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2일 화요일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동그란 얼굴에 사슴의 눈을 한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가 지난 1일로 파리에서 100세 생일을 맞았다. 착하고 친절한 이웃집 아주머니를 연상케하는 그녀는 할리웃 황금기인 지난 1930년대부터 시작해 반세기에 걸친 생애를 통해 49편의 영화에 나왔지만 디 해빌랜드하면 대뜸 생각나는 사람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멜라니 해밀턴(사진)이다.
디 해빌랜드는 고요한 위엄과 내적 힘을 지닌 여인으로 늘 남을 생각하는 멜라니 역을 완벽히 해내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상주의자인 애슐리(레즐리 하워드)가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는 불꽃처럼 타오로는 미모의 스칼렛(비비안 리)을 마다하고 멜라니를 선택한 까닭을 알만하다.
디 해빌랜드는 아름답고 천진한 색시형이어서 할리웃의 멋쟁이 미남 배우들의 애인으로 자주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남자가 할리웃의 유명한 플레이보이 에롤 플린이었다. 둘은 모두 신인시절 해적 영화 ‘캡틴 블러드’(1935)에 나왔는데 이 영화가 빅히트를 하면서 둘 다 스타의 길로 접어들었다.
디 해빌랜드와 플린을 할리웃의 가장 인기 있는 로맨틱한 한 쌍으로 만들어준 영화가 액션과 모험과 로맨스로 장식된 흥미진진한 올타임 클래식 ‘로빈 후드의 모험’(1938)이다. 플린은 의적 로빈 후드로 디 해빌랜드는 로빈 후드의 적인 노르만족의 왕실 궁녀 매리안으로 나와 사랑을 나눈다.
둘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웨스턴 ‘그들은 군화를 신고 죽었다’(1941)에 이르기까지 모두 8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스크린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서로를 사랑했다. 플린은 디 해빌랜드와 공연한 ‘경기병의 진격’(1937)을 찍은 직후 지금은 중학교가 된 LA 윌셔가의 구 앰배서더 호텔의 코코넛 그로브에서 열린 파티에서 디 해빌랜드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역시 플린을 사랑하던 디 해빌랜드는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 플린이 당시 별거 중이던 아내와 채 이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디 해빌랜드를 사랑한 남자는 플린만이 아니다. 그녀와 짧지만 사랑을 한 남자들은 하워드 휴즈, 제임스 스튜어트 및 감독 존 휴스턴 등이 있다.
디 해빌랜드는 다재다능해 전 장르에 걸쳐 나왔다. 디 해빌랜드가 최초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영화가 신파극 ‘투 이치 히즈 오운’(1946). 갓난 아들을 남에게 준 여인이 자신을 아이의 아주머니로 위장하고 평생을 돌보는 얘기인데 훌륭하다.
두 번째 오스카 수상작이 내가 디 해빌랜드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less·1949). 헨리 제임스의 소설이 원작. 엄격한 홀아비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주눅이든 혼기를 놓친 여자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구애하는 미남 날건달(몬고메리 클리프트)을 사랑했다가 배신을 당한 뒤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여인으로 변신하는 얘기로 디 해빌랜드의 절제된 연기가 황홀하다.
디 해빌랜드는 생긴 것은 양순하게 생겼지만 강한 의지의 소유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자기 연기력을 입증했는데도 자신의 전속사인 워너 브라더스가 계속해 남자 주인공의 애인 노릇이나 하라고 역을 주자 이를 거절, 정직을 당했다. 1940년대만 해도 배우들은 스튜디오에 고용된 직원에 지나지 않아 영화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해 디 해빌랜드의 출연 거절은 항명이었다.
마침내 디 해빌랜드는 워너 브라더스를 상대로 부당고용 소송을 제기, 승리했으나 그 후 블랙리스트에 올라 2년간 쉬어야 했다. 이 소송은 할리웃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이다.
디 해빌랜드보다 한 살 아래인 여동생 조운 폰테인도 오스카상을 탄 스타다. 그런데 둘은 어려서부터 성장해서까지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보인 앙숙지간이었다. 라이벌인 둘은 지난 1942년 공교롭게도 할리웃 사상 지금까지 전무후무하게 자매가 나란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디 해빌랜드는 드라마 ‘홀드 백 더 던’으로 폰테인은 히치콕의 심리 스릴러 ‘의혹’으로 각기 후보에 올라 동생이 언니를 누르고 상을 받았다. 둘의 라이벌 의식은 폰테인이 지난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디 해빌랜드가 파리에 살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프랑스 남자와 결혼, 파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디 해빌랜드는 지난 1953년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고 칸에 갔다가 당시 파리 매치지의 총 편집책임자인 피에르 갈랑트와 사랑에 빠져 2년 후 결혼, 파리지엔이 됐다.
디 해빌랜드의 중요한 영화들로는 정신병원의 가혹한 실상을 폭로한 ‘스네이크 핏’과 앨란 래드와 공연한 웨스턴 ‘프라우드 레블’, 이탈리아에서 찍은 소프오페라 ‘광장의 불빛’ 그리고 그녀가 보기 드물게 악역을 한 심리스릴러로 베티 데이비스와 공연한 ‘허쉬… 허쉬, 스윗 샬롯’ 둥이 있다. 그러나 디 해빌랜드 하면 뭐니뭐니해도 멜라니다. 해피 버스데이 올리비아!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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