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캐롤 아임 벗 어 풀/달링 아이 러브 유 도우 유 트릿 미 크루얼/유 허트 미 앤드 유 메이크 미 크라이/벗 이프 유 리브 미 아일 슈어리 다이/’
참 옛날이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수많은 히트 팝송을 작곡하고 노래 부른 닐 세다카(76·사진)가 1959년에 불러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한 이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나는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해 감상실의 표를 받는 여자로부터 “이 학생 여기서 개근상을 주어야겠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는 ‘오! 캐롤’의 가사를 선배 감상실 단골로부터 적어 받아 달달 외워 혼자 흥얼대곤 했는데 이 노래는 당시 동네 꼬마들까지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하며 노래할 정도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그 때 ‘돌체’에서 들은 또 다른 빅히트곡이 폴 앵카가 부른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다. 그 뒤로 ‘올디즈 벗 구디즈’ 팬이 된 나는 음반으로만 듣던 세다카와 앵카의 노래를 세리토스 공연센터(12700 Center Court Drive)에서 들었는데 그야 말로 감개무량이었다.
세리토스 공연센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장으로 클래시컬 뮤직에서부터 팝과 연극과 발레를 비롯해 서커스까지 다양한 프로를 공연한다. 핼 홀브룩이 주연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도 여기서 봤고 탐 존스와 태미 위넷과 글렌 캠벨 그리고 앤디 윌리엄스와 자니 마티스, 고기 그랜트, 패티 페이지 및 팻 분 등의 노래와 로저 윌리엄스 피아노 연주도 다 여기서 들었다.
내가 세다카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근 20년 전이다. 거의 여자 음성 같은 맑은 고음에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히트송들인 ‘오! 캐롤’ ‘런 샘슨 런’ ‘유 민 에브리싱 투 미’ 및 ‘캘린더 걸’ 등을 들으며 흥에 겨워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인 더 바이블, 1,000 이여즈 BC/데어즈 어 스토리 오브 에인션트 히스토리’하면서 시작되는 ‘런 샘슨 런’은 천하의 요부 딜라일라에게 빠진 샘슨에게 그 변장한 악마를 피해 빨리 달아나라고 조언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 비하면 탐 존스는 빅히트곡 ‘딜라일라’에서 배신녀 딜라일라를 칼로 찔러 죽였으니 세다카와 존스는 서로 국적과 생김새와 체구와 창법도 다를 뿐 아니라 요부에 대한 대처 수단도 다르다.
‘캘린더 걸’은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 속에 있는 달콤한 여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1년 내내 매일 같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경쾌한 노래다. 세다카는 달력의 9월 여자를 보면서는 ‘아이 라이트 더 캔들즈 앳 유어 스윗 식스틴’하며 이 달에 16세가 된 애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생 때 플레이보이 달력에 스케치로 그린 섹시한 여자들을 탐하던 생각이 난다.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은 세다카의 또 다른 히트곡이다. 그는 여기서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투나이츠 더 나잇 아이브 웨이티드 포/비커즈 유어 낫 베이비 에니모어’하며 소녀티를 막 벗어난 애인을 찬미하고 있다.
그런데 난 ‘캘린더 걸’이나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 같은 즐거운 노래들보다는 ‘원웨이 티켓’이나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 같은 실연과 상심의 노래가 더 좋다. 두 노래 다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사내가 속 아프다며 울고 부는 노래들이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세다카는 9세 때부터 줄리아드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귀재로 13세 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 의해 뉴욕의 클래시컬 뮤직 방송쇼 연주자로 선택될 만큼 실력이 훌륭했으나 팝에 강렬한 매력을 느껴 클래시컬 뮤직을 포기했다.
그가 먼저 팝송 작곡가로 대뜸 이름을 날리게 된 곡이 줄리아드 장학생 시절인 18세 때 카니 프랜시스를 위해 쓴 ‘스튜피드 큐피드’다. 역시 프랜시스가 나오고 노래도 부른 영화 ‘웨어 더 보이즈 아’의 주제가도 세다카가 작곡했다. 세다카는 프랜시스 외에도 다른 많은 팝가수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는데 탐 존스의 ‘퍼핏 맨’과 시내트라의 ‘더 헝그리 이여즈’ 및 캡튼 앤 터닐의 그래미상 수상작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등이 그 대표곡들이다.
세다카가 처음 직접 불러 히트한 노래들은 1959년에 나온 ‘다이어리’와 ‘아이 고 에이프’ 및 ‘오! 캐롤’ 등인데 그의 음반은 이 때부터 생애 가장 인기가 높았던 1960년대 초까지 무려 2,500만여장이나 팔렸다. 세다카는 1963년부터 가수로서의 인기가 느슨해지자 작곡에만 전념하다가 1970년대 초 엘튼 존의 도움을 받아 출반한 두 음반 ‘세다카즈 백’과 ‘더 헝그리 이여즈’가 빅히트를 하면서 재기에 성공, 지금까지 60여년 간을 노래하며 살고 있다.
7순 중반의 나이에도 꾸준히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세다카가 오는 20일 하오 3시 세리토스 공연센터(562-467-8818)에서 노래 부른다. 나도 2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 ‘오! 캐롤’을 들으면서 추억과 동무를 하려고 내려갈 예정이다. 그동안 나도 늙었지만 세다카도 이젠 많이 늙었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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