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티스타 독재정권 하의 쿠바의 아바나는 미 자본주의자들의 카리브해 판 라스베가스였다. 방탕과 타락이 판을 치는 가운데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바티스타 정권은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에 의해 붕괴됐고 그 후 미국과 쿠바는 서로 적이 되었다. 이런 두 나라가 반세기 전 단절했던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 얼마 전. 이제 불원 고도 하바나에는 미 자본주의의 상징인 맥도널드가 들어서게 됐다.
바티스타 정권의 타락상과 카스트로의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고 역동적인 카메라로 흑백화면에 기록영화 식으로 묘사한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는 쿠바다’(I Am Cuba·사진)이다. 이 영화는 1964년 소련 핵무기의 쿠바 배치로 미소 간 핵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소련과 쿠바가 합작한 쿠바혁명을 찬미한 불후의 명화다.
비배우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써 대사를 가급적 줄인 채 미 제국주의의 방탕과 부패를 비판하고 아울러 미 정부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 정권의 붕괴를 찬양한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매 이미지가 마치 시 구절과 같이 절실하고 아름답다.
카메라의 리듬이 춤을 추듯 하고 그 동작이 물 찬 제비의 비상처럼 사뿐히 날렵한데 이제는 사라진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있지만 매우 엄숙하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특히 소련의 세르게이 우루세프스키가 찍은 촬영은 새 영화 언어를 창조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는데 클로스업과 와이드 앵글을 사용해 잽싸게 교체해 가면서 찍은 장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카스트로의 쿠바를 환호하는 군중 속에 동참한 현실감을 갖게 된다.
역시 영상미가 수려한 ‘두루미들의 비상’(The Cranes Are Flying·1957)을 만든 소련의 미하일 칼라토조프가 감독했고 각본은 각기 소련과 쿠바의 시인들인 예프게니 예프투셴코와 엔리케 바넷이 썼다.
영화는 데카당한 바티스타의 쿠바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노리개 여자를 거래하는 미국 남자들과 해군 그리고 비키니 차림의 여자들의 모습과 굶주리고 일상의 고역에 시달리는 농촌과 도시 슬럼의 쿠바인들의 모습을 병행해 보여준다.
손에 들고 찍은 카메라가 마치 율동체조를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서 사물과 인물들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또 변형시키고 있다. 이런 카메라 테크닉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내 이웃처럼 연민하게 된다.
제작기간 2년 그리고 상영시간 141분짜리 영화는 *식민주의와 그것이 아바나에 미친 영향 *농부들의 비극 *노동자와 학생들의 투쟁 준비 및 *산 속에서의 투쟁과 승리로 마련됐다.
팜트리와 사탕수수가 검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흰 깃털처럼 보이는 꿈을 꾸는 듯한 첫 장면부터 단숨에 우리의 감관을 사로잡는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아름답고 육감적인 마리아. 마리아는 밤에는 베티라는 이름으로 야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다가 새벽이 되면 아바나 교외의 썩어 문드러져가는 달동네로 퇴근한다. 6.25 후 G.I.가 주둔한 한국이 생각난다. 마리아를 사랑하는 르네는 과일 수레행상을 하면서 혁명세력에게 암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근면한 농부 페드로는 자기 사탕수수밭을 외국의 대기업에 잃게 되자 밭을 불태워 버린다. 페드로의 10대난 자식들은 마을에 나가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양키 팝송을 듣는다.
대학생 엔리케는 혁명가로 부르좌들의 단골 드라이브-인 극장에 몰로토프 칵테일을 투척하면서 공산혁명 동조자들에게 경찰의 물 폭탄과 총격에 맞서라고 촉구한다. 이 장면은 4.19혁명을 연상케 한다. 산꼭대기에 사는 농부 알베르토는 처음에는 부상당한 혁명군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나 정부군 폭격기에 의해 집이 파괴되면서 저항의 무기를 든다.
카메라가 이들의 얘기를 장면에서 장면으로 뛰어넘어 포착하면서 우리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자이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된다.
컬럼버스가 “인간의 눈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른 쿠바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시가와 럼과 맘보와 룸바. 미국인들은 이제 그 동안 몰래 사고 팔면서 태우던 쿠바시가를 내 놓고 태우게 됐다.
해적들의 술 럼은 코카콜라와 라임과 칵테일한 ‘쿠바 리브레’가 달짝지근하니 맛있다. 미국에서는 ‘럼 앤 코크’라 부르는데 옛날 옛적에 세 자매 보컬그룹 앤드루스 시스터즈가 ‘럼 앤 코카콜라’라는 노래를 불러 빅 히트를 했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축하차 ‘럼 앤 코카콜라’를 들으며 럼 앤 코크라도 마셔야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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