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활동적 삶… 아버지 영향 행동주의자”
19일 개봉되는 가족드라마‘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This Is Where I Leave You-영화평 참조)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차 오래간만에 귀향한 뿔뿔이 헤어졌던 자식들을 맞는 거대한 인공유방을 한 어머니로 나온 제인 폰다(76)와의 인터뷰가 토론토 국제영화제 기간인 7일 토론토의 페어몬트 로열 요크 호텔에서 있었다. 아버지 헨리를 꼭 닮은 갈비씨 제인은 차가운 기가 감돌 정도로 고고하고 우아했는데 76세의 나이답지 않게 아름답게 늙었다. 목을 감싸는 검은 셔츠 위에 회색 재킷을 입은 금발의 제인은 품위가 있었는데 굵음 음성으로 유머를 섞어가면서 짧고 명백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인터뷰를 즐기면서“하 하 하”하고 웃다가도 아버지의 얘기가 나오자 냅킨으로 눈물을 닦으며“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며 울먹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거대한 인공유방을 마음껏 즐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 즐겼다. 그것 만드는데 3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그것을 진짜 내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랐다. 내 트일러에서 촬영장까지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해 내 유방을 보라고 제스처를 쓰면서 즐겼다. 영화에서 그것을 가급적 많이 드러내려고 했으나 션 레비 감독이 말렸다.”
―당신은 50대 초반에 유방확대 수술을 했다가 후에 제거했는데 왜 그랬는가.
“나이가 먹을수록 유방이 자꾸 커지기 때문에 가짜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당신은 여자와 진한 키스를 하는데 남자와 키스할 때와 다르던가.
“물론이다. 여자가 더 감각적이다. 내 현재의 애인만 빼고 나면 여자가 더 감각적이다.”
―레비 감독은 당신이 겁을 모르는 배우라고 했는데.
“아니다. 난 언제나 공포에 떤다. 매일 촬영장에 갈 때마다 ‘나 오늘 실패할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날 가짜라고 생각하고 해고하겠지’라며 두려워한다. 신경이 예민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으면 그 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당신의 가족이 재회할 때 어떤 불편한 점이라도 있는가.
“늘 있다. 가족이 모이면 언제나 문제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래서 가족이 모이면 어머니로서 그런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테드 터너를 떠나 다시 혼자 있어야겠다고 깨달았을 때다. 나이 62세로 남자라는 보증수표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정은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부부 간에 어떻게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
“결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에게 그걸 물어보는가. 나 전연 모르겠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데 그들에게 해 줄 말이라도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활동적이 되라는 것이다. 나는 옷을 잘 차려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려니 닭과 말이 있는 농장에 있겠다. 육체적으로 활동적이어야 레드 카펫에서도 멋지게 보인다. 특히 나이가 먹을수록 활동이 중요하다.”
―동성애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아니다. 난 그보다는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와 언론매체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 그리고 10대 문제에 더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난 동성결혼을 적극 지지한다. 난 곧 릴리 탐린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룰 코미디 시리즈에 나올 것이다.”
―당신의 동생 피터는 잘 있는가.
“배우로서 전국을 돌며 연기활동을 해 자주는 못 만나나 우린 서로 아주 가깝다. 내년 봄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온타리오에 있는 어머니의 무덤에 둘이 같이 가기로 했다.”
―당신의 목장 삶에 대해 말해 달라.
“목장에는 3.5마일 길이의 강이 있어 거기서 플라이피시를 한다. 나무도 자르고 돌벽도 만들고 오래 승마를 즐긴다. 기르는 닭에서 나온 계란을 먹는다. 2,300스퀘어피트의 농장을 걷거나 말을 타고 샅샅이 다녀 구석구석을 잘 안다.”
힐라리(제인 폰다)와 아들 저드(저스틴 베이트만)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
―요리를 하며 즐기는 음식은 무엇인가.
“나 혼자 먹는 것은 요리하나 손님이 있으면 안 한다. 연어와 밥과 샐러드이나 난 요리를 잘 못한다. 오죽하면 내 전 남편이자 감독인 로저 바딤이 셰프가 되었겠는가.”
―목장은 어디에 있는가.
“뉴멕시코에 있는데 팔려고 내놓았다. 몸의 여러 군데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말을 못 타겠다. 내 몸에는 지금 금속이 많이 있다. 더 이상 등산도 못하고 낚시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TV 시리즈를 해 매주 갈 수도 없다.”
―2016년에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겠는가.
“힐러리다. 힐러리는 명령하는 식의 남자보다 민주적이요 협동적이다. 그가 당선되면 남자처럼 굴지 말고 진정한 여성 대통령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는 매우 현명하며 또 과거의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연과 매우 연결돼 있는데 기상변화에 대해 우려하는가.
“그렇다. 그 때문에 때론 잠도 못 잔다. 그러나 전 세계의 각국에는 이를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약간은 낙관적이다. 아직 안 늦었다고는 하나 나는 우리가 큰 재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 농장도 누가 사든지 개발 못하도록 등록해 놓았다.”
―언제 어떻게 해서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영화에서 한 영웅적 인물을 보면서 자라 행동주의자가 된 것 같다. ‘분노의 포도’와 ‘옥스-보우 사건’ 그리고 ‘12인의 분노한 사람들’과 같은 영화들이다. 정의와 공정을 사랑하고 언더 독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를 따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난 30대 초반까지는 약간 비현실적으로 살았다. 베트남전이 났을 때 난 프랑스에서 살았는데 그 때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의 잘못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 때 내 안에서 행동주의가 솟아났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60대가 돼서야 생성됐는데 난 그제야 비로소 내가 나로서 성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결혼할 것인가.
“절대 안 한다. 77세에 왜 결혼을 한단 말인가. 테드와 내가 결혼한 이유는 그의 다섯 명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테드가 결혼이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혼 아니면 요즘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친절이다. 여자가 젊었을 땐 아무도 그들에게 친절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성적 매력과 글래머와 함께 놀아줄 사람을 찾으라고 지도한다. 나는 친절과 위협감을 느끼지 않는 남자를 찾는다. 내 현 애인은 유대인이다. 마침내 나는 유대인이 그렇게 감각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매우 강해 애인은 강한 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다. 그러나 결혼은 안 한다.”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가.
“내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다. 내 나이가 되면 고정된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난 이번 시리즈를 하게 된 것을 크게 다행으로 여긴다. 이 나이에 배우라는 안정된 직업이 있어 행복하다. 15년 전에 사업을 떠난 것도 매우 불행했기 때문으로 불행을 느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 그동안 한참을 쉬었으니 난 이제 연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쓴다. 7권이나 썼고 앞으로 소설을 써볼 작정인데 어렵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즐거운 추억은.
“아버지의 장례 후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지미 스튜어트가 우리 집에 찾아와 내 건너편에 1시간 내내 침묵 속에 앉아 있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이 때 제인 폰다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었다). 옛날에 둘이 함께 뉴욕에서 살 때 큰 연을 만들어 날렸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아버지의 분장사는 내게 그가 아버지를 분장할 때면 늘 아버지가 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