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5월 19일 월요일

지붕 위의 도둑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다이아몬드바와 샌개브리엘 등 LA 주변 도시들을 돌면서 심야 은행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고 속의 수천만달러어치의 현찰과 귀금속을 턴 5인조가 체포돼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고 LA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은행강도하면 바니와 클라이드처럼 총을 들고 대낮에 정문을 통해 들어가 돈을 터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 5인조는 한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은행 지붕을 뚫고 들어가 금고를 말짱히 비워 경찰도 희귀범들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3년간 모두 8개의 은행을 턴 5인조의 첫 범행은 2011년 8월 로랜하이츠의 이스트웨스트 뱅크에서 감행됐다. 이들은 100만달러의 은행 현찰과 65개의 세이프티 디파짓박스 안의 1,400만달러어치의 현찰과 귀금속 등을 털어 달아났다.
마치 ‘오션의 11인’과 ‘분노의 질주’의 털이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범행은 치밀하고 주도면밀했다. 5인조는 한 달간 낮에는 범행목표 은행의 고객행세를 하며 은행내부를 관찰한 뒤 밤에도 은행과 주변의 보안체계를 체크했다.
이들의 털이도구는 총과 칼 대신 사다리와 지붕수리 재료 및 드릴. 이것들을 사용해 은행 지붕을 뚫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시간. 그런데 5인조는 지붕을 뚫고 나서도 은행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뚫은 곳을 다시 덮고 일단 철수했다. 공중에서 봤을 때 지붕의 이상이 발견되는지를 탐지하기 위해서였다.  
5인조의 두 번째 범행은 2012년 9월 다이아몬드바의 BBCN 은행에서 벌어졌다. 43만달러의 은행 현찰과 60개의 세이프티 디파짓박스에 담긴 200만달러 상당의 현찰과 귀금속 등이 털렸다. 경찰에 의하면 5인조는 턴 돈으로 고급차와 보트와 1950년대 산 동페리뇽을 즐겼고 베이가스에서 도박으로 6만달러를 날리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을 수사하던 경찰이 획득한 결정적 단서는 5인조가 BBCN 은행을 털 때 남기고 간 워키토키의 뒤 뚜껑. 여기서 범인들 중 1명의 DNA가 채취됐고 그 후 경찰은 이것을 단서로 5인조를 24시간 감시하고 미행하다가 2013년 4월 이들이 다이아몬드바의 시티뱅크를 턴 뒤 체포했다. 그런데 이들이 턴 돈 중 상당액이 아직 회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5인조처럼 지붕은 아니지만 위에서 아래로 뚫고 내려가 금고 속 거액의 보석을 턴 4인조의 범행을 숨이 막힐 정도로 스릴과 서스펜스 가득하게 묘사한 영화가 프랑스산 흑백 ‘리피피’(Rififiㆍ1955ㆍ사진)다. 이 영화는 중절모에 코트 깃을 올린 채 냉정하게 범행하는 전형적 프랑스 갱스터들의 에누리 없이 사실적인 ‘하이스트 무비’(털이영화)다.
매카시즘을 피해 유럽으로 도주한 미국 감독 줄스 댓신의 스릴러이자 멜로물로 대신은 영화에서 4인조 중 한 명으로 나오기도 한다. 대신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원작은 오귀스트 르 브르통의 베스트셀러 소설인데 ‘리피피’는 프랑스 암흑가의 라이벌 갱 간의 적의를 말하는 은어다.
5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옥한 토니(장 세르베-프랑스의 코주부 명우로 역시 갱스터 영화에 많이 나온 장 가뱅만큼이나 얇은 입술을 가졌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범죄자. 기침을 하면서도 줄담배를 태우는 토니는 자기 아들 처럼 아끼는 조와 그의 친구 마리오의 권유에 따라 파리 시내 번화가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다. 이들에게 합류하는 것이 이탈리아서 온 금고털이 전문의 세자르(댓신).
4인조는 ‘소방서보다 더 경보장치가 많은’ 보석상을 털기 위해 사전 치밀한 계획을 짜고 현장답사를 한다. 그리고 경보기 소리를 약하게 하는 도구로 소화기를 선택한다. 이어 이 영화가 절도영화의 금자탑으로 불리게 된 장면이 연출된다.
4인조는 보석상 2층의 보석상 주인 아파트에 침입, 마룻바닥을 드릴로 뚫기 시작한다. 드릴 외에 밧줄과 우산이 범행도구로 사용된다. 마침내 구멍이 뚫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30여분. 댓신은 이 30분간 일체 대사와 배경음악을 배제하고 범인들의 움직이는 소리와 마루와 금고를 뚫는 소리만 살리면서 가끔 일당의 땀 밴 얼굴을 클로스업으로 잡는다.
관객은 거의 정적 속에서 진행되는 30분간 4인조와 공범이 돼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하는 범인들의 작업 모습을 숨 죽여 목격하게 된다. 이들이 훔친 보석의 총 시가는 2억여프랑.
그러나 이 털이가 토니일당의 행위임을 확신한 토니의 라이벌로 몽마르트르에서 ‘황금시대’ 클럽을 경영하는 피에르와 그의 일당이 보석에 탐을 내면서 양측 간 살육전이 일어나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늦가을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속살을 드러낸 음울한 파리의 번화가와 뒷골목이 스산하게 아름다운 도시에 바치는 염세적 교향시와도 같은 영화다. 이와 함께 못 잊을 것은 세르베의 연기. 피곤과 우수에 절은 주름 패인 얼굴에 죽은 자의 독백을 듣는 듯한 음성을 내는 그의 체념적 연기는 장엄미마저 띠고 있다. ‘범죄 미학’이라 부를 만한 영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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