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희망의 건너편’(The Other Side of Hope)


발데마르(앉은 사람 중 오른쪽)가 할레드에게 수프를 대접하고 있다. 뒤는 종업원들.


난민 소재 인간성·유머 조화 미니멀리즘의 극치


시치미 뚝 뗀 바싹 마른 블랙 코미디의 장인 핀란드의 아키 카리우스마키의 인간성 가득하고 배꼽 빠지게끔 우스운 영화로 연기와 표정과 세트를 비롯해 대사에 이르기까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감독은 현재 유럽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난민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으로 해부하면서 아울러 드라이 아이스처럼 건조한 유머를 섞어 정치와 인간관계 코미디를 잘 조화시킨 재미 만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헬싱키의 우중충한 공업지대 항구에 도착한 석탄화물선에서 밀항자 시리아 난민 할레드(셰르완 하지)가 내린다. 그는 곧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망명신청을 한다. 중년의 셔츠세일즈맨 발데마르 비크스트룀(사카리 쿠스마넨)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내를 버리고 가출한 뒤 재고를 청산한 돈으로 거액의 불법 도박판에 가서 엄청난 돈을 딴다. 그리고 이 돈으로 망해가는 식당을 사고 거기에 딸린 세 명의 종업원도 고용한다. 
영화의 중심 내용은 할레드와 발데마르라는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핀란드의 난민정책을 둘러싼 관료주의의 맹점을 짓궂게 폭로하면서 아울러 식당의 장사와 종업원들의 모습을 비롯해 식당에 관한 얘기를 킬킬대고 웃게끔 묘사하고 있다.
할레드는 망명신청이 거부되자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발데마르를 만나게 되는데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마음은 인자한 발데마르에 의해 식당 종업원으로 고용된다. 발데마르가 할레드를 보는 눈길이 하필이면 왜 핀란드 같이 못 사는 곳에 왔느냐고 힐난하는 것 같다. 
할레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인 깡패들로부터 얻어터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피난길에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아 핀란드에 데려오려고 모든 고생을 참는다. 이를 기꺼이 돕는 사람이 발데마르와 수용소의 여직원. 감독은 인간의 선한 마음을 요란 떨지 않고 아름답게 드러내 보여준다. 
기 차게 우스운 것은 전통 핀란드 식당 영업이 부진하자 종업원들이 모두 일본식 복장을 한 스시집으로 바꾸고 손님을 맞는 장면. 연어가 떨어지자 소금에 절인 통조림 청어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접대하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할레드와 발데마르와 함께 세 명의 종업원들의 시종일관 표정 없는 연기가 황당무계한 코미디를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