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4월 1일 수요일

‘배에서 막 내렸어요’



현재 비평가들과 시청자들의 호응 속에 ABC-TV가 매주 화요일 하오 8시에 방영하는 30분짜리 가족 코미디 ‘배에서 막 내렸어요’(Fresh off the Boat-사진)는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40)이 대만계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 나오는 아시안 아메리칸의 시트콤이다. 네트웍 TV가 아시안 아메리칸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을 황금시간대에 내보내기는 1994년 역시 ABC-TV가 방영, 첫 시즌으로 끝난 한국계 코미디언 마가렛 조 주연의 ‘올-아메리칸 걸’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대만계 셰프 에디 황(32·그가 해설한다)의 경험을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 시트콤은 워싱턴 DC에서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이사해 스테이크집 ‘캐틀맨스 랜치’를 차린 루이스 황과 그의 아내 제시카(콘스탄스 우)와 11세난 장남 에디(허드슨 양) 및 그 아래 두 아들의 일상을 우습고 재미있게 그렸다.
힙합광인 에디의 눈으로 얘기되는 1990년대 중반의 시트콤에서 에디의 마음 착한 아버지 루이스로 나오는 랜달 박은 지난해에 소니 영화사에 대한 해킹의 빌미였던 김정은 암살을 다룬 ‘인터뷰’에서 김정은으로 나와 전 세계적으로 뉴스의 인물이 됐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TV 작품에서 늘 네 번째나 다섯 번째 인물로 나오던 내가 네트웍 TV의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나도 아시안으로 극중의 루이스와 같은 경험을 해 그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랜달 박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사람은 이 시트콤의 총 제작자이자 캐메론 디애스가 나온 코미디 ‘섹스 테입’를 제작한 중국계 미국인 멜빈 마다. 마는 ‘섹스 테입’에 나온 랜달 박을 보고 그의 꾸밈없는 즉흥적으로 반사하는 코믹한 연기에 감탄, 그에게 에디 황의 자서전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했다.    
난 ‘인터뷰’를 위한 인터뷰 때 랜달 박을 만나 “당신과 나는 같은 박씨로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으니 ‘큰형 박’이라고 불러라”고 통보했었다. 이에 대해 그는 “네, 형님”이라고 순순히 응했는데 사람이 아주 소박하고 착해 보였다. 따라서 나는 그의 이번 시트콤 주연이 남 달리 기쁘다.
그런데 아시안 아메리칸이 주인공인 것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이들이 케케묵은 상투적인 모습으로 다뤄져 아시안 아메리칸 시청자들을 역겹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 TV극에서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은 경우가 흔했고 나왔다고 해도 조롱거리의 대상이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시리즈는 소수계의 얘기를 백인들의 눈으로서가 아니라 본인들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보겠다. 에디의 어머니 제시카가 돈과 아들들의 성적에 집착하는 구두쇠 타이거 맘으로 나오고 백인 일색의 학교에서 에디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열자 옆의 아이들이 냄새가 난다고 인상을 쓰는 장면 등 더러 상투적인 면도 있긴 하나 시트콤은 대체적으로 아시안과 백인 간의 문화적 차이와 팝문화를 통한 주류사회에의 동화를 사실적이요 온화하게 그리고 있다.
배우들은 물론이요 시트콤의 총 제작자와 각본가들을 비롯해 제작진의 절반 정도가 한국, 중국, 인도 및 페르샤계로 ABC 측은 “우리들은 아시안 아메리칸의 얘기를 가급적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안 아메리칸뿐만 아니라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두 시트콤 ‘블래키-시’(black-ish·ABC)와 ‘숫처녀 제인’(Jane the Virgin·CW) 등도 소수계인 아시안 아프리칸과 히스패닉 가정의 얘기라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아시안 아메리칸은 전체 미국인구의 5.5%를 차지하면서 다른 소수계보다 훨씬 빠르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TV와 영화에서 서자 취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LA카운티 인구의 15%인 150만명이 아시안이며 2017년에 이르면 미 전체 아시안들의  구매력이 1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TV에서 아시안이 제대로 된 역을 맡는 비율은 전체의 6%에서 오히려 2014년에는 4%로 줄어들었다.
그런 만큼 ‘배에서 막 내렸어요’의 성공은 앞으로 TV에서 아시안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디딤돌 구실을 하게 된다는 임무와 부담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랜달 박도 “이 드라마가 성공하면 앞으로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문호도 활짝 개방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랜달 박은 작품에 충실하기 위해 드라마에 나오기 전 올랜도로 에디 황을 방문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또 에디 황도 마가렛 조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문 끝에 마가렛은 “에디가 나의 꿈을 이뤄 주기를 바란다”며 시트콤의 성공을 빌었다고 한다.
랜달 박은 “이 시트콤을 둘러싼 모든 대화가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말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며 “그에 따라 앞으로 이와 같은 쇼들이 보다 많이 나오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배에서 막 내렸어요’를 많이들 시청해 주세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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