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가 손녀 세이지(왼쪽)와 함께 돈 빌릴 사람을 찾아 차를 몰고 있다. |
레즈비언 할머니와 고교생 손녀의‘낙태비용 구걸기’
내용과 대사와 연기가 모두 훌륭하고 사실적이며 또 마음이 따스한 소품으로 성질 고약한 레즈비언 할머니와 고교 3년생인 임신한 손녀의 하루에 걸친 돈 구걸 오디세이다. 우습고 가슴 사무치게 만드는 코미디 드라마로 여자 3대의 이야기이자 레즈비언 영화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나이 먹음이 가져다주는 득과 상실을 솔직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는 베테런 레즈비언 코미디언인 릴리 탐린(75-영화 ‘9 투 5’)이 혼자 말아 먹다시피 하는데 우습고 연민스럽고 또 때론 거칠다가도 인자한 연기로 보기에 아주 좋다. 손녀 역의 신인 줄리아 가너와 함께 한국계 존 조를 비롯한 탐린을 둘러싼 여러 배우들의 알찬 연기가 탐린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뒤에서 받쳐 준다.
LA 북쪽 로스펠리츠에 사는 엘리(탐린)는 왕년의 유명한 시인이었으나 지금은 대학 시간강사로 근근이 연명한다. 영화는 처음에 엘리가 지난 4개월 간 동거하던 애인 올리비아(주디 그리어)에게서 버림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슬픔과 시름에 젖어 있는 엘리 앞에 느닷없이 고교 3년생인 손녀 세이지(가너)가 나타나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 600달러가 필요하다고 사정을 한다. 세이지의 어머니 주디(마시아 게이 하든이 맹렬하면서도 민감한 연기를 아주 잘 한다)는 막강한 변호사이지만 세이지는 군림하는 엄마가 싫어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엘리와 주디 간의 사이도 별로 안 좋다.
그래서 돈이 없는 엘리와 세이지는 병원이 문을 닫기 전에 돈을 구하기 위해 엘리의 구닥다리 차(진짜 탐린의 고물차다)를 몰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평소 알던 성전환을 한 문신가게 주인도 찾아가고 다음 사람을 찾아가다 들른 카페에서는 꽤 까다로운 젊은 주인(존 조)과 말다툼을 하면서 입이 건 엘리의 입에서 막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엘리는 에누리 없이 완고한 책방 여주인(고 엘리자베스 페냐)에게 자기 책의 초판을 팔려고 하나 주인은 거들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어 엘리와 세이지는 아기 아빠인 새파랗게 젊은 백수건달 캠(냇 울프)을 찾아가 협조를 구하나 오히려 캠으로부터 조롱만 당한다. 이에 화가 난 엘리는 하키 스틱으로 캠을 구타한 뒤 전리품으로 마리화나가 든 백을 들고 나온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감정적으로 무게와 깊이를 지닌 것은 엘리의 옛 애인 칼(샘 엘리옷)과의 대면. 엘리와 칼의 재회는 30년만에 이뤄지는 것인데 칼은 처음에 엘리에게 돈을 빌려 주기로 했다가 과거 둘 간의 고통스런 사연이 개입되면서 엘리는 빈손으로 떠난다. 두 사람의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과 대화가 가슴을 파고든다.
시간이 자꾸 가면서 엘리와 세이지는 마음이 급해지고 둘은 결국 마지못해 주디를 찾아간다. 여기서 여자 3대 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가 진지하면서도 우습고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세 여자는 잠정적 합의와 이해에 도달한다.
성격위주의 드라마로 꾸밈이 없고 신선한데 대사가 진실하고 연기는 아름답다. 세이지 역의 줄리아 가너가 실팍한 연기를 하는데 앞으로 빛을 볼 배우다. 폴 와이츠 각본 및 감독.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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