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마”



어머니는 공기다. 늘 사방에 가득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살지만 없으면 못 사는 대기다. 11일이 어머니날인데 그가 곁에 없으니 산소가 모자라는 듯이 가슴이 막힌다. 4일 예배시간에 찬송가 ‘나의 사랑하는 책’을 부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나의 어머니도 나를 어릴 적에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쓰다듬어 주셨다. 그 모습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자기 무릎 위에 앉혀놓고 포옹하듯이 성스러운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성모다.
육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할지 모르나 내성이 강하기론 남자가 여자를 쉽게 못 따른다. 난 늘 여자가 남자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여자의 근본인 모성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구태여 이름이 없어도 좋다.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이 퓰리처상을 받은 ‘분노의 포도’의 조드 일가의 기둥인 어머니도 이름이 없다. 그냥 ‘마’(Ma)다. 글에서 마는 덩지가 크고 뚱뚱한 여자로 묘사되는데 마는 그 몸집만큼이나 결단력이 강하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자다.
경제공황시대 오클라호마의 농토를 잃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캘리포니아로 고물차를 타고 온 가족이 남부여대해 이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상주의자인 탐이다. 그러나 온갖 난관 하에서도 막상 이 ‘오키즈’ 대가족을 결집시키는 초석이자 뿌리는 마다.
마의 모습은 존 포드가 감독한 동명영화에서 제인 다웰에 의해 강하면서도 인자한 구원의 어머니상으로 성스럽게 묘사된다. 정든 땅을 떠나기 전 회한이 가득한 표정의 마가 때가 잔뜩 묻은 거울을 보면서 고이 간직해 두었던 귀고리를 양쪽 귀에 대어보는 장면(사진)에서 미국 민요 ‘홍하의 골짜기’가 흘러나온다. 강렬한 장면으로 다웰이 마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포드는 감독상을 받았다.
마는 불굴의 인간 혼을 지닌 여자로 그의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내성이야말로 모성의 또 다른 형상이다. 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 올 거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 누구도 우리를 쓸어버릴 수 없어. 누구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어. 우리는 영원히 나아갈 거야. 우리가 사람들이지.” 이런 말은 9개월간 체내에 생명을 잉태했다가 고통 끝에 피붙이를 토해낸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은 멜로드라마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드라마 ‘스텔라 달라스’가 그 대표작이다. 바바라 스탠윅이 열연하는 이 신파극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 없이는 못 본다. 우리 어머니도 스텔라 달라스 못지 않으셨다.
조운 크로포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밀드레드 피어스’도 가정주부에서 웨이트리스를 거쳐 식당 주인으로 성공하기까지 죽을 고생을 하면서 딸(앤 블라이스)을 키우는 어머니의 악착같은 생활력과 모성애를 그린 영화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딸이 어머니의 애인을 가로채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이 밖에도 라나 터나가 주연하는 ‘인생의 모방’과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 ‘애정의 조건’ 및 ‘조이 럭 클럽’ 등도 좋은 모정에 관한 영화들이다. 한국 어머니들도 외국 어머니 못지않게 모성애가 강해 김혜자는 ‘마더’에서 살인범인 외아들의 죄를 감추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김혜자의 연기가 뛰어나 LA영화 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최우수여우로 뽑혀 본인이 상 받으러 LA까지 왔었다. 홀어머니의 외아들 사랑이 꼭 역시 혼자이셨던 우리 어머니의 외아들인 나에 대한 사랑 같아서 난 영화를 보면서 남 다른 감회에 젖었었다.
죽어가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들의 얘기를 감정 가득히 그린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은 영적이요 심오한 모자관계의 드라마로 촬영이 몽환적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아들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나쁜 엄마도 있다.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것이 페이 더나웨이가 나온 ‘마미 디어리스트.’ 할리웃 황금기 수퍼스타였던 조운 크로포드와 그의 양녀 크리스티나의 실화로 크로포드가 어린 딸을 철사 옷걸이로 패는 장면이 유명하다.
11일에는 제리 베일이 부르는 ‘포 마마’(For Mama)라도 들어야겠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눈은 젖어요. 우리가 ‘아베 마리아’를 부르는 것을 듣기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하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날 위해 해주신 것에 비하면 그것은 여전히 너무 작은 것 같아요”라며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해피 마더스 데이!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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