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락버스터와 인디즈(독립영화)를 포함해 한국영화 9편을 봤다. 대부분 보고 즐길만한 수준급 영화들로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 바로 이거다”하고 속 깊이 감동할만한 예술성과 재미를 절묘하게 혼합한 영화는 없다.
현재 코리아타운의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부산행’(Train to Busan^사진)은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본 좀비영화. 어린 딸과 함께 별거중인 아내를 만나려고 서울발 부산행 특급열차에 탄 아버지(공유)와 승객들이 좀비의 습격을 받는 공포액션스릴러다. 좀비영화치곤 감정적인 면과 함께 한국의 사회현상을 비판한 메시지도 있는데 기술과 연기도 좋다. 연상호감독.
역시 현재 CGV극장에서 상영중인 ‘인천 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적진으로 침투한 한국군 특공대(대장 역 이정재)의 실화에 허구를 가미한 첩보전 액션스릴러다. 한국사람들은 신파를 좋아해 이 영화도 액션에 감상적인 부분을 섞었는데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즐길만하다. 맥아더 역의 리암 니슨은 순전히 양념 구실. 이재한감독.
일제시대가 배경인 ‘아가씨’(The Handmaiden)는 폭력적인 박찬욱감독의 작품. 사기꾼 일당의 일원인 숙희(김태리)가 선배사기꾼 ‘백작’(하정우)과 짜고 상속녀 아가씨(김민희)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드라마다.
칸영화제서 상을 받은 미술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와 프로덕션 디자인 및 연기 등 외적으로는 훌륭한 영화다. 이 호기심용 오락영화의 문제는 박감독의 잔인성. 오래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내게 자신의 내면이 어둡다고 말한 그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그랬듯이 영화에서 툭하면 손가락을 자르는데 여기서도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고 드릴로 손을 꿰뚫는 가학성을 노출한다. 또 숙희와 아가씨의 전라의 노골적인 섹스신도 너무 길다. 인물들이 기모노를 입고 일어대사가 많아 외국인들이 보면 일본영화로 착각할 우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중인 ‘덕혜옹주’(The Last Princess)는 고종의 딸로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간 덕혜옹주(손예진)를 조국으로 탈출시키려는 반일투사들의 서스펜스액션스릴러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덕혜옹주와 역시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영친왕의 탈출시도를 둘러싼 허구인데 액션과 스릴 위주의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는 생각이 들어 설득력이 부족하다. 허진호감독.
‘철원일기’(End of Winter)는 촬영, 대사, 연기 및 내용과 연출 등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한 독립영화. 평생을 철원의 고교교사로 재직한 남자(문창길)가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 있은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느닷없이 이혼을 선언하면서 일어나는 삐딱한 가족드라마다. 지나치게 예술적이요 독립영화의 티를 내려고 한 흔적이 역력해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대환감독.
‘4등’(4th Place)은 자식의 성취도에 지나치게 집념하는 어머니(이항나)와 어린 아들 준호(유재상) 그리고 준호의 괴짜 수영코치(박해준)에 관한 드라마. 1등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비판한 영화로 유재상이 침착하게 호연한다. 자식이 1등하기만을 고대하는 모든 한국인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보기를 권한다. 정지우감독.
‘계춘할망’(Canola)은 연기와 내용이 다 좋은 아담하고 소박한 영화. 제주도해녀 계춘(윤여정이 다양한 표정연기를 잘 한다)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손녀 혜지(김고은)를 잃어버린지 12년만에 되찾는다. 왜 혜지는 12년만에 할망(제주도방언으로 할머니)을 찾아 왔을까. 그리고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다시 사라진다. 끝 부분까지 잘 나가던 영화의 결점은 사족이나 다름없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요 긴 결말. 창감독.
‘우리들’(The World of Us)은 아동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섬세하고 민감한 작품. 외톨이 선(최수인)과 선의 유일한 친구인 지아(설혜인)의 우정과 갈등을 통해 동심의 미묘한 심리지도를 곱고 자애롭게 그렸는데 최수인의 연기가 돋보인다. 윤가은감독.
그러나 이란의 아동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인 ‘친구집이 어디지’ ‘천국의 아이들’ ‘하얀풍선’ 등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모자란다.
공상과학영화 스타일의 ‘돌연변이’(Collective Invention)는 제약회사의 실험대상이 되었다가 생선이 된 청년(이광수)을 통해 청년실업, 금전만능주의, 학벌위주, 편파적인 언론, 사법부의 비리 및 촛불시위와 소외계층의 실상 등 한국사회의 모든 비리를 싸잡아 비판하고 조롱한 영화. 보통을 낙오로 취급하고 자기와 다른 것을 용납 못하는 한국의 병폐를 고발했는데 재미있고 의미도 있으나 비판의식이 지나쳐 체하겠다. 권오강감독.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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