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이 십자가를 만드는 것을 폴렛이 바라보고 있다. |
아름다워서 더 슬픈 소년소녀의 순수와 우정
알랑 들롱이 주연한 범죄스릴러 ‘태양은 가득히’(Purple Noon·1960)를 만든 프랑스의 르네 클레망이 감독한 전화 속 어린 아이들의 순수와 어른들의 우행과 배신을 강렬하고 시적이며 아름답고 또 가슴을 쥐어뜯듯이 슬프게 그린 흑백 명작이다. 아이들의 순수(순수의 상실)와 정직을 어른들의 기만과 이기심과 대조해 조용히 설득하듯이 얘기하고 있는데 결코 설교적이 아니요 꾸밈없이 사실적이자 거의 초현실적으로 그린 일종의 반전영화다.
5세난 폴렛과 11세난 미셸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특히 연기 경험이 없는 지상에 막 내려와 모든 것이 낯선 듯한 천사의 얼굴을 한 폴렛 역의 브리짓 포시의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민감하고 앙증맞은 무표정의 연기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숨이 막히도록 가슴 아픈 연기로 보는 즉시로 보호 본능과 연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연기다.
1940년 6월. 나치의 프랑스 침공을 피해 파리로부터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5세난 폴렛과 소녀의 애견 족크 그리고 폴렛의 부모(실제 포시의 부모)가 나치 공군의 공습(이 장면이 마치 기록영화를 찍듯이 사실감 있다)을 받고 폴렛만 살아남는다.
졸지에 고아가 된 폴렛은 피난민이 강에 집어 던진 족크를 찾으러 난민들을 떠났다가 동네 농부 돌레(뤼시앙 위베르)의 11세난 막내아들 미셸(조르지 푸졸리)을 만나 미셸의 집으로 함께 간다. 미셸의 가족은 폴렛을 따뜻이 맞아들이며 위로하고 돌보면서 폴렛은 이 집의 한 가족처럼 지낸다. 그리고 미셸과 폴렛은 떨어져선 못살 오빠와 동생처럼 짙은 정으로 맺어진다.
한편 돌레 가족과 바로 이웃의 구아르 가족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다투는데 클레망 감독은 이 두 가족의 이런 어리석은 다툼과 증오를 통해 어린 미셸과 폴렛과는 다른 다 큰 인간의 기만적인 가치관을 코믹하게 조롱하고 있다.
미셸과 폴렛은 족크를 버려진 물방앗간 안에 묻는데 폴렛이 족크가 외로울 것을 걱정하자 미셸은 방앗간 안에 둘만이 아는 무덤을 만들어 죽은 두더지와 곤충과 병아리와 쥐들을 묻어 족크가 외롭지 않게 하겠다고 폴렛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무덤을 십자가와 꽃들로 장식하겠다고 약속한다.
이 때부터 미셸은 무덤에 꽂을 십자가들을 훔치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말에 채여 죽은 자기 맏형 조르지의 관을 나르는 영구마차에 장식된 십자가를 훔친다. 미셸은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하자마자 성당 제단에 있는 십자가까지 훔치다가 신부에게 걸려 혼이 난다.
그런데 방앗간 안의 무덤이 늘어나면서 거기에 꽂을 십자가가 모자라자 미셸과 폴렛은 조르지의 것을 비롯해 성당 옆 공동묘지에 있는 십자가들을 대량으로 훔쳐 손수레에 싣고 자기들만의 묘지로 이송한다. 이 같은 두 아이의 십자가 도둑질이 ‘금지된 장난’인데 클레망은 자기가 가장 앞세워 내 놓은 금지된 장난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자기 아들 조르지의 것을 비롯해 공동묘지의 십자가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돌레는 신부로부터 십자가 도둑이 미셸이라는 말을 듣고 미셸을 마구 두들겨 패면서 십자가들의 행방을 다그치나 미셸은 결사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 때 프랑스 경찰이 폴렛을 고아원에 보내기 위해 돌레 집을 찾아온다. 안 가겠다고 우는 폴렛과 떨어지기 싫은 미셸은 아버지에게 십자가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폴렛을 보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돌레가 이에 응하자 미셸은 아버지에게 십자가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 그런데 아버지가 약속을 안 지키고 폴렛을 경찰에 넘기자 미셸은 묘지로 달려가 십자가들을 모두 파괴한다.
인파로 붐비는 기차역. 불안과 슬픔에 젖은 눈동자를 한 폴렛은 역사에 앉아 수녀원의 고아원으로 자기를 데려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 누군가가 “미셸”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폴렛은 벌떡 일어나 “미셸”하고 부르나 그 미셸은 다른 남자의 이름. 폴렛이 계속해 “미셸”을 찾으면서 역 안의 인파를 헤집고 뛰어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서서히 공중으로 오르면서 찍은 마지막 장면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다분히 감상적이 될 수 있는 내용인데도 철저히 감상성을 배제하고 연기를 비롯해 모든 것을 자연적으로 그린 것이 이 영화를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남게 만든 요인이다. 베니스 영화제 대상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 영화는 인간의 잔인성과 어리석음과 공포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강력하고 도전적으로 기소한 작품으로 기타로 연주되는 유일한 음악인 나르시소 예페스의 ‘로망스’가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 빅히트했고 한국에서도 왕년에 큰 인기를 모았었다.
클레망은 폴렛 역을 위해 니스에서 수백명의 소녀들을 테스트 했는데 우연히 그 때 칸에서 아주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내던 5세난 포시(1947년생)를 발견했다. 클레망은 처음에는 포시가 폴렛의 역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쓰기를 주저했으나 곧 이어 포시의 지능과 섬세한 감정적 성분에 감동,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클레망은 세세한 것에까지 주도면밀하고 사실적으로 충실하기 위해 진력했는데 특히 시각적 면에 신경을 많이 써 실내장면의 빛을 만들 때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미어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냈다고 한다.
‘금지된 장난’이 새 번역과 자막과 함께 디지털로 만들어져 28일부터 9월3일까지 뉴아트극장(11272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상영시간 86분. 310-281-8223.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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