법이라고 본다. 그는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힘든 역을 끝내고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었는가.
“촬영이 끝나자마자 1주일간 혼자 다이빙여행을 갔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적으로는 내가 영화를 위해 한 액션의 과정을 다 벗어난 것은 아니다.”

-평소 신체단련을 어떻게 하는가.
“난 어촌에 살고 있는데 해변 달리기로 운동을 한다.”

일사(레베카 퍼거슨)와 이산이 적과 대결하고 있다.

-이런 액션영화에 나와 잘 해낼 수가 있다는 확신을 어디서 얻었나.
“난 그동안 중세영화와 성경영화 그리고 고대 칼부림영화에 나와 말과 낙타를 타고 꾸준히 움직여 왔다. 그래서 늘 내 몸을 역동적으로 사용하는 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미션’에 나오고 싶었다. 내가 액션을 해 낼 수 있다고 깨닫기도 전에 즐겼다.”

-영화에서 탐을 비롯한 근육질의 남자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 남자들을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장 하기 힘들었던 장면은.
“테러집단 신디킷에 붙잡힌 탐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매우 긴 과정으로 쉴 새 없이 여러 번 해야 했는데 여러 각도에서 싸우는 장면을 타이밍에 맞게 찍느라 힘들었다. 집에 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정신적으로 그 전 과정을 재 경험해야 했다.”

-모로코에 대해 말해 달라.
“난 모로코를 사랑한다. 붉은 색깔과 초록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또 냄새와 열기도 좋아한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다음에 나올 당신의 영화는 무엇인가.
“‘내리는 눈에도 불구하고’로 나는 러시안 스파이와 내 아주머니의 1인2역을 한다. 종전 후 러시아와 1991년의 뉴욕을 무대로 일어나는 얘기로 벨그라드에서 찍었다. 나는 내가 감시하던 이상적인 정치인을 사랑하게 되는 스파이로 나온다. 아름다운 영화다.”

-이 영화가 당신의 두 번째 할리웃 영화인데 할리웃에 대한 인상이 어떤가.
“좀 더 봐야겠다. 내가 할리웃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 안 돼 그것에 대해 어떤 구체적 의견을 가질 수가 없다. 다만 할리웃은 영화세계의 중심이고 그 곳에는 수많은 흥미 있고 불가사의 하며 또 매력적이요 믿어지지 않는 얘기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미국으로 이주할 생각이라도 있는가.
“난 내가 사는 어촌이 좋다.”

-조금 전에 무대에서 탐이 당신에 대해 대성할 사람이라고 칭찬했는데 그에 대한 소감은.
“믿지 못하겠다. 그것은 탐이 내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탐과 함께 나도 자랑스러운 일에 동참하게 돼 흥분된다.”

-‘와이트 퀸’ 이후 당신의 생애가 어떻게 변했는가.
“여행을 많이 하게 되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매 영화가 내겐 서로 다른 삶의 에피소드다. 일을 하느라 피곤했다 행복했다 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앞을 내다보면서 새 작품들을 생각하고 또 기대한다.”

-전에 베가스에 와 봤으며 도박이라도 했는가.
“처음이고 도박할 시간도 없다. 두 시간 후면 여길 떠나야 한다.”

-도박에 능한가.
“카드놀이는 하나 도박은 안 한다.”

-그러나 결정한다는 것은 도박이 아닌가.
“그렇다. 삶은 도박이다.”

-당신은 유능한 스파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당신이 머리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좋은 스파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날 조심해야 한다.”

-액션 연기 중 무엇이 가장 두려웠는가.
“난 지상에서 2미터에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서서히 고지공포를 극복해 나중에는 120피트까지도 올라갈 수가 있었다.”

-당신이 처음으로 본 ‘미션’영화는 무엇인가.
“제1편부터 순서대로 다 봤다. 언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 13세나 14세 때였을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왜 사람들이 ‘미션’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가.
“내 경우 액션과 동작이 좋아서다. 그리고 플롯이 좋은 내용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흥미 있다. 그리고 또 유머가 있어 좋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맨 프롬 U.N.C.L.E. (The Man from Uncle)


나폴레옹 솔로(왼쪽)와 일리아 쿠리아킨 역의 헨리 캐빌과 아미 해머.

코믹한 기운을 지닌 스파이 액션 버디영화 치곤 우습지도 신나지도 또 박력과 스릴도 없고 두 주연 배우 간의 화학작용도 미적지근하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었는데 그 기분이 딱 맞아 떨어진 무기력하고 심심한 영화다.
이 영화는 다분히 아이들 장난 같았지만 멋있는 1960년대 인기 동명 TV 시리즈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냉전시대 미 CIA 스파이 나폴레옹 솔로(로버트 본)와 소련 KGB 스파이 일리아 쿠리아킨(데이빗 맥컬럼)이 사상과 이념을 잠시 접어두고 서로 손을 잡고 세계를 말아 먹으려는 사악한 집단을 상대로 싸우는 내용이었다.
시리즈의 매력은 특히 바람둥이 솔로와 고지식한 쿠리아킨의 절묘한 콤비네이션이었는데 이 번에 큰돈을 들여 세계를 돌면서 찍은 이 영화에서는 덩지가 큰 두 배우 헨리 캐빌과 아미 해머가 각기 솔로와 쿠리아킨으로 나와 시리즈 흉내를 내지만 영 둘 간에 화학작용이 일어나질 않고 물에 기름 뜨듯하고 있다.
영화를 감독하고 공동으로 각본을 쓴 가이 리치(마돈나의 전 남편)는 신판 ‘셜록 홈즈’를 만든 영국 감독인데 그의 연출 솜씨는 세련미가 결핍된 밀어붙이는 식. 이 영화도 극적인 부분과 액션 그리고 로맨스와 코믹한 면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는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만들었음에 분명한데 흥행에 크게 성공할 것 같지가 않다. 그렇게 되면 이 영화는 ‘론 레인저’에 이어 사람 좋은 아미 해머(미 거부 해머 가문의 일원으로 해머 뮤지엄은 LA의 윌셔와 웨스트우드 코너에 있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실패작이 되는 셈이다.
솔로와 쿠리아킨은 한 밤에 소련이 관할하는 동베를린에서 서로 차를 타고 상대방을 공격하면서 소개된다. 둘이 공동으로 노리는 목표는 자동차 정비공장의 눈부시게 예쁜 미캐닉 개비(‘엑스 마키나’의 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더). 개비의 아버지는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로켓 제조자로 최근 실종됐는데 우도를 찾아내기 위한 미끼가 개비.
개비를 먼저 손에 넣은 것이 솔로로 그를 미행하던 쿠리아킨과 솔로 간에 좁은 골목길에서 맹렬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코믹 터치를 가미한 이 상투적인 추격전에서부터 이 영화가 앞으로 제대로 길을 가지 못하겠구나 하는 감을 잡게 된다.
여하튼 평소 같았으면 서슴지 않고 서로를 죽일 솔로와 쿠리아킨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개비를 데리고 오월동주 식으로 우도를 찾아 나선다. 딸을 오래 못 본 우도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영화의 대부분은 로마에서 내용이 전개되는데 우도가 고안한 로켓이 사악한 집단의 손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솔로와 쿠리아킨의 임무.          
로켓을 노리는 악인으로 늘씬한 팔등신 미녀 엘리자베스 데비키(‘위대한 개츠비’에서 호연을 했다)가 나오고 U.N.C.L.E.의 팀장으로 휴 그랜트가 나오는데 그랜트가 몹시 어색한 연기를 한다.
영화는 U.N.C.L.E.의 시작을 통보하면서 끝이 나는데 속편이 나올 만큼 이 영화가 호응을 받을지 의문이다. PG-13.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채플린의 무성영화, 다시 봐도 감동이…


리틀 트램프가 공장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올라 타 기계흉내를 내고 있다.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는 23일과 24일 찰리 채플린의 명작 무성영화‘모던 타임스’와‘서커스’를 동시 상영한다. (323)938-4038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1936)
채플린이 제작, 감독, 주연하고 각본과 음악까지 쓴 급속히 기계화하는 현대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걸작으로 채플린이 유럽 여행서 간디를 만났을 때 나눈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썼다. 이 영화는 또 기계의 노예화하는 서민들의 삶과 그들의 봉기를 그린 면에서 프리츠 랭의 ‘메트로폴리스’를 연상시킨다. 경제공황시대 대량 실직사태와 재정적 결핍에 시달리는 미 서민들에 대한 채플린의 비판이다.    
채플린의 분신인 리틀 트램프는 공장의 조립공으로 매일 열악한 환경 하에서 똑같은 일을 하다가 신경파탄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그가 공장에서 일하는 장면이 배꼽 빠지게 우스우면서도 가슴 섬뜩하다. 퇴원 후 실직자가 된 채플린은 어쩌다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데모 행렬 앞에 섰다가 경찰에 체포돼 영창생활을 한다.
출옥 후 그가 만난 여인이 배가 고파 빵을 훔친 뒤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고아 출신의 엘렌(채플린의 아내 폴렛 고다드). 이어 채플린은 백화점 야간 경비원에 이어 엘렌이 댄서로 일하는 카페의 웨이터 겸 가수로 취직한다. 그러나 엘렌이 도망자의 신세여서 채플린도 그녀와 함께 계속해 도망간다. 채플린과 엘렌이 손을 잡고 새벽에 희망을 찾아 길을 떠나는 모습을 뒤에서 찍은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사진)

*‘서커스’(Circus·1928)
역시 채플린이 제작, 감독, 주연하고 각본과 음악도 쓴 70분짜리 포복절도할 코미디로 역대 무성영화 사상 일곱 번째로 돈을 많이 번 영화다.
억울하게 소매치기로 몰려 경찰에 쫓기던 리틀 트램프가 어쩌다 공연 중인 서커스장 안으로 뛰어들었다가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는다. 이에 서커스 단장이 트램프를 광대로 쓰려고 테스트를 하나 실력이 변변치 않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단장은 트램프를 소도구 담당자로 쓴다. 트램프는 단장의 의붓딸로 기수인 머나와 사귀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나 머나가 사랑하는  남자는 줄 타는 렉스. 그리고 트램프의 주선으로 머나와 렉스가 결혼하고 서커스는 공연을 마치고 트램프를 떼어 놓은 채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시민 케인’




최근 권위 있는 영국 영화협회가 144명의 비평가와 감독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오손 웰즈가 25세 때 감독한 ‘시민 케인’(Citizen Kane·1941·사진)이 역대 영화사상 가장 훌륭한 영화로 선정됐다.  
할리웃의 기인 웰즈(1915~1985)가 미 역사의 한 괴물인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를 모델로 만든 영화 ‘시민 케인’은 영화가 다변한 언어이며 개인적 예술적 표현의 용솟음치는 분출구라는 것을 힘차게 보여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천재 웰즈가 제작·감독·주연하고 각본을 쓴(허만 J. 맨키위츠와 공동 집필) 이 영화는 웰즈의 대담한 개혁정신과 실험정신이 천둥번개 치듯이 빛과 소리를 내며 창조된 작품으로 영화사상 최고 최대의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이 영화는 일면으로는 권력과 부패의 고전적 연구서이자 또 다른 면으로는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기이한 아름다움과 매서운 통찰력으로 묘사한 대담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여러모로 실제 인물인 허스트를 그대로 닮아 큰 화제가 됐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외아들 허스트는 절정기에 29개의 신문, 15개의 잡지 그리고 8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했던 언론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면서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은 물론이요 미 정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허스트의 신문들은 대부분 선동적이요 감각적인 뉴스 위주의 옐로 페이퍼에 가까웠다.
걸물이자 가차 없는 모리배에 가까웠던 허스트는 정치적 야심이 컸던 인물로 아내를 두고 만난 정부인 영화배우 매리온 데이비스를 스타로 만들려고 코스모폴리탄 픽처스라는 영화사까지 세운 뒤 자신의 언론매체를 총동원해 할리웃에도 강한 입김을 불어 넣었었다.
그는 또 광적으로 전 세계로부터 그림과 조각들을 포함한 예술품들을 수집해 캘리포니아의 중부 도시 샌시메온 산정에 허스트 캐슬이라는 별장을 지었다. 허스트가 ‘황홀한 언덕’이라 부른 이 캐슬은 ‘시민 케인’의 거대하고 음습한 케인의 저택 ‘자나두’의 모델이다.      
웰즈가 스크린에 표현한 케인의 개인적 면모나 사생활 그리고 그의 저택까지가 이렇게 허스트의 그것들을 똑 닮자 허스트는 영화 개봉 전과 후에 이 영화를 사장시키려고 자신의 언론매체를 총동원해 맹공격을 해댔었다. 옐로 저널리스트, 실패한 정치인, 혼외정사자인 케인은 누가 봐도 허스트였다. 허스트는 자기 신문에 영화의 광고를 못 내게 하고 필름을 소각시키려고 할리웃의 동지들을 동원해 영화의 원본 필름을 매입하려고 시도하는가 하면 자기 패거리를 시켜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었던 후버로 하여금 웰즈의 뒷조사를 시키기도 했다.  
허스트의 정부 매리온 데이비스가 모델인 케인의 정부 수전(도로시 코밍고어)은 술에 절은 서푼짜리 오페라 가수로 케인의 허영과 야망에 밀려 오페라 무대에 섰다가 비참한 실패를 한다. 허스트가 이 영화를 특별히 증오한 것은 매리온에 대한 이 같은 처참한 묘사에 분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케인이 “로즈버드”를 마지막 말로 남기고 죽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덩지와 재능이 모두 거인급이었던 웰즈를 영원히 영화예술의 제우스로 기억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는 작품, 감독, 주연상 등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을 모두 놓쳤다.
‘시민 케인’은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소품과 세트와 조명과 음악 및 스크린의 여백과 그림자와 음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과 각도의 창조적 구사를 통해서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다.
신문기자의 취재형식을 빌어 케인의 생의 전모를 캐어나가는 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위대성은 웰즈의 비상한 연출과 변화무쌍한 연기, 맨키위츠의 실팍하고 뛰어난 각본 그리고 그렉 톨랜드의 딥포커스 기법을 사용한 생생한 촬영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의 권력과 과다한 야망 때문에 파괴된 이 거인에 대한 고전적 비극이 주는 교훈은 성공과 권력과 부가 사랑과 평안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 주고 산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죽으면서 케인은 마지막 말로 어렸을 때 자기가 타던 썰매의 이름인 ‘로즈버드’를 토해낸 것이다
신동이었고 셰익스피어 해석의 대가였던 웰즈는 ‘시민 케인’으로 마치 제왕처럼 뉴욕으로 부터 할리웃에 도착했으나 그의 두 번째 걸작인 ‘위대한 앰버슨 일가’(The Magnificent Ambersons·1942)로 과격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할리웃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추방을 당한 뒤 자신의 예술성을 만개시키지 못한 사람이다. 죽기 전 10연년 간은 포도주 광고(선셋 블러버드에 나붙은 광고를 본 기억이 난다)에 나오면서 찬값을 벌던 그는 그릇이 너무 커 할리웃이 받아들이지 못한 비극적 거인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8월 11일 화요일

릭키와 더 플래시 (Ricki and the Flash)


릭키(오른쪽)와 그렉이 술집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락가수 꿈찾아’가출한 엄마 메릴 스트립


긴 머리를 땋은 메릴 스트립이 짙은 화장을 하고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열창하는(자기가 진짜로 부른다) 락뮤직 영화이자 가족 드라마요 자기 구제의 영화로 음악 좋고 스트립의 연기도 볼만은 하나 새로울 것이 없다.
자기 꿈을 좇아 남편과(보통은 남자가 떠나지만) 자식들을 버리고 가출했던 아내요 어머니가 오래간만에 가족과의 화해를 시도한다는 얘기는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도 기시감이 가득한데 끝을 선물을 예쁜 리번으로 매듯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마무리 지은 멜로드라마로 다소 감상적이다.
모두 오스카상 수상자들인 조나산 데미(양들의 침묵)가 감독하고 디아블로 코디(주노)가 각본을 썼으며 못해 내는 역이 없는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치고는 범작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 놀라운 것은 스트립의 연인으로 나오는 유명 락가수 릭 스프링필드의 연기. 기성 배우 뺨치게 잘 한다.                 
나이 먹은 락가수 릭키(스트립)는 오래 전에 인디애나의 중상층인 남편 피트(케빈 클라인)와 딸 줄리(매미 거머-스트립의 친 딸) 등 세 남매 자식들을 버리고 가수의 꿈을 따라 가출했으나 지금은 싸구려 술집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신세. 릭키의 애인은 그녀의 밴드인 ‘릭키와 더 플래시’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그렉(스프링필드).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피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줄리가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심한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릭키는 딸을 보려고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줄리는 처음에 자기를 버리고 가출한 릭키에게 적대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약혼을 한 장남도 어머니 보기를 원수 보듯 한다. 그런대로 차남이 어머니를 따뜻이 대하는데 동성애자인 차남에 대한 묘사가 지극히 상투적이요 구태의연하다. 
그렇지만 피는 못 속인다고 줄리는 릭키의 모성애에 서서히 감싸 안기면서 모녀 간의 사랑이 재점화한다. 이 과정에서 제멋대로 사는 릭키가 이 모범가정에 바람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릭키와 피트의 새 아내 모린(오드라 맥도널드) 간에 갈등이 인다.   
릭키는 다시 제 일터로 돌아오는데 뜻밖에도 자기를 증오하던 장남의 결혼식 초청장이 날아든다. 그래서 릭키는 그렉 등 밴드와 함께 다시 집으로 찾아가 락뮤직이라면 인상을 찌푸리는 초청객들(인디애나의 중상층들이 모두 락뮤직을 사갈시한다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것 같다) 앞에서 요란한 락뮤직을 열창, 온 가족과 초청객들이 신나게 춤을 추면서 만사가 형통하게 된다.
센티멘털한 멜로드라마로 약간 어색은 하지만 스트립이 락가수로 나와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색다른 연기를 보고 즐길 만은 하다. PG-13. Tristar.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션 양들의 영화 (Shaun the Sheep Movie)


션(가운데)과 비처(앞)와 양떼들이 도시모험을 즐기고 있다.

도시로 간 시골 양들의 모험과 해프닝


영국의 인기 스탑모션 클레이메이션 영화 ‘월래스와 그로밋’ TV 시리즈와 장편영화를 만든 아드만 만화영화사의 신작으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우습다. 일종의 ‘양들의 모험’으로 시골 양들이 도시에 가서 겪는 온갖 모험과 해프닝을 티 안내고 아주 겸손한 태도로 만들었다.
요절복통 스타일이라기보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가끔 너털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온 가족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내용이 다소 부족해 에피소드를 연결해 놓는 식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만한 순진하고 꾸밈없고 따스한 영화도 많지 않다. 
모시 바틈 농장의 일상은 매일이 판에 박은 듯이 같다. 닭이 아침에 먼저 울면 주인(존 스팍스 음성)과 그의 애견 비처(존 스팍스)가 일어나고 이어 주인공인 양 션(저스틴 플레처)도 일어나 나머지 양떼들과 함께 농장으로 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하루를 보낸다. 음성연기는 대사가 아니라 짐승들이 웅얼대는 소리와 음향효과로 만들어졌다. 
션은 이런 따분한 삶에 몸살이 날 지경으로 도시 구경하는 것이 소망이다. 그런데 여차여차한 사고로 도시에 간 주인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션과 나머지 양들이 주인을 구하려고 도시로 진출한다. 과거를 전연 기억 못하는 주인은 도시에서 미용사가 됐는데 옛날에 양털 깎는 솜씨로 이발을 한다.
션과 양들이 낯설고 물 설은 도시에 와서 겪는 여러 가지 모험과 해프닝이 어리석고 시치미 뚝 떼고 웃기는 시각 코미디로 묘사된다. 특히 션 일행은 고성능 무기를 동원해 자기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서 셸터에 가두어 놓으려는 고약한 사람 때문에 큰 시련을 겪는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션을 비롯한 양들이 인간의 복장으로 위장하고 고급 식당에 앉아 음식이 아니라 메뉴를 먹어치우는 것과 셸터에 있는 개와 거북이와 고양이가 자기들을 데려갈 주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단장하는 모습 등 보고 즐길거리가 충분하다. 웬만한 사람들 영화 보다 낫다. 마크 버튼과 리처드 스타작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PG.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둥근 달 아래‘올 모차르트’




얼굴이 달아 오른 둥근 달이 뜬 여름밤 미풍 속에 상쾌하고 생기발랄하게 기지개를 활짝 펴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모차르트의 음악은 완전한 원과도 같다던 내 친구 C의 말이 떠올랐다. LA필을 지휘하는 구스타보 두다멜도 사뭇 모차르트가 즐겁기만 하다는 듯이 소년처럼 신이 났다.
지난달 30일 할리웃보울에서 연주된 ‘올 모차르트’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제치고 내가 진짜 여름밤의 음악이라는 듯이 뽐을 냈다. 즐겁고 유쾌하고 재미있고 우습고 또 총기가 반짝이는 모차르트를 들으면서 새삼 친구의 모차르트에 대한 정의를 깨달았다.
할리웃보울을 둘러싼 나무들이 정글이야 될 수 없겠지만 이 날 밤만은 보울은 모차르트가 찾아온 정글이었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원들은 이 날 클래시컬 음악드라마 시리즈 ‘정글 속의 모차르트’(Mozart in the Jungle)를 방영하는 아마존의 초청을 받고 보울 연주회에 참석했다.
이 드라마는 뉴욕심포니와 이 심포니의 다소 야단스런 지휘자 로드리고 데 수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얘기로 이 날 로드리고가 LA필의 객원지휘자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지휘하는 장면을 생으로 촬영했다. 이 장면은 시리즈 제2시즌 제1에피소드에 내보낸다.
뉴욕심포니와 로드리고는 LA필과 두다멜을 모델로 했고 뉴욕심포니의 이사장 글로리아(버나뎃 피터즈)도 LA필의 여사장 데보라 보다가 모델이다. 특히 두다멜과 베르날은 각기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태생의 라티노들로 베르날이 두다멜의 지휘를 본 딴데다가 둘 다 작달만한 키까지 비슷해 시리즈에서 로드리고를 볼 때면 두다멜이 떠오른곤 한다.        
음악회는 두다멜의 지휘로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무직’에 이어 이날 화려하게 보울무대에 데뷔한 알리스 새라 오트의 멋들어진 연주로 피아노협주곡 제21번(C장조)이 연주됐다. 휴게시간 후 청중의 박수와 환호 속에 등단한 베르날이 LA필을 지휘하기 전 비디오로 두다멜이 베르날에게 지휘를 지도하는 모습과 함께 둘의 대담 장면이 스크린에 영사됐다. 둘은 마치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즐거운 모습으로 베르날이 두다멜에게 “내가 당신 직업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자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사실 ‘피가로의 결혼’ 서곡은 베르날의 지휘로 LA필이 연주했다기보다는 베르날이 LA필을 따라 갔다고 해야겠는데 어쨌든 베르날은 익살맞고 코믹한 표정과 제스처를 써가면서 능숙하게 지휘, 청중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베르날 즉 로드리고의 이날 LA필 지휘로 보울은 활기왕성하고 즉흥적인 분위기에 감싸였는데 LA필이나 청중이 모두 장난기 짙은 유희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음악회는 이어 소프라노 미아 페르손과 베이스-바리톤 제럴드 핀리가 ‘돈 조반니’와 ‘코지 판 투테’의 아리아를 부르고 ‘마적’의 이중창을 부른 뒤 ‘썰매타기’의 댄스곡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연주회 후 무대 뒤에서 두다멜과 베르날을 만나 선 채로 잠시 환담을 나눴다. 아직도 소년 티가 나는 두다멜은 자기는 음악을 매우 사랑한다고 힘주어 말했는데 그를 보면서 음악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뉴욕과 LA의 음악 차이와 함께 현대음악을 어떻게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브람스만 듣기를 고집하는 팬들에게 주지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이에 대해 두다멜은 “나는 그래서 늘 고전과 현대음악을 섞어 프로그램을 짠다”면서 “동부에서 이런 프로그램으로 연주할 때마다 매진이 되곤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이어 락뮤직도 매우 좋아한다면서 “나는 라틴 피가 흘러 라틴음악을 특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베르날에게는 “당신 클래시컬 뮤직을 좋아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 시리즈 탓에 팬이 됐다”면서 “그래서 CD도 상당히 많이 샀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두다멜(사진 오른쪽) 과 베르날이 나란히 서서 웃고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정다운 형제처럼 보기에 좋다.            
이날 연주회의 백미는 오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 연주. 가느다란 체구인데도 강단이 있고 폭발적인 정열을 지녔는데 이런 강렬성이 거의 감지하기 힘들 정도의 섬세함과 조화를 이뤘다. 교향곡 스타일의 제1악장과 빠른 론도의 제3악장을 연주할 때는 가느다란 팔의 근육이 튀어나오도록 힘차다가 서정과 우수가 가득한 음의 색깔로 그린 고운 그림과도 같은 제2악장에서는 건반을 조심스럽게 애무했다. 두 손뿐만 아니라 입술과 눈과 얼굴 표정마저 사용해 가면서 때론 음을 오케스트라에 전달하면서 연주, 듣는 나도 연주자와 함께 마치 꿈에 취한 듯이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브라바!”가 터져 나왔다.
모차르트의 표현력 풍부한 피아노협주곡 제21번은 스케일 크고 위풍당당하면서도 아름답고 리드미컬한 곡으로 그의 협주곡 중 팬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 곡의 아름다운 제2악장 안단테는 젊은 두 연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1967)에서 효과적으로 쓰여 그 후 이 협주곡에는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8월 4일 화요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다시 본격 배우로 과거 팬들 불러모을 것”


“주지사 때 좋은 일 많이 해… 미국서 태어났다면 대선출마
  굴곡도 실패도 있었지만 내 인생은 축복 받았고 난 행복”


자신을 수퍼스타로 만들어준‘터미네이터’의 제4편‘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나이 먹은 터미네이터로 나오는 아놀드 슈워제네거(68)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거구의 슈워제네거는 액센트가 있는 굵은 음성으로 큰 제스처를 써 가며 개인생활에 대해서까지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시종일관 농담과 함께 위트와 유머를 구사하면서 인터뷰를 즐기는 것 같았다. 허연 이를 드러내고“허 허 허”하고 웃으면서 장난하듯이 굴었지만 대답은 정치가 출신답게 달변이었다. 요즘 운동선수들의 체력관리자인 헤더 밀리간(39)을 새 애인으로 만나서 그런지 슈워제네거는 아주 행복해 보였는데 대답에서도“나는 운이 좋고 행복하며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두세 차례 강조했다.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인터뷰였다. 그는 영화 홍보 차 얼마 전 한국엘 다녀왔다.                       

-당신은 영화에서 나쁜 터미네이터 T-1000으로 나오는 한국의 수퍼스타 이병헌을 한 손으로 죽였는데 곧 한국에 가서 그를 만나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느낀 인상이 어떤가.
“이병헌을 만나면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 그랬잖아’라고 말하겠다. 그는 ‘터미네이터’ 영화의 아주 멋있는 새 식구다. 역을 매우 훌륭하게 해냈는데 그의 정확성과 속도감을 보면서 감탄했다. 나는 가주 주지사 시절을 포함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무역업무 차 한국을 방문, 당시 대통령과 도지사들도 만났다. 나는 한국 사람들을 매우 존경한다. 한국은 발전으로 터질 것만 같은 나라다. 사람들은 중국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서울을 차로 돌아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해낸 사회 기반구조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정말로 거대한 안목이며 그 능력은 대단하다고 해야 옳겠다.”

-당신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생각이라도 있는지.
“내 삶은 굴곡도 많았고 또 실패와 잘못도 많았지만 난 내 삶이 복 받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바꿀 생각이 없다. 내 인생은 축복을 받았고 난 행복하다. 난 늘 하느님과 미국에 감사하고 있다. 이 기회의 나라에 온 것은 내 인생의 기본적이요 중요한 한 부분이다.”

-정치인으로서 한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난 주지사 시절 자랑스러운 일을 많이 했다. 우선 환경보호를 위한 강력한 법규를 마련했다. 녹화와 에너지 재생산을 위한 것으로 그 방면에 대해선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업적이다. 그리고 줄기세포법도 통과시켰고, 가주를 위한 사회기반구조 작업도 했다. 또 정치개혁과 함께 선거구도 재조정했다. 난 정치에 지금도 관심이 많다. 내년이 대통령 선거라 지금 너도 나도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데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나도 뛰어들어 가주 지사 후보 출마 때처럼 대중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
나이 먹은 터미네이터가 나쁜 터미네이터 T-1000(이병헌·왼쪽)과 사투하고 있다.

-요즘 가족관계는 어떤지.
“우리 가족관계에 매우 만족한다. 거기엔 마리아(전처 마리아 슈라이버)의 공이 크다. 우린 상호 이견도 있었고 또 난 큰 실수도 저질렀지만 아이들 키우는 면에서는 합심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무슨 때가 되면 모두 서로 방문을 하고 함께 즐긴다.”

―당신의 과거의 잘못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지.
“쓰러졌다 일어난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두 번은 쓰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강자는 일어나고 약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있게 마련이다.”

-새 애인에 대해 말해 달라.
“그녀는 훌륭한 여자로 아주 좋다.”

-인공지능과 기술은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기술발전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그것은 에너지 자원 개발과 의료문제 등 모든 면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영화처럼 기계가 자의식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지옥세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을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 개입할 것이며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나.
“아직 일러 내가 어떻게 개입할 지에 대해선 말할 수가 없다. 힐러리가 되든 누가 되든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왔듯이 불원 여자 대통령이 나올 것은 분명하다.”

-당신의 어려운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긍정적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당신이 저지른 과오를 가능한 한 많이 수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과오를 저질러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해를 주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것을 얼마나 즐겼는지.
“과거에 한 역이긴 하지만 제작비 1억7,000만달러짜리 영화에 나오긴 처음이다. 규모와 여러 면에서 내가 공직을 나와 만든 다른 영화와 완전히 다른 영화다. 이 영화 이전의 것들은 일종의 준비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로소 이 영화로 서서히 다시 본격적인 배우가 되는 셈으로 다시 나의 과거 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

-자녀들에게 어떤 충고를 하는가.
“내 아이들이 성공의 열쇠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부모 말 듣지 말고 네가 정열적으로 느끼는 것을 하라고 말해 주겠다. 요즘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그냥 4년제 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고나면 무엇을 할지 몰라 멍한 상태다. 아무 계획 없이 부모 말만 들어서 그런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부모는 힌트만 주면 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당신이 없어도 컴퓨터로 당신을 만들어 연기하게 할 수가 있게 됐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실물 그대로 연기하게 할 순 없다. 이 영화 만드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컴퓨터실에서 보낸 줄 아는가. 내 얼굴 표정과 턱의 선과 몸의 모든 부분을 컴퓨터로 스캐닝 하느라고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없어도 컴퓨터로 내 연기나 표정을 나와 똑같이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마침내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는데 그에 대한 소감이 어떤지.
“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기보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데 당신이 무언가 필요할 때는 누구의 도움을 받는가.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명상이라도 하는가.
“나는 1970년대 1년반 정도 명상을 하루에 두 번씩 했다. 그 때 난 영화 출연과 바디 빌딩과 함께 학교에도 가야해 업무과다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때다. 그 때 어느 사람의 소개로 명상센터에 가서 명상하는 법을 배웠다. 거기서 배운 것은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할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이 신조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오늘도 이 인터뷰만 성공적으로 끝내자고 다짐했다. 내 주위에는 나를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와 애인과 자식들과 가족들이다. 그러나 나는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편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션:임파서블-로그 네이션 (Mission:Impossible-Rogue Nation)


이산 헌트가 화학무기를 실은 수송기 문에 매달려 있다.

작렬하는 액션과 스릴에 숨이 멎는듯


스파이 액션 시리즈 ‘미션:임파서블’ 제5편으로 시종일관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과 스릴로 진행된다. 거의 숨 쉴 틈이 없이 작렬하는 액션은 음모와 배신과 기만 그리고 거짓말 및 변장 등 정통 스파이 영화의 온갖 요소를 잘 섞은 드라마와 균형을 이룬다.
아주 잘 만든 여름철용 스파이 액션 드라마로 모양새와 내용(다소 복잡하다)이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모방한 흔적이 보여 기시감이 있긴 하나 거의 지칠 정도로 몰아가는 액션에 휩쓸려 들고만다. 
탐 크루즈 외에 보기 좋고 연기와 액션을 아주 잘 하는 것이 정체불명의 여자 스파이 일사(스웨덴 배우 레베카 퍼거슨-TV시리즈 ‘와이트 퀸’). 단구이지만 단단한데 결연한 표정의 얼굴과 확신에 찬 연기 그리고 혀를 찰 액션동작이 일품이다. 할리웃에서 대성할 배우인데 이 여자의 정체가 시종일관 아리송해 영화에 미스터리 기운을 듬뿍 제공한다.
본드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 크레딧 이전의 액션신이 장관이다. 미 특수 비밀 첩보기관 IMF요원 이산 헌트(크루즈)가 화학무기를 싣고 막 이륙하는 대형 수송기 날개 위에 뛰어 오른 뒤 수송기문을 붙잡고 공중에 매달려 나르는 장명은 앞으로 영화가 신나게 진행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데 이 장면은 53세의 크루즈가 직접 했다고 해 유명한 장면. 여기서 이산의 동료들인 윌리엄(제레미 레너)과 벤지(사이먼 펙) 그리고 루서(빙 레임즈) 등이 모두 소개된다.
CIA국장 알란(알렉 볼드윈)이 IMF의 해체를 결정하면서 이산은 낭인이 되고 윌리엄과 벤지는 CIA를 위해 일하게 된다. 알란은 IMF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혼자 활동하는 이산을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나 윌리엄과 벤지는 몰래 이산을 돕는다. 벤지역은 액션영화에 코믹 터치를  주는 쉼표다. 
수송기의 화학무기를 탈취한 이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세계적인 테러그룹 신디킷의 두목솔로몬(션 해리스)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한다. 이를 구해주는 여자가 솔로몬의 졸개인 일사. 이 때부터 일사는 솔로몬 쪽과 이산 쪽을 오락가락해 그 정체가 알송달송하다.
이산은 혼자서 지구를 돌면서 신디킷을 분쇄하려고 분주한데 역시 혼자선 역부족이라 컴퓨터귀재인 벤지를 비엔나로 유인해 낸다.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관람하는 오스트리아수상을 신디킷이 암살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테너 아리아 ‘공주는 잠들지 못하고’가 끝나는 순간 저격수의 방아쇄가 당겨지고(이 장면은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빌려왔다.) 빌려는 왔지만 정교하고 장대한 장면이다. 
벤지에 이어 윌리엄도 이산을 찾으려고 CIA본부를 나오는데 그를 돕는 것이 일사. 무대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이전한다. 여기서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두 장면이 전개된다. 하나는 수중에 보관된 신디킷의 정보를 담은 컴퓨터칩을 이산이 바꿔치기 하는 것. 수중에서 호흡을 3분간 중단해야하는 장면인데 긴장감 있고 잘 찍었다.      
다른 하나는 오토바이를 초고속으로 몰고 달아나는 일사와 이를 추격하는 이산 그리고 이들을 추격하는 솔로몬의 졸개들의 속도감 강렬한 도주와 추격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후반에 가서 일사의 정체가 밝혀지고 진짜 배신자가 알고 보니 아군이라는 스파이영화의 공식적인 플롯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산과 솔로몬의 대결로 말미가 장식된다. 크루즈가 자신만만한 연기와 액션을 장쾌하게 해낸다. 제6편이 나올 것이며 일사도 그 때 다시 볼 수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각본 겸). PG-13. Paramount.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휴가 (Vacation)


그리스월드 가족이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재밌지도 새롭지도 않은 역겨운 코미디


이 냄새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은 코미디는 체비 체이스 주연의 1983년작 ‘내셔널 램푼스 휴가’(National Lampoon’s Vacation)의 속편격으로 순진한 전편에 비하면 조야하고 상스럽기 짝이 없다. 온갖 F자 상소리와 함께 음란하고 거칠고 지저분한데 전편에 어느 정도라도 가까이 가려고 분투하고 있으나 재미 없고 한심한 영화다.
영화에서 부부인 러스티와 데비가 목욕하는 숲 속의 연못에 흘러 나온 인분과 갖가지 폐기물처럼 인체에 해롭고 더러운 영화인데 언어와 육체적 농담이 많은데도 전연 우습지 않고 역겹기만 하다.
러스티 역의 에드 헬름스는 주연으로서 보다 조연으로서 더 제 구실을 하는 좋은 코미디언인데 1983년 판의 체비 체이스의 편안하게 너스레를 떠는 연기에 비해 체이스를 인식하고 그 보다 앞서 가기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긴장된 모습이다. 
러스티 그리스월드는 1983년 판의 가장 클라크(체이스)의 아들로 아내 데비(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와 약골인 장남 제임스(스카일러 기손도)와 악동인 차남 케빈(스틸 스테빈스)을 두고 있다. 웃기려고 연출한 차남의 악행이 부질없이 시간만 잡아 먹는다.
러스티는 여름 휴가를 맞아 30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갔던 캘리포니아의 왈리월드로 차를 몰고 대륙횡단에 나선다. 차는 알바니아제로 제 멋대로 작동하는 사람 잡을 차다. 길을 가면서 여러 가지 모험과 해프닝이 일어나는데 도무지 흥미를 유발치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짓거리들이다.
가면 갈수록 김이 새는 영화인데 데비가 자기가 다닌 대학교에 들러 자신은 아직도 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음주망발을 하는 모습과 온 가족이 자살기운이 있는 안내원이 모는 고무보트를 타고 그랜드캐년의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무엇 하나 새롭거나 우습거나 신나는 장면이 없다.
꼴불견인 것은 러스티의 색정에 굶주린 여동생(레즐리 맨)과 그의 덩지 큰 남편(크리스 헴스워드). ‘어벤저스’에 나오는 헴스워드가 팬티바람으로 이상한 액센트를 써가면서 자신의 건강한 아랫도리를 과시하는 모습이야 말로 목불인견이다. 체비 체이스와 옛날 영화에서 그의 아내 역을 맡은 베벌리 디앤젤로가 나중에 캐미오로 나오나 한심한 이 영화를 구제할 길이 없다. 모두들 이 영화와 멀리 하기를 권한다. 존 프랜시스 데일리와 조나산 M. 골드스틴 감독.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런던 콜즈 유”




술을 좋아하는 내가 런던에 가면 보면서 부럽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런더너들의 노변 음주다. 런던 시민들은 퇴근길에 곧바로 집으로 안 가고 펍 앞의 인도에 삼삼오오 모여서서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어들 대는데 그 모양이 정겹기 짝이 없다.
저녁 때 런던 길을 걷다 보면 골목골목에서부터 와글바글 대는 소리가 울려나오는데 이 것이 바로 노변 음주자들의 리드미컬하기까지 한 하루의 노고를 푸는 소리들이다. LA에서 이들 런더너들처럼 노변 음주를 했다가는 벌금 딱지감이지만.
지난주 영화촬영 세트 방문과 배우들 인터뷰 차 런던에 갔다 왔다. 저녁 산책길에 숙소인 호텔 인근의 ‘코치 앤 호시즈’ 펍(사진) 앞을 지나가다가 셀폰으로 노변 음주하는 런더너들을 찍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부른다.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롱 리브 더 퀸”이라고 했더니 사진을 같이 찍던 한 남자가 “여왕 폐하 좋아하시네”라며 핀잔을 준다. 그도 아마 나처럼 군주제를 싫어하나 보다.
군주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런던의 여러 유명 호텔과 고급 아파트들이 중동의 왕족이나 특권층들의 것이다. 식당에서 비둘기 고기를 파는 도체스터 호텔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리지스 호텔을 비롯해 하이드팍이 내려다보이는 1억파운드짜리 고급 아파트들이 다 오일 머니에 팔렸다. 칵테일 리셉션이 있은 레인스보로 호텔에는 오일 머니들을 위해 하룻밤에 기만파운드짜리 방도 마련돼 있다.
출생 탓에 나라의 땅과 석유를 독식한 채 호사를 누리면서 백성 위에 군림하는 군주제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혁명이 나지. 영국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의 명소인 피카딜리 서커스와 리츠를 비롯한 고급호텔과 고급상점들이 즐비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시의 금싸라기 같은 땅의 대부분이 공작 칭호를 지닌 귀족의 것이다.
세트방문 차 셰퍼튼 스튜디오로 우리를 태우고 가는 택시의 운전사도 군주제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김에 분명했다. LA에서도 살았다는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찰스가 왕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며 껄껄대고 웃었다. 나도 그 말에 깔깔대고 웃었다. 그는 아주 달변이었는데 고풍이 느껴지는 액센트가 듣기에 좋다.
숙소인 웨스트민스터시 본드 스트릿의 웨스트베리 호텔은 도심공원 버클리 스퀘어 인근에 있다. 버클리 스퀘어는 바비 다린이 노래한 ‘나이팅게일 생 인 버클리 스퀘어’로 유명하다. “우리가 만난 그 어느 날 밤 리츠에선 천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버클리 스퀘어에선 나이팅게일이 노래 불렀지/당신이 돌아서서 나보고 미소를 지었을 때 버클리 스퀘어에선 나이팅게일이 노래 불렀지/마을의 길들은 별들로 포장되었고 그것은 정말로 로맨틱한 연애였어/그리고 우리가 키스를 하고 굿-나잇이라고 말하자 나이팅게일이 노래 불렀지.” 나도 공원을 거닐면서 노래를 흥얼댔다.
셰퍼튼 스튜디오로 가면서 비틀즈의 앨범 커버사진으로 유명한 애비 로드를 지나갔다.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앨범사진 대로 일렬횡대로 애비 로드 건널목을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셰퍼튼 스튜디오는 오손 웰즈가 나온 ‘제3의 사나이’(1949)를 비롯해 007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 등을 찍은 유서 깊은 스튜디오다.
구내에 들어서니 데이빗 린 드라이브와 햄릿 드라이브가 있고 오손 웰즈 빌딩과 드라이브도 보인다. 오손 웰즈 빌딩에서는 ‘제3의 사나이’에서 범죄자 해리(웰즈)가 미로 같은 비엔나 하수구로 도주하는 장면을 찍었을 것이다.
현재 여기서는 디즈니의 뮤지컬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를 뮤지컬 극영화로 찍고 있는데 세트와 의상과 소품들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고 또 아름답다. 미녀로는 ‘해리 포터’의 엠마 왓슨이 나오는데 한 관계자는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1946)를 많이 참조했다고 말했다.        
빨간색의 2층 버스들과 검은 색의 택시(런던의 택시 운전사시험은 사법고시만큼이나 힘들어 시험을 지식이라는 뜻의 ‘날리지’라고 부른다고 한다)들이 시내 교통대란을 잽싸게 헤집고 다니는 런던은 옛것과 요즘 것이 티를 안 내고 조화를 이뤄 걷노라면 마치 내 집에나 온 것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매력은 런던의 물가를 생각하면 거의 공포로 변한다. 하여튼 되게 비싼데 호텔 바에서 마신 싱글몰트 스카치 한 잔이 무려 13파운드다.
런던 체류 마지막 이틀은 196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TV 스파이 시리즈 ‘U.N.C.L.E.에서 온 사나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보고 감독과 출연진 인터뷰를 했다. 마돈나의 전 남편 가이 리치가 감독한 이 영화는 8월14일에 개봉되는데 아주 졸작이다. CIA 스파이와 KGB 스파이로는 각기 헨리 캐빌과 아미 해머가 나온다.
런던 체류를 끝내고 우디 알렌을 만나려고 뉴욕으로 떠나는 날은 비가 왔다. 내가 짐을 들어준 호텔 포터에게 “비가 오네”라고 했더니 그가 나더러 “런던 콜즈 유”라며 미소를 짓는다. 노래 가사처럼 로맨틱한 표현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