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8월 23일 일요일

‘암살’




최근 현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암살’을 비롯해 한국 영화 여러 편을 몰아서 봤다. 최동훈이 감독하고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등 한국의 수퍼스타들이 나오는 ‘암살’(사진)은 일제강점기 때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본 측 요인과 한국의 매국노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한 투사들의 활약을 그린 다소 코믹터치를 섞은 액션 스릴러다.
여자 암살자를 등장시킨 점이 이색적인 액션이 콩 튀듯 하는 철저한 오락영화로 재미는 있지만 예술성이나 세련미는 부족하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서두 부분이 장황하고 혼란스러운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보면 국적불명이라고 하겠는데 ‘황야의 무법자’와 주윤발 느와르 식의 만화 같은 액션과 ‘제3의 사나이’의 하수구 도주장면과 나치의 유대인 즉결처형까지 빌려다 쓴 액션 멜로드라마다.
그러다보니 자연 인물들의 성격묘사가 피상적인데 인물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보기엔 멀끔하나 너무 오락성에 치중해 깊이나 진지성이 모자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영화도 한국 영화의 고질인 사족을 겸해 상영시간이 140분이나 되는데 20분은 잘라도 된다.
‘암살’이 한국서 빅 히트를 하고 있는 까닭에는 국민적 반일감정도 한몫했음에 분명하다. 히틀러 같은 아베 탓에 대일감정이 악화하고 있을 때 한국의 열사들이 일본군을 때려잡고 있으니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베가 영화의 히트에 일조를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명량’과 ‘연평해전’의 히트와도 일맥상통한다. 두 영화 역시 평범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몰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적들인 일본과 북한에 대한 반격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김무열이 주연하는 ‘연평해전’은 마지막 전투장면이 있기 전까지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 함정 해군들 간의 이야기를 장황하고 단편적으로 늘어놓은 별 재미도 없는 타작이다.  
이런 영화들의 흥행 성공은 할리웃에서의 블락버스터 영화들의 히트와도 같다. 재미가 예술성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 범지구적인 영화계의 현실이다.
한국의 요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그린 두 영화가 ‘산다’와 ‘마돈나’이다. 박정범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산다’는 강원도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의 생존투쟁을 아플 정도로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철저히 절망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의 함정에 갇힌 바닥인생의 일상을 매우 어둡고 실존적으로 그린 진지한 영화다. 그러나 2시간40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너무 길어 강력한 현실 고발이 가난의 장탄식이 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여류 신수원이 감독한 ‘마돈나’는 부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마저 빼앗을 수 있는 젊은이를 통해 부자들의 탐욕을 스릴러 터치를 섞어 비판하고 있으나 내용이 믿어지지도 않고 값싼 화장품 냄새가 난다.    
한국의 베테런 임권택이 감독하고 안성기와 김규리가 주연하는 ‘화장’은 일종의 메이-디셈버 로맨스를 흉내 낸 멜로물이다. 상처한 중년의 회사 간부가 딸 나이의 신입사원을 몰래 연모하는 얘기인데 도무지 극적인 굴곡이 부족해 무미건조하다.
임 감독은 표현 못할 남자의 감정을 수심의 고요로 그리려고 한 것 같은데 그 고요 속에 갇힌 감정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아 애타는 연모의 내연성이 간 곳이 없다. 로맨스 영화치곤 우아한 멋도 없는데 안성기는 완전히 미스 캐스팅이다. 그는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아서 도무지 연애영화 보는 기분이 안 난다.
장인 임감독의 솜씨가 세월과 함께 조금씩 쇠약해 지는 느낌이다. 나는 안성기를 부산과 LA에서 각기 만난 적이 있는데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 착한 시람 영화 흉봐서 미안하지만 ‘화장’은 그야말로 물에 물 탄 듯한 영화다.  
‘화장’처럼 소품인 ‘봄’은 손이 불편한 조각가가 불현듯 나타난 모델로 인해 창작욕구가 재점화하는 차분하고 고운 영화. 아트하우스용이다.
한국 영화는 할리웃 쪽인 박찬욱과 봉준호 그리고 유럽파인 홍상수와 김기덕 때문에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 영화하면 폭력적인 스릴러 전문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박찬욱의 ‘올드 보이’ 때문이다.
나는 할리웃 배우들과의 인터뷰 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임 프롬 코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럴 때마다 많은 스타들이 “아, 나 한국 영화 좋아해. ‘올드 보이’ 잘 만들었더라”고 대답한다. ‘올드 보이’가 도대체 언제적 영화인데. 도대체 한국 영화는 언제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것인지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나오는 물음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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