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보이 노만 베이츠가 “마더 마더”하며 식칼로 샤워를 하던 매리온 크레인을 난자해 살해하고 막 돌아온 어머니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노만의 언덕 위의 집은 늦은 하오의 후광을 받으며 음흉하게 서 있었다. 히치콕의 걸작 공포스릴러 ‘사이코’(Psycho·1960)에서 노만이 자기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2층짜리 이 집은 언덕 아래 베이츠 모텔을 경영하는 두 사람의 거처로 히치콕이 1959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이 영화를 찍을 때 쓴 세트다.
나는 칠흑 같은 밤에 노만이 실루엣을 그리며 서 있던 모텔과 집을 연결하는 계단에서 노만의 흉내를 내면서 얼른 사진 한 장을 찍었다(사진). 아직 낮인데도 몸에서 한기가 흐른다.
A&E TV가 현재 방영중인 ‘사이코’의 전편격인 시리즈 ‘베이츠 모텔’(Bates Motel)을 위한 리셉션이 며칠 전 모텔 앞 마당에서 열렸다. 먼저 ‘Office’라는 빨간 네온사인이 걸린 모텔 사무실에 들어갔다.
벽에 걸린 텅 빈 모텔 방들의 열쇄와 테이블에 놓인 숙박부를 보자니 비쩍 마른 키다리 노만(앤소니 퍼킨스)이 거액의 현찰을 훔쳐 도주 중인 부동산회사의 여사원 매리온 크레인(재넷 리)을 테이블 뒤에서 호기심이 가득 찬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서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매리온이 여장을 푼 사무실 바로 옆의 1호실 침대 위에는 노만의 어머니가 매리온을 살해한 식칼이 놓여 있다. 그런데 매리온이 수십 차례의 칼질에 비명과 함께 욕조에 쓰러지면서 붙잡고 늘어지던 샤워 커튼이 안 보인다. 노만은 어머니가 죽인 매리온을 이 샤워 커튼에 싸 자기 차 포드의 트렁크에 넣은 뒤 모텔 근처의 늪에 빠뜨렸는데 이 범행에 쓴 포드가 모텔 앞에 놓여 있다. 어쩌면 이 차 트렁크에 매리온의 사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어 나는 2층의 자기 침실 창 앞 흔들의자에 앉아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노만의 어머니를 만나 보려고 집 뒷문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은 노만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다가가보니 어머니는 몸의 모든 살이 제거된 해골이었다. 텅 빈 검은 동공과 흉한 이빨을 드러낸 채 몸을 흔들거리는 모습에 “아악”하고 절로 비명이 나왔다. ‘베이츠 모텔’은 남편이 사망한 뒤 10대인 아들 노만(프레디 하이모어)과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하려고 오리건주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모텔을 사 이주한 노마(베라 파미가)의 모자간의 이야기로 현재 시즌 3가 방영중이다. 밴쿠버 교외의 알더그로브에서 촬영한 시리즈는 어머니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노만이 시리얼 킬러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파미가가 모텔 앞에서 방문객들을 미소로 맞았다. 우아하게 아름다운 파미가(‘업 인 디 에어’)는 연기파로 시리즈에서도 하이모어와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히치콕의 ‘사이코’는 이 영화 이전까지 있던 스릴러의 틀을 완전히 깨어놓은 대담하고 가차 없는 영화로 소위 ‘슬래셔 무비’(난도질해 사람을 살해하는 영화로 존 카펜터 감독의 ‘핼로윈’이 그 대표적 작품)의 효시로 대접 받고 있다. 위스콘신주의 변태살인자 에드 게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로버트 블락의 소설이 영화의 원전이다.
이 영화는 변태적이요 폭력적이며 냉소적이고 또 음탕한데 가장 유명한 장면이 매리온의 ‘샤워 신’이다. 매리온은 모텔 방에서 샤워를 하다가 아들이 이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데 분노한 노만의 어머니가 휘두르는 식칼에 찔려 피를 흘리며 욕조에 쓰러져 비명횡사한다.
이 소름끼치는 장면은 특히 히치콕 영화의 음악을 여러 곡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기분 나쁘게 신경을 거스르는 음악 때문에 공포 분위기가 더욱 가증된다. 바이얼린과 비올라와 첼로 등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음악은 마치 한 많은 처녀귀신들이 집단으로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아 듣노라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히치콕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까닭은 매리온이 흘리는 피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매리온이 흘리는 피로는 초컬릿 시럽을 썼고 노만의 어머니가 휘두르는 식칼이 내는 바람소리는 칼로 멜론의 살을 찔러 나오는 소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매리온이 지르는 비명은 세 여자의 비명을 조합해 만들었다.
당시 수퍼스타였던 재넷 리를 영화의 제1막 끝에 가서 죽여 없앤 것도 획기적인 일이며 매리온이 찢은 노트북의 조각을 변기에 넣고 물로 씻어내는 장면 또한 할리웃 영화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히치콕은 영화를 완벽하게 즐기도록 하기 위해 영화 중간에 관객이 극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나도 고등학생 때 지금은 없어진 중앙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시간 훨씬 전에 극장 앞에서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그 때 영화를 보면서 경악하고 감탄하던 내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이코’는 그 뒤 3편의 속편이 나왔고 브라이언 디 팔마 등 여러 명의 감독들이 영화의 장면을 흉내 내면서 히치콕을 치하했는데 박찬욱의 ‘스토커’(Stoker)도 그 중 하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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