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스파 나잇(Spa Night)


데이빗이 스파에서 몸을 씻고 있다.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시달리는 한인청년


LA 코리아타운에서 전형적인 한국인 스타일의 부모와 함께 사는 18세난 조용한 데이빗 조(조 서-올 선댄스 영화제서 연기상)의 세대 및 문화갈등과 함께 자신의 정체 추구를 담담하고 솔직하고 민감하며 또 가슴 아프게 그린 빼어난 작품이다. 그동안 코리아타운을 무대로 한 한국인 젊은이들의 영화는 더러 있었지만 이토록 통찰력 있고 모나지 않으면서 연민과 이해심 가득한 영화는 없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기대와 실망 그리고 동서양의 가치관의 차이와 함께 아메리칸 드림 문 밖에서 서성거리면서 자신의 좌표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드라마가 차분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진실되게 그려졌다. 
데이빗의 고뇌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심각한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이 영화는 순전한 게이영화는 아니다. 
한국계 앤드루 안(30) 감독(‘오피니언’면 ‘주말산책’ 참조)의 데뷔작으로 그의 서두르지 않고 자상하게 관조하는 식의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는데 그와 함께 조 서의 고요하면서도 안으로 팽팽하니 감긴 연기가 돋보인다. 이 얘기는 미국에 사는 모든 한국인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것이나 마찬가지로 전 코리안-아메리칸들이 봐야 할 작품이다. 
코리아타운에서 식당을 하다가 실패한 데이빗의 아버지 진(조연호)과 어머니 소영(김해리)은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좋은 대학(USC)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기독교를 믿는 한국 여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잘 살기를 바라지만 데이빗은 SAT 성적이 안 좋은 데다가 대학에 별 관심도 없다. 과묵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외톨이인 데이빗의 문제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 데이빗은 이를 억누르려고 안간힘을 쓰나 욕망은 용트림을 친다.
막일을 하면서 술에서 위안을 찾는 아버지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어머니가 데이빗을 비싼 SAT 과외학원에 집어넣자 데이빗은 부모를 돕는다고 스파의 일꾼으로 취직한다(영화는 스파에서 데이빗과 아버지가 서로 몸을 닦아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데이빗은 남자 손님들의 나체를 훔쳐보면서 죄의식과 욕망에 시달리는데 주인이 데이빗에게 스파에서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하라고 지시한다. 데이빗의 스파 안에서의 착잡한 표정과 훔쳐보는 눈길 그리고 어색한 행동에서 으스스한 분위기(촬영 김기진)가 스며나와 마치 스릴러를 보는 느낌이다. 
소영의 교회 지인인 수다쟁이 아주머니가 친절을 베푼다고 데이빗을 USC에 들어간 자기 아들 에디(태 송)과 함께 며칠을 보내게 하면서 데이빗은 술과 파티와 타운 노래방의 환락을 엿보게 되나 이런 것들이 데이빗이 시달리고 있는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위로해 주진 못한다. 데이빗의 고뇌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데 영화는 어떤 해결책을 내리지 못한 채 데이빗이 웨스턴 길을 따라 조깅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왜 데이빗은 그렇게 매일 같이 열심히 뛰는 것일까. 성인용. Strand.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돌주먹(Hands of Stone)


트레이너 레이(왼쪽)가 두란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4체급 세계 챔피언 권투선수 로베르토 두란 전기영화



권투영화인데 강펀치가 없다. 50년간의 선수생활을 통해 라이트급을 비롯해 미들급에 이르기까지 무려 4체급의 세계 챔피언을 차지했던 ‘돌주먹’이라는 별명의 파나마 권투선수 로베르토 두란(65)의 전기영화다.
주인공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주먹 하나로 역경을 극복하고 국민의 영웅이 되는 피와 땀의 승전보 그리고 승리에 도취한 방종과 몰락과 재기 및 로맨스 등 전기영화의 정석적인 궤도를 그대로 따라간 평범한 작품으로 강렬한 극적 높낮이가 결여됐으나 충분히 보고 즐길 만하다. 극적인 드라마로서 헤비급이 못 되고 라이트급에 그쳐 유감이지만.
영화는 특히 성질이 불같고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두란과 그를 챔피언으로 만들어준 전설적 코치 레이 아르셀(로버트 드 니로)과의 관계를 뚜렷이 부각시키는데 레이는 두란에게 ‘전략’을 강조하면서 침착성을 챙겨주는 코치이자 정으로 그를 감싸 안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드니로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가 나온 역시 권투선수 전기영화인 ‘성난 황소’(Raging Bull)가 생각난다. ‘돌주먹’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성난 황소’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가를 확인케 된다.
미국이 파나마운하를 관리하던 1970년대. 달동네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두란은 불량소년. 그의 미국인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을 버렸다. 영화는 제국주의적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묘사했다. 감독이 베네수엘라 태생의 조나산 자쿠보위즈여서 그럴까.
청년 두란(에드가 라미레스)은 가난하고 문맹이지만 콧대 하나는 높아 아름다운 고교 여학생 펠리시다드(아나 데 아르마스가 불덩이다)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구애를 하는데 만난지 30초만에 구혼하는 열혈한이다. 펠리시아드는 후에 두란의 아내가 되고 아이 여럿을 본 둘은 지금도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두란의 주먹실력을 먼저 간파한 사람은 파나마의 갑부로 두란의 매니저가 된 칼로스 엘레타(루벤 블라데스). 그러나 두란을 무려 18차례나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어준 사람은 72세에 처음 두란을 만난 레이다. 레이는 두란의 안에 가둔 굶주린 분노와 이를 분출할 주먹질을 잘 배합할 줄 안 뛰어난 트레이너. 두란과 레이의 콤비에 의해 두란은 연전연승을 하나 뉴욕 마피아(존 투투로가 조용하게 겁주는 연기를 잘 한다)가 개입하면서 레이는 트레이너직을 떠난다.
촬영이 훌륭하고 액션도 박진한 권투장면 중에서 볼만한 것은 두란과 슈가 레이 레너드(팝스타 어셔)의 대결. 레너드가 생애 처음으로 패한 경기다. 승리감에 취한 두란은 먹고 마시면서 방종한 생활을 하는데 엘레타가 미국인 흥행사 단 킹과 두 사람의 재대결을 5개월 후로 잡으면서 체중이 40파운드나 증가한 두란은 몰락한다. 1980년 11월25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경기에서 두란은 느닷없이 도중에 경기를 포기한다. 둘은 지금도 친구지간이다.
벗겨진 머리에 주름이 진 얼굴을 한 드 니로의 차분한 연기가 돋보이고 라미레스(TV 드라마 ‘칼로스’)의 연기도 강렬하다. 그러나 영화는 전반적으로 더러 허점이 있고 다소 절름거리는 연출로 매끈하게 흐르지를 못한다. PG-13. Weinstein.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파 나잇’의 앤드루 안




26일 개봉되는 ‘스파 나잇’(Spa Night-‘위크엔드’판 영화평 참조)에서 코리아타운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 확인과 함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18세난 데이빗 조(조 서)의 삶을 통해 이민가족의 꿈과 현실과 좌절을 차분하게 사실적으로 그린 앤드루 안(30·한국명 안기철·사진)을 최근 타운 내 한 식당에서 만났다. 어릴 때 주말 한글학교를 다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는 앤드루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영화에 대해 “내 영화는 무엇보다 가족 간의 사랑에 관한 것으로 각본을 쓸 때부터 그런 의도에서 썼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화의 상세한 면을 빼고는 대부분 내 경험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처럼 영화가 매우 솔직하다.
앤드루는 인터뷰 내내 부모 자랑과 함께 그들이 자기에게 베푼 사랑에 대한 보답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를 돕고 싶다고 거듭 말했는데 동성애자인 자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여준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히 느껴졌다.
2011년 선댄스 영화제서 단편 ‘돌’(첫 생일)로 호평을 받은 앤드루의 첫 장편인 ‘스파 나잇’도 선댄스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졌는데 앤드루는 “내 영화를 포함한 독립영화는 미국의 다양한 경험을 반영하는 문화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앤드루는 LA 인근 토랜스에서 성장했는데 타운서 한의원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비즈니스 컨설던트인 어머니도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여서 처음에는 자기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이젠 영화인이 된 것에 만족한다고. 자기 어머니도 데이빗의 어머니처럼 교회엘 나가는데 앤드루는 “부모님은 날 미 동부 뉴햄프셔에 있는 사립 중·고둥학교에 보낼 정도로 사랑했다”고 또 부모 자랑을 했다.
앤드루는 올 초 이 영화가 선댄스 영화제에 나갔을 때 처음엔 어떤 반응을 받을지 몰라 너무나 겁이 났다면서 그러나 조 서가 주연상을 받고 영화가 호평을 받으면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로 앤드루의 실력이 널리 알려져 그는 최근 굴지의 연예대행업체인 ICM과 계약을 맺었다. 다음 작품에 대해 물으니 ‘스파 나잇’보다는 규모가 큰 한국인 작가의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만 알려줬다.
영화 제목처럼 스파는 코리아타운의 상징물이 되다시피 했다고 말하는 앤드루는 자기도 타운 내 스파를 종종 찾는다면서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 영화는 자기가 부모와 함께 겪은 문화적 의식이요 가족의 전통을 묘사한 것이라면서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있어 나이 먹은 어른들이 다소 불편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영화는 모든 우리 이민가족의 실상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한국인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많은 관람을 당부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들은 서브타이틀을 빼고 보면 더 실감이 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파 나잇’은 지난 4월에 열린 전주영화제에서도 호응을 받았는데 8세 때 처음 한국을 방문한 앤드루의 22년만의 재방문이었다. 감동적인 방문으로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한다. 선댄스의 후원과 푼돈을 모아 만든 ‘스파 나잇’에서 데이빗의 부모 역을 맡은 두 배우는 한국 배우들. 앤드루의 열성과 진지성을 깨달아 조연호씨(아버지 역)와 김혜리(어머니 역)씨가 선선히 출연에 응해 LA까지 왔다. 모은 돈은 몽땅 제작비에 투입해 앤드루는 연출료는 고사하고 수중에 단 1페니도 지닌 것이 없다고 한다.
자신도 언젠가 가족을 갖고 싶다면서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 앤드루는 한국서 자란 한국 젊은이들보다 더 한국적이다. 소주를 마실 때 잔을 들고 얼굴을 옆으로 돌린채 마시기에 내가 “거 참 보기 드문 모습이네”라고 말했더니 앤드루는 “지금도 부모 앞에서 술 마시기가 매우 어렵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주인공 데이빗 역을 고르는데 무려 1년 이상이 걸렸는데 응모자 중에는 이름을 들면 알만한 한국계 배우도 있었지만 조 서를 보자마자 바로 ‘이 사람이다’하고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스포츠광인 조 서가 영화 촬영기간에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그의 조깅장면 중 일부는 대역을 써야 했다.      
보수적인 한국인 사회에서 게이라는 정체를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아는 앤드루는 그래서 영화에서 ‘한국인+게이’라는 두 가지의 정체를 결합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영화는 또 다분히 감정적이다. 앤드루는 특히 데이빗이 술에 취해 리빙룸 바닥에 누워 자는 아버지의 입에 물린 이쑤시개를 빼내는 장면이 마음에 간다고 말했는데 부자 간의 애정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이다.
한국인 감독으로는 이창동과 홍상수를 좋아한다는 앤드루는 브라운대에 이어 칼아츠에서 영화감독 석사학위를 받았고 선댄스랩에서 각본 수련을 받았다. 인터뷰 후 “좋은 앞날을 빈다”고 말하니 앤드루는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댕큐 베리 머치”라며 미소를 지었다.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벤-허(Ben-Hur)


주다 벤-허(앞)와 메살라가 전차경기를 하고 있다.

도대체 왜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도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대량으로 축소된 내용과 연출 그리고 연기 및 액션과 감정 등 모든 면에서 볼품 없는 영화다. 명화에 개칠을 한 것 같은 오명을 뒤집어쓸 작품으로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전차경주 장면도 컴퓨터로 처리했는데 지나치게 빠르게 편집을 한데다가 전체적인 장관을 보여주기 보다는 클로스-업에 치중, 흥분이 안 된다. 
루 월래스가 남북전쟁 후 쓴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벤-허’는 1925년 라몬 나바로가 주연한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스펙태클한 대하 서사극으로 다시 만들어져 오스카상을 11개나 탔다. 이 두 영화에 비하면 카자크스탄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2008년작 ‘원티드’)가 만든 이 영화는 외양과 내용 모든 면에서 왜소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는 마치 기독교 TV 방송사에서 만든 영화 같다. 전편에서는 예수가 얼굴이나 음성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예수(브라질 배우 로드리고 산토로)의 역할 비중이 막강하다. 그가 재판 끝에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를 향해 걷고 이어 처형 당하면서 고통하는 모습과 음성이 뚜렷이 부각되는데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동과 은밀한 뉘앙스 등 여러 가지로 와일러의 작품에 접근하지 못할 영화다. 도대체 왜 그리고 무슨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여러 면에서 수정했는데 만든 사람들에 의하면 와일러의 것이 배신과 증오와 복수의 영화라면 이것은 화해와 용서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터무니가 없는 내용 변경이어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기원 후 25년. 유대인 귀족인 주다 벤-허(잭 휴스턴-거장 존 휴스턴의 손자)와 로마인인 메살라(토비 케벨)는 친형제와 같은 사이. 메살라가 벤-허 가문의 양자로 컸다. 그리고 메살라는 벤-허의 여동생 네이오미(에이엘레 주로)를 사랑한다. 후에 로마로 가서 장군이 돼 정복자로서 유대 땅으로 돌아온 메살라가 벤-허와 원수가 된 까닭은 네이오미와의 결합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
메살라에 의해 노예가 된 벤-허는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신세가 되는데 거기서 살아 남아 경주마의 주인인 아프리카-아랍계 일데림(모간 프리만)을 만나 그의 4필의 백마를 몰게 된다. 그리고 메살라와 전차경주에서 맞서는데. 와일러의 영화나 이 영화나 모두 전차경주 장면은 10분 정도 계속되는데 전자에 비해 이것은 긴강감이나 박력 그리고 스릴이 훨씬 미약하다. 
와일러의 것은 상영시간이 212분이었고 이것은 124분이어서 많은 얘기가 생략됐는데 배우들이 연기도 표현에 높낮이가 없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음악. 와일러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로 클래식인데 이 영화는 마지막 크레딧 부분에서 팝뮤직을 썼다. PG-13. Paramoun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의 개들(War Dogs)


데이빗(왼쪽)과 에프라임이 무기를 싣고 바그다드에 왔다.

무기 팔아 부자 됐다가 몰락하는 두 젊은이


사기를 쳐 빈자에서 벼락부자가 됐다가 다시 몰락하는 두 젊은이들의 액션과 코믹 터치를 가미한 드라마로 실화다. 제목은 전쟁통에 무기를 팔아먹어 돈을 번 모리배를 일컫는 말이다. ‘행오버’를 감독한 타드 필립스(공동 각본)가 연출한 이 영화는 조야하고 상스럽고 시끄럽고 또 우스운 삐딱한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풍자적 요소가 담긴 재미있는 얘기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조나 힐의 에너지가 넘치는 미치광이 같은 행동과 대사가 일품으로 겁 없이 목적을 위해 투우처럼 달려드는 그가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사방팔방에서 교차로로 진입하는 교통혼잡과도 같은 작품으로 날탕과도 같은 두 젊은이의 사기에 놀아난 관료체제를 신나게 조소하고 있기도 하다.
마사지사로 플로리다에서 애인과 함께 사는 20대의 데이빗(마일스 텔러)은 지극히 무미건조한 젊은이. 그가 오래간만에 어렸을 때의 친구 에프라임(조나 힐)을 만나면서 데이빗의 따분한 삶이 완전히 바뀐다. 뚱보 에프라임은 입이 걸고 마약을 즐기는 한탕주의자요 총기 숭배자로 그의 롤모델은 영화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
이라크전쟁 중에 무기를 군납해 돈을 벌 아이디어를 가진 에프라임은 이판사판인 데이빗을 조수로 써 먼저 CIA에 무기를 납품해 상당한 이득을 본다. 때는 정부가 모든 군납업자들에게 기회를 주었을 때여서 에프라임과 데이빗은 모든 군납업자의 내역이 공개된 정부의 웹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남보다 싼 값으로 군납신청을 한다. 
그래서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 대량의 총기를 팔아 큰 돈을 번다. 그러나 이 계약이 성사되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은데 둘은 이를 위해 요르단까지 가서 총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바그다드까지 위험한 길을 달린다. 이 부분이 긴장감과 스릴 있다. 
둘은 이제 사무실까지 차리고 직원도 고용한 번듯한 회사 사장 노릇을 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베가스에서 열리는 무기 엑스포에 참가한다. 이들 앞에 군납업자 면허를 박탈당한 멋쟁이(브래들리 쿠퍼)가 나타나 큰 건이 있다고 동업 제의를 한다. 알바니아에 남아 있는 냉전시대 소련제 무기들을 사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는 것. 3억달러짜리 장사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힐이 하도 설쳐 대서 그런지 연기파인 텔러가 기를 못 쓴다. 
R. WB.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영화




최근 블락버스터와 인디즈(독립영화)를 포함해 한국영화 9편을 봤다. 대부분 보고 즐길만한 수준급 영화들로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 바로 이거다”하고 속 깊이 감동할만한 예술성과 재미를 절묘하게 혼합한 영화는 없다.
현재 코리아타운의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부산행’(Train to Busan^사진)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본 좀비영화. 어린 딸과 함께 별거중인 아내를 만나려고 서울발 부산행 특급열차에 탄 아버지(공유)와 승객들이 좀비의 습격을 받는 공포액션스릴러다. 좀비영화치곤 감정적인 면과 함께 한국의 사회현상을 비판한 메시지도 있는데 기술과 연기도 좋다. 연상호감독.
역시 현재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한 한국군 특공대(대장 역 이정재)의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첩보전 액션스릴러다. 한국사람들은 신파를 좋아해 이 영화도 액션에 감상적인 부분을 섞었는데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즐길만하다.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은 순전히 양념 구실. 이재한감독.
일제시대가 배경인 ‘아가씨’(The Handmaiden)는 폭력적인 박찬욱감독의 작품. 사기꾼 일당의 일원인 숙희(김태리)가 선배사기꾼 ‘백작’(하정우)과 짜고 상속녀 아가씨(김민희)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드라마다.
칸영화제서 상을 받은 미술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와 프로덕션 디자인 및 연기 등 외적으로는 훌륭한 영화다. 이 호기심용 오락영화의 문제는 박감독의 잔인성. 오래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내게 자신의 내면이 어둡다고 말한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그랬듯이 영화에서 툭하면 손가락을 자르는데 여기서도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고 드릴로 손을 꿰뚫는 가학성을 노출한다. 또 숙희와 아가씨의 전라의 노골적인 섹스신도 너무 길다. 인물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어대사가 많아 외국인들이 보면 일본영화로 착각할 우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중인 ‘덕혜옹주’(The Last Princess)는 고종의 딸로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간 덕혜옹주(손예진)를 조국으로 탈출시키려는 반일투사들의 서스펜스액션스릴러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덕혜옹주와 역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영친왕의 탈출시도를 둘러싼 허구인데 액션과 스릴 위주의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생각이 들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허진호감독.
‘철원일기’(End of Winter)는 촬영, 대사, 연기 및 내용과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한 독립영화. 평생을 철원의 고교교사로 재직한 남자(문창길)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 있은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하면서 일어나는 삐딱한 가족드라마다. 지나치게 예술적이요 독립영화의 티를 내려고 한 흔적이 역력해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대환감독.
‘4등’(4th Place)은 자식의 성취도에 지나치게 집념하는 어머니(이항나)와 어린 아들 준호(유재상) 그리고 준호의 괴짜 수영코치(박해준)에 관한 드라마. 1등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비판한 영화로 유재상이 침착하게 호연한다. 자식이 1등하기만을 고대하는 모든 한국인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보기를 권한다. 정지우감독.
‘계춘할망’(Canola)은 연기와 내용이 다 좋은 아담하고 소박한 영화. 제주도해녀 계춘(윤여정이 다양한 표정연기를 잘 한다)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잃어버린지 12년만에 되찾는다. 왜 혜지는 12년만에 할망(제주도방언으로 할머니)을 찾아 왔을까. 그리고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다시 사라진다. 끝 부분까지 잘 나가던 영화의 결점은 사족이나 다름없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요 긴 결말. 창감독.
‘우리들’(The World of Us)은 아동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섬세하고 민감한 작품. 외톨이 선(최수인)과 선의 유일한 친구인 지아(설혜인)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동심의 미묘한 심리지도를 곱고 자애롭게 그렸는데 최수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윤가은감독.
그러나 이란의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인 ‘친구집이 어디지’ ‘천국의 아이들’ ‘하얀풍선’ 등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모자란다.        
공상과학영화 스타일의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는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생선이 된 청년(이광수)을 통해 청년실업, 금전만능주의, 학벌위주, 편파적인 언론, 사법부의 비리 및 촛불시위와 소외계층의 실상 등 한국사회의 모든 비리를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영화. 보통을 낙오로 취급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한국의 병폐를 고발했는데 재미있고 의미도 있으나 비판의식이 지나쳐 체하겠다. 권오강감독.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


젠킨스 부인이 카네기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재능 없지만 오페라 가수 꿈꾸는 젠킨스의 실화영화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는 실화로 1940년대 음치에 가까운 맨해턴 사교계 여자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가 자신이 오페라 가수의 실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뮤지컬 소극이다. 상냥하고 우습고 재미있고 기이한 내용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즐길 만한 영화이나 다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심심하기까지 하다.         
헬렌 미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여왕’을 만든 영국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작품으로 영국에서 찍었는데 영화가 양념이 덜 된 무공해 식품처럼 맵고 짜고 신 맛이 없어 자극성을 못 느끼겠다. 이 내용은 카트린 프로를 주연으로 지난 2015년 시간과 장소를 1920년대 파리로 옮겨 ‘마게리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프랑스제가 영국제보다 감칠맛이 더 난다. 
부잣집 상속녀로 오페라광인 젠킨스 부인(메릴 스트립)은 자신이 직접 ‘베르디클럽’이라는 음악 사교모임을 만들어 회원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데다가 노래 소리가 비명처럼 찢어지는 듯해 듣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라는 것. 제스처도 아주 어색하고 서투르다. 그러나 회원들은 박수를 친다. 일종의 희귀성에 대한 찬양이다.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등의 노래를 마치 군인이 적을 공격하듯이 무찌르고 들어가는데 젠킨스를 철저히 보호하고 극진히 돌보는 사람이 그녀의 두 번째 남편으로 실패한 영국인 배우 세인트 클레어 베이필드(휴 그랜트). 그러나 둘은 동거를 하지 않는 형식상의 부부로 베이필드에겐 따로 애인 캐슬린(레베카 퍼거슨)이 있다.
천사의 깃털 날개와 함께 머리를 티아라로 장식하길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젠킨스는 소규모의 클럽회원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원대한 꿈인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맹훈련에 들어가면서 피아노 반주자를 고른다. 많은 후보 중에 낙점된 사람이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적인 젊은 코스메 맥문(사이먼 헬버그). 
맥문은 젠킨스의 노래를 듣고 아연실색하는데 보수가 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반주자 노릇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구겨질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이래서 젠킨스와 베이필드와 맥문 등 셋의 젠킨스 카네기홀 무대진출 작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마침내 1944년 카네기홀 리사이틀이 결정됐다. 많은 표가 2차 대전에서 귀향한 군인들에게 제공됐지만 소프라노 릴리 폰스 등 프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도 참석한다. 젠킨스의 비명소리에 많은 군인들은 야유를 보내나 일부는 격려의 박수를 친다. 그러나 이튿날 평론은 가혹하기 짝이 없고 그 때까지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몰랐던 젠킨스는 크게 낙망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젠킨스는 리사이틀 후 1달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젠킨스는 첫 남편으로부터 전염된 매독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 이 병이 그녀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념하는 순수한 사람의 꿈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기도 한데 스트립이야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하고 오래간만에 보는 그랜트도 매력이 있다. 그러나 상감은 맥문의 연기. 그가 말 대신 얼굴로 표현하는 젠킨스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일품이다. 코미디치곤 농담이 신선치 못하다. PG-13.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


형제인 토비(오른쪽)와 태너는 은행빚을 갚기 위해 은행을 턴다

현대판 웨스턴 은행강도 스릴러 액션 드라마


액션과 인물 개발, 광활하고 쓸쓸한 모습의 자연풍경 그리고 비가조의 음악과 뛰어난 연기와 탄탄이 조여진 연출로 만들어진 현대판 웨스턴 은행강도 스릴러로 오래간만에 보는 준수한 액션 드라마다. 
그나마 남아 있다가 은행 개발과 같은 현대의 병해로 인해 멸종되어 가는 옛 서부시대의 정취를 그리워하고 비탄해 하는 만가이기도 한데 급작스럽고 작열하는 액션과 게으름을 피우다시피 하는 인물 간의 유머와 조롱기가 섞인 대사와 관계 그리고 형제애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역작이다.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로 강도질을 할 수밖에 없게 된 형제와 은행 빚에 쪼들리다 못해 차압위기에 놓인 쓸모없이 된 목장 그리고 형제를 쫓는 법집행자들 모두에 대해 연민과 이해심이 가득한 심정으로 관조하고 있다. 
텍사스 서부의 황무지가 되다시피 한 목장을 소유한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는 형제. 이혼한 두 아들의 아버지 토비는 침착하고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인 반면 1년 전에 출옥한 태너는 무모하고 폭력적이요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들의 목장은 차압위기에 놓였는데 영화는 은행을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로 그렸다.
토비는 목장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은행빚을 갚기 위해 태너와 함께 은행강도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 작은 마을의 은행을 터는데 현찰도 단위가 작은 것만 가져간다. 은행 문이 채 안 열려 기다렸다가 강도질을 하는 것을 비롯해 폭력적인 범죄에 유머를 덧칠했다. 이들은 여러 탕 강도질을 한 뒤 돈세탁을 위해 오클라호마의 아메리칸 인디언 카지노에 들러 일단 돈을 칩으로 바꿨다가 이를 다시 현찰로 교환한다. 
둘을 쫓는 것이 은퇴를 앞둔 나이 먹은 텍사스 레인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와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피가 섞인 마커스의 부하 알베르토(길 버밍햄). 강도질과 도주와 추격과 총격전이 생동감과 함께 신선하고 박력 있다.
이런 폭력 속에 토비와 태너 그리고 마커스와 알베르토의 인간관계와 대사가 진지하고 심도 있게 묘사되고 얘기되는데 유머 또한 넉넉하다. 특히 마커스가 알베르토를 상대로 하는 말 속에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조롱과 농담이 섞여 있는데 악의적이라기보다 사라져버린 서부와 용맹한 인디언을 그리워하고 있는 여운이 담겨 있다. 강도질도 마치 제시 제임스의 그것처럼 거의 미화하다시피 했다. 
폐허가 된 서부 광야와 목장과 사람들이 버린 집들이 즐비한 동네의 모습을 넓은 각도로 찍은 촬영이 보기 좋다. 뛰어난 것은 연기들이다. 파인의 차분한 연기와 꽉 조였다가 폭죽 터지는 것 같은 포스터의 연기와 콤비가 나무랄 데 없이 좋고 특히 노련한 브리지스의 체념과 예지와 고독이 가득한 모습과 나태한 태도가 그가 몸 담은 사라져가는 서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향수감이 가득하다. 데이빗 맥켄지 감독. R. CBS Films.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로이라인 킴치




얼마 전 지금 독일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독일인 동료 엘마 비블로부터 e-메일이 날아왔다. 지금 베를린에서는 김치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데 네 칼럼에 그 얘기를 쓰면 어떻겠느냐면서 자기가 한국식당 ‘프로이라인 킴치’(Fraulein Kimchi·사진) 앞에서 목격한 경험담과 함께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한 독일인 노부부가 ‘프로이라인 킴치’ 앞에서 나누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인이 한다는 소리가 “저것 봐요. 저 여자 이름이 킴치네. 참 예쁜 이름이기도 하지”라고 하더라는 것. 물론 이 부부는 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 이 말을 옆에서 들은 다른 독일인 부부가 이 노부부에게 김치에 대해 자상히 설명해 주면서 ‘코리안 자우어크라우트’인 김치가 독일에서 날이 갈수록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엘마는 독일에서 ‘킴칠리셔스’(김치와 영어로 맛있다는 뜻의 딜리셔스의 합성어)라는 말까지 생겼다면서 자기도 김치 팬이라고 부언했다. 물론이다. 내가 엘마를 데리고 코리아타운의 한국식당에 데려가 갈비와 함께 김치를 먹였으니까.
그래서 엘마가 가르쳐준 대로 컴퓨터로 자료를 찾아보니 베를린 김치열풍의 주인공은 한국인 로렌 리씨. 한국에서 태어나 토론토와 LA에서 성장, 지난 2007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로렌씨는 8세 때부터 요리하기를 시작했는데 이모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지금 로렌씨는 베를린에서 가장 뜨거운 각광을 받고 있는 새 셰프 중 하나로 김치뿐만 아니라 한국과 독일과 캘리포니아 요리를 혼합한 음식으로 베를린 시민들의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로렌씨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김치 아가씨’인 ‘프로이라인 킴치’로 로렌씨는 식당 경영 외에도 김치요리 강좌에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하면서 독일에 김치 맛을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TV와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도 로렌씨가 만든 ‘킴치 라멘버거’를 비롯해 그녀의 김치요리를 보도하면서 김치는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식이어서 더 좋다고 칭찬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전 세계 외국인들로 구성된 HFPA의 동료기자들에게 김치에 대한 소감을 물어봤다.
‘난 전에 코리아타운에 살아서 김치를 꽤나 많이 먹어 봤다. 처음 먹었을 때 느낀 새콤한 맛이 좋아서 이젠 코리아타운에 가기만 하면 김치를 찾게 된다. 한국하면 김치부터 생각난다.’(티나 크리스튼슨-덴마크)
‘난 한국 김치를 사랑한다! 내게 매운 김치를 제공하던 한국인 이웃이 최근에 이사를 해 이젠 내가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김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효식품으로 타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오드 모리스-노르웨이)
‘김치는 오랫동안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왔다. 쌀밥 위에 김치만 있으면 다른 음식 필요 없지.’(유끼꼬 나까지마-일본).
‘난 김치를 사랑해. 먹을수록 자꾸 더 먹고 싶게 만들어요.’(재넷 네팔레스-필리핀)
‘난 부산영화제에 갔을 때 김치를 맛본 좋은 경험이 있다. 비록 한국인들과 다른 입맛을 지녔지만 김치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으면 기운을 넘치게 만드는 한국 음식만의 특성을 지닌 맛 좋은 요리다.’(세르게이 라클린-러시아).
‘난 코리안 바비큐를 좋아하는데 김치 없인 먹을 수가 없지.’(메헤르 타트나-인도)
‘난 김치를 존경한다. 그것이야말로 전 세계가 알아야 할 음식이다. 맛있고 채소로 만든 부드러운 건강식으로 무슨 음식과 같이 먹어도 잘 어울린다. 불고기와 김치는 나의 새 집념으로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루이 코임브라-포르투갈).
그런데 팔레스타인계 유대인인 샘 아시는 내게 “김치가 뭐지”라고 되물어왔다. 무식한 친구 같으니라구.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HFPA 동료기자들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 갔다 온 맷 데이먼도 기자회견에서 내게 “서울에서 김치 잘 먹었다”고 말했고 최근 한국인 부인과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니콜라스 케이지도 “엄마”(장모)가 해주는 김치를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알려줬었다. 그런데 한국사람 하고 살면서도 김치를 안 먹는 사람이 우디 알렌이다. 우디는 기자회견서 내게 “난 김치가 너무 매워 안 먹는다. 그러나 내 아내 순이와 아이들은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치는 종류도 많다. 배추김치, 무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나박김치, 백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보쌈김치, 부추김치, 동치미, 고들빼기 등 외에도 수십가지에 이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옛날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김장을 담그면서 만들어주던 김장 속을 담은 소금에 절인 배추다.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맵고 얼큰한 그 맛이야말로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에서 군침이 절로 흐른다.
피코 블러버드에 있는 추어탕집에 들어가니 벽에 ‘김치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써 붙여져 있다. 그렇다. 김치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다. 모두들 많이 먹고 건강하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9일 화요일

자살 특공대(Suicide Squad)


자살 특공대원들은 7,000년 묵은 마녀와 싸운다.

흉악범들로 조직된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액션


필자가 보기엔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소음과 파괴와 혼란의 난장판인데 이런 만화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극장을 찾아 떼로 몰려들어 엄청나게 돈을 벌 것이다. DC 코믹스의 만화를 워너 브라더스가 떼돈을 들여 만든 올스타 캐스트의 환상이나 다름 없는 액션영화로 너무 나오는 인물들이 많아 머리가 다 어지럽다. 
철저한 혼돈과 무질서의 영화로 때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얘기가 빈약하고 방향감각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다중 충돌사고를 일으킨 교차로에 서있는 느낌이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다소 긴 서막 부분은 그런대로 재치 있고 앞으로의 얘기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곧 이어 얘기가 참신성을 잃고 진부한 만화 액션영화로 전락한다. 독창성 대신 얄팍한 재주와 우스갯소리 그리고 막무가내식의 액션에 의존한 영화로 보고 있자니 사람 피곤해진다. 많은 액션이 밤에 일어나는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매우 어둡다. 
미국 정부의 고지식한 고위관리 애만다 월러(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는 정체불명의 막강한 힘을 지닌 적을 타도하기 위해 독방에 수감된 흉악범들을 규합해 특공대를 조직한다. 이들은 백발백중의 저격수 데드샷(윌 스미스)와 야구방망이로 사람 잡는 짙은 화장을 한 심리학자 출신의 할리 퀸(마고 로비) 그리고 손에서 불길이 치솟는 디아블로(제이 허난데즈). 이들 외에 부머랭을 무기로 쓰는 부머랭(제이 코트니)과 아무데나 기어오르는 슬립낫(애담 비치)과 사무라이 칼을 휘두르는 눈가리개를 한 여자 닌자 카타나(카렌 후쿠하라) 및 악어얼굴을 한 돌연변이 킬러 크락 등 특공대는 총 9명. 전자 4명을 뺀 나머지는 장식용이다. 
이들과 국가의 적이 싸우는 것이 내용인데 영화의 또 다른 결점은 이 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저 막연히 사악한 존재라고만 설명이 돼 너무나 인간적인 자살 특공대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사악한 적의 우두머리는 7,000년 묵은 마녀인데 혼이 현재의 과학자인 준 문(카라 델레비비뉴) 속에 들어가 준을 조종한다. 그런데 마녀의 심장은 애만다가 보유하고 있어 애만다는 준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가 있다. 이런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가.
무슨 소리인지 또 왜 그런지는 알 바 없으나 준의 애인은 자살 특공대를 지휘하는 릭 플랙 대령(조엘 킨나맨). 여기다 한 수 더 뜬 재미있는 한 쌍은 할리와 그녀의 애인 조커(재레드 레이토). 할리는 조커를 치료하다가 그의 매력에 사로잡혀 애인이 됐다. 
그나마 영화에서 보기 생기 있고 보고 즐길 만한 것은 금속이빨에 푸른 머리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칠한 조커와 거리의 여인 같은 조커의 애인 할리의 관계. 조커는 무미건조한 영화에 충격을 주기 위해 동원된 일종의 게스트 스타다. 어둡게 변칙적이요 파괴적이면서 아울러 유머를 겸한 멋지고 재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를 조막손으로 다루다시피 해 타작에 그치고 말았다. 뱃맨(벤 애플렉)도 잠깐 나온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미녀가 야수가 차려준 만찬상 앞에 앉아 있다.

장 콕토가 1946년에 만든 흑백 로맨틱 환상영화


오스카 음악과 주제가상을 탄 디즈니의 동명 만하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동화를 원작으로 다재다능한 예술인 장 콕토가 1946년에 만든 흑백 로맨틱 환상영화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꿈과도 같은 작품으로 보고 있으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승천하는 기분에 빠지게 된다.
몰락한 상인이 가운을 되일으키려고 장사의 길을 떠날 때 그의 세 딸 중 탐욕스런 나이 먹은 두 딸은 아버지에게 비싼 선물을 요구하나 착한 막내 뷰티(조젯 데이)는 장미 한 송이만을 원한다. 일이 뜻대로 안 돼 낙심해 귀가하던 상인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한 신비한 성에서 하룻밤을 묵게된다.
이튿날 성을 떠나기 전 상인이 뷰티를 위해 뜰의 장미 한 송이를 따자 그의 앞에 사자얼굴을 한 야수(장 마레)가 나타나 상인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로부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뷰티는 아버지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고 야수에게로 간다.
뷰티의 아름다움과 착한 마음에 감동한 야수는 뷰티에게 청혼을 하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뷰티는 점차 야수의 흉측한 모습 안에 따뜻한 마음이 있음을 느끼면서 그에게 끌린다. 그리고 야수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게 해달라는 뷰티의 청을 받아 들인다. 야수는 뷰티를 보내면서 1주일 안에 안 돌아오면 자기는 죽는다고 말한다.
집에 돌아온 뷰티는 언니들과 오빠에게 속아 약속한 날까지 야수에게 돌아가지 못하자 야수는 고통에 시달린다. 뒤 늦게 마법의 장갑을 끼고 야수의 성에 도착한 뷰티 앞에서 화살을 맞은 야수는 멋쟁이 왕자로 변신, 뷰티를 안고 하늘로 올라간다.
마레와 데이의 연기와 콤비 그리고 음악(조르지 오릭)과 촬영(앙리 알르캉) 및 세트 등이 다 훌륭한 작품으로 9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에서 상영한다.
한편 디즈니의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실사 뮤지컬 영화가 2017년 3월17일에 개봉된다. 뷰티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엠마 왓슨이 야수로는 댄 스티븐스가 나온다. 감독은 뮤지컬 ‘드림걸스’를 만든 빌 콘돈.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도쿄 올림피아드’




테러위협과 범죄와 오염과 시설미비 등으로 열리기 전부터 말도 많았던 리우 올림픽이 드디어 오늘 개막됐다. 근대 올림픽의 시초인 지난 1896년에 열린 아테네 경기서 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전 올림픽은 필름에 기록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베를린 경기를 담은 ‘올림피아’(Olympia·1938)와 도쿄 경기를 기록한 ‘도쿄 올림피아드’(Tokyo Olympiad·1965)다.
배우 출신의 미녀감독으로 생전 ‘히틀러의 여자’라 불린 레니 리펜슈탈이 찍은 장장 220분짜리 ‘올림피아’는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인간의 영육을 함께 불사르는 경쟁과 이상형으로서의 선수들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의 환희와 좌절을 담은 불후의 걸작이다.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뛴 마라톤에서 우승한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괴벨스가 나치스를 선전하고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열었고 영화도 이런 뜻에서 만들어 ‘악을 선전한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본다면 이 영화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주의를 예찬한 명화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보다 작은 것들에 관심을 보인 ‘도쿄 올림피아드’를 더 좋아한다. 이 흑백영화는 켄지 미조구치, 야스지로 오주, 아키라 쿠로사와 등과 함께 전후 일본의 4대 거장이라 불린 곤 이치가와 감독(1915~2008·사진)의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한국에서 LA로 온지 얼마 안돼 그 때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윌셔가의 맥아더팍 인근에 있던 리바이벌 하우스 배가본드 극장에서 봤다.
통상적 스포츠 기록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시적 인간 드라마라고 하겠는데 영화를 보면서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꼈었다. 상영시간 170분이 훌쩍 지나가도록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각본은 남편 영화의 각본을 여러 편 쓴 이치가와의 아내 나토 와다가 썼다. 와다와 이치가와가 쓰고 연출한 두 편의 걸작 반전영화가 ‘버마의 수금’(The Burmese Harp·1956)과 ‘야화’(Fires on the Plain·1959)다.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인 ‘버마의 수금’은 태평양전쟁 말기 버마 전투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된 젊은 일본군의 영적 변신을 그린 숭고한 작품이다.
‘야화’는 필리핀 전투에서 살아남은 폐병환자인 일본군 타무라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린 영화로 그의 전우들은 살아 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다. 폭력적이요 절망적으로 어둡지만 전쟁의 무모함을 호소한 위대한 반전작품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처음에 ‘도쿄 올림피아드’의 기록을 쿠로사와에게 의뢰했었다. 그러나 쿠로사와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개막식 연출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자 영화촬영을 거절했다. 이치가와가 ‘평화와 인간 평등의 시각적 시’라고 말한 ‘도쿄 올림피아드’는 단순히 운동경기를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선수들의 감각적 고뇌와 희열과 함께 구경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손에 든 카메라를 이용해 와이드 각도로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라톤 경기를 보려고 길에 나온 사람들의 목을 길게 뽑은 채 뒷짐 진 모습을 찍은 장면 등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여 환호는 구경꾼들로 만들고 있다.
이치가와는 메달 수상자들보다 패자를 비롯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삐딱한 각도로 선수들의 얼굴과 손과 발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면서 아울러 패배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환호하는 음향과 침묵을 절묘하게 사용, 경기의 흥분과 적막한 긴장감을 극적으로 살렸다. 매우 인간적인 작품으로 감독의 인본주의 정신이 가득한데 내용과 함께 형식미도 뛰어나다.  
이치가와는 1930년대부터 시작해 사망하기 2년 전까지 50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형태와 분위기에 뛰어난 예술가로 인본주의적 전쟁(반전)영화와 기록영화 그리고 세련된 사회풍자극과 화려한 시대극 등 모든 장르를 잘 다루었다.
그는 우아한 화면구도와 매서운 위트 그리고 과감한 서술을 구사하면서 끊임없이 스타일과 주제 변혁을 시도한 개혁자였다. 이치가와는 또 세세한 것 모두의 사실성에 철저한 완벽주의자여서 히치콕에 비유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이치가와의 영화가 드라마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1983)이다. 주니치 다니자키의 소설 ‘세설’이 원작으로 1930년대 오사카의 몰락한 부잣집 네 자매의 이야기다. 지천으로 나부끼며 떨어지는 벚꽃들과 고운 무늬로 수놓은 비단 기모노가 내는 감각적인 소리 그리고 벚꽃들이 겨울을 맞아 변신해 내리는 듯한 세설과 아름다운 네 자매의 모습이 총천연색으로 투영된 색채미의 극치를 이룬 작품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8월 2일 화요일

‘제이슨 본’주인공 맷 데이먼




“두 번째 한국방문 분위기 화끈했다… 서울 정말 굉장해”


29일 개봉되는 스파이 액션 스릴러‘제이슨 본’ 시리즈 제4편‘제이슨 본’(Jason Bourne)의 주인공 맷 데이먼(45)과의 인터뷰가 지난 19일 라스베가스의 코스모폴리탄 호텔에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티셔츠 차림을 한 데이먼은 서민적인 호남으로 스타티를 안내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유머와 농담을 구사해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강건한 신체를 지닌 액션스타 답지 않게 어색한 질문에 대답할 때는 얼굴에 홍조를 띠기까지 했다. 그러나 매우 지적인 배우로 미소 속에서도 눈매는 매서웠다. 그는 이 영화 선전차 얼마 전에 서울에 다녀 왔는데 인터뷰 후 필자와 사진을 찍을 때“서울 정말 굉장해”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당신은 끊임 없이 영화를 만드는데 좀 쉬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지난 2년 간은 일이 너무 많았다. 먼저 리들리 스캇과 ‘화성인’을 만들었고 다음에는 중국에 가서 장이모 감독과 만리장성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 다음에는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에 나오고 이어 조지 클루니와 일 할 예정이다. 일이 많긴 하나 결코 과한 것은 아니고 내가 해낼 수 있을 만큼 한다. 이렇게 내가 관계한 영화가 많으나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내가 재작자로 참여한 곧 개봉될 케네스 로너간 감독의 소품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다.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다.         

-영화의 속편을 만들 것인가.
“적어도 폴(감독 폴 그린그래스)과 함께 한 편은 더 만들고 어쩌면 더 만들지도 모른다. 난 제이슨 본이라는 인물을 사랑해 폴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것이다. 그러나 속편은 지금 당장 만들지는 않고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이 영화는 시리즈 제3편이 만들어진지 9년만에 나왔는데 다시 제이슨의 액션을 위해 신체단련을 얼마나 했는가.
“정신적으로 다시 제이슨으로 돌아가기는 쉬웠다. 그러나 육체적 액션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처음 제이슨 역을 맡았을 때가 29세였는데 지금 난 45세다. 그래서 몸 단련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음식 조절과 함께 하루에 두 번 신체단련을 했다. 신체단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당신은 벤 애플렉과 친구인데 그가 감독하는 영화에 나올 생각이 없는가.
“사람들이 날 보면 벤은 수퍼히로 역을 했는데 당신도 그럴 생각이 없는가 라고 묻는다. 지금 벤은 ‘배트맨’ 영화를 감독하고 있다. 난 그가 내게 역을 준다면 수퍼히로 노릇을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영화를 감독할 때면 가장 좋은 역도 자기가 하기 때문에 그 버릇이 고쳐질 때야 난 그의 영화에 나올 것이다.”

-제레미 레너가 주연하는 다른 ‘제이슨 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도주하는 제이슨 본과 그를 돕는 CIA 요원 역의 알리시아 비칸더.
“난 제레미의 팬이고 그를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그는 훌륭한 배우다. 그와 나의 영화가 하나로 이어져 조화롭게 만들어진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영화제작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 둘 다 자신들의 영화만이 시리즈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 영화가 하나로 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내 영화를 만드는 유니버설에 보내 달라.”

-당신은 베가스에서 이 영화 외에도 ‘오션의 11인’도 찍었는데 도박을 잘하는가.
“난 도박을 잘 못한다. 그렇다고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내 에이전트와 함께 새벽까지 했다. 처음 두 시간은 많이 따 신이 났지만 곧 이어 다 되돌려줘야 했다. 본전하고 일어났다. 베가스에서 본전하면 딴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박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사람으로서 베가스에 대한 느낌은 도시의 리듬이 생각보다 평온하고 느리다는 것이다.”

-당신은 최근에 이 영화를 위해 서울에 다녀 왔는데 대접을 잘 받았는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대답이다. 한국의 팬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자주 영화관을 찾아간다. 이 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프리미어 때 분위기야말로 화끈했다. 난 극장 밖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느라 1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들은 정말로 영화에 열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저 ‘고맙다’라는 것이었다. 당신들이 영화를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할리웃의 우리들이 계속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 팬들의 열광은 그 어디서나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은 참으로 멋있고 훌륭한 곳이다.”

-무엇을 먹었는가.
“김치를 포함해 주는 것은 다 먹었다.”

-영화는 정부가 기술을 상용해 개인의 사적인 일들마저 정탐하는 권력남용을 비판한 것이기도 한데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난 늘 개인의 사적인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보관련 단체는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난 옛날 소련처럼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정보부는 모든 수단을 써 개인적인 정보까지 빼내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일 안 할 때는 가족과 어떻게 보내는가.
“영화 일을 하다 보면 집에서 저녁 먹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난 노력한다. 우린 단단히 맺어진 가족이다. 우린 여행도 같이 하고 또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다. 세상이 변해도 아이들게 있어 결코 안 변하는 것은 그들의 부모다.”

-아이들이 배우가 될 생각은 없는가.
“내 큰 딸 알렉시아(맷의 부인 루시아나의 보잔의 딸로 맷의 의붓딸)는 지금 18세로 배우가 될 생각은 없으나 영화 만들기를 좋아해 내 세트에 오면 촬영감독을 졸졸 뒤 따라 다닌다. 그 아이는 시진을 좋 한다. 그리고 글도 쓴다. 따라서 앞으로 알렉시아가 카메라 뒤에서 일할지는 모르나 절대로 앞에서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영화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체중을 늘리기도 하는데 당신의 부인은 당신의 어떤 몸을 좋아하는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아내가 토실토실 살이 찐 나를 좋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내도 그렇다고 그랬다. 그런데 내가 이런 영화를 위해 몸의 근육을 단련하다보니 이젠 그런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 늘 짐에 가야 하게 됐다.”

-당신은 영화에서 말이 별로 없는데 하기가 힘들었는가.
“대사가 많지 않은 역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그러나 난 각본을 읽으면서 대사가 얼마나 많은가를 보고 역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감독이 누군가에 따라 결정한다.”

-당신은 영화의 액션을 실제로 얼마나 했는가.
“거의 다 스턴트맨들이 했다 빌딩 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유럽의 암석등반가의 것이고 자동차 질주는 러시안 경주차 운전자의 것이며 모터사이클 질주는 그 방면의 챔피언이 한 것이다. 난 그저 잠깐 흉내만 냈다. 그들은 다 키나 체격이나 체중이 나와 비슷하다”

-자라면서 어떤 액션영화들을 좋아했는가.
“멜 깁슨의 ‘리설 웨펀’과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와 ‘인디애나 존스’를 보고 즐겼다. 이들은 내게 큰 영향을 준 것들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스타 워즈’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에 딸에게 처음으로 ‘인디애나 존스’를 보여줬는데 여전히 재미있고 멋 있었다. 좋은 영화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내 영화도 내 아이들이 언젠가 자기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제이슨 본(Jason Bourne)


그리스 아테네의 시위군중 속에서 제이슨이 자기를 쫓는 킬러에게 총구를 겨냥하고 있다.

9년 만에 제이슨 본으로 돌아온 맷 데이먼


CIA가 만들어낸 초인적 파괴력과 지능을 지닌 킬러 제이슨 본 시리즈(원작은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네 번째로 전 3편에서 본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이 주연하고 제2편과 3편을 감독한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했다. 제3편 ‘번 얼티메이텀’이 나온지 9년만의 본의 컴백인데 콩 튀듯하는 액션은 장관이나 과다하다.
본 시리즈는 액션과 지적인 면이 결합된 보기 드문 팝콘영화인데 이번에는 참신성이나 지적인 면이 전편들보다 뒤떨어진다.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본의 도주와 추격의 ‘복수혈전’이다. 주먹을 비롯한 온 육체가 동원된 격투와 총격 그리고 모터사이클과 자동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면서 자행하는 파괴액션이 스크린을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날뛰는 바람에 얘기나 연기 그리고 나름대로 피력하려고 한 메시지 등이 비명횡사한 느낌이다. 물론 액션팬들은 박수를 치겠다.
시의에 맞는 사이버 정보와 해킹, 컴퓨터를 이용한 정부기관의 개인 사생활 탐지 그리고 애국심 등을 다루고 있긴 하나 길길이 날뛰는 액션 때문에 그 의미가 희석됐다. 또 하나 영화에서 약한 것이 오스카상을 탄 연기파인 알리시아 비칸더의 어정쩡한 연기. CIA 간부로 나오는데 미스 캐스팅이다.
‘본 시리즈’는 지난 2102년 제레미 레너 주연으로 일종의 변칙 속편으로 만들어졌으나 평과 흥행이 모두 미지근했다. 그런데도 다시 레너 주연으로 속편이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두 명의 제이슨 본이 서로 대결하게 됐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영화는 레이캬빅, 베를린, 런던, DC를 거쳐 베가스에서 끝나는데 기억상실증에 걸린채 잠적한 본은 불법 격투를 하면서 먹고 산다. 역시 숨어 살던 본이 유일하게 믿는 전 정보요원 닉키(줄리아 스타일스)가 CIA 컴퓨터를 해킹해 본의 과거를 담은 30년 전의 정보를 빼내 본에게 주면서 본격적으로 얘기가 시작된다.
새 CIA 국장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도 무방하다고 믿는 로버트 듀이(타미 리 존스). 그가 강요하다시피 해 얻으려 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거부 아론 칼루어(리즈 아메드)의 ‘디프 드림’ 컴퓨터 시스템의 내용.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지 않고 철저히 보장되는 시스템이다. 듀이 밑에서 일하는 아름답고 총명한 헤더 리(비칸더)는 사이버 분석가.
본은 닉키가 준 정보를 통해 CIA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됐다는 아버지가 사실은 CIA가 고용한 킬러 ‘자산’(뱅상 카셀)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을 알고 이를 득득 갈면서 복수에 나선다. 듀이는 이런 본을 살해하라고 지시하나 리는 본을 다시 받아들여 새로 프로그램해 사용하자고 듀이를 설득한다.  
클라이맥스는 베가스의 아리아호텔에서 열리는 ‘디프 드림’ 시스템 발표장 내에서 벌어지고 이어 심야의 베가스 대로에서의 수십대의 차량이 파괴되는 추격전 액션으로 마감된다. 속편을 예고한다. 데이먼은 본과 동의어다시피 해 역에 익숙한 연기를 하지만 연기들은 다 그저 무난하다. PG-13. Universal.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제인 에어(Jane Eyre·1944)


로체스터(왼쪽)가 제인을 뜨거운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음산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흑백 드라마


영국의 여류작가 샬롯 브론테의 소설을 원작으로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이 연출한 음산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흑백 드라마다. 샬롯의 여동생 에밀리도 작가로 역시 뜨거운 사랑의 얘기인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썼다. ‘폭풍의 언덕’은 1939년 로렌스 올리비에와 멀 오베른 주연으로 윌리엄 와일러가 흑백 영화로 연출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둘 다 애절하기 짝이 없는 로맨스 스토리로 전자는 해피 엔딩이나 후자는 비극으로 끝난다.
고아원에서 자란 제인 에어(조운 폰테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 요크셔 황무지에 있는 손필드홀이라 불리는 대저택의 주인 에드워드 로체스터(오손 웰즈)의 어린 후견인 아델의 보모로 들어간다. *고아원 시절 제인의 병약한 친구로 나오는 꼬마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로체스터는 침울하고 폭군적이며 비밀에 싸인 사람으로 제인은 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로체스터도 제인을 극진히 사랑해 둘은 결혼식을 올리나 식 도중에 대저택 꼭대기 다락방에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제인은 로체스터를 떠난다.
그 후로 제인은 다시 갖가지 역경에 처해 고생을 하면서도 로체스터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로체스터가 외치는 “제인”이라는 소리를 영감으로 듣고 다시 손필드홀을 찾아간다. 저택은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가 지른 불로 다 타버리고 제인은 폐허에 눈이 멀어버린 로체스터를 만나 뜨겁게 포옹을 나눈다.
로맨스, 공포, 광기 및 감정의 모든 요소를 갖춘 사랑의 이야기로 연기와 음산하고 황량한 흑백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음악 등이 다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순결하고 온순하고 겁먹은 듯한 폰테인과 폭군적이요 위압적이면서도 안에는 뜨거운 사랑의 불길을 지닌 웰즈의 대조적 연기와 콤비가 아주 좋다. 아그네스 모어헤드와 마가렛 오브라이언 공연. 
‘제인 에어’는 이 것 외에도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1996년에는 이탈리아의 프랑코 제피렐리가 윌리엄 허트와 샬롯 갱스부르를 기용해 만들었고 2011년에는 미아 와시코스카와 마이클 화스벤더 주연으로 만들어졌다. 감독은 케리 조지 후쿠나가. ‘제인 에어’는 8월2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에서 상영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동그란 얼굴에 사슴의 눈을 한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가 지난 1일로 파리에서 100세 생일을 맞았다. 착하고 친절한 이웃집 아주머니를 연상케하는 그녀는 할리웃 황금기인 지난 1930년대부터 시작해 반세기에 걸친 생애를 통해 49편의 영화에 나왔지만 디 해빌랜드하면 대뜸 생각나는 사람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멜라니 해밀턴(사진)이다.
디 해빌랜드는 고요한 위엄과 내적 힘을 지닌 여인으로 늘 남을 생각하는 멜라니 역을 완벽히 해내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상주의자인 애슐리(레즐리 하워드)가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불꽃처럼 타오로는 미모의 스칼렛(비비안 리)을 마다하고 멜라니를 선택한 까닭을 알만하다.
디 해빌랜드는 아름답고 천진한 색시형이어서 할리웃의 멋쟁이 미남 배우들의 애인으로 자주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남자가 할리웃의 유명한 플레이보이 에롤 플린이었다. 둘은 모두 신인시절 해적 영화 ‘캡틴 블러드’(1935)에 나왔는데 이 영화가 빅히트를 하면서 둘 다 스타의 길로 접어들었다.
디 해빌랜드와 플린을 할리웃의 가장 인기 있는 로맨틱한 한 쌍으로 만들어준 영화가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로 장식된 흥미진진한 올타임 클래식 ‘로빈 후드의 모험’(1938)이다. 플린은 의적 로빈 후드로 디 해빌랜드는 로빈 후드의 적인 노르만족의 왕실 궁녀 매리안으로 나와 사랑을 나눈다.
둘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웨스턴 ‘그들은 군화를 신고 죽었다’(1941)에 이르기까지 모두 8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스크린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서로를 사랑했다. 플린은 디 해빌랜드와 공연한 ‘경기병의 진격’(1937)을 찍은 직후 지금은 중학교가 된 LA 윌셔가의 구 앰배서더 호텔의 코코넛 그로브에서 열린 파티에서 디 해빌랜드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역시 플린을 사랑하던 디 해빌랜드는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 플린이 당시 별거 중이던 아내와 채 이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디 해빌랜드를 사랑한 남자는 플린만이 아니다. 그녀와 짧지만 사랑을 한 남자들은 하워드 휴즈, 제임스 스튜어트 및 감독 존 휴스턴 등이 있다.
디 해빌랜드는 다재다능해 전 장르에 걸쳐 나왔다. 디 해빌랜드가 최초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영화가 신파극 ‘투 이치 히즈 오운’(1946). 갓난 아들을 남에게 준 여인이 자신을 아이의 아주머니로 위장하고 평생을 돌보는 얘기인데 훌륭하다.
두 번째 오스카 수상작이 내가 디 해빌랜드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less·1949).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원작. 엄격한 홀아비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주눅이든 혼기를 놓친 여자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구애하는 미남 날건달(몬고메리 클리프트)을 사랑했다가 배신을 당한 뒤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여인으로 변신하는 얘기로 디 해빌랜드의 절제된 연기가 황홀하다.
디 해빌랜드는 생긴 것은 양순하게 생겼지만 강한 의지의 소유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자기 연기력을 입증했는데도 자신의 전속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계속해 남자 주인공의 애인 노릇이나 하라고 역을 주자 이를 거절, 정직을 당했다. 1940년대만 해도 배우들은 스튜디오에 고용된 직원에 지나지 않아 영화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해 디 해빌랜드의 출연 거절은 항명이었다.
마침내 디 해빌랜드는 워너 브라더스를 상대로 부당고용 소송을 제기, 승리했으나 그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2년간 쉬어야 했다. 이 소송은 할리웃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이다.
디 해빌랜드보다 한 살 아래인 여동생 조운 폰테인도 오스카상을 탄 스타다. 그런데 둘은 어려서부터 성장해서까지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보인 앙숙지간이었다. 라이벌인 둘은 지난 1942년 공교롭게도 할리웃 사상 지금까지 전무후무하게 자매가 나란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디 해빌랜드는 드라마 ‘홀드 백 더 던’으로 폰테인은 히치콕의 심리 스릴러 ‘의혹’으로 각기 후보에 올라 동생이 언니를 누르고 상을 받았다. 둘의 라이벌 의식은 폰테인이 지난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디 해빌랜드가 파리에 살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프랑스 남자와 결혼, 파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디 해빌랜드는 지난 1953년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칸에 갔다가 당시 파리 매치지의 총 편집책임자인 피에르 갈랑트와 사랑에 빠져 2년 후 결혼, 파리지엔이 됐다.
디 해빌랜드의 중요한 영화들로는 정신병원의 가혹한 실상을 폭로한 ‘스네이크 핏’과 앨란 래드와 공연한 웨스턴 ‘프라우드 레블’, 이탈리아에서 찍은 소프오페라 ‘광장의 불빛’ 그리고 그녀가 보기 드물게 악역을 한 심리스릴러로 베티 데이비스와 공연한 ‘허쉬… 허쉬, 스윗 샬롯’ 둥이 있다. 그러나 디 해빌랜드 하면 뭐니뭐니해도 멜라니다. 해피 버스데이 올리비아!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