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상을 터는 마리오(왼쪽부터), 조, 토니 그리고 세자르. |
스릴·멜로·영상미… 파리에 바치는 교향시
중절모를 쓰고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린 채 과묵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가차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전형적인 프랑스 갱스터들의 사실적이요 꽉 조여진 구성을 한 1955년산 저예산 걸작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절도영화)다.
전후 미국에 몰아닥친 매카시즘으로 공산당 동조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유럽으로 피신한 줄스 대신이 감독한 서스펜스 가득한 스릴러이자 멜로드라마인데 원작은 오귀스트 르 브르통의 소설. ‘리피피’는 프랑스 암흑가의 은어로 ‘인정사정없이 거친 사나이들의 적의에 찬 함성을 뜻한다. 대신은 이 영화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늦가을의 파리. 범죄로 짙은 인연을 맺은 젊은 조(칼 뫼너) 대신에 5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막 출옥한 토니(장 세르베)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범죄자. 옥살이로 건강이 나빠져 기침을 하면서도 줄담배를 태우는 토니는 조와 조의 이탈리안 친구 마리오(로베르트 마누엘)의 권유에 따라 파리 시내 번화가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다. 여기에 합류하는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마리오의 친구로 금고털이 전문인 세자르(줄스 대신).
그러나 토니는 범행에 들어가기 전 해결할 일이 있다. 자기를 배신하고 라이벌 갱스터로 몽마르트에서 ‘황금시대’ 클럽을 경영하는 피에르 그뤼터(마르셀 뤼포비치)에게 간 애인 마도((마리 사브레)를 찾아내 옷을 벗긴 뒤 가죽혁대로 매질을 하고 내쫓아버린다.
4인조는 ‘소방서보다 더 경보장치가 많은’ 보석상을 털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짜고 현장답사를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경보기의 소리를 죽이느냐는 것. 그 수단으로 소화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보석상의 주인이 집을 비우는 주말을 이용해 털이를 시도한다.
이 영화가 절도영화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큰 이유가 4인조가 운동화를 신고 보석상 내로 침투해 들어가는 장면 때문이다. 이들은 먼저 보석상 2층의 주인집으로 들어가 마룻바닥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 금고를 터는데 이 과정이 30분 정도 진행된다.
30분 동안 일체 대사와 음악을 제거하고 범인들의 동작소리, 마루와 금고를 뚫는 소리 등 사실음만 살리면서 가끔 가다 땀이 밴 일당의 얼굴을 클로스업 시키는데 매우 주도면밀하고 영특하며 또 긴장감 가득한 장면이다.
범죄의 소도구로 우산이 사용되는 것이 재미있는데 관객들은 30분간 4인조와 공범이 되어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또 곡예사가 묘기를 펼치듯 범인들이 작업을 해나가는 모습을 숨을 죽이고 들여다보게 된다.
마침내 범죄는 성공하나 세자르가 혼자 몰래 슬쩍한 다이아몬드반지를 ‘황금시대’의 가수로 자기 애인인 비비안(마갈리 노엘)에게 선물한 것이 화근이 돼 토니 일행은 피에르와 그의 마약중독자인 동생 레미(로베르 오생) 등 그뤼터 3형제의 공격을 받는다. 토니 일당이 2억여프랑의 보석 절도단임을 확신한 피에르 형제는 조의 어린 아들 토니오(도미니크 모랭)를 납치한 뒤 보석과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어 양측 갱 간에 살육전이 벌어지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총에 맞은 토니가 손에 든 장난감 권총을 쏘며 신이 난 토니오를 차에 태우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가 휙휙 지나가는 파리 교외로부터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를 거쳐 시내로 고속 질주해 조의 아파트 앞에서 급정거하며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멋있다.
영화는 파리에 바치는 영상 교향시라 부를 만치 흐리고 비 오는 늦가을의 파리 시내 뒷모습을 흑백촬영으로 샅샅이 보여준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회색빛 구름이 뒤덮은 가운데 마치 속살을 드러내듯 스케치한 파리 번화가의 뒷모습이 음울하게 아름답다.
이런 파리의 흐린 날씨만큼이나 잔뜩 찌푸린 세르베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얇은 입술을 비롯해 역시 프랑스 갱스터 영화의 베테런인 장 가방을 닮았다. 여윈 장 가방이라고 부를 만한데 피곤과 우수에 절은 주름 패인 얼굴에 고독한 음성을 내는 그의 모습은 비극적 장엄미마저 지니고 있다.
‘리피피’가 리알토 픽처스(Rialto Pictures)에 의해 새로 디지털로 만들어져 4일부터 10일까지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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