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렛 히치콕의 영화와 함께 음악이 연주되는 ‘빅 픽처:히치콕!’을 들으러 보울에 갔다. 묵직한 음성의 “하우 두 유 두. 긴장을 풀고 느긋이 앉아 공포가 찾아올 때까지 즐기시오”라는 히치콕의 인사말이 끝나고 스크린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마니’ ‘새들’ ‘사이코’및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등의 장면들이 몽타주로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데이빗 뉴만이 지휘하는 할리웃보울 오케스트라가 ‘꼭둑각시의 장송행진곡’과 함께 이들 영화의 음악을 박력있게 연주했다.
데이빗 뉴만은 ‘호파’와 ‘아이스 에이지’ 등 100여편의 영화음악 작곡자이자 지휘자. 그의 아버지 알프렛은 폭스사의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팡파레를 작곡한사람으로 ‘모정’ 등으로 오스카상을 무려 9번이나 탔다. 이날 알프렛이 작곡한 ‘해외 특파원’의 음악도 연주됐다.
연주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나온 에바 마리 세인트(사진)의 해설과 함께 진행됐다. 첫 번에 연주된 음악은 러시아태생으로 ‘하이 눈’과 ‘O.K.목장의 결투’ 등의 음악을 지은 디미트리 티옴킨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 음악이 극중 주인공의 하나로 낯선 사람에게 교차살인을 제의하는 로버트 워커처럼 교활하고 음모적이다.
티옴킨은 이날 프로그램에 포함된 입체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의 음악도 작곡했는데 마리 세인트는 히치콕은 입체영화를 성가신 아이들 장난같은 것으로 여겼다고 들려줬다.
히치콕은 영국에서 무성영화로 감독생활을 시작했는데 첫곡에 이어 그의 대표적 무성영화 ‘하숙생’과 함께 스파이 스릴러 ‘39계단’ 및 히치콕이 즐겨 다룬 도망가는 남자의 얘기인 ‘사보퇴르’의 음악이 차례로 연주됐다.
히치콕이 1939년 도미해 처음 만든 영화가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운 폰테인이 나온 으스스한 분위기의 ‘레베카’다. 이날 연주된 ‘레베카’의 음악은 ‘선셋대로’와 ‘젊은이의 양지’로 오스카상을 탄 프란츠 왝스맨의 것으로 그는 ‘레베카’ 외에도 ‘의혹’과 ‘이창’ 등 히치콕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히치콕과 영화사에 길이 남는 감독과 작곡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두 7편의 히치콕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작품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사이코’다. 음침하기 짝이 없는 음악으로 허만은 ‘흑백영화에 맞는 흑백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매우 검고 살의가 있어 여름밤 기운마저 소슬하게 느껴졌다.
휴게시간 후 첫 번째로 연주된 음악이 역시 허만이 작곡한 ‘환상’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백이 나오는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한 집념적인 사랑과 고독 그리고 살인과 죽음에 관한 명작으로 음악이 귀기가 감돌면서도 로맨틱하고 또 집요하다.
허만은 이날 연주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음악도 작곡했다. 히치콕 특유의 엉뚱한 사람 잡는 경쾌한 스릴러로 음악이 신경을 위협하면서도 재치있고 또 힘차다. ‘환상’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음악은 독립음악으로서도 훌륭하다. 이 영화들에 허만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영화에 대한 반응도 달라졌을 것이다.
히치콕영화의 음악은 여러번 오스카상후보에 올랐지만 막상 상을 탄 것은 헝가리태생으로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망각의 여로’ 하나뿐이다. 둘 다 정신병치료소의 의사로 어두운 과거를 지닌 그레고리 펙과 그를 사랑하는 잉그릿 버그만의 마음을 음으로 묘사한 ‘사랑의 주제’가 격정적으로 가슴을 엄습한다. 마치 집단자살이라도 하듯이 떨어지는 가을낙엽들처럼 자포자기적으로 로맨틱하다.
이어 프렌치 리비에라에 은퇴한 심야 보석전문털이 케리 그랜트와 미국인 사교계여인 그레이스 켈리의 유희하듯 하는 사랑의 제스처와 대사로 유명한 사뿐한 스릴러 ‘나는 결백하다’의 밤의 불꽃놀이 장면이 스크린을 장식했다. 이 불꽃장면은 남녀간 섹스의 절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악도 영화에 잘 맞게 장난끼가 있으면서도 감각적이다.
마지막으로 ‘사이코’에서 샤워하는 재넷 리를 앤소니 퍼킨스가 식칼로 난자 살해할 때 나오는 사람 잡는 충격적인 음악이 연주됐다. 순전히 현으로만 연주되는데 바이얼린이 떼를 지어 목청을 다해 비명을 지르면 베이스가 음험하게 맞장구를 차면서 듣는 사람의 전감관을 유린한다. 천재적 영상처리와 마법적 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면이다.
여름밤의 대기 속에 사이트와 사운드를 포도주에 타서 마시며 즐긴 뒤 히치콕의 “굿 나잇” 배웅을 받으며 보울을 나섰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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