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4월 26일 일요일

‘에피 그레이’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




“함께 일한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록 허드슨”

150여편 영화 출연…‘표범’ ‘8 ½’ ‘부베의 여인’ 애착

브리짓 바르도와는 라이벌 아닌 아주 친했던 사이


1960년대 전성기에 BB로 불린 프랑스의 육체파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C라 불리면서 전 세계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왕년의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77)와의 인터뷰가 지난 3월30일 뉴욕의 레파드 식당에서 있었다. 육감적이던 얼굴이 전연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카르디나레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을 다시 한 번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르디나레는 그런 세월을 무시나 하듯이 매우 정력적이요 쾌활하고 유머가 많았다. 튜니지아 태생인 카르디나레는 특유의 저음에 다소 서툰 영어로 질문에 간단하면서도 위트 있게 대답했는데 록 허드슨과 케리 그랜트 등 과거 자기와 공연한 스타들의 얘기를 할 때는 그리움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카르디나레는 주제가‘시노 메 모로’로 유명한‘형사’와‘부베의 여인’ 및‘가방을 든 여자’로 올드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카르디나레는 최근 개봉된 19세기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과 19세 때 결혼, 불행한 삶을 산 꿈 많은 에피 그레이의 실화를 그린‘에피 그레이’(Effie Gray)에서 베니스의 귀부인으로 나온다.  

―당신의 영화들은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었다. 특히 한국 여자들은 당신과 조지 차키리스가 공연한 ‘부베의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 영화와 차키리스에 대한 좋은 추억이라도 있는지.
“그것은 정말로 멋있는 영화였다. 지난 번 내가 LA에 들렀을 때 차키리스가 날 기다려 만났다. 그리고 내게 선물을 듬뿍 주었다. 그 영화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다음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가 되려는 젊은 배우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겠는가.
“모르겠다. 난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으니까. 감독 등 영화인들이 나를 못 살도록 조르는 바람에 배우가 된 것이다. 그들은 마치 연인을 쫓아다니듯이 날 쫓아다녔다.” 

―당신은 맹렬 여권운동가인데 그것이 영화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다고 보는가.
“난 여권신장을 위한 유네스코 대사다. 난 그것을 위해 늘 싸우고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나라에선 남자들이 왕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늘 그런 남자들에 맞서 싸웠다.” 

―남자와 사랑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인가.
“내가 결코 결혼 안한 것 보면 짐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겐 딱 한 명의 중요한 남자가 있는데 그는 내 딸의 아버지인 나폴리 태생의 영화감독 파스쿠알레 스퀴티에리이다. 영화들을 찍을 때 많은 남자들이 내게 구애를 했지만 다 ‘노’했다.”

―영화 ‘표범’에 대해 말해 달라.
“참으로 훌륭한 영화였다. 처음 영화에 버트 랭카스터가 나온다고 하자 사람들이 ‘아니 그는 카우보이인데 이런 시대극을 해낼 수가 없을 걸’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는 멋있게 해냈다. 그 후 랭카스터와 난 절친한 사이가 됐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가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인‘부베의 여인’. 왼쪽은 공연한 조지 차키리스.

―영화 선택을 어떻게 하나.
“감독과 각본이 우선이다. 각본이 나쁘면 출연을 거절한다. 그리고 세트에선 감독이 제일 중요하다. 좌우단간에 나는 남들은 다 은퇴했지만 77세에도 일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 지금까지 150여편의 영화에 나왔다.”

―돌아보건 데 당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고쳐 보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지.
“인생은 단 한번 뿐인데 고치긴 뭘 고치는가.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직업은 안으로 심지가 굳어야 해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조차 모르게 된다. 카메라 앞의 나는 허상으로 촬영이 끝나면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가.
“엄마라는 것은 참 멋있다. 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지금 내 딸과 아들은 다 혼자 살고 있다. 우린 서로 아주 가깝다.”

―당신에게 있어 성공과 명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이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난 거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산책하고 신문을 사서 읽고 바디가드도 없다.”

―명성 중에 가장 즐길 만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랍 사람이어서 날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형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그것을 싫어하고 하지도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나더러 ‘넌 늘 하하하 하고 웃기 때문에 주름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을 것 아닌가.”                    

―당신은 BB라 불린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C라 불리며 그로부터 가장 섹시한 여배우의 왕관을 빼앗았는데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
“파파라치들이 우리를 놓고 금발 대 검은 갈색머리의 대결이라고 부추기면서 우리가 서로 죽이기라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할리웃에서의 재미있는 경험은 무엇인지.
“난 늘 바디가드 없이 혼자 걸어 다녔는데 경찰들은 날 보면 늘 세운 뒤 ‘왜 바디가드가 없느냐’고 묻곤 했다. 그 때마다 내 대답은 ‘난 바디가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신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누구인지.
“난 많은 아름다운 남자와 일을 해서 고르기가 쉽지는 않지만 록 허드슨이라고 해야겠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였다. 당시엔 동성애자는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땐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 때 동성애는 배우에겐 독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요 통신이다.”

―지금 어디서 사나.
“파리다. 31년째 살고 있다.” 

―딸이 혹시 당신의 전철을 밟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런 제의가 있었지만 딸은 싫단다. 굉장히 예쁘다. 한 번은 LA에서 딸에게 잔 다르크 역이 주어졌는데 딸은 거절했다.”

―요즘 애인이 있나.
“내게 남자란 단 하나 내 딸의 아버지다. 그러나 난 늘 혼자 살고 있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는가.
“우연이다. 튜니지아에서 미인대회가 있었는데 그 때 행사 관계자 한 남자가 거기에 있던 나를 무조건 잡아끌어 무대에 내보냈다. 그리곤 당선 부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보냈다. 거기서 비키니를 입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을 떨더라. 그 때 비키니 처음 입어 봤다. 이어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이 영화 출연을 제의했지만 난 ‘노’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거절한 여자’라는 제목의 나에 관한 기사를 일고 깜짝 놀랐다. 그 후 영화 관계자들이 내 아버지에게 전보를 수 없이 보내 날 배우로 내보내라고 독촉을 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갑자기 로마의 촬영 실험센터에 등록을 하게 된 것이다. 난 성질이 있어 주위 사람들이 다 날 싫어했다.”

―그 때 영화인들이 당신의 섹시한 음성을 싫어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이탈리아 말을 못하는데다가 음성까지 남자 것 같아서 싫어했다. 내 얼굴을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날 남자로 착각했다.”        

―누구의 옷을 입나요. 또 장신구들을 좋아하나. 
“늘 아르마니다. 장신구들을 좋아한다.”

―당신의 가슴에 아주 가깝게 느끼는 영화들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두 영화는 비스콘티의 ‘표범’과 펠리니의 ‘8 ½’이다. 그리고 ‘가방을 든 여인’과 ‘부베의 여인’이다.”

―할리웃에서의 경험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존 웨인이 주연한 ‘서커스 월드’를 찍을 때 리타 헤이워드가 내 캠퍼를 찾아와 내 얼굴을 보더니 울기를 시작하더라. 난 영문을 몰랐다. 이어 그는 나보고 ‘나도 한 때 아름다웠지’라고 했다. 그는 그 때도 아름다웠는데도 과거의 자기가 더 아름다웠다고 여긴 것 같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워터 디바이너 (The Water Diviner)


아버지 조슈아(러셀 크로우)와 다정한 때를 보내고 있는 조슈아의 장남 아서(라이언 코·왼쪽).

돌아오지 않는 세 아들 찾아 전쟁터로


러셀 크로우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주연도 겸한 전쟁과 가족애에 관한 멜로드라마로 구식 스타일의 영화다. 크로우는 마치 ‘의사 지바고’와도 같은 자신의 야심적인 서사 전쟁액션 로맨스 드라마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깊이가 모자라는 평범한 오락물이 되고 말았다.
그는 방대한 스케일 속에 감정적이고 내밀하며 또 아주 가깝고 사소하고 작은 것들까지 섞어 넣어 고루 균형을 갖춘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그것들이 썩 잘 배합이 되질 못했다. 내용이 우연이 많고 감정적으로 자연스럽다기보다 조작적인 흔적이 역력한데 특히 그와 올가 쿠리렌코(본드 걸)와의 억지춘향 같은 로맨스 장면은 보기에 낯간지럽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지나치게 전쟁액션이 많은 점이다. 이런 대규모의 액션은 영화의 드라마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를 저해하면서 작품의 흐름과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 그러나 촬영과 실화에 바탕을 둔 흥미 있는 내용 또 크로우의 진지한 뜻이 엿보이는 볼만한 작품이다.
갈리폴리 전투에 관한 얘기여서 호주의 피터 위어가 감독하고 새파랗게 젊은 멜 깁슨이 주연한 ‘갈리폴리’(명작으로 보기를 권한다)가 생각날 것이다. 제목은 나뭇가지나 철사를 이용해  광야의 지하수를 찾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호주의 농부 조슈아 코너(크로우)는 1차 대전이 끝난 뒤 4년이 됐는데도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던 세 아들이 귀국하지 않자 아들들이 사망한 것으로 체념한다. 그런데 조슈아의 아내 일라이자(재클린 매켄지)가 슬픔을 못 견뎌 자살하면서 조슈아는 보따리를 싸들고 터키로 아들들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간다.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조슈아는 호텔 유객행위를 하는 꼬마 오르한(딜란 지오지아데스-호주 배우)에 이끌려 오르한의 전쟁미망인인 어머니 아이셰(쿠리렌코)와 아이셰와의 결혼을 기다리는 삼촌 오메르(스티브 바스토니-판에 박은 역이다)가 경영하는 호텔에 묵는다. 조슈아와 아이셰 간에 어떤 감정이 솟아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그리고 조슈아는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인 갈리폴리 전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그는 터키군 소령 하산(일마즈 에르도간)과 그의 하사관 제말(셈 일마즈)의 도움을 받으며 전사자들의 유해발국 작업을 지휘하는 영국군 장교 휴즈(자이 코트니)의 배려로 차남과 삼남의 유골을 찾아낸다. 조슈아는 유골을 물을 찾는 철사를 사용해 찾아낸다.
마음 좋은 하산이 조슈아의 장남 아서(라이언 코)가 터키군의 포로가 됐다는 정보를 조슈아에게 주면서 조슈아는 하산과 제말과 함께 아서를 찾으러 가다가 터키를 침공한 그리스군의 포로가 된다. 전투와 탈출과 도주의 통속적인 액션이 다른 영화에서 빌려온 것처럼 전체 얘기에 잘 어울리질 않는다.  크로우는 묵직한 것이 보기 좋으나 에르도간을 제외한 쿠리렌코 등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간신히 합격점이다. 촬영은 아주 좋다.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애들라인의 나이 (The Age of Adline)


엘리스(왼쪽)가 애들라인을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벼락 맞은 뒤 영원히 20대 미모로...


20대 미녀가 벼락을 맞은 뒤 늙지를 않고 그대로 있다는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영화에선 못할 소리가 없기 때문에 이 공상과학과도 같은 로맨스 영화도 보고 즐길 만하다. 특히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주인공 애드라인 역의 블레이크 라이블리(27)의 우아한 아름다움만 봐도 족하다. 배우 라이언 레널즈의 부인은 라이블리는 그녀가 결혼하기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반해 구애 끝에 몇 달간 데이트를 했으나 헤어졌다.
현재 상영 중인 ‘롱게스트 라이드’의 원작을 쓴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을 닮은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우여곡절도 많은 사랑의 얘기로 영화는 현재의 신년 전날에 시작해 과거로 돌아가면서 내레이션으로 서술된다.
1908년 북가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애들라인(라이블리)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이어 미망인이 된다. 1935년 겨울 밤 애들라인이 몰던 차가 사고가 나고 차 위로 번개가 떨어지면서  애들라인은 영원히 늙지 않는 여자가 된다. 
그래서 영원한 20대가 된 애들라인은 이 같은 저주(?)를 혼자 간직하기 위해 수시로 거처를 옮기면서 자기 신원도 바꾼다. 물론 연애도 안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여자에게 그게 어디 그렇게 오래 갈 일인가. 애들라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 나이인 그의 딸 플레밍(엘렌 버스틴·82).
애들라인은 엘리베이터에 건장하고 잘 생긴 자선가 엘리스(홀랜드 태생의 배우 미힐 후이스만)와 단 둘이 탔다가 엘리스의 구애를 받게 된다. 처음에는 이를 거절하던 애들라인과 엘리스는 결국 뜨거운 정사를 나눈다. 물론 애들라인은 자기 비밀을 깊이 간직한다.
엘리스가 애들라인을 자기 부모(해리슨 포드와 캐시 베이커)에게 소개하겠다며 자기 집에 데리고 가는데 아이구머니나 가만히 보니 엘리스의 아버지가 애들라인이 자기 비밀 때문에 버린 옛 애인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애들라인은 자기 애인의 아버지와 옛 날에 동침한 것이다.   
철저히 환상이자 동화 같은 얘기로 믿거나 말거나 식인데 후이스만은 잘 생기긴 했지만 로맨스 배우론 잘 어울리지가 않는다. 따라서 그와 라이블리와의 화학작용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포드도 자기 역이 어색하다는 듯이 우물쭈물하고 있다. 환상적 로맨스 영화답게 컬러와 촬영이 몽환적이요 꿀빛이다. 라이블리가 의상을 계속해 갈아입으면서 무슨 패션쇼를 하는 것 같다. 데이트용 영화다. 리 톨랜드 크리거 감독. PG-13.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이츠 모텔’




마마보이 노만 베이츠가 “마더 마더”하며 식칼로 샤워를 하던 매리온 크레인을 난자해 살해하고 막 돌아온 어머니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노만의 언덕 위의 집은 늦은 하오의 후광을 받으며 음흉하게 서 있었다. 히치콕의 걸작 공포스릴러 ‘사이코’(Psycho·1960)에서 노만이 자기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2층짜리 이 집은 언덕 아래 베이츠 모텔을 경영하는 두 사람의 거처로 히치콕이 1959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이 영화를 찍을 때 쓴 세트다.
나는 칠흑 같은 밤에 노만이 실루엣을 그리며 서 있던 모텔과 집을 연결하는 계단에서 노만의 흉내를 내면서 얼른 사진 한 장을 찍었다(사진). 아직 낮인데도 몸에서 한기가 흐른다.
A&E TV가 현재 방영중인 ‘사이코’의 전편격인 시리즈 ‘베이츠 모텔’(Bates Motel)을 위한 리셉션이 며칠 전 모텔 앞 마당에서 열렸다. 먼저 ‘Office’라는 빨간 네온사인이 걸린 모텔 사무실에 들어갔다. 
벽에 걸린 텅 빈 모텔 방들의 열쇄와 테이블에 놓인 숙박부를 보자니 비쩍 마른 키다리 노만(앤소니 퍼킨스)이 거액의 현찰을 훔쳐 도주 중인 부동산회사의 여사원 매리온 크레인(재넷 리)을 테이블 뒤에서 호기심이 가득 찬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서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매리온이 여장을 푼 사무실 바로 옆의 1호실 침대 위에는 노만의 어머니가 매리온을 살해한 식칼이 놓여 있다. 그런데 매리온이 수십 차례의 칼질에 비명과 함께 욕조에 쓰러지면서 붙잡고 늘어지던 샤워 커튼이 안 보인다. 노만은 어머니가 죽인 매리온을 이 샤워 커튼에 싸 자기 차 포드의 트렁크에 넣은 뒤 모텔 근처의 늪에 빠뜨렸는데 이 범행에 쓴 포드가 모텔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이 차 트렁크에 매리온의 사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어 나는 2층의 자기 침실 창 앞 흔들의자에 앉아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노만의 어머니를 만나 보려고 집 뒷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은 노만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다가가보니 어머니는 몸의 모든 살이 제거된 해골이었다. 텅 빈 검은 동공과 흉한 이빨을 드러낸 채 몸을 흔들거리는 모습에 “아악”하고 절로 비명이 나왔다.  ‘베이츠 모텔’은 남편이 사망한 뒤 10대인 아들 노만(프레디 하이모어)과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하려고 오리건주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모텔을 사 이주한 노마(베라 파미가)의 모자간의 이야기로 현재 시즌 3가 방영중이다. 밴쿠버 교외의 알더그로브에서 촬영한 시리즈는 어머니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노만이 시리얼 킬러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파미가가 모텔 앞에서 방문객들을 미소로 맞았다. 우아하게 아름다운 파미가(‘업 인 디 에어’)는 연기파로 시리즈에서도 하이모어와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히치콕의 ‘사이코’는 이 영화 이전까지 있던 스릴러의 틀을 완전히 깨어놓은 대담하고 가차 없는 영화로 소위 ‘슬래셔 무비’(난도질해 사람을 살해하는 영화로 존 카펜터 감독의 ‘핼로윈’이 그 대표적 작품)의 효시로 대접 받고 있다. 위스콘신주의 변태살인자 에드 게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로버트 블락의 소설이 영화의 원전이다.
이 영화는 변태적이요 폭력적이며 냉소적이고 또 음탕한데 가장 유명한 장면이 매리온의 ‘샤워 신’이다. 매리온은 모텔 방에서 샤워를 하다가 아들이 이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데 분노한 노만의 어머니가 휘두르는 식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욕조에 쓰러져 비명횡사한다.
이 소름끼치는 장면은 특히 히치콕 영화의 음악을 여러 곡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기분 나쁘게 신경을 거스르는 음악 때문에 공포 분위기가 더욱 가증된다. 바이얼린과 비올라와 첼로 등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음악은 마치 한 많은 처녀귀신들이 집단으로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아 듣노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히치콕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까닭은 매리온이 흘리는 피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매리온이 흘리는 피로는 초컬릿 시럽을 썼고 노만의 어머니가 휘두르는 식칼이 내는 바람소리는 칼로 멜론의 살을 찔러 나오는 소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매리온이 지르는 비명은 세 여자의 비명을 조합해 만들었다.
당시 수퍼스타였던 재넷 리를 영화의 제1막 끝에 가서 죽여 없앤 것도 획기적인 일이며 매리온이 찢은 노트북의 조각을 변기에 넣고 물로 씻어내는 장면 또한 할리웃 영화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히치콕은 영화를 완벽하게 즐기도록 하기 위해 영화 중간에 관객이 극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나도 고등학생 때 지금은 없어진 중앙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시간 훨씬 전에 극장 앞에서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그 때 영화를 보면서 경악하고 감탄하던 내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이코’는 그 뒤 3편의 속편이 나왔고 브라이언 디 팔마 등 여러 명의 감독들이 영화의 장면을 흉내 내면서 히치콕을 치하했는데 박찬욱의 ‘스토커’(Stoker)도 그 중 하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19일 일요일

‘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크리스 에반스·크리스 헴스워드




“고교 여름캠핑처럼 촬영은 장난·재미 가득”


5월1일에 개봉되는 마블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올스타 캐스트의 액션 모험영화‘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Avengers: Age of Ultron)에서 각기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로 나오는 크리스 에반스(34·오른쪽)와 크리스 헴스워드(31)와의 공동 인터뷰가 11일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있었다.모두 미남으로 건장한 체격을 지닌 에반스와 헴스워드는 인터뷰 시간 동안 시종일관 서로 이름이 같은 것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으며 신이 난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특히 전형적인 미국 미남의 얼굴을 한 에반스가 더 장난이 심했는데 옆에 앉은 헴스워드를 놀려가면서 큰 소리와 제스처를 동원, 질문에 대답했다. 이 영화의 일부를 서울서 찍어 에반스는 한국을 방문해 머물렀는데 인터뷰에서“정말로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서울 방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영화 홍보 차 다시 서울 방문을 위해 15일 출국했는데 기자가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서울을 즐기도록 하라”고 말하자“그러겠다”며 큰 미소를 지었다.           

-왜 이 영화가 그렇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에반스-(헴스워드를 가리키며)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가 나와서다.”
*헴스워드-“캡틴 아메리카가 있기 때문이다. 얘기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웅과 정의와 불의 등 여러 가지 얘기를 지닌 현실을 가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본다. 나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팬들처럼 흥분하게 된다.”

-(에반스에게) 당신은 영화 촬영차 한국을 방문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당신네들 정말로 대단하더라. 공항에서의 환영인파에 진짜로 놀랐다. 어디를 가도 환영일색이었고 팬들도 열광해 참으로 좋았다. 난 이미 봉준호 감독과도 ‘설국열차’에서 함께 일을 해 한국은 반가운 곳이다. 그리고 한국 영화인과 함께 일하는 것에도 마음 설레고 있다. 따라서 자기 작품에 대해 열광하는 곳에 도착한다는 것은 언제나 고무적이며 바로 그것이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보답이다. 난 이번 주 안에 서울에 간다.”

-(헴스워드에게) 토르의 힘은 그의 망치에서 오는데 실제로 당신 자신이 힘은 어디서 오는가.
“힘의 능력은 그 안에 있는 것에서 온다. 내 힘이 어디서 오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러 다른 것에 대한 다른 동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나의 동기는 내 삶이었다. 그리고 이젠 내 가족 특히 내 아이들이다. 그들이 나의 힘이요 가장 강한 동기다.”

-어머니날이 곧 다가오는데 어린 아이들을 셋이나 키우느라 수고가 많은 아내에게 무엇을 해주겠는가.
*헴스워드-“아이들은 엄마에게 아침을 만들어 대접할 것이고 난 나대로 멋있고 특별한 대접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은 아이들이 울지 않게 돌보겠다. 그런데 어머니날은 전 세계적으로 같은 날인가 아니면 각기 다른 날인가.”              
‘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의 캠튼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왼쪽)와 토르(크리스 헴스워드).

-이 영화는 전편보다 유머가 많은데 특히 당신 두 사람의 역이 유머가 남달리 많다. 즉흥적인 것이라도 있는가.
*헴스워드-“각본에 따른 것이다. 그 각본은 영화의 성경과도 같아서 난 내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제작 초창기에 조스 웨던 감독과 토르를 보다 유머러스하게 만들자고 논의는 했다. 왕처럼 뻣뻣한 신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신으로 만들자고 했다. 팬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에반스-“신인 헴스워드는 엄숙하게 말을 해야 해 유머를 구사하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 그의 대사가 내 것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다. 난 그것을 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헴스워드는 그런 대사를 아주 우습게 잘 처리했다. 이 차이가 바로 내가 헴스워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곧 있을 세계적 권투경기인 필리핀의 매니 파퀴아오 대 미국의 플로이드 메이웨더의 시합을 보겠는가.
*(둘이 모두)“물론이다.”
*헴스워드-“난 파퀴아오에게 걸겠다. 난 파퀴아오의 힘과 컨디션 코치인 저스틴 포천으로부터 훈련을 조금 받았다. 난 두 사람 모두의 팬이지만 파퀴아오가 이기기를 바란다.”
*에반스-“난 메이웨더에게 걸겠지만 막상막하의 경기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신들이 초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적을 무찌르는 얘기인데 당신들은 최신기술에 얼마나 익숙한가.
*헴스워드-“난 트위터도 남이 써 준다.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것이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다가도 세상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아니면 뒤처지게 마련이다. 그런 것이 두려워도 미래는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들이 나올 것이기에 그에 관한 지식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에반스-“나도 트위터는 요즘에야 알았다. 처음에는 그것을 안 쓰려고 하다가 2년 전에야 시작했다. 헴스워드 말이 맞다. 뒤처질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부모님께 온라인 사용법을 가르쳐 드린 기억이 나는데 아마 후에 내 아이들도 내가 새 기술을 몰라 당황해 하면 웃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새 기술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없으면 못 살 것이 무엇인가.
*에반스-“커피다.”
*헴스워드-“크리스 에반스다.”

-보통 때 날을 어떻게 보내는가.
*헴스워드-“영화에 나올 때와 안 나올 때가 서로 다르지만 아이들 때문에 새벽 5시에 깬다. 그리곤 소란을 떨면서 장난들을 치기 때문에 나도 일어나야 한다. 아이들은 보통 오후 8시에 자는데 난 그 때 한 30분간 TV를 본 후 취침한다.”
*에반스-“난 새벽 5시나 돼야 취침하는데.”

-당신들은 마블만화를 원전으로 한 영화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는데 소감이 어떤가.
*에반스-“마블은 우리 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문들이 열렸다. 연기란 뜨거웠다 차가워졌다 하는 것으로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 항해하기가 까다로운 뱃길이다. 그러나 우린 예술가요 창조자들로서 계속해 창조하기를 원하고 또 그것이 지속되길 바란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개인에게 달렸다. 현재에 만족해 계속해 비슷한 작품을 만드는 것과 새 길을 개척하는 것은 개인에게 달렸다. 그것은 어느 정도 도박이다. 그러나 마블이 없었다면 선택의 여지도 좁았을 것이다. 그 선택을 미래의 기회에 어떻게 투자하는가는 개인 문제다.”
*헴스워드-“마블영화에 나왔다고 해서 직업보장이 됐다고 느낀 적은 없다. 이런 영화에 나오다 보면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되지, 속편이 끝나면 나도 끝인가’하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난 이런 생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자신을 계속해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간의 불확실은 나쁜 것이 아니며 공포란 아주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당신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아이들 장난 같은데 재미있나 아니면 어려운가.
*헴스워드-“무지무지하게 재미있었다. 우리들은 세트에서 마치 고등학생들처럼 웃고 난리법석을 떨며 즐겨 감독으로부터 장난 그만치고 작품에 신경 쓰라는 말까지 여러 번 들었다.”
*에반스-“재미 만점이었다. 재미를 못 느낀다면 왜 영화에 나오는가. 이 영화는 수퍼히로의 영화로 우리 역은 다 초인적인 것이다. 따라서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여름캠핑 같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가.
*에반스-“나의 부모는 나보고 누구도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내가 보스턴에서 LA로 거처를 옮기자 나의 어머니는 내게 절대로 누구도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어머니는 내가 사람 잡는 날사기꾼들의 동네로 갔다고 믿고 가족 외에는 아무 것도 또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처음 LA에 왔을 때 신경을 바짝 세우고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LA에도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헴스워드-“난 그 정반대다. 내가 호주에서 이곳에 왔을 때 나의 부모는 무엇이든지 하라고 조언했다. 네 몸도 팔고 영혼도 팔라고 조언했다. 우린 배가 고프고 먹어야 하니 무슨 짓이라도 다 하라고 했다. 그리고 즐기라고 충고했다.”

-아이들로 인해 당신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
*헴스워드-“여러 가지로 변했다. 일을 하는데 이유와 함께 새 초점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해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과거에는 주로 나에 대해서만 내 내면과 대화를 나눴는데 이젠 아이들을 어떻게 돕고 또 그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몰두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리고 난 아이들로 인해 보다 좋은 사람이 되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탠저린 (Tangerines)


이보(왼쪽)와 마구스는 전화 속에서도 탠저린을 수확하기 위해 집을 안 떠난다.

전쟁은 어리석지? 조용히 타이르는 인간애


유혈 폭력의 전쟁의 무모함을 조용하게 설득시키는 평화롭고 감동적인 작은 반전영화로 올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에스토니아 영화다. 증오와 살육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와 함께 지역과 종교와 인종의 차이를 초월하는 인본주의를 진지하면서도 때로 우습게 그린 인자한 영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아름다운 마을을 배경으로 전투가 벌어져 그 참상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데 이런 살벌한 상황 안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인간성을 과묵하고 자비롭게 보여주는 주인공인 베테런 렘비트 울프삭의 연기가 작품을 견실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1992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러시아의 소치에서 불과 5마일밖에 안 떨어진 아브카지아. 소련 공산체제가 무너진 뒤 독립한 국가들의 인종전쟁 중의 하나로 조지아와 아브카지아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소련체제가 붕괴하고 인종전쟁이 일어나면서 아브카지아에 살던 에스토니아인들은 대량으로 옛 조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목수 노인 이보(렘비트 울프삭)와 이웃인 마구스(엘모 누가넨)는 탠저린을 수확하기 위해 집을 지킨다. 이들은 전화가 바로 자기들 집 문밖에 이르렀지만 결코 평정을 잃지 않고 탠저린 수확에 정성을 쏟는다. 
마침내 전투가 두 사람의 마당 앞에서 벌어지면서 서로가 원수지간인 체첸인 용병 아메드(기오르기 나카쉬제)와 조지아인인 니코(미하일 메스키)가 중상을 입고 이보 집 앞에 쓰러진다. 이보는 둘을 자기 집 안에 들여다 놓고 극진히 간호를 하는데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아메드와 니코는 몸만 나으면 서로 죽이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메드는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득득 가는데 니코도 이에 맞서 아메드에게 적의를 표하나 니코는 전쟁 전의 직업이 배우여서 용병인 아메드보다는 덜 호전적이다. 이 두 사람 간의 적의와 증오를 연민의 정과 함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면서 인자한 아버지처럼 그들을 돌보는 이보의 모습이 구세주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건강이 회복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집 식구처럼 된 둘 간의 적대감도 서서히 녹아들면서 내면에 깊이 잠재해 있던 인간성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총격전이 이 마을 덮치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 마지막 장면이 슬프면서도 속죄와 구원의 아름다움을 가슴 저며 들도록 숭고하게 그리고 있다. 
촬영이 매우 아름답고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울프삭의 전능한 연기가 돋보인다. 시적인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전쟁의 어리석음과 흉한 모습을 침묵적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본과 감독은 조지아인 자자 우루샤제. 성인용. Samuel Goldwyn.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선셋대로 (Sunset Boulevard·1950)


노바(글로리아 스완슨)가 조(윌리엄 홀든) 앞에서 자신의 무성영화를 찬탄하고 있다.

할리웃에 보내는 냉소… 빌리 와일더의 명작


환상과 미혹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또 그것들을 웃어 제친 명장 빌리 와일더의 잔인하도록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다. ‘할리웃의 과거요 현재며 미래’라고 불리는 이 영화는 로맨틱하고 우아했던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 이기도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수퍼스타 노마(글로리아 스완슨)의 총격을 받고 그녀의 선셋대로에 있는 저택 풀에 눈을 뜨고 엎드린 채 떠 있는 조(윌리엄 홀든)의 회상조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각본가로 성공하기 위해 할리웃에 온 조는 빈털터리로 페이먼트가 늦은 자동차를 회수하러 온 사람들을 피해 선셋대로로 내빼다가 노마의 집에 숨어든다. 
그리고 노마의 권유로 이 집에 머물게 된 조는 노마의 젊은 기둥서방이 된다. 노마는 과거의  영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아직도 자기가 수퍼스타라고 믿는 과대망상증자로 툭하면 자신의 무성영화를 틀어 놓고 자기도취에 빠진다. 그리고 “나는 커. 작아진 것은 영화들이야”라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러나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가 자기를 떠나려고 하자 노마는 자살을 기도한다. 이에 차마 노마를 못 버린 조가 결국 가방을 싸들고 노마의 집을 나가는 순간 그를 쫓아온 노마가 쏜 총에 맞아 조는 비명횡사하고 만다.
감독상 등 11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과 음악상(프란츠 왁스맨) 등 3개만 받았다. 영화에서 전율스럽도록 뛰어난 것은 스완슨의 연기. 9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그녀의 연기는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광기마저 서린 맹렬한 것이다. 그녀의 나이는 52세였다.
와일더는 현실성을 살리고 또 그것을 조롱하기 위해 무성영화 시대의 빅스타들과 연예인들을 실명으로 출연시켰고 영화 제작사인 패라마운트의 건물과 함께 실제 영화 촬영장면까지 삽입했다. 필견의 명작이다. 흑백. ★★★★★(5개 만점)

★에이스 인 더 호울 (Ace in the Hole·1952)

역시 빌리 와일더 감독의 명화로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매스컴을 맹렬히 비판한 드라마다. 대도시에서 뉴멕시코주의 깡촌으로 쫓겨난 기자가 좌절에 빠져 살다가 옛 인디언 유적이 있는 동굴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내용을 자기 입맛대로 쓰기 위해 부풀려 보도하면서 전 미국의 화제가 된다. 커크 더글러스의 불같은 연기가 볼만하다. 실화가 바탕이다. 흑백. 24일 하오 7시30분, Aero극장(1328 Montana Ave. 샌타모니카). 323-634-4878. 동시상영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운드 오브 뮤직’50주년



앞치마를 두른 단발의 마리아가 눈이 삼림욕을 하듯 시원해지는 알프스가 바라다 보이는 산언덕에 올라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몸을 한 바퀴 휙 돌리면서 “더 힐 이즈 얼라이브 위드 더 사운드 오브 뮤직” 하면서 노래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1965·사진)이 올해로 개봉 5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마리아 역의 줄리 앤드루스(79)는 공중에서 이 장면을 찍는 헬기 프로펠러의 바람에 여러 번 땅바닥에 쓸어져 입과 코에 흙과 풀이 들어가는 고초를 겪었어야 했다고 한다.
영화 제작사인 폭스는 영화의 개봉 50주년을 맞아 영화 특별판 DVD와 사운드트랙을 출반하고 기념책자 발간과 함께 여러 행사가 연중 열리는데 오는 9월부터 LA를 시작으로 무대 뮤지컬의 순회공연도 시작된다. 또 19일과 22일 이틀간 미 전국 500여개 극장에서는 이 영화를 재개봉한다.
‘오클라호마!’ ‘회전목마’ ‘왕과 나’ ‘남태평양’과 같은 걸작 뮤지컬을 만든 콤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II이 작곡하고 작사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59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토니상을 탄 무대 뮤지컬이 원작으로(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출한 명장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했다.
개봉이 되자 빅히트, 작품상 등 모두 5개의 오스카상을 받았는데 인플레를 감안할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스타워즈’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높은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다.
내용이 다소 달짝지근하긴 하나 이 영화는 세월과 세대를 너머 팬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온 가족용 올타임 페이보릿 뮤지컬이다. 앤드루스는 이에 대해 “곱고 감미로운 음악과 수려한 풍광 그리고 가족애와 로맨스 및 모험 등이 고루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무대는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나는 지난 2006년 아내와 함께 이 그림엽서와도 같은 도시를 방문, 영화에서 마리아와 그가 돌보는 홀아비 캡틴 본 트랩(크리스토퍼 플러머)의 7남매가 함께 즐겁게 뛰놀며 ‘도 레 미’를 부르던 미라벨 공원을 구경했었다. 영화 장면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었다.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영화의 시대배경은 1930년대 말. 인생을 즐겁게 사는 예비수녀 마리아가 16세난 맏딸 리슬(리슬은 ‘식스틴 고잉 온 세븐틴’하고 노래한다)에서부터 꼬마 막내까지 7남매를 혼자 키우는 냉정하고 독재적인 캡틴 본 트랩 집에 보모 겸 가정교사로 들어온다. 마리아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주눅이 든 아이들에게 삶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차가운 캡틴 본 트랩의 가슴도 녹여 그와 결혼해 모두가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대한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황홀무아 지경에 빠져 본 영화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 ‘모닝 힘’ ‘마리아’ ‘알렐루야’ ‘도 레 미’ ‘마이 페이보릿 딩즈’ ‘클라임 에브리 마운튼’ 및 ‘에델바이스’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줄줄이 이어 나온다. ‘에델바이스’하면 내겐 못 잊을 추억이 있다.
난 대학을 막 졸업하고 인천의 남중고에 부임,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었다. 꼬마들에게 공부시간에 교과서 외에도 음악과 영화와 책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었다. 그 때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노래가 ‘에델바이스’다.
칠판에 영어로 ‘Edelweiss Edelweiss every morning you greet me’라고 가사를 적은 뒤 내 선창에 따라 아이들이 교실이 떠나가라고 노래를 불렀었다. 이 노래는 가사와 곡조가 곱고 부르기도 쉬워 난 요즘도 가끔 이 노래를 혼자 부르곤 한다.
앤드루스가 영화에 나왔을 때는 나이가 채 30이 안 됐을 때로 마리아는 사람 좋고 성격이 쾌활한 그에게 딱 맞는 역이다. 그래서 앤드루스 하면 금방 떠오르는 모습이 마리아의 모습이다. 마리아는 겉으로는 양순해 보이나 속은 독립심 강한 여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신여성이었다. 고루하기 짝이 없는 귀족 캡틴 본 트랩도 결국 마리아의 이런 개혁정신에 굴복하고 만다.
소프라노 음성이 고운 앤드루스는 안타깝게도 1990년대 성대수술을 잘못 받아 더 이상 노래는 못 부른다. 그러나 몇 년 전 기자회견서 만난 앤드루스의 음성은 비교적 맑았다. 영화 ‘공주일기’와 ‘슈렉’(음성 연기) ‘투스 페어리’ 등에 나오면서 쉬지 않고 활동을 하는 그녀는 요즘 딸과 함께 아동서적을 여러 권 써내고 있다.
올 오스카 시상식 때 레이디 가가가 앤드루스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부른 노래들을 메들리로 불러 무대에 나와 긴 기립박수를 받은 앤드루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었다. 그런데 앤드루스와는 달리 플러머(85)는 자기 역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주위 사람들이 그를 ‘사운드 오브 뮤커스’(콧물)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마리아와 캡틴 본 트랩의 역에 각기 도리스 데이와 007 션 코너리가 고려됐었다는 후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13일 월요일

‘롱게스트 라이드’ 스캇 이스트우드




“황소 탔다 2초만에 내동댕이… 얼굴 밟힐뻔”

"관계맺기의 어려움 다룬 영화로 모두가 봐주길 기대
아버지는 나의 영웅… 늘 열심히 하라, 겸손하라 조언"


10일 개봉되는 젊은 로데오 불 라이더와 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과의 사랑을 그린‘롱게스트 라이드’(The Longest Ride)의 주인공 스캇 이스트우드(29)와의 인터뷰가 3월29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턱과 볼에 잔 수염을 한 스캇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로 키만 아버지보다 작았지 아버지를 쏙 빼다 닮았다. 손 제스처와 미소와 겸연쩍어할 때 얼굴에 홍조를 띠는 것까지 닮았는데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기자들이 여러 차례 아버지와 관련해 질문을 하자 지겹다는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스캇은 직업적으로 그런 질문에 겸손하고 유연하게 대했는데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면서 비교적 짧게 대답했다. 이 영화는 그의 빅 스크린 데뷔 작품. 스캇은 씩씩하고 쾌활한 사람으로 언젠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빅 스타가 되리라고 장담해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는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베스트 소설들로 역시 영화로 만들어진‘노트북’‘병 속의 편지’ 및‘디어 존’ 등을 쓴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현대판 웨스턴인데 당신과 웨스턴의 관계는 어떤지.
“나는 북가주에 있는 아버지의 큰 목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분위기에 익숙하다. 그래서 말 타기를 일찍부터 배웠다. 그러나 황소는 타보지 못했다. 이번에 타보니 아주 흥분되고 재미있었다.” 

-황소를 탄 뒤 배운 것은 무엇인가.         
“난 이번에 불 라이더들을 정말로 존경하게 됐다. 그들은 아주 강인한 사람들이나 막상 그들의 전성기에도 황소를 타고 오래 견디는 사람들은 전체의 절반 정도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현대미술을 보고 말똥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나의 현대미술에 관한 식견은 영화와 같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그것에 대해 좀 배우려고 한다.”

-이 영화를 웨스턴이라고 보는가.
“아니다. 러브스토리라고 본다.”

-아버지의 웨스턴 중 좋아하는 것은.
“‘언포기븐’으로 그 영화 이후 훌륭한 웨스턴이 나오질 않았다고 본다.”

-당신의 아버지는 웨스턴으로 유명한데 그 같은 평가를 어떻게 보는가.
“아버지는 35세 때 ‘황야의 무법자’에 나왔고 65세 때 ‘언포기븐’에 나왔다. 그 같은 진행이야 말로 남에게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아버지의 웨스턴을 생각했는가.
“아니다. 아버지의 웨스턴은 이 영화와 달리 다 옛날을 재현한 것이다. 난 아버지가 한 것을 결코 모방할 생각이 없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기는 그 밖에 해낼 사람이 없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자란 경험은 어땠는가.
“아버지는 구식 사람이어서 내가 혼자서 성장하도록 만들었다 대학도 내 힘으로 갔다. 난 바텐더도 했고 공사장에서도 일했고 또 파킹장 밸릿도 했다. 아버지는 내게 아무 것도 결코 공짜로 준 것이 없다. 아버지도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왜 LA를 떠나 살았는가.
루크와 소피아가 승마의 랑데뷔를 하고 있다.
“모두 날 ‘응, 저 아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이야’라며 날 본격적인 배우로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로맨틱한가.
“그런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는가.
“난 늘 영화를 정열적으로 사랑했다. 반드시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나 영화를 늘 사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내 가장 친한 두 친구가 해군 특공대에 들어간다고 해 나도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두 군데서 오디션이 있어 거기에 나온 뒤로 영화로 발길을 돌리게 됐다.”

-당신의 몸은 섹스심벌 감인데 언제부터 신체단련을 했는가.
“아버지가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면서 내가 15세 때부터 신체단련을 하도록 시켰다. 건강하고 활동적일수록 부정적인 생각을 우리 안으로부터 씻어낼 수가 있다. 난 섹스심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그것이 되려고 신체단련을 한 것도 아니다.”

-왜 과거엔 잠잠히 있다가 이 영화로 처음 홍보활동을 시작하는가.
“이 영화에 대해 진실로 자랑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배우활동을 했지만 나설 필요를 못 느꼈었다. 이 영화는 좋은 영화여서 사람들이 다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보활동이 편안한가.
“물론이다. 연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연기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것을 언제 알았는가.
“TNT 채널에서 방영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밤을 보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여자문제에 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 주었는가.
“강인한 남자가 진짜 남자라는 것은 틀렸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 진짜 남자는 상냥하고 또 여자에게 문을 열어줄 줄 아는 품위가 있는 남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당신의 데이트에 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주는가.
“독신인 아버지한테서 그런 조언 원치도 않는다.”                            

-어디 대학을 나왔는가.
“샌타바바라와 샌타모니카 시티칼리지를 나와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를 졸업했다.”

-아버지가 명성에 관해 어떤 조언이라도 해 주었는가.
“우린 둘이 마주 앉아 그런 얘기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너 자신을 지키면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겸손 하라는 것이었다. 결코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이 무엇인가.
“골프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나도 파일럿이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게 됐는가. 
“할리웃은 이상한 곳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이 그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운도 따라야겠다. 난 다만 이 영화가 성공해 내가 다른 훌륭한 영화에도 나오게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니콜라스 스팍스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 얘기는 보다 사실적이고 관계를 맺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솔직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전설로 나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가.
“신소리 안 하는 즉흥적이요 즐거운 여자다.”

-성을 바꿀 생각이라도 해 봤는가.
“아니다. 난 그저 머리를 숙인 채 지난 12년간 오디션에 나가고 영화에 안 나올 땐 남들처럼 일을 하면서 살았다. 내가 아버지의 성을 가진 내가 마음대로 어쩔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오디션 경험에 대해서 말해 달라.
“내 이름만 듣고 날 아예 보려고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땐 면접실에 밀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연어와 브라컬리다. 고기와 감자를 좋아한다면 아버지가 노발대발할 것이다.”

-어떻게 영화를 선택하는가.
“아버지처럼 각본과 감독에 따라서다.”

-황소 탔다가 다치기라도 했는가.
“탔다가 2초반 만에 내동댕이쳐졌다. 소가 내 얼굴을 밟아 뭉갤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나가 떨어졌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이었다.”

-여자를 놀라게 해줄 선물로 무엇을 고르겠는가.
“꽃이다. 여자들은 늘 꽃을 좋아하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영화에 대해 아버지와 논의하는가.
“물론이다. 아버지는 조언을 해 준다. 때문에 영화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면서 자신에게 좋은 역을 고르라고 말해준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나도 아버지처럼 구식이어서 블루스를 좋아한다. 텍스팅 별로 안 한다. 전화를 옆으로 치워 놓고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상에 적응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니 텍스팅도 어느 정도는 한다. 그리고 난 야외활동을 즐긴다. 서핑과 잠수와 낚시를 즐기고 무술인 지우지추도 한다. 내 친구들도 다 그런 것을 좋아한다.”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해 보라.
“참으로 멋있는 여자다. 세상에서 가장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전 생애를 남을 위해 기여하며 살고 있다. 명성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최고의 엄마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난 목이 막힌다. 어머니는 내게 결코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엑스 마시나 (Ex Machina)


케일렙과 AI 여인 에이바 및 에이바의 창조자 네이산(왼쪽부터)은 두뇌싸움을 벌인다.

미모의 여성로봇과 두 남자의 두뇌싸움


냉정하고 지적이며 긴장감 감도는 스타일 멋있는 인공지능(AI)에 관한 공상과학 영화로 달랑 세 명의 인물(그 중 하나는 로봇)이 단 하나의 세트인 집에서 일종의 두뇌싸움을 벌이는 드라마로 음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공상과학 실내악곡이라고 하겠다.
영국의 각본가 알렉스 갈랜드의 감독 데뷔작으로 연출 솜씨가 주도면밀하고 자신만만한데 글 솜씨가 고도로 사고적이며 영특하다. 서서히 보는 사람을 극중으로 유인하고 있는데 폐쇄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얘기가 누가 누구를 가지고 노는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워 노심초사케 만든다.
군더더기란 하나도 없는 이 영화는 일종의 프랑켄스타인의 얘기이기도 한데 인간이 신의 노릇을 하려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AI는 고도로 발달돼 호텔 종업원 노릇도 하고 의사의 수술도 돕는 세상이 됐는데 AI가 자기를 창조한 인간을 역습하는 것은 이미 ‘2001: 우주 오디세이’에서 ‘핼'(HAL)이 한 바 있다. 결코 꿈만 같은 일이 아니다.
구글 스타일의 컴퓨터회사의 너드형 프로그래머 케일렙(아일랜드 배우 돔날 글리슨)은 회사의 로토에 당첨돼 1주일간 산수경관이 아찔하게 아름다운 첩첩산중에 있는 회사 회장 네이산(오스카 아이작)의 별장에서의 휴가를 부상으로 받는다.
회장의 집은 지하에 있는데 유리창 없는 방과 복도를 비롯해 집안의 모든 것이 지극히 차갑도록 검소하고 초현대적이다. 네이산은 권투연습을 하다가 케일렙을 반갑게 맞는다. 다부진 체구의 네이산과 약골형인 케일렙이 대조적이다.
그런데 케일렙은 복권에 당첨된 것이 아니라 네이산에 의해 선택된 것. 이유는 네이산이 만든 인공지능을 지닌 여자 로봇 에이바(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더가 곱다)가 감정적으로 또 지적으로 인간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를 시험하는데 케일렙을 보조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이들 세 사람(?) 외에 이 집에 있는 사람(?)은 일본인 하녀 교코.
케일렙은 이에 따라 매일 같이 얼굴과 손과 발만 인체를 지녔고 나머지는 금속인 에이바를 인터뷰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같은 감정과 지능을 지닌 에이바는 은근히 케일렙을 유혹하고 또 네이산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케일렙은 아름다운 에이바를 사랑하게 된다. 둘의 인터뷰는 네이산에 의해 녹화된다.
케일렙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몰라 당황하면서 네이산의 편에 서야 할지 아니면 에이바의 편에 서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사랑하는 여인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영화 3막에 들어가면서 내용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허무할 정도로 가공스럽게 맺음을 한다.
활화산 같은 아이작의 연기와 가녀린 버들가지 같은 비칸더의 모습과 조용하고 섬세한 연기가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글리슨은 역에 잘 어울리질 않는다. 촬영과 음악과 세트가 모두 훌륭한 영화로 ‘스테포드의 부인들’을 연상케 한다. R. A24.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롱게스트 라이드 (The Longest Ride)


루크(스캇 이스트우드)와 소피아(브릿 로번슨)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희생과 난관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성격과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 젊은 남녀의 우여곡절이 많은 사랑과 관계의 로맨스 스토리로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스 스팍스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의 소설 ‘노트북’과 ‘디어 존’ 및 ‘로단테의 밤’ 등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져 히트를 했는데 손수건 없이는 못 볼 영화들로 이 영화도 소위 ‘칙 플릭’(여성용)이다. 데이트 무비인데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덜 감상적이요 사카린 맛도 덜 난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한다’라는 케케묵은 말이 중심 플롯으로 내용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현실이라기보다 동화라고 해야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과 찰리 채플린의 손녀 그리고 존 휴스턴의 손자 등 세 명의 할리웃 전설의 자손들이 나온다. 
노스캐롤라이나주(스팍스의 소설은 다 이 곳이 무대다)의 윈스턴-세일렘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미술전공 4년생 소피아(브릿 로벗슨)는 뉴욕의 유명 갤러리에 인턴 취업이 돼 새 생활 시작에 들떠 있다. 소피아는 동창이 조르는데 못 견뎌 불 라이딩 대회를 구경 갔다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될 늠름한 미남 청년 루크(스캇 이스트우드)를 만나게 된다.
1년 전 황소를 타다가 큰 부상을 입고 재기를 노리는 루크가 황소에서 떨어져 날아간 모자가 소피아의 무릎 위에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모든 것이 다른 두 남녀가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런데 구식인 루크는 죽어도 불 라이딩을 포기 못한다고 우기고 소피아는 뉴욕엘 가야 하니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얼마나 파고가 심한 파도를 타게 될 것인가.
둘이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비 오는 날 밤 둘은 자동차 사고로 실신한 91세난 아이라(앨란 앨다)를 구해 준다. 그리고 불타는 차 안에서 아이라의 편지가 가득 든 박스를 꺼낸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라를 찾아간 소피아에게 아이라가 박스 안의 자기가 옛날에 아내 루스에게 쓴 편지들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영화는 아이라의 과거로 돌아간다.
편지들은 1940년 나치를 피해 비엔나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이주한 루스(우나 채플린)와 수줍음 많은 아이라(잭 휴스턴)의 사랑과 우여곡 절이 많은 관계를 들려주는데 이런 둘의 사랑의 관계가 소피아와 루크의 그것과 병행돼 묘사된다.
소피아가 뉴욕으로 떠날 날이 가까워 오면서 두 청춘 남녀는 다투고 울고불고 하는데 과연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것인지. 소피아와 루크의 사랑에 걸림돌을 놓으려고 얘기가 다소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그것은 스팍스 영화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카메라가 부단히 스캇의 떡 벌어진 드러난 상반신과 얼굴을 포착하느라고 정신을 못 차리는데 그와 브릿과의 콤비가 잘 맞고 연기도 괜찮다. 조지 틸맨, 주니어 감독. PG-13. Fox. 전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의사 지바고’




6순이 넘는 나이에 오는 18일 새 장가를 드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부회장으로 이탈리안인 로렌조 소리아가 얼마 전 이메일로 청첩장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너의 나라에서는 간통을 법으로 처벌하지 않으니 썩 괜찮은 나라로구나.”
이는 물론 최근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간통을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농담이다. 나는 로렌조의 글에 대해 “그래, 이제야 우리나라는 문화 선진국이 됐다”라고 답신했다.
간통은 성인 남녀 간 합의 하에 이뤄지는 행위로 그것은 도덕적 문제이지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간통을 범죄로 처벌한 것은 옛날에 우리나라 남자들이 “마누라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된다”고 떠들던 때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치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크게 향상된 데다가 여성이 피보호대상이 아니라 자기 결정권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 남편의 압박과 설움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의 아내들이 아직도 남존여비의 고루한 사고에 절어 있는 남편들을 버리는 경우가 부쩍 늘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그 일례다.
이사 갈 때 남편이 아내의 애견을 안고 아내보다 먼저 이삿짐 차에 달랑 올라탄다는 농담이 나온 지 오래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여성계가 환영한 것이 이렇게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간통은 성서시대부터 있어온 장구한 역사를 지녔는데 그 대표적 경우가 다윗과 바스세바다. 간통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이 반복해 온 행위여서 소설과 영화의 주제로 자주 쓰여지고 있다. ‘간통소설’이라는 장르까지 있는데 김동인의 ‘감자’와 ‘김연실전’도 그런 소설이다. 또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및 ‘차털레이 부인의 사랑’ 그리고 ‘이산 프롬’과 볼품없는 준이치 와타나베의 ‘실낙원’ 등도 다 간통소설이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많은 영화들도 간통을 주제로 삼고 있다. ‘간주곡’ ‘여정’ ‘종착역’ ‘자, 항해자여!’ ‘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의 주인공들이 다 간부들이다. 기혼남녀가 키스만 한 것도 간통이라면 ‘카사블랑카’와 ‘짧은 만남’도 간통영화다.          
소설이나 영화 못지않게 실제 명사들 중에도 간부들이 적지 않다. 최무룡과 김지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올가, 잉그릿 버그만과 로베르토 로셀리니,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그리고 프랑솨 미테랑과 안 팽조 등이 다 혼외정사의 당사자들이다.
간통영화의 금자탑은 ‘의사 지바고’(사진)라고 하겠다. 간통의 두 당사자인 지바고와 라라의 얼굴 표정이 늘 우수에 젖어 있고 또 그들의 안타까워하는 눈동자를 보면서 간통의 죄책감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지바고는 아내 토냐를 사랑하면서도 라라를 무슨 게시처럼 지고하게 사랑한다. 아내와 애인에 대한 사랑은 그 모습이 서로 다른가.
알다가도 모를 것은 사람들은 실제 간통은 단죄하면서도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대해서는 온갖 미사여구로 찬미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의 사랑은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정열적이요 비극적이며 또 황홀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간절하다’는 찬양 일색이지 그들을 ‘더러운 것들’이니 ‘벌 받아 마땅한 것들’이라고 비난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금기와 비밀스런 것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지바고와 라라가 대리 충족시켜 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역설적이요 이율배반적이다.
간통은 너무도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어서 예수는 아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사전 경고를 했다. 나는 교회에 나가던 고등학생 때 예쁜 여학생을 훔쳐 볼 때마다 예수의 이 말 때문에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내가 지금 나가는 동부장로교회의 이용규 당회장은 남녀 신도 간의 악수도 금한다. 문제발생 가능성에 대한 사전 차단조치다. 예수도 말했듯이 간통의 주체는 남자로 간주되는데 같은 남자로서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장난명 아니겠는가.
간통은 왜 저지르는가. 다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말에서도 내 비쳐져 있다. “간통의 심리란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한 사람에 대한 매력은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공존할 수 없다는 관습적 도덕에 의해 왜곡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을 놓고 앞으로 간통이 성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것은 유치하고 전 근대적인 발상이다. 간통죄는 남녀 불평등 시대의 산물이다. 남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해질 때에 가서야 진짜로 간통죄가 폐지될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6일 월요일

분노의 질주 7 (Furious 7)


덱카드(제이슨 스테이담·왼쪽)와 담(빈 디즐)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격투를 벌이고 있다.

스턴트·특수효과 뒤범벅된‘액션의 광란’ 


정신 나간 막가파식의 ‘광란의 질주’로 액션 스펙태클이 초고속에 아찔하게 박력이 있긴 하지만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식으로 과장이 심해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시리즈를 자꾸 만들기 위해선 새 것이 전편의 액션을 훨씬 능가해야 하기 때문에 편수가 늘면 늘수록 그 횡포가 더욱 자심해지게 마련이긴 하나 모든 물리의 법칙을 깨면서 이치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도록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건 액션영화라기보다 초현실적 공상과학 영화라고 해야 옳겠다.
이 시리즈를 중간쯤 찍던 중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폴 워커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의 모습은 워커의 시용하지 않은 다른 영화의 필름과 두 동생을 대신 찍은 다음 거기에 얼굴을 디지털로 덮어 마치 살아 있는 워커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플롯이란 순전히 액션을 사용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고 대사도 아주 유치하다. 스턴트와 특수효과와 막강한 액션과 길길이 날뛰는 에너지는 가상하나 마치 약물에 취한 도깨비들의 장장 137분짜리 살풀이를 구경하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제8편이 나오겠다.
전편에서 담(빈 디즐)의 패거리에 의해 얻어터져 런던 병원에 빈사상태로 누워 있는 동생 오웬을 황천으로 보낸 덱카드(제이슨 스테이담)는 담 일당에게 복수의 선전포고를 한다. 담 일당 중 한 명이던 한국계 한(성 강)은 전편 끝에서 죽는다. 만만한 게 아시안이다.
이에 담과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로 돌아가 가정생활을 하던 브라이언(폴 워커) 그리고 아직도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담의 애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스) 등 담의 일당은 덱카드를 맞을 준비를 한다. 이 때 이들 앞에 정체불명의 정부기관 소속 ‘무명씨’(커트 러셀)가 나타나 코카서스에 있는 테러리스트 모세(자이몬 훈수)가 납치한 예쁜 처녀 컴퓨터 해커 램지(나탈리 에마누엘)를 구출해 오면 덱카드를 처치해 주마고 제의한다.
램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셀폰과 감시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나쁜 놈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뻔한 일.
그래서 담 일행은 아제르바이잔으로 갔다가 이어 아부다비로 간다. 여기서 ‘신의 눈’ 칩이 든 아부다비의 거부가 소유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빨간 스포츠카를 담이 마천루 꼭대기로부터 몰고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날아가 옆의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착륙했다가 다시 한 번 옆의 건물로 비상한다. 믿든지 말든지라는 식이다.
영화는 이들이 LA로 돌아와 또 한 번 뛰고 달리고 치고 박고하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나서야 끝이 난다. 여하튼 영화 내내 자동차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고 사람이 죽도록 치고받으면서 싸우지만 어디 하나 누구 하나 상처가 안 난다. 수퍼카요 수퍼맨이다.
전편에서 담 일행과 일종의 친구가 된 수사관 루크(드웨인 잔슨)도 덱카드에게 찍힌 원수여서 당연히 담 일행과 행동을 같이 해야겠지만 그는 영화 일찍 영웅적인 행동을 하다가 영화 내내 병상에 누워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빠는 할 일이 있다”고 어린 딸에게 통보하면서  팔의 캐스트를 으스러뜨린 뒤 싸우러 나간다. 마지막에 워커를 추모하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전체적으로 액션에 멜로드라마를 섞어 넣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임스 완 감독.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얀 신 (White God)


릴리가 부다페스트 거리를 달리며 자기를 따라 오는(또는 추격하는) 개들을 돌아다 보고 있다.

“인간에게 복수하라”개들의 반란


‘개들의 반란’이라고 불러야 좋을 이 영화는 인간이 짐승에게 가하는 가혹한 행위를 비판한 우화이자 인종과 계급 차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래시 컴 홈’의 살벌한 신판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어린 주인을 찾아 온갖 모험과 위험을 겪으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황구의 의지가 가상하다. 
신화적 분위기를 지닌 헝가리 영화로 볼만한 것은 개들의 연기다. 영화가 다정다감하다가 잔인하고 폭력적인 톤을 갖추면서 감정적 곡선을 혼란케 만드는데 미물로 여기는 개들이 사람 뺨치게 영리하고 생각이 있어 마치 초현실적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은 부다페스트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백수 아버지 다니엘(산도르 소토)과 둘이 사는 13세난 영리한 소녀 릴리(소피아 소타). 릴리에게는 잡종인 황구 하겐이 유일한 친구인데 당국에서 잡종 개에게 세금을 부과하자 다니엘은 하겐을 길에다 내다버린다.
주인 없는 홈리스가 된 하겐은 자기를 잡아 처리하려는 시공무원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터키 인에게 붙잡혀 투견훈련을 받는다. 이 부분이 매우 잔인하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을 지닌 하겐은 모진 고난을 참다가 탈출해 시내를 배회하는 주인 없는 개들을 규합해 리더가 된다. 
하겐은 이제 서서히 졸개 개들을 이끌고 인간에 대한 역습을 도모하는데 이 같은 하겐의 점진적인 발전은 자기를 찾는 릴리의 아버지를 비롯한 주위의 무지막지한 어른들에 대한 항거와  평행적으로 묘사된다.
릴리와 하겐은 일종의 국외자들로 서로 같은 처지인데 하겐이 졸개들과 함께 인간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이 긴장감과 공포감 가득히 연출된다. 히치콕의 ‘새들’에서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복수심에 불타는 하겐을 위무해 줄 사람은 오직 릴리. 마지막 부분이 충격적이다. 
하겐 역의 개와 많은 개들의 일사불란한 연기를 담당한 조련사의 솜씨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릴리 역의 신인 소피아 소타도 아주 잘 한다. 기술적으로도 탁월한 작품으로 촬영이 아주 좋고 오케스트라 음악도 훌륭하다. 영화의 제목은 흑인만 공격하도록 훈련된 백구가 주인공인 새뮤얼 풀러 감독의 ‘백구’(White Dog·1982)를 연상케 한다. 코넬 문드루조 감독. 개가 나오고 소녀가 주인공이나 성인용이다. Magnolia. 4월9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펙터’




멕시코시티 중심부에 위치한 소칼로(광장)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국빈 영접과 국경일 행사 등이 열리는 광장 한복판에 게양된 거대한 멕시코 국기가 바람을 맞으며 위풍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광장 위로 제임스 본드가 탄 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오더니 마침 ‘사자의 날’을 맞은 축제인파를 헤치고 착륙한다(사진). 007시리즈 제24편 ‘스펙터’(SPECTRE)의 프리 타이틀 시퀀스를 촬영하는 현장에는 시리즈 제작자들인 바바라 브로클리와 마이클 윌슨 및 제작사인 MGM의 게리 바버 회장과 조나산 글릭맨 영화제작 담당 사장 등이 참석, 3월 말 취재차 이 곳을 찾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원들을 맞았다.
헬기에는 본드가 타고 있어야 하겠지만 기내에서 본드가 암살자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소칼로에서 찍기에는 위험부담이 커 본드 없이 찍은 뒤 본드가 실제로 싸우는 장면은 후에 다른 곳에서 찍는다고 브로클리가 설명했다. 그는 이어 “‘스펙터’는 ‘스카이폴’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고 더 좋다”면서 “대중이 그만 만들라고 할 때까지 시리즈는 이어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브로클리는 이날 촬영에 나온 엑스트라는 1,500여명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나머지 인파는 촬영이 끝난 뒤 디지털로 만든다고 말했다. 바바라 브로클리는 본드시리즈를 처음 제작한 커비 브로클리의 딸이다.
시리즈 제23편 ‘스카이폴’을 감독한 샘 멘데스가 다시 연출하는 ‘스펙터’에서 본드 역은 역시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는다. 본드 역 만큼이나 중요한 본드 악한 역은 오스카 조연상을 탄 오스트리아 배우 크리스토프 월츠가 그리고 본드걸들로는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50세로 역대 본드걸 중 가장 나이가 많다)와 프랑스배우 레아 세이두(‘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 및 멕시코 배우로 신성인 스테파니 시그맨 등이 나온다. 이들 외에 본드를 짝사랑하는 본드의 상관 M(레이프 화인즈)의 여비서 모니페니(네이오미 해리스)까지 합하면 본드걸이 자그마치 4명이나 된다. 여복도 많지!
영화 제목은 본드의 천적인 국제적 범죄 및 테러조직의 영어 두문자로 스펙터는 본드 시리즈 제1편 ‘닥터 노’에서부터 활약을 했다. ‘스펙터’는 이미 오스트리아와 로마와 런던에서 촬영을 마쳤고 멕시코시티 촬영이 끝나면 모로코로 이동한다. 가히 세계적 영화다.
우리는 영화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인터뷰했지만 누구 하나 영화의 내용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나 모르쇠 일관이었다. 크레이그의 선배 본드인 티머시 달턴이 나온 ‘라이선스 투 킬’을 찍은 소칼로가 내려다보이는 고색창연한 그랜드호텔 4층 테라스에서 촬영과정을 지켜본 뒤 시내 극장에서 관람한 ‘스펙터’의 예고편도 길이가 1분 남짓했다. 영화 내용을 철저히 보호하려는 제작진의 장삿속이겠지만 농담 같은 짓이다.
촬영현장 방문 다음 날 월츠, 세이두, 시그맨 및 졸개 본드 악한으로 나오는 격투기 선수인 데이브 바우티스타 등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제일 만만한 시그맨과의 인터뷰 내용만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영화 개봉일인 11월6일 보름 전쯤에나 쓴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도대체 배우들이 영화 내용에 대해 “모른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또는 “말할 수가 없다”는 식이어서 나중에 써먹을 만한 얘기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마이클 윌슨이 들려준 내용 이래봐야 고작 “크레이그는 촬영 내내 올림픽 선수처럼 신체단련에 매달렸고 저녁 9시에 취침해 아침 5시에 기상하는 수사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전부. 그는 이어 “영화를 위해 시당국이 광장을 완전히 외부로부터 차단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시민들도 마찬가지”라며 멕시코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멕시코 당국에서 영화 속의 멕시코의 이미지를 좋게 표현하기 위해 각본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2.000여만달러를 제작비 협조 명목으로 주었다고 한다. 물론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본드 시리즈에 처음 등장하는 멕시칸 본드걸 역의 시그맨(28)은 아마추어 권투선수다. 내가 그에게 “이 건 내 추측인데 당신은 권투선수로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니 아마 본드의 엉덩이를 걷어찰 모양이지요”하고 물었더니 그는 “모르겠네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내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교통대란의 도시 멕시코시티는 곳곳에 고가도로가 설치된 모습이 1970년대 서울을 연상시킨다. 이 곳이 위험한 도시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현장에서 그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시내 중심부의 고급 호텔이었는데 밤에 호텔 밖에서 호텔 내 바에 들어가려면 가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를 거쳐 바에 들러 테킬라에 매운 토마토주스 상그리타를 체이서로 마시니 이국의 노독이 깜빡깜빡 졸음에 빠진다. 이번 여행서 얻은 큰 수확은 틈을 내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함께 살고 작업을 한 원색의 프리다 칼로 개인주택 뮤지엄을 방문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4월 1일 수요일

‘모든 것의 이론’ 에디 레드메인




“6개월간 호킹 연구, 그에 관한 모든 것 읽어”

  처음엔 살아 있는 우상을 어떻게 표현하나 공포감

  난 배우 될 운명 타고 난듯… 아내와는 첫 눈에 반해


 ‘모든 것의 이론’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으로 나와 열연, 제8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영국배우 에디 레드메인(33)과의 인터뷰가 지난해 9월 이 영화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였을 때 있었다. 한편 호킹 박사(73)는 레드메인이 상을 타자 자기 페이스북에“내 역을 해 상을 탄 에디 레드메인 축하한다. 참 잘 했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런던 태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레드메인은 연극으로 토니상과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탄 실력파로 한 때 버버리 모델을 지내기도 했는데 2012년 9월에는 잡지 배니티 페어에 의해 연례 국제적으로 가장 옷 잘 입는 사람의 명단에 올랐다. 레드메인은 연기만 잘할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불러 뮤지컬 영화‘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로 나와 열창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나 백셔와 결혼, 둘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란히 앉아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레드메인은 스타 티를 안 내는 겸손한 사람이다. 주근깨가 있는 귀여운 동안에 큰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에 자상히 답하고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총명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스티븐 호킹을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는가.
“영화에 나오기 전만해도 난 그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케임브리지 대에 다닐 때 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 보고 또 목소리도 듣긴 했지만 나는 13세 때 과학을 포기하고 예술사를 공부했다. 그래서 촬영이 시작되기 닷새 전에 케임브리지의 호킹의 자택에서 그를 처음 정식으로 만났을 때 그 점부터 사과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반년 간 호킹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의 이면에 그렇게 강력하고 정신을 고양시키며 또 우스운 이야기와 함께 비상한 여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촬영을 하면서 언제 그의 역을 자신 있게 해낼 수가 있다고 생각했는가.
“살아 있는 사람의 역을 본인과 같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저녁 촬영한 필름을 보면서 한 없이 실망했었다. 그러나 나는 호킹을 만나 그로부터 낙천성과 에너지와 유머와 생명력을 전달 받아 그것을 영화에 가져감으로써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는가.
“믿는다. 나와 한나의 경우도 그렇다. 흥미 있는 화학작용이다. 나와 한나뿐 아니라 호킹과 그의 부인 제인 그리고 마리우스와 코젯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육체적으로 몹시 고된 역인데 어떻게 휴식을 취했는가.
“촬영 후 한나에게 욕조에 물을 틀어달라고 해서 목욕을 했다. 그리고 정골 요법사로부터 마사지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만난 호킹과 같은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난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한나를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가.
“나는 남자 전용학교에 한나는 여자 전용학교에 다닐 때 한나의 학교에서 자선 패션쇼가 열렸다. 그 때 우리 남자 학생들이 초대를 받았는데 나는 웃통을 벗고 무대를 걸어야 했다. 여학생들이 열광을 하더라. 쇼 후에 파티가 열렸는데 그 때 방 저 쪽에 있는 한나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아주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리 둘은 연극과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영화에 과학과 수학에 관한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 잘 아는가.
“난 과학과 수학에 엉망이다. 대학 때 여름방학에 런던의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사람들이 내게 주식에 대해 얘기하는데 도통 모르겠더라.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 생애 최고의 연기인 셈이다.”
스티븐 호킹과 후에 그의 아내가 된 제인이 서로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고 있다.

―호킹의 이론에 대해 이해하는가.
“그에 관한 것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리고 호킹의 옛 제자들로부터 기초를 배웠다. 그래서 이제 꽤 알게 됐다. 그런데 호킹의 ‘시간의 짧은 역사’를 읽었을 때 처음에는 우주의 활동에 관해 알 것 같았는데 22쪽쯤에 가서부터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더라. 그러나 나는 과학이 유연성이 있어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디션 과정은 쉬웠는지.  
“별로 어렵진 않았지만 막상 감독 제임스 마쉬가 내게 역을 맡긴다고 말했을 땐 복부에 강펀치를 맞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우상과 그가 앓고 있는 병을 진짜 같이 해내고 또 아름다운 가족 얘기를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는지.
“상당히 게을렀다. 주에 다섯 차례 예술사 강의를 듣고 매주 에세이를 한 편씩 섰는데 그 내용이 다 사이비 예술적인 것들이었다. 아침 10시에 어제 마신 술이 채 다 안 깬 상태로 교실 뒤에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남의 노트를 베끼곤 했다.”

―사랑을 위해 한 가장 미친 짓이 무엇인가.
“‘레미제라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나흘간의 휴식기간이 있었다. 그 때 한나와 비로소 정식으로 데이트를 할 때였다. 그러나 우린 그 때까지만 해도 육체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나흘 간 무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갈 생각이 났다. 그런데 혼자 갈 생각을 하니 슬프더라. 그래서 한나와 좋은 데이트 끝에 내가 대뜸 그에게 ‘당신 내 주에 플로렌스에 갈 생각 없어요’하고 물었더니 ‘진짜 이야기에요’하고 반문 하더라. 그래서 난 ‘그렇다’라고 말한 뒤 다음 날 아침에 한나에게 비행기 예약용지를 보냈다. 몇 시간 후에 용지가 돌아왔고 우린 그래서 플로렌스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셈이다. 상당히 미친 짓이라고 하겠다.”

―모든 것의 기원을 발견한 사람이 저렇게 불구의 몸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호킹이 자기 책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창조해냈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지닌 아이디어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어느 한 감관이 사라지면 다른 감관이 강해진다는 개념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한 개의 방정식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런 개념을 일종의 은유라고 본다. 새 변경을 찾아가는 식으로 과학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앞으로 밀고 나아간다는 뜻이다.”

―호킹의 명성의 근원이 그의 물리학에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질병에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호킹은 그에 대해 매우 공개적이다. 호킹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보통 이상으로 낙천적이다. 대화하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그는 이제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는 굉장히 복잡한 것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시간의 짧은 역사’도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 출판사가 낸 것이 아니라 공항의 가게에서 파는 책을 출판하는 회사에서 발간했다. 사람들이 물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호킹의 관심사다.

―배우가 된 것이 어떤 운명이라고 여기는가.
“내가 태어난 날 나의 부모님은 뮤지컬 ‘캐츠’를 보러 가기로 됐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났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출연한 연극의 제목이 ‘염소’였는데 내 띠가 염소자리 띠라는 것을 생각하면 배우가 된 것이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사랑하는 것을 정열적으로 추구하며 살 것이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호킹의 발성을 그대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나.
“그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고 또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킹은 기계를 통해 말을 했기 때문에 발음이 분명치가 않아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호킹의 발성이 매우 분명치가 않아 제작진과 한 때는 그가 말할 때 자막을 삽입하는 문제도 상의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의 느낌은 어땠는가.
“연기한다는 것의 훌륭한 점은 매우 강렬한 기간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호킹의 역을 하고 나서 난 완전히 녹초가 됐다. 그래서 영육으로 내 자신으로 돌아가고 또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위해 다른 일도 안 하고 오랜 휴식을 취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겟 하드 (Get Hard)


래퍼 차림의 제임스(윌 퍼렐)와 다넬이 사우스LA를 찾아 왔다.

‘교도소서 생존법 배우기’저질 풍자 난무


음란한 의미를 내포한 제목을 한 이 영화는 이맛살이 찌푸려지고 구역질이 나도록 음탕하고 상스럽고 천하고 더럽고 또 인종차별적인 데다가 있는 욕이란 욕대로 다 내뱉고 있어 영화를  보고나서 눈과 귀를 씻어야겠다.
두 흑백 코미디언 거꾸리와 장다리인 케빈 하트와 윌 퍼렐이 나와 나름대로 우스갯짓과 소리를 하면서 그럭저럭 콤비를 이루고는 있으나 각본이 원체 빈약해 조야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특히 강간소리가 너무 많이 나와 귀에 거슬리고 겉으로는 인종차별을 풍자한 영화 같지만 풍자가 너무 지나쳐 오히려 인종차별 영화가 됐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보면 기분이 상당히 불쾌할 영화로(보기 나름이겠지만) 이들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수치감을 느끼게 묘사했다. 퍼렐은 재미있고 우습고 또 영화도 상당히 수준급 코미디들인데 어쩌자고 이런 볼품없는 영화에 나와 스타일을 구기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LA에 사는 투자 전문회사의 매니저로 백만장자인 제임스 킹(윌 퍼렐이 처음부터 맨살 엉덩이를 보여준다)은 벨에어의 궁궐 같은 집에 살면서 자기 회사의 회장 마틴(크레이그 T. 넬슨)의 딸 알리사(앨리슨 브리)와 곧 결혼할 사이여서 세상에 살 맛 난다.
그런데 제임스가 알리스와의 약혼발표 파티를 여는 장소에 느닷없이 FBI가 들이 닥쳐 제임스를 고객들의 돈을 사기하고 횡령한 혐의로 체포한다. 재판 결과 흉악범들을 수감하는 샌퀜틴 교도소에서 10년을 살게 됐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제임스.
교도소가 얼마나 험악한 곳인지를 잘 아는 제임스는 그 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기 차를 세차하는 흑인 다넬 루이스(케빈 하트)에게 지도를 부탁한다. 다넬은 모범 가장이지만 제임스는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통계까지 들먹이면서 다넬이 전과자라고 간주한 것이다. 자기 세차장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다넬은 거액의 수업료를 지불하겠다는 제임스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문제는 다넬이 교도소 경험이 없는 점. 그래서 그는 사우스LA에 사는 크렌셔 갱 두목인 자기 사촌 러셀(T.I.)에게 자문을 구한다.      
우선 교도소 내 갱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신체단련 훈련부터 시작된다. 제임스의 운동신경이 둔한 것은 당연지사. 이어 가장 중요한 교도소 내 강간으로부터의 자기보호 수단을 공부하다가 다넬은 제임스를 데리고 게이들이 모이는 카페로 간다. 거기서 실습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것은 너무 지나치다.
그리고 래퍼 복장을 한 제임스와 다넬은 사우스LA를 직접 방문해 러셀과 그의 졸개들과 여친들을 만나 한 수 배운다. 그리고 백인 갱 모임에도 참가하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그런데 제임스는 자신은 무죄라고 계속해 주장한다. 과연 누가 나쁜 놈일까. 관심도 없다.
영화는 인종과 계급과 빈부 차이를 풍자하고도 있지만 의도야 어찌 됐던지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았다. 에탄 코엔 감독.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홈 (Home)


팁(리안나 음성·왼쪽)과 오(짐 파슨스)가 함께 다정한 때를 보내고 있다.

‘단짝’ 외계인과 소녀의 모험 코미디


동포들로부터 달아나는 작은 외계인과 독립심 강하고 고독한 소녀가 서로의 문화와 인종(?) 차이를 극복하고 뜻밖의 단짝이 된다는 모험 코미디 만화영화인데 아주 작은 꼬마들이나 좋아하겠다.
요즘 집안사정이 별로 안 좋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드림웍스는 ‘마다가스카르의 펭귄들’의 흥행이 안 좋아 흥행 대박작품이 필요한 형편인데 과연 ‘홈’이 그 같은 소망에 부응할지 궁금하다.
영화의 결정적인 결점은 내용이 과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점. 특히 ‘라일로와 스티츠’를 연상케 하는데 이런 참신성 부족 때문에 기시감이 가득하다. 관객의 주 대상인 아이들에게 좀 더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참신한 얘기를 마련해 줬어야 한다. 
원작은 애담 렉스의 소설 ‘스메크데이의 참뜻’. 볼만하고 들을 만한 것은 이 영화로 만화영화에 데뷔한 코미디언 짐 파슨스와 가수 리안나의 음성연기. 둘 다 잘 한다. 
외계에 살던 외계인 부브족이 사악하고 겁나는 약탈자 고그를 피해 온 종족이 지구로 피난을 온다. 이들은 지구에 도착해 그들의 초능력을 발휘, 지구인들을 몽땅 지구의 한 쪽 구석으로 이주시키고 알록달록한 집을 마련해 주고 거기서 살도록 만든다. 그리고 자기들이 인간의 집을 차지하고 산다. 
이 과정에서 독립심 강한 소녀 팁(리안나)이 어머니(제니퍼 로페스)와 떨어지게 돼 혼자 집에서 숨어서 산다. 한편 부브의 장난꾸러기 오(짐 파슨스)는 실수로 자기들이 피신한 지구의 위치를 공개하면서 부브의 지도자(스티브 마틴)가 주재하는 민중재판을 받는다. 
여기서 오가 달아나면서 집에 숨어 있는 팁을 마나게 되고 둘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팁의 어머니가 사는 곳으로 가면서 액션과 모험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둘은 처음에는 서로 티격태격 하다가 나중에 친구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인간과 부브들은 그 뒤로 내내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팁의 피부 색깔은 바베이도스 태생의 리안나답게 까무잡잡하고 오의 것은 보라색. 사운드트랙에는 리안나가 부르는 ‘댄싱 인더 다크’와 ‘터워즈 더 선’과 ‘애즈 리얼 애즈 유 앤 미’와 함께 로페스가 부르는 ‘필 더 라이트’가 수록됐다. 노래가 영화보다 낫다. 그리고 오의 생김새도 별로 귀엽지가 않다. PG.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배에서 막 내렸어요’



현재 비평가들과 시청자들의 호응 속에 ABC-TV가 매주 화요일 하오 8시에 방영하는 30분짜리 가족 코미디 ‘배에서 막 내렸어요’(Fresh off the Boat-사진)는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40)이 대만계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 나오는 아시안 아메리칸의 시트콤이다. 네트웍 TV가 아시안 아메리칸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을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기는 1994년 역시 ABC-TV가 방영, 첫 시즌으로 끝난 한국계 코미디언 마가렛 조 주연의 ‘올-아메리칸 걸’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대만계 셰프 에디 황(32·그가 해설한다)의 경험을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 시트콤은 워싱턴 DC에서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이사해 스테이크집 ‘캐틀맨스 랜치’를 차린 루이스 황과 그의 아내 제시카(콘스탄스 우)와 11세난 장남 에디(허드슨 양) 및 그 아래 두 아들의 일상을 우습고 재미있게 그렸다.
힙합광인 에디의 눈으로 얘기되는 1990년대 중반의 시트콤에서 에디의 마음 착한 아버지 루이스로 나오는 랜달 박은 지난해에 소니 영화사에 대한 해킹의 빌미였던 김정은 암살을 다룬 ‘인터뷰’에서 김정은으로 나와 전 세계적으로 뉴스의 인물이 됐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TV 작품에서 늘 네 번째나 다섯 번째 인물로 나오던 내가 네트웍 TV의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나도 아시안으로 극중의 루이스와 같은 경험을 해 그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랜달 박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사람은 이 시트콤의 총 제작자이자 캐메론 디애스가 나온 코미디 ‘섹스 테입’를 제작한 중국계 미국인 멜빈 마다. 마는 ‘섹스 테입’에 나온 랜달 박을 보고 그의 꾸밈없는 즉흥적으로 반사하는 코믹한 연기에 감탄, 그에게 에디 황의 자서전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했다.    
난 ‘인터뷰’를 위한 인터뷰 때 랜달 박을 만나 “당신과 나는 같은 박씨로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으니 ‘큰형 박’이라고 불러라”고 통보했었다. 이에 대해 그는 “네, 형님”이라고 순순히 응했는데 사람이 아주 소박하고 착해 보였다. 따라서 나는 그의 이번 시트콤 주연이 남 달리 기쁘다.
그런데 아시안 아메리칸이 주인공인 것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이들이 케케묵은 상투적인 모습으로 다뤄져 아시안 아메리칸 시청자들을 역겹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 TV극에서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경우가 흔했고 나왔다고 해도 조롱거리의 대상이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시리즈는 소수계의 얘기를 백인들의 눈으로서가 아니라 본인들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에디의 어머니 제시카가 돈과 아들들의 성적에 집착하는 구두쇠 타이거 맘으로 나오고 백인 일색의 학교에서 에디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열자 옆의 아이들이 냄새가 난다고 인상을 쓰는 장면 등 더러 상투적인 면도 있긴 하나 시트콤은 대체적으로 아시안과 백인 간의 문화적 차이와 팝문화를 통한 주류사회에의 동화를 사실적이요 온화하게 그리고 있다.
배우들은 물론이요 시트콤의 총 제작자와 각본가들을 비롯해 제작진의 절반 정도가 한국, 중국, 인도 및 페르샤계로 ABC 측은 “우리들은 아시안 아메리칸의 얘기를 가급적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안 아메리칸뿐만 아니라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두 시트콤 ‘블래키-시’(black-ish·ABC)와 ‘숫처녀 제인’(Jane the Virgin·CW) 등도 소수계인 아시안 아프리칸과 히스패닉 가정의 얘기라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전체 미국인구의 5.5%를 차지하면서 다른 소수계보다 훨씬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TV와 영화에서 서자 취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LA카운티 인구의 15%인 150만명이 아시안이며 2017년에 이르면 미 전체 아시안들의  구매력이 1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TV에서 아시안이 제대로 된 역을 맡는 비율은 전체의 6%에서 오히려 2014년에는 4%로 줄어들었다.
그런 만큼 ‘배에서 막 내렸어요’의 성공은 앞으로 TV에서 아시안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디딤돌 구실을 하게 된다는 임무와 부담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랜달 박도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앞으로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문호도 활짝 개방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랜달 박은 작품에 충실하기 위해 드라마에 나오기 전 올랜도로 에디 황을 방문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또 에디 황도 마가렛 조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문 끝에 마가렛은 “에디가 나의 꿈을 이뤄 주기를 바란다”며 시트콤의 성공을 빌었다고 한다.
랜달 박은 “이 시트콤을 둘러싼 모든 대화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말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며 “그에 따라 앞으로 이와 같은 쇼들이 보다 많이 나오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배에서 막 내렸어요’를 많이들 시청해 주세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