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4월 1일 수요일

‘모든 것의 이론’ 에디 레드메인




“6개월간 호킹 연구, 그에 관한 모든 것 읽어”

  처음엔 살아 있는 우상을 어떻게 표현하나 공포감

  난 배우 될 운명 타고 난듯… 아내와는 첫 눈에 반해


 ‘모든 것의 이론’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으로 나와 열연, 제8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영국배우 에디 레드메인(33)과의 인터뷰가 지난해 9월 이 영화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였을 때 있었다. 한편 호킹 박사(73)는 레드메인이 상을 타자 자기 페이스북에“내 역을 해 상을 탄 에디 레드메인 축하한다. 참 잘 했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런던 태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레드메인은 연극으로 토니상과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탄 실력파로 한 때 버버리 모델을 지내기도 했는데 2012년 9월에는 잡지 배니티 페어에 의해 연례 국제적으로 가장 옷 잘 입는 사람의 명단에 올랐다. 레드메인은 연기만 잘할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불러 뮤지컬 영화‘레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로 나와 열창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나 백셔와 결혼, 둘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란히 앉아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레드메인은 스타 티를 안 내는 겸손한 사람이다. 주근깨가 있는 귀여운 동안에 큰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에 자상히 답하고 사진도 함께 찍으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데 총명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스티븐 호킹을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는가.
“영화에 나오기 전만해도 난 그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케임브리지 대에 다닐 때 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 보고 또 목소리도 듣긴 했지만 나는 13세 때 과학을 포기하고 예술사를 공부했다. 그래서 촬영이 시작되기 닷새 전에 케임브리지의 호킹의 자택에서 그를 처음 정식으로 만났을 때 그 점부터 사과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반년 간 호킹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의 이면에 그렇게 강력하고 정신을 고양시키며 또 우스운 이야기와 함께 비상한 여인이 있는 줄은 몰랐다.”

―촬영을 하면서 언제 그의 역을 자신 있게 해낼 수가 있다고 생각했는가.
“살아 있는 사람의 역을 본인과 같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저녁 촬영한 필름을 보면서 한 없이 실망했었다. 그러나 나는 호킹을 만나 그로부터 낙천성과 에너지와 유머와 생명력을 전달 받아 그것을 영화에 가져감으로써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는가.
“믿는다. 나와 한나의 경우도 그렇다. 흥미 있는 화학작용이다. 나와 한나뿐 아니라 호킹과 그의 부인 제인 그리고 마리우스와 코젯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육체적으로 몹시 고된 역인데 어떻게 휴식을 취했는가.
“촬영 후 한나에게 욕조에 물을 틀어달라고 해서 목욕을 했다. 그리고 정골 요법사로부터 마사지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만난 호킹과 같은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난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한나를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가.
“나는 남자 전용학교에 한나는 여자 전용학교에 다닐 때 한나의 학교에서 자선 패션쇼가 열렸다. 그 때 우리 남자 학생들이 초대를 받았는데 나는 웃통을 벗고 무대를 걸어야 했다. 여학생들이 열광을 하더라. 쇼 후에 파티가 열렸는데 그 때 방 저 쪽에 있는 한나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아주 아름다웠다. 그리고 우리 둘은 연극과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영화에 과학과 수학에 관한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해 잘 아는가.
“난 과학과 수학에 엉망이다. 대학 때 여름방학에 런던의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사람들이 내게 주식에 대해 얘기하는데 도통 모르겠더라.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 생애 최고의 연기인 셈이다.”
스티븐 호킹과 후에 그의 아내가 된 제인이 서로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고 있다.

―호킹의 이론에 대해 이해하는가.
“그에 관한 것은 모조리 다 읽었다. 그리고 호킹의 옛 제자들로부터 기초를 배웠다. 그래서 이제 꽤 알게 됐다. 그런데 호킹의 ‘시간의 짧은 역사’를 읽었을 때 처음에는 우주의 활동에 관해 알 것 같았는데 22쪽쯤에 가서부터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더라. 그러나 나는 과학이 유연성이 있어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디션 과정은 쉬웠는지.  
“별로 어렵진 않았지만 막상 감독 제임스 마쉬가 내게 역을 맡긴다고 말했을 땐 복부에 강펀치를 맞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우상과 그가 앓고 있는 병을 진짜 같이 해내고 또 아름다운 가족 얘기를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는지.
“상당히 게을렀다. 주에 다섯 차례 예술사 강의를 듣고 매주 에세이를 한 편씩 섰는데 그 내용이 다 사이비 예술적인 것들이었다. 아침 10시에 어제 마신 술이 채 다 안 깬 상태로 교실 뒤에 슬그머니 들어와 앉아 남의 노트를 베끼곤 했다.”

―사랑을 위해 한 가장 미친 짓이 무엇인가.
“‘레미제라블’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나흘간의 휴식기간이 있었다. 그 때 한나와 비로소 정식으로 데이트를 할 때였다. 그러나 우린 그 때까지만 해도 육체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나흘 간 무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갈 생각이 났다. 그런데 혼자 갈 생각을 하니 슬프더라. 그래서 한나와 좋은 데이트 끝에 내가 대뜸 그에게 ‘당신 내 주에 플로렌스에 갈 생각 없어요’하고 물었더니 ‘진짜 이야기에요’하고 반문 하더라. 그래서 난 ‘그렇다’라고 말한 뒤 다음 날 아침에 한나에게 비행기 예약용지를 보냈다. 몇 시간 후에 용지가 돌아왔고 우린 그래서 플로렌스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 셈이다. 상당히 미친 짓이라고 하겠다.”

―모든 것의 기원을 발견한 사람이 저렇게 불구의 몸이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호킹이 자기 책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창조해냈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지닌 아이디어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어느 한 감관이 사라지면 다른 감관이 강해진다는 개념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한 개의 방정식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그런 개념을 일종의 은유라고 본다. 새 변경을 찾아가는 식으로 과학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앞으로 밀고 나아간다는 뜻이다.”

―호킹의 명성의 근원이 그의 물리학에 있다고 보는가 아니면 질병에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호킹은 그에 대해 매우 공개적이다. 호킹은 자신의 질병에 대해 보통 이상으로 낙천적이다. 대화하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그는 이제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는 굉장히 복잡한 것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시간의 짧은 역사’도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 출판사가 낸 것이 아니라 공항의 가게에서 파는 책을 출판하는 회사에서 발간했다. 사람들이 물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호킹의 관심사다.

―배우가 된 것이 어떤 운명이라고 여기는가.
“내가 태어난 날 나의 부모님은 뮤지컬 ‘캐츠’를 보러 가기로 됐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났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출연한 연극의 제목이 ‘염소’였는데 내 띠가 염소자리 띠라는 것을 생각하면 배우가 된 것이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사랑하는 것을 정열적으로 추구하며 살 것이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호킹의 발성을 그대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나.
“그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고 또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킹은 기계를 통해 말을 했기 때문에 발음이 분명치가 않아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호킹의 발성이 매우 분명치가 않아 제작진과 한 때는 그가 말할 때 자막을 삽입하는 문제도 상의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의 느낌은 어땠는가.
“연기한다는 것의 훌륭한 점은 매우 강렬한 기간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호킹의 역을 하고 나서 난 완전히 녹초가 됐다. 그래서 영육으로 내 자신으로 돌아가고 또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위해 다른 일도 안 하고 오랜 휴식을 취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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