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테드 2 (Ted 2)


테드(왼쪽)와 잔이 공원에서 테드의 인간화에 관해 논의 중이다.

“나 인간 맞단말야”저질 장난감의 생떼


입 걸고 상스럽고 음란하고 또 나오는 말마다 욕설인 살아 있는 장난감 곰 테드의 천방지축형 터무니없는 속편 코미디다. 대마초를 태우고 맥주를 병나발 불면서 F자 상소리를 계속해 내뱉는 성욕이 넘쳐흐르는 이 장난감 곰이 나온 전편 ‘테드’(2012)는 R등급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각본 그리고 테드의 음성연기는 코미디언 세스 맥팔레인이, 테드의 인간 친구로는 역시 마크 왈버그가 나온다. 장난감 곰이 인간처럼 말하고 느끼는 전편은 귀를 씻어야 할 정도로 음담과 상소리가 심했지만 그런대로 순진하고 귀여웠다. 
그러나 속편은 전편만큼 아이디어가 참신하지 못하다. 테드가 정식으로 인간이라는 법정 판결을 받겠다고 소송을 벌이는 얘기가 무리가 심했다. 그리고 상스러운 면에서 전편을 능가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매달려 욕설과 음란한 제스처가 난무하는데 때론 구역질이 나도록 더럽다. 테드가 완전히 순수를 상실한 영화다. 그러나 흥행이 잘될 것이다.
영화는 유명 영화배우이자 연극배우인 패트릭 스튜어트의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의 해설로 진행된다. 장소는 보스턴. 마켓 캐시어인 테드가 역시 같은 마켓에서 일하는 육체파 태미-린(제시카 바스)과 결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전편에서 결혼한 테드의 친구 잔(왈버그)은 이혼했다. 그런데 테드와 태미-린은 결혼생활 1년 만에 권태기에 빠져 저녁마다 상소리와 함께 기물을 파괴하면서 싸운다.
둘은 마켓의 다른 종업원의 권고에 따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아기를 낳기로 한다. 그러나 테드가 생식능력이 없는 만큼(그런데도 어쩌자고 태미-린이 테드와 결혼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남의 정자를 빌려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테드와 잔은 왕년의 인기만화 ‘플래시 고든’의 주인공 샘 J. 존스와 수퍼보울 우승 풋볼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탐 브레이디를 찾아가 정자를 빌려달라고 했다가 혼쭐이 난다. 한편 이와 함께 태미-린이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과거의 문란한 약물남용으로 인해 자궁이 완전히 결딴 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선언을 받는다.        
영화에는 J. 존스와 브레이디 외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캐미오로 나온다. 제이 레노가 화장실 동성애자로 리암 니슨이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마켓 손님으로 그리고 데니스 헤이스버트가 산부인과 의사로 각기 나온다.
그래서 테드와 태미-린은 이번에는 아기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서추세츠주가 테드가 인간이 아니고 물건이라고 공식 선언을 하면서 테드는 아기 입양은커녕 태미-린과의 결혼도 무효가 되고 또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이에 뿔이 난 테드는 주를 상대로 자신이 인간임을 밝힐 소송을 하기로 하고 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잔이 고용한 변호사는 이제 대학을 막 나온 예쁜 새만사 L. 잭슨(애만다 사이프리드)인데 새만사 역시 대마초를 즐겨 피운다. 
그러나 소송에서 테드가 지면서 이번에는 테드와 잔과 새만사가 함께 뉴욕에 있는 전설적인 민권변호사 패트릭(모간 프리맨)을 찾아가 변호를 부탁하나 과거 테드가 잔과 함께 저지른  온갖 방종한 생활 때문에 거절당한다. 
이 와중에 잔이 한 가지 얻은 것은 새만사와의 로맨스.  낙심한 테드와 잔 간에 갈등이 생기면서 테드는 잔과 새만사를 버리고 뉴욕 시내를 방황하다가 마침 열리고 있는 만화 주인공들의 박람회인 카미칸 전시장에 들어선다. 그리고 여기서 나태하고 무의미한 액션이 일어나는데 이 부분은 순전히 상영시간을 꿰어 맞추려는 지연작전에 지나지 않는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서부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기차역에 내린 찰스 브론슨과 3인의 건맨이 마주보고 서 있다.


역대 서부영화 최고의 걸작 중 하나


‘황야의 무법자’를 만든 이탈리아의 명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미 서부에 바치는 헌사로 서정적이며 센티멘털하고 또 터프한 대하서사 웨스턴이다.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구두를 신은 악한으로 나와 마지막에 복수심에 불타는 과묵한 찰스 브론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영화는 첫 장면이 기막히게 멋있다. 허허 벌판에 달랑 서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의 브론슨과 그를 처치하려고 역에서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가물가물하게 롱샷으로 찍은 다음 갑자기 4인의 얼굴을 극대적으로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대형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득히 점령한 브론슨의 가느다랗게 뜬 두 눈이 마치 산사자의 그 것처럼 매섭다. 이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비감하고 다소 진혼곡과도 같은 음악이 황량한 서부의 무드를 향수감 짙은 음으로 스크린에 채색한다. 폰다와 브론슨 외에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제인슨 로바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이다. 이 영화로 브론슨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에서도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허구의 땅 플랙스톤과 인근의 유일한 수원지가 있는 스윗워터를 무대로 벌어지는 철도 건설과 땅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불명의 건맨의 얘기로 폰다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철도 건설업자 모턴의 고용된 킬러로 나온다. 프랭크가 수원지가 있는 땅을 소유한 브렛을 사살한 직후 뉴올리언스의 전직 창녀로 브렛의 신부인 질(카르디나레)이 마을에 도착해 남편의 땅을 관리한다.
프랭크와 그의 일당 그리고 모턴과 그의 졸개들간에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살육이 벌어지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이 강도 샤이엔(로바즈). 여기에 무명씨로 하모니카를 부는 브론슨이 나타나는데 이 하모니카 때문에 샤이엔은 무명씨 건맨을 ‘하모니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처음에 질의 땅을 차지하려는 프랭크를 돕는데 그가 이 킬러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랭크는 옛날에 ‘하모니카’의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로 ‘하모니카’는 오랜 세월 뒤 프랭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 마침내 프랭크와 ‘하모니카’ 간에 필사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마주 선 둘을 놓고 카메라가 회전촬영을 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하모니카’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으나 ‘하모니카’는 묵묵부답. 총성이 나고 쓰러진 프랭크의 입에 ‘하모니카’가 하모니카를 물린다. 
역대 서부영화 중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새 프린트로 28일부터 7월4일까지 뉴베벌리 시네마(7165 베벌리 블러버드·323-938-4038)에서 상영한다.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주말의 엘리베이터




6월 초 로마를 찾았던 2명의 수녀가 사흘간이나 정전된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각기 58세와 68세인 아일랜드와 뉴질랜드 출신의 두 수녀는 지난 5일 바티칸 근처의 한 수녀원 기숙사 4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아래로 내려가던 중 정전이 발생, 층과 층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시가 금요일 오후여서 기숙사에는 두 수녀 외에 아무도 없었고 휴대폰도 기숙사 방에 두고 와 구조를 청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난 주말 로마는 무더운 여름 날씨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 두 수녀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위 및 어둠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두 수녀는 심한 갈증과 탈수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들의 소변을 마시면서 폐쇄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발견된 것은 사고 후 사흘이 지난 월요일(8일) 오전으로 여성 청소부에 의해서였다. 구출된 두 수녀를 돌본 의사는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수녀가 믿는 성모 마리아가 그들을 구해줬을 것이다.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면서 실제 사고를 똑 닮은 프랑스 영화가 생각이나 혀를 찼다. 24세의 루이 말르가 감독으로 데뷔한 필름느와르 스타일의 흑백 치정 살인극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7)이다.
콱 씹으면 짙은 초컬릿 맛이 날 것 같은 나태한 모습의 잔느 모로와 모리스 로네(‘태양은 가득히’)가 공연하는 이 영화는 누벨 바그의 기초가 된 것으로 특히 영화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독특하고 완벽하게 새로 정립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음악은 마침 영화촬영 당시 파리를 방문 중이던 미국의 재즈 트럼피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르의 부탁을 받고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한 재즈 평론가는 마일스의 음악을 듣고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고독한 트럼핏 소리이니 듣고 울어라”고 찬양했다.
여름철 파리. 흐린 토요일 오후 7시. 공중전화 부스 안의 모로의 감은 두 눈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하던 카메라가 서서히 모로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을 핥고 내려가면서 모로의 심한 안개처럼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주 템므(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날 거예요. 쥘리앙.” 이 때 트럼핏 소리가 비가조로 흐르면서 불길하고 로맨틱한 영화의 분위기를 전조한다.
나는 이 영화를 어렸을 때 보면서 단숨에 모로에게 빠져 들었었다.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투피스 상의의 깃을 올린 채 정부 쥘리앙을 찾아 밤새 비 오는 샹젤리제 거리를 마치 유령처럼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서 살인마저 저지르는 쥘리앙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모로는 피곤해 보여 더욱 유혹적이다. 그늘진 얼굴, 미소 잃은 눈동자, 양끝이 아래로 처진 농염한 윗입술 그리고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남자를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권태와 피로가 선정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로 얼굴 안에 연기가 담겨 있는 배우다.
어두운 분위기와 심리적 깊이를 지닌 영화는 모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그녀는 후에 말르의 애인이 됐다. 플로랑스(모로)는 공중전화로 쥘리앙에게 군수품 제조회사 사장인 나이 먹은 남편 시몽을 죽이라고 조른다. 시몽의 부하직원으로 알제리와 인도차이나에서 싸운 외인부대 출신인 쥘리앙은 밧줄을 타고 자기 사무실 위층에 있는 사장실에 침입, 권총으로 시몽을 살해한다. 이 때 창밖으로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다.
이어 쥘리앙이 회사 앞에 세워둔 신형 컨버터블에 타 시동을 걸고 둘의 단골카페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플로랑스에게 가려는 순간 자기 사무실 창밖에 걸린 밧줄이 눈에 띈다. 쥘리앙이 밧줄을 회수하려고 다시 회사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가는 순간 경비원이 건물의 전원을 끄고 퇴근한다. 꼼짝 없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쥘리앙(사진.)
이 때부터 쥘리앙이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긴장감 가득한 장면과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쥘리앙을 찾아 텅 빈 파리 시내를 밤새 헤매고 다니는 플로랑스의 허탈한 모습이 교차된다. 트럼핏 소리가 연무처럼 무드를 뿜어내는 가운데 앙리 드카에가 찍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파리의 밤이 몽환적이다.  
매우 절제된 영화로 플로랑스의 하이힐 발자국 소리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은 실제 음을 빼고 영화는 거의 침묵 속에 진행된다. 이 침묵을 깨고 플로랑스가 자기 내면의 언어를 독백으로 토해 낸다. “밤새 미친 여자처럼 찾아 다녔어요. 발이 차가워요”라며 자신의 피로와 절망감을 고백한다. 쥘리앙은 로마의 두 수녀처럼 월요일 아침이 돼서야 엘리베이터에서 빠져 나오나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 주말 엘리베이터 조심하세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 (Infinitely Polar Bear)

샘(왼쪽)과 매기가 두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소 장밋빛으로 채색되긴 했으나 질병에 관한 영화치곤 상당히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또 우습기까지 하다. 두 딸을 혼자 돌보게 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딸들 그리고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로 순식간에 감정이 변하는 아버지 때문에 딸들이 겪어야 하는 두려움과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저지르는 엉뚱한 행복한 순간을 균형을 맞춰 정겹게 그렸다.
영화를 연출한 여류감독 마야 포브스의 자전적 얘기로 포브스는 두 딸들이 아버지 때문에 겪어야 하는 당혹감과 좌절감 그리고 위험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보면서 마음을 졸이다가도 모든 것을 밝게 처리해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너무 낙관적인 처리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에 다소 어긋나긴 한다.
포브스가 자기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이 가득한 추억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영화다. 4명의 성인과 아동 배우들이 꾸밈없고 생명력 넘치는 연기를 기차게 잘해 영화의 사실감을 잘 살리고 있다.
1960년대 말. 굉장히 재주가 많은 캠(마크 러팔로)은 감정의 높낮이가 순식간에 변하는 바이 폴라(제목은 이 이름을 우습게 표현한 것이다) 환자여서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직장도 오래 못 다닌다. 그러나 그는 아주 낙천적이다.
캠과 자신의 정신질환을 알고도 자기를 사랑하는 매기(조이 샐다나)는 결혼해 매서추세츠주의 캠브리지에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두 딸 아멜리아(감독의 딸인 이모진 월로다스키)와 페이스(애슐리 아우프더하이드)를 낳는다. 그런데 딸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쯤 캠의 행동이 지나치게 과격해지는 바람에 캠은 정신병원에 잠시 수감됐다 나온다.
딸들이 다니는 학교가 충분히 도전적이지 못한데 불만이 많은 매기가 컬럼비아대의 경영과정에 18개월 만에 학위를 딸 수 있는 조건으로 합격이 된다. 매기는 졸업해 직장을 잡아 딸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캠에게 두 딸을 맡기고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주말마다 딸들을 방문한다. 캠이 두 딸을 무척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나 정신상태가 불안한 그에게 딸들을 맡기고 뉴욕으로 떠나는 매기의 결정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매기가 뉴욕에 사는 동안 두 딸을 혼자 돌보는 캠과 딸들 간에 일어나는 잡다한 에피소드가 자잘하니 재미있게 나열된다. 캠은 딸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기분 나는 대로 딸들이 잠든 밤에 나가 술을 마시고 새로 옮긴 아파트를 안 치워 딸들로부터 “똥통”이라는 핀잔을 받는가 하면 아파트 이웃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해 오히려 따돌림을 받는다.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두 딸은 어머니 보고 어서 돌아오라고 사정을 하면서도 둘 다 원체 총명하고 또 긍정적인 데다가 아버지를 사랑해 가족이 똘똘 뭉친다. 4명이 연기를 다 잘하지만 특히 훌륭한 것은 러팔로다. 기분 상태가 극과 극을 이루는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과장되지 않고 동정심이 일도록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두 소녀 배우들이 아주 귀엽고 사실적이다. 음악은 좀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감상적이다.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글렌 포드 주연 걸작 웨스턴 2편

 '패스티스트 건 얼라이브에서'  조지(왼쪽)와 무법자 비니가 필사의 결투에서 맞서 있다. 

글렌 포드가 주연하는 왕년의 걸작 흑백 웨스턴 2편이 24일과 25일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필견의 명작이니 놓치지 마시도록.

‘패스티스트 건 얼라이브’
(The Fastest Gun Alive·1956)
★★★★1/2
사살된 속사의 명수였던 셰리프를 아버지로 둔 조지 켈비 주니어(포드) 역시 속사의 명수.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건맨들을 피하기 위해 아내(진 크레인)와 함께 성도 템플로 바꾸고 한 작은 마을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은행강도 비니(브로데릭 크로포드)가 ‘살아 있는 최고의 속사의 명수’를 죽였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조지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놀리자 자존심을 상한 조지가 숨겨둔 총을 꺼내 찬 뒤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귀신이 곡할 총 솜씨를 과시한다. 그리고 조지는 내가 ‘살아 있는 최고의 속사의 명수’라고 말한다.
한편 졸개들과 추격하는 법집행자들을 피해 조지의 마을에 찾아온 비니는 마을의 아이로부터 조지의 총 솜씨를 듣고 그와 대결하기 위해 법을 피해 달아난 졸개들과 달리 마을에 남는다. 그리고 조지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을을 몽땅 불태우겠다고 위협하는 비니와 맞서기 위해 조지가 거리로 나선다. 총소리가 나고 마을 사람들이 조지와 비니의 사체가 든 관을 매장한다.

‘3시10분 발 유마행 열차’
 (3:10 to Yuma·1957)
 ★★★★★
애리조나의 한 작은 마을 비스비는 3년째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양을 치며 사는 댄(밴 헤플린)은 심한 경제난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마을에 악명 높은 역마차 강도 벤(포드)이 졸개들에 앞서 들렀다가 마을 보안관에게 체포된다. 문제는 벤을 재판할 법정이 있는 유마로 가는 열차가 서는 컨벤션시티까지 누가 벤을 호송하는가 하는 점.
역마차 노선 사장이 개인 당 200달러를 주겠다는 데도 벤을 충실히 따르는 졸개들이 무서워 나서는 자가 없자 돈이 필요한 총이라곤 쏴본 적도 없는 댄이 아내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호송을 자원한다. 댄은 일단 벤을 컨벤션시티까지 호송, 아침에 도착해 기차가 올 때까지 호텔에서 기다린다. 마을에 벤의 졸개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얼마 있다 기적이 울린다. 이제 댄의 문제는 어떻게 졸개들을 피해 벤을 호텔로부터 역까지 호송해 기차에 태우는가 하는 점. 멋있는 심리 웨스턴으로 프랭키 레인의 주제가가 유명하다. 이 영화는 러셀 크로(벤 역)와 크리스천 베일 공연으로 리메이크 됐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4년만에 다시 찾아 온‘보바리 부인’

두 여성감독 작품 연달아 개봉


간통소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프랑스의 문호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을 원작으로 만든 두 편의 영화가 현재 상영 중이다.
먼저 개봉된 것은 프랑스의 여류감독 안 폰텐이 연출한 코믹터치의 ‘젬마 보바리’(Gemma Bovery). 영국에서 남편 찰리와 함께 프랑스의 노르망디 시골로 이사 온 아름다운 육체파 젬마(젬마 아터튼)가 따분한 남편과 시골생활에 권태를 느껴 바람을 피우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 종말이 황당무계하게시리 희극적이다.
이 영화는 젬마의 옆집에 사는 빵가게 주인으로 고전문학 애독자인 마르탱(화브리스 뤼시니)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생활에 좀이 쑤시는 마르탱은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와 이름이 비슷한 젬마를 보자마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탐을 낸다. 경량급으로 즐길 만한데 아터튼이 감각적으로 아름답고 프랑스의 베테런 배우 뤼시니가 호연한다.
이 영화와 달리 12일에 개봉된 역시 여류감독 소피 바르테가 연출한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은 매우 심각하다. 보바리 부인으로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나오는데 영화는 기능적으로 뛰어나고 여성적 터치가 느껴지나 과거의 보바리 부인 영화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
다분히 학구적이요 여권 주창의 뜻을 내포하고 있긴 하나 보바리 부인이 권태로운 남편과 시골생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내면적 욕구와 갈망이 절실히 묘사되질 못한 채 정열과 감정이 결여됐다. 보바리 부인의 욕정과 열정 그리고 사회적으로 신분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야망 및 시골생활로부터 탈출해 도시로 가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돈과 사치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통찰력 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다뤄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촬영은 아름답지만 와시코우스키와 그녀의 정부들로 나오는 후작 역의 로간 마샬-그린과 젊은 서기 레옹 역의 에즈라 밀러와 화학작용도 전무해 도무지 정열을 느낄 수가 없고 로맨틱하지도 못하다. 와시코우스카가 열심히 연기를 하나 차가운 연출로 인해 영화의 고동과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1934년에 프랑스의 명장 장 르놔르가 만들었고 1949년에는 빈센트 미넬리(라이자 미넬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1991년에는 프랑스의 스릴러 장인 클로드 샤브롤이 이자벨 위페르를 주연으로 발탁해 연출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MGM작인 미넬리의 ‘보바리 부인’이다. 보바리 부인으로 제니퍼 존스가 그의 시골의사 남편 찰스로는 밴 헤플린 그리고 보바리 부인의 멋쟁이 정부로는 루이 주르단이 각기 나온다. 내용과 연기와 세트와 음악(‘벤-허’의 미클로스 로자)과 흑백촬영 등이 다 좋은데 특히 무도회 장면이 화려하다.  
그러면 왜 19세기의 한 여자의 방종과 멸망에 관한 이 소설은 이렇게 세월을 타지 않고 계속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보바리 부인의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와 자기가 처한 곤경에 대한 불만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폰텐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보바리 부인의 무언가 보다 깊고 강렬한 것에 대한 기대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에 속한 여자들에게는 보바리 부인의 얘기가 결코 남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은 19세기 당시의 사회적 환경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나 무미건조한 찰스와 결혼하는데 이 때부터 그녀는 영원한 함정에 갇히게 된다. 당시 여자들은 직업도 가질 수가 없고 또 이혼도 못하는 사회적 제한의 수인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똑똑하고 야심만만하며 또 정열적인 보바리 부인은 결국 이런 사회적 조건에 반기를 들었다가 자살하고 만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도덕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 비평이자 여성 해방과 여권 옹호의 글이라고 하겠다.
소설은 단조로운 결혼생활과 시골환경에 싫증이 난 아름답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엠마 보바리가 자신의 낭만적 동경과 정열을 좇아 외도를 하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 얘기를 심리적으로 분석한 뛰어난 사실주의 작품이다.
맹물 같은 시골의사인 엠마의 남편 찰스는 아내를 사랑하나 그녀를 진실로 이해하지도 위로하지도 못하고 또 엠마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남자다. 이런 남편을 둔 감수성이 예민한 엠마는 자존마저 내팽개치고 죄악적인 사랑처럼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환상에 빠져 두 남자와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다 결국 모두에게 배신당하고 극약을 먹고 자살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혼율이 가장 높은 때는 결혼 3년째다. 뜨겁던 사랑 대신 뜨뜻미지근한 무료함이 찾아드는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심한 권태증에 빠지게 되면 상대가 밥을 먹는 모습도 미워지게 마련이다. 엠마의 눈에는 찰스의 밥을 먹는 모습이 소의 반추처럼 보였을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은 ‘보바리 부인’에서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식탁 건너편에 앉아 열심히 음식을 먹는 찰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잘 나타난다.  모든 엠마에게는 찰스가 있게 마련이다. 엠마를 죽인 비극의 절반 책임은 찰스에게도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암흑의 왕자



어두운 것은 밝은 것보다 훨씬 더 유혹적이다. 필름 느와르(film noir) 영화에서 봉 같은 남자들이 파멸에 이를 줄 알면서도 팜므 파탈(femme fatale-치명적 여인)들에게 빠져드는 것도 이 요부들이 발산하는 검은 매력 때문이다.
어두운 매력은 남자들뿐만이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범죄자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그 좋은 보기다. 최근 뉴욕주 교도소에서 탈출한 두 명의 살인범에게 탈출도구를 준 수감자 재활교육 여직원 조이스 미첼(51)도 범죄자들 특유의 암흑성에 매료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남자들을 옴므 파탈(homme fatal-치명적인 남자)이라고 부르면 될까.
살인죄로 수감 중인 악명 높은 무기수 찰스 맨슨(80)에 반해 그와 약혼까지 하고 결혼을 원하는 애프턴 버튼(26)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맨슨은 지난 1969년 8월 자기를 추종하는 맨슨 패밀리를 이끌고 베벌리힐스에 있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침입, 폴란스키의 아내이자 배우로 임신 8개월째인 샤론 테이트 등 5명을 잔인하게 살인했다.
여러 어두운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들의 오금을 짜릿짜릿하게 저리도록 만드는 유혹적인 남자는 단연 드라큘라일 것이다. 호색한인 드라큘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흡혈하지만 특히 아름다운 여자들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여자 좋아하기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다. 드라큘라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응시하면 여자들은 최면상태에 빠져 자기 목을 스스로 바치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정사가 이뤄진다.
이처럼 드라큘라를 여성의 섹스 심벌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지난 11일 93세로 런던에서 사망한 크리스토퍼 리다. 준수하고 긴 얼굴에 낭랑한 음성을 지닌 그는 자신의 첫 드라큘라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1958·사진)에서 6피트4인치의 장신에 마치 박쥐가 날개를 접은 모습처럼 몸을 꼭 감싸는 망토를 입고 야음을 타고 나타나 여인들을 유혹했다.
젠틀맨 죽음의 사자인 드라큘라의 응시를 마주하는 여인들의 눈길과 얼굴표정에서 ‘날 잡아 잡수세요’라는 간청을 읽을 수가 있다. 드라큘라의 암흑적 매력을 한층 더 짙게 채색해 주는 것이 그가 지닌 위험성이다. 배냇 쌍둥이 같은 어두움과 위험을 한 몸에 지닌 드라큘라의 섹스어필을 거부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드라큘라를 암흑의 왕자라고 부른다.
나는 ‘드라큘라의 공포’를 어렸을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시뻘건 눈에 송곳니를 내보이면서 피를 빨아 먹겠다고 다가오는 클로스업된 드라큘라의 모습이 섹스어필하기는커녕 너무 무서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본 기억이 난다.
이 영화로 대뜸 세계적 스타가 된 리는 그 후 여러 편의 드라큘라 속편에 나왔고 또 생전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크리스토퍼 리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것이 드라큘라다. 드라큘라는 리의 대명사이다. 리는 드라큘라 외에도 많은 공포영화에 나왔는데 ‘드라큘라의 공포’ 전에 나온 ‘프랑켄스타인의 저주’에서 프랑켄스타인이 창조한 괴물로 나와 대사 한 마디 없이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을 동정심이 일도록 비감하게 보여줬다.
리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는 007 시리즈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그는 여기서 제임스 본드의 악한인 프란치스코 스카라만가로 나와 ‘골드핑거’의 오릭 골드핑거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본드의 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리는 본드소설의 작가 이안 플레밍의 의붓 사촌이다. 리의 최근작으로는 그가 마술사 사루만으로 나온 ‘반지의 제왕’이 있다.
리 이전에 스크린에서 드라큘라 역을 멋지게 해낸 배우는 헝가리 태생의 벨라 루고시로 그는 지금까지 드라큘라의 원조로 추앙되고 있다. 드라큘라는 이렇게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는데다가 초능력을 지닌 불사의 인물이어서 내로라하는 많은 배우들이 앞 다투어 역을 맡았다. 잭 팰랜스, 프랭크 란젤라, 게리 올드맨, 러트거 하우어, 제라드 버틀러, 조나산 리스 마이어스, 조지 해밀턴, 애담 샌들러 및 레슬리 닐슨 등이 다 드라큘라들이다. ‘흡혈귀와의 인터뷰’에서 탐 크루즈가 연기한 흡혈귀도 드라큘라의 사돈의 팔촌 격이다.
드라큘라는 허구와 전설이 뒤엉킨 실제 인물이다. 그는 15세기 현 루마니아 땅인 트랜실베니아의 통치자였던 드라큘의 아들로 본명은 블라드. 드라큘은 루마니아어로 ‘용’과 ‘악마’를 뜻하고 드라큘라는 ‘악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블라드의 별명이다. 그의 이름에는 ‘공’(prince)이라는 작위가 붙어 ‘프린스 블라드’라 불렸다.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트랜실베니아는 무슬림 오토만제국과 끊임없이 종교전쟁을 치렀는데 이 때 용맹무쌍한 블라드가 적들을 잡아 적에 대한 경고로 산채로 뾰족한 나무장대에 꽂아 죽을 때까지 전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블라드 디 임페일러’(찔러 꽂는 사람)라고 불렀다. 블라드가 이렇게 잔인한데다가 죽은 사람들의 피에 빵을 찍어 먹었다는 설이 있어 생사람 피 빨아 먹는 드라큘라의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비록 크리스토퍼 리는 죽었지만 스크린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일진대 과연 그를 불사의 드라큘라라고 불러도 좋겠다. TCM 채널에서는 리를 기념하기 위해 22일 그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비치 보이즈’리더 브라이언 윌슨




“배우들이 나를 너무 잘 묘사해 깜짝 놀라”


브라이언 윌슨의 삶과 음악 다룬‘러브 & 머시’개봉

1960년대‘서핀 USA’‘굿 바이브레이션즈’‘슬룹 잔 B’‘우든 잇 비 나이스’‘헬프 미, 론다’ 및‘아이 겟 어라운드’ 등 수많은 히트 곡을 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캘리포니아 서프뮤직의 창조자들인 5인조 보컬 락그룹‘비치 보이즈’(Beach Boys)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72)과의 인터뷰가 3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인터뷰는 그의 삶을 다룬 영화‘러브 & 머시’(Love & Mercy-영화평 참조)의 개봉에 맞춰 있었는데 셔츠 차림의 윌슨은 인터뷰장에 들어오자마자 실내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짧은 즉흥연주를 한 뒤“할로”하고 인사를 했다. 거동이 다소 불편한 윌슨은 입안에서 중얼대는 소리로 질문에 아주 짤막한 대답을 했는데 한 쪽 귀가 안 들려 질문을 큰 소리로 해야 했다. 무표정했지만 시치미 뚝 떼고 웃기기도 했는데 가끔 가다 질문에 피아노를 치면서 대답했다. 인터뷰장 뒤에는 그의 두 번째 아내로 그의 음악적 활동에 큰 공헌을 한 멜린다가 남편을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게 됐는가.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 ‘랩소디 인 블루’(거쉬인 곡)를 듣고 그 곡을 무척 사랑하게 되면서 부터다.”

-영화를 본 소감은.
“너무 잘 만들어 놀랐다. 각기 젊었을 때와 나이 먹었을 때의 나로 나온 폴 데이노와 존 큐색이 정말로 나를 잘 묘사했다.”

-음악가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작곡이 안 될 때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가.
“그냥 꾸준히 음악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놀란 것은 무엇인가.
“멜린다와의 관계를 그린 부분이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뱅스가 내 아내 역을 참 잘 해냈다.”

-영화를 보면서 기뻤는가 아니면 슬펐는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어떤 점이 슬펐는가.
“존 큐색이 내 아내 역의 엘리자베스에게 보여준 민감한 감정 표시 때문이었다.”

-비치 보이즈와 또 다른 서프뮤직의 대표 보컬이었던 잰 앤 딘은 동시대에 활동했는데 두 그룹의 관계는 어땠는가.
“우리 멤버 중의 한 사람인 마이크 러브가 그들을 위해 작곡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뒤로 우리로부터 배웠다.” (윌슨은 이 때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대답했다.)

-잰 앤 딘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주 흥미 있고 흥분되고 또 행복한 음악이다.”    

-누가 당신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었는가.
“나의 삼촌이 내가 12세 때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서퍼 걸’을 작곡했다. 난 스스로 작곡을 배웠다.”

-작곡하기 전에 음악적 영감을 어떻게 얻는가.
“난 오른 쪽 귀가 안 들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러니까 머리로 음악을 듣고 앉아 연주하는 것이다.” (그는 이 때 다시 피아노를 쳤다.)   

-음악이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
해변 복장을 한 비치 보이즈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른쪽서 두 번째가 브라이언 윌슨.

-음악이 없었다면 무엇을 했겠는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한 때 풋볼 쿼터백이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의 개인 얘기의 영화화를 허락했는가.
“영화를 통해 내가 겪은 삶의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무척 많은 것을 뜻한다. 그녀는 17년 전에 내가 솔로로 활동하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지금까지 많은 순회공연을 아내와 함께 하고 있다.”

-아내에게 바친 노래라도 있는가.
“‘원 카인드 오브 러브’다.”

-영화 제목은 당신의 노래 제목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제목을 생각했는가.
“어느 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는 비치 보이즈 노래가 아닌 나 개인의 노래다.”

-작곡하기에 가장 쉬웠던 것과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가장 쉬웠던 곡은 ‘409’이고 어려웠던 것은 ‘갓 온리 노우즈’다.”(그는 이 때 ‘갓 온리 노우즈’를 짤막하게 피아노로 쳤다.)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무엇인가.
“피아노와 베이스다. 난 혼과 바이얼린 같은 악기는 연주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음악적 영감은 피아노로부터 오는가.
“그렇다.” 

-가장 빨리 작곡한 곡은 무엇인가.
“‘서핀 사파리’다.”

-연주자로서 피아노는 언제부터 치기 시작했는가.
“24세 때부터다.”

-당신은 한동안 매우 어두운 삶을 살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내 가슴과 피아노와 친구들에 의해서다. 내게 찾아와 ‘브라이언 너는 이겨낼 수 있어’라고 격려해 준 친구들이 많다.”

-그런 어두운 과거를 생각할 때 화나지 않는가.
“아니다.”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는가.
“70년대와 80년대 음악을 듣는다.” 

-가수 중 누구를 좋아하는가.
“폴 매카트니다.”

-낮에 무엇을 하는가.
“운동한다.”

-작곡과정에 대해 알려 달라.
“머릿속에서 음표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직접 소리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야 듣는다. 그리고 곡을 제작할 때 비로소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듣게 된다.”

-작사도 직접 하는가.
“혼자도 하고 도움 받을 때도 있다.”

-당신은 서프뮤직을 만들고도 서핑을 할 줄 모르는 것으로 아는데.
“서핑을 못 배웠다. 늘 겁이 나서 그랬다. 그런데 비치 보이즈의 멤버이기도 한 내 동생 데니스가 내게 서핑이 굉장히 인기이니 그에 관한 음악을 지어보라고 해서 우리 둘이 같이 작곡했다.”

-폴 데이노와 존 큐색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는가.
“1주일 정도 함께 지냈는데 그 과정에서 둘은 내 매너리즘과 나의 다른 것들을 배웠다.”

-당신의 촤근 앨범 ‘노 피어 프레셔’는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내 자신의 영감에 의해서다. 비치 보이즈의 음악처럼 달콤한 멜로디가 많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4명의 게스트 싱어들이 노래 부른다.” 

-당신은 지금 비치 보이즈의 오랜 멤버 중 하나인 알 자딘과 순회공연을 하는데 무대에 서는 기분이 어떤가.
“자딘은 훌륭한 가수다. 우린 오랜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무대에 다시 서니 참 좋다.”   
-당신의 많은 자녀들로부터 무엇을 취하는가.
“나이가 먹어 모자라는 에너지다.”

-당신의 나이 먹은 딸들이 음악사업을 하는데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먼저 노래부터 할 줄 알아야 사업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당신의 아이들과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해 줄 충고는.
“드럭을 하지 말라는 것과 자연스럽게 작곡하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영화이기도 한데 당신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 것은 아주 자연스런 것이다. (피아노를 치며)사랑은 ‘랩소디 인 블루’요 음악이다.

-당신은 음악이 가슴으로부터 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그 것은 먼저 느낀 다음에 듣게 된다.”

-밴드와 솔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솔로보다 밴드가 나은 점은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이다.”

-요가나 명상을 하는가.
“선험적 명상을 했지만 이젠 더 이상 못하겠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TV 보고 공원에 가서 걷고 피아노를 친다.”

-비치 보이즈 때와 지금 하는 순회공연의 차이라도 있는가.
“지금이 더 재미있고 신난다.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진짜로 나의 밴드라는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과 저녁에 자기 전 제일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일어나면 먼저 ‘또 다른 날을 주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녁에는 ’바라건대 또 다른 날을 주소서’하고 기도한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을 믿는가.
“믿는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는가.
“매우 우울해 피아노에 가서 ‘갓 온리 노우즈’를 작곡했다.”

-당신의 앨범 ‘펫 사운즈’는 음반사상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가.
“하모니다. 비틀즈의 ‘사전트 페퍼’는 우리 음반을 아주 가깝게 따라 온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와 얼과 죽어가는 소녀(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


그렉과 레이철(왼쪽)이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전영화광 소년, 백혈병 소녀를 만나다


다정다감하고 슬프고 또 우스운 10대의 성장기이자 암으로 죽어가는 소녀의 드라마로 작년에 나온 셰일린 우들리와 앤셀 엘고트가 주연한 10대들의 깨끗한 로맨틱 신파극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를 많이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와는 달리 주인공들 간에 채 로맨스는 영글지 못한다. 가슴보다는 마음이 만나는데 그래서 더 실제적이고 정이 간다.
이런 내용의 영화는 처음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약간 괴팍하고 별난데다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젊은 배우들의 꾸밈없는 연기 그리고 자칫하면 감상적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을 약간 멋을 부린 냉소적인 주변 얘기로 중화시켜 신선하고 감정적으로 뿌듯한 느낌을 겪게 한다.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진짜 느낌이 화면을 포근히 적시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제시 앤드루스의 소설이 원작으로 작가가 각본을 썼는데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영화의 촬영감독이 한국인 정정훈이라는 사실. ‘올드보이’등 박찬욱의 단골 촬영감독인 그는 박 감독의 ‘스토커’로 할리웃에 데뷔했는데 와이드앵글로  주인공들의 관계와 심적 상황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제목을 단 챕터와 함께 가끔 애니메이션을 사용해 주인공 나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피츠버그의 고등학교 3학년생인 그렉(토머스 맨)은 왕따를 안 당할 정도의 외톨이로 자신의 취약점을 시치미 뚝 딴 표정과 매사에 무관심한 태도로 감추고 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흑인 친구인 얼(R.J. 사일러)을 조수 삼아 온갖 고전영화들의 단편 패러디를 만드는 것. 따라서 그렉은 얼을 친구라기보다 동료 작업인으로 부른다.   
어느 날 그렉의 어머니(카니 브리튼)가 아들에게 그렉의 동급생인 레이철(올리비아 쿡)이 불치의 백혈병이 걸렸으니 찾아가 보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렉은 레이철과 친구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압력에 못 견뎌 레이철을 방문한다. 이 때부터 둘은 때로는 얼이 끼어든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서히 짙은 관계를 맺게 되는데 시간이 가면서 레이철의 병세는 악화한다.
그렉은 죽어가는 레이철과의 관계를 통해 변신과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죽어가는 레이철이 미래에 대해 안절부절 못하는 그렉에게 오히려 삶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그렉이라는 민감한 소년의 성장기요 우정의 얘기로 그렉이 레이철의 악화하는 병세를 자기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어 엉뚱한 짓을 하는 모습이 우습고도 가슴 아프다. 
고전 영화광인 그렉은 이런 좌절감을 얼과 함께 옛날 영화들을 풍자하면서 달래는데 ‘브레스리스’ ‘돈 룩 나우’ ‘400 블로우즈’ 등 많은 고전영화들이 풍자된다. 둘 다 국외자들인 소년과 소녀의 마음의 만남은 결국 슬픔으로 끝나는데 마지막 장면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슬픔을 웃음으로 감싸고 있는 순진하고 순수한 작품이다. 알폰소 고메스-레혼 감독. PG-13. Fox Searchlight. 일부 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네온 신의 반항아들(Rebels of the Neon God)


대입 준비생 샤오캉이 좀도둑 아체(왼쪽)를 따라가고 있다.

“세상은 너무 권태로워” 방황하는 젊음


불만의 도시 타이베이에 사는 20대 젊은이들의 이유 없는 반항과 좌절감과 권태를 시치미 뚝 떼고 유머와 함께 비감을 섞어 그린 대만의 명장 차이 밍-리앙의 1992년도 작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플롯보다 무드와 스타일로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상호관계를 피력하고 있는 그는 카메라 동작을 가급적으로 아끼면서 검소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독특한 영화적 시각을 지닌 미니멀리스트로 선배인 허우 샤오 센(그의 회고전이 오는 20일까지 웨스트우드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극장에서 열린다)과 작고한 에드워드 양 감독과 함께 1990년대 대만 영화계의 뉴 웨이브를 형성한 감독이다.
절제돼 아름다운 화면으로 대만이라는 도시의 우수와 비인간성 및 질식할 것 같은 무료와 나태를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 이강셍이라는 배우를 통해 묘사하고 있는 차이 감독의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물이 흥건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이강셍이 나오고 그의 아파트는 하수구에서 올라온 물로 작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가끔 가다가 호우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차이 감독의 또 다른 영화로는 ‘강’ ‘구멍’ ‘굿바이, 드래곤 인’ 및 ‘나 혼자 자기 싫어’ 등이 있다. 매력적인 감독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4명의 젊은 남녀. 택시기사인 아버지(역시 차이 감독의 단골배우인 루 이칭)와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서 사는 과묵한 샤오캉(이강셍)은 대입준비 학원에 다니는데 일상이 따분해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 몰래 학원비를 환불 받아 게임방과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시간을 죽인다.
‘이유 없는 반항’의 대형 포스터가 세워진 이 게임방을 자주 들르는 또 다른 젊은이들이 공중전화 동전 통을 터는 좀도둑 아체(첸 차오중)와 그의 친구(젠 창빈). 그런데 아체는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일하는 아쿠에이(왕 유웬)와 사랑도 없는 로맨스 관계를 맺고 있다. 샤오캉과 아체는 둘 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닌다.
샤오캉은 이상하게 아체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아체가 샤오캉 아버지의 택시의 왼쪽 거울을 파괴하면서 이 집착은 더욱 강해져 아체를 스토킹하다시피 한다. 플롯이 전무하다시피 한 영화로 영화는 섹스와 파괴와 폭력으로 끝나는데 그러고도 무료하기 짝이 없다.
완전히 무표정한 이강셍이 지루하고 불안하고 또 반사회적이면서도 막연히 무언가를 찾는 도시 젊은이의 내면 묘사를 거의 코믹할 정도로 절실하게 해낸다. 보고 있자니 그의 무료와 권태에 전염이 돼 좀이 쑤신다. 성인용. 18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빨간 구두 아가씨’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쪽 뻗은 맨살 다리 뒷모습은 섹시하다. 2차 대전 때 전장의 미 G.I.들이 귀엽게 생긴 할리웃 수퍼스타 베티 그레이블을 넘버 원 핀업 걸로 뽑은 것도 그레이블의 위로 쪽 솟은 아름다운 다리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영화를 보면 G.I.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 등과 다리가 훤히 드러난 수영복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그레이블이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사진)에 손키스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진은 G.I.들의 부적으로 그레이블의 다리를 ‘100만달러짜리 다리’라고 불렀었다.
여자의 예쁜 다리는 강력한 성적 무기이기도 한데 영화에서도 이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에게 반한 경우가 더러 있다. ‘종착역’의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여정’의 로사노 브라지 그리고 ‘이중배상’의 프레드 맥머리는 각기 제니퍼 존스와 캐서린 헵번 그리고 바바라 스탠윅의 다리에 첫 시선이 끌려 결국은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발가락이 제일 예쁜 여자는 14세짜리 팜므 파탈 롤리타이고.
이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다리는 아무래도 단화보다 하이힐을 신었을 때가 훨씬 더 섹스어필하다고 보겠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이 단화보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호의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장갑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남성이 주워 줄 확률이 단화 여성보다 5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를 한 과학자들은 “여성의 구두 높이는 남성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고 결론지었다.
남일해가 부른 ‘빨간 구두 아가씨’의 아가씨도 하이힐을 신었음에 분명하다. “솔 솔 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똑 똑 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단화가 “똑 똑 똑” 소리를 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지난 5월에 열린 칸영화제 때 이 하이힐 소동이 일어나 ‘플래트게이트’(Flatgate-단화 게이트)라는 가십을 나았었다. 영화 ‘캐롤’ 프리미어 때 레드 카펫의 가드가 단화를 신은 여자들을 카펫 밖으로 내쫓아 세계적인 화제가 됐었다. 이에 영화제에 참석한 할리웃 스타 에밀리 블런트는 기자회견 때 “난 운동화가 더 좋다. 솔직히 말해 모든 여자들은 단화를 신어야 한다”고 칸 측 조치에 항의하기도 했다.
‘패션=고통’이라는데도 여자들이 하이힐을 선호하는 까닭은 그것이 단화보다 더 섹시하고 멋  있으며 또 힘과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패션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도 “여자들에게 안성맞춤의 구두를 주어 봐요. 그러면 세계라도 정복할 테니까요”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구두의 굽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섹시해지는 것인지 그 높이가 무려 5인치에 이르는 스틸레토힐도 있다. ‘스틸레토’(stiletto)는 단검을 뜻하는데 과연 이런 하이힐은 남성을 무력화할 치명적 매력을 지녔다고 봐도 좋겠다. 타인에 의한 인식이 전부이다시피 한 여배우들의 경우 불편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이힐을 신는 경우가 많다. 나는 매년 1월에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레드 카펫에서 일을 하면서 입장하는 여배우들을 감상하는데 단화 신은 스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여배우들은 할 수 없이 하이힐을 신다가도 일단 레드 카펫을 벗어나면 하이힐을 벗어 내동댕이치는 경우가 있다. 하이힐 증오파 중 으뜸인 영국 배우 엠마 탐슨은 2014년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 때 전 세계 팬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하이힐을 벗어 내동댕이쳐 큰 화제가 됐었다.
그녀는 전 세계로 TV 중계되는 이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석했는데 무대에 오를 때 왼 손에 안이 빨간색인 하이힐을 들고 맨발로 나타났다. 그리고 무대에서 “이 빨간 색은 내 피에요”라고 말한 뒤 하이힐을 뒤로 내던져버렸다. 용감한 여자다. 탐슨은 요즘도 종종 샌들을 신고 레드 카펫을 밟는다.
키다리 니콜 키드만도 하이힐 팬이 못 된다. 얼마 전 그녀와의 인터뷰 때였는데 맨발로 인터뷰에 응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자기보다 키가 작은 탐 크루즈와 이혼한 뒤 “이젠 하이힐 신어도 되겠네”라고 말했던 키드만도 하이힐이 주는 고통이 심했었던 것 같다.
하이힐이 단화보다 더 섹시할 줄은 몰라도 단화를 신어도 멋있는 배우들도 많다. 셰일린 우들리, 매기 질렌할, 크리스튼 스튜어트, 에밀리 블런트. 옛날 스타들 중에서 단화를 신어 더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배우들로는 오드리 헵번과 잉그릿 버그만이 있다.              
여자들이 발병이 나고 발가락이 흉하게 돼도 제니퍼 로렌스가 ‘악마의 구두’라고 말한 하이힐을 신는 것은 그들의 화장처럼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려니. 남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반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만족을 위해서 라고는 하나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주체를 못해 뒤뚱거리면서 오리걸음을 걷는 여자들을 보면 추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면 낸시 시내트라가 부른 ‘디즈 부츠 아 메이드 포 워킨’이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8일 월요일

‘스파이’ 멜리사 맥카시




“난 평소 욕 안해… 엄마와 딸들이 볼까 걱정”


 여자는 직감·독심술 뛰어나 남자보다 스파이에 더 적격
‘친절하면 만사형통’이 가훈… 가족의 행복이 내 건강비결


코미디 액션영화‘스파이’(Spy-영화평 참조)에서 내근을 하다가 현장에 파견돼 맹활약을 하는 CIA 요원으로 나온 멜리사 맥카시(44)와의 인터뷰가 지난 1월23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토실토실 살이 찐 맥카시는 영화보다는 덜 비만해 보였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앳된 음성으로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이 얌전을 빼는 귀여운 소녀 같았다. 가끔 가다 제스처를 구사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하긴 했지만 영화와 달리 매우 신중하고 진지했는데 두 손을 앞에 단정히 모아 잡고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부엌에서 식칼을 든 여자 자객과 싸우는 액션이 정말 눈알이 돌아갈 지경인데 당신이 직접 액션을 했는가.
“물론이다. 그 장면은 촬영 첫 날에 찍었다. 난 ‘그래 좋아 한 번 해보자구’ 하는 마음으로 나섰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스턴트 대역이 있었지만 난 제작진이 허락하는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은 스턴트를 했다. 실수가 다소 있다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난 빵하고 싸워 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당신은 훌륭한 스파이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아니다. 엉망일 것이다. 난 용감한 사람이 못 된다. 나보다 영리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스파이 노릇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난 앞에서 신호등이 깜빡이기만 해도 무슨 위험한 일이 일어난 줄 알고 차를 갓길에 세우는 사람이다.”

-폴 휘그 감독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훌륭한 스파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맞다고 본다. 난 영화를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스파이 노릇을 했던 여자와 일했는데 그녀는 내게 여자가 남자보다 더 직감적이요 남의 감정을 잘 읽을 줄 알아 스파이 노릇하기에 아주 적절하다고 알려 줬다. 여자가 남자보다 상대방의 에너지의 변화나 심경의 변화를 더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요즘 인기가 높아 많은 영화 출연 제의가 있을 텐데 어떻게 출연작을 선정하는가.
“난 TV에도 나와 영화 출연의 기회가 많지는 않다. 다행히 요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역을 마음대로 고를 수가 있다. 인물의 성격이 얼마나 잘 개발되었는지에 따라 역을 고른다. 글을 읽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라면 서슴없이 택한다. 터무니없는 상황에 처한 사실적인 인물을 좋아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폴 휘그와라면 무슨 역이라도 맡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창조적이요 멋진 사람으로 나는 그와 일하기를 좋아한다.” 

-당신은 가톨릭학교를 다닌 줄 아는데 거기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12년간 다녔다. 요즘도 내가 상소리를 할 때면 뒤에 수녀가 따라 오지 않나 하고 돌아본다. 한 가지 철저히 배운 것은 남이 말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 때 그랬다가 수녀한테 혼이 났다. 그래서 난 지금도 이 교훈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학교뿐 아니라 나의 부모도 남에게 친절하고 또 남을 존경하라고 가르쳐 줬다.”       

-이 영화에 나오면서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액션을 흉내 내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그러나 난 아주 훌륭한 여자 트레이너와 일했다. 그녀로부터 무술훈련을 받은 다음 자신이 생겨서 진짜로 덤벼들라고 말 했다가 혼이 나 원위치 하자고 사정했다. 공격하는 적을 막는데 먼저 중요한 것은 정신상태라는 것을 배웠다.”

-본드 영화의 팬인가.
“그렇다. 난 스파이 영화를 좋아한다. 본드 영화를 다 좋아하고 또 스릴러를 좋아한다. 싸우고 차 추격이 있는 재미있는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두 딸(8세와 5세)을 어떻게 교육시키는가.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개방하도록 가르친다. 우린 대화를 많이 나눈다. 아이들 질문에 가능한 대로 솔직히 대답해 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구와 정보를 준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가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디로 갈지를 미리 정해주고 싶지는 않다. 두 딸은 루테런 학교에 다니는데 어느 날 아이들이 내게 불교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것에 대해 공부를 할 것이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가.
스파이 수전(왼쪽)이 식칼을 든 자객과 일전을 벌일 채비 중이다.
“우리 집의 황금률은 친절하면 만사형통한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이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찾는 구체적인 것을 찾아보도록 가르친다.”

-영화에서 왜 그렇게 CIA 스파이로 나온 멋쟁이 주드 로에게 맥을 못 추는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났는데 이틀 간은 그를 보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졌다. 내 분장사가 ‘정신 차려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정말로 총명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미남이기도 하지만 그의 인간성이 더 아름답다.”

-만약 당신이 스파이라면 어떤 이름을 원하는가.
“내 어머니 이름인 샌디라고 하겠다.”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구글을 들여다본 적이 언제인가.
“마틴 루터 킹 데이에 그의 연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훌륭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주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있다. 집에서 두 아이 쫓아다니는 것이 큰 운동이다. 난 잠을 별로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피곤도 잘 느끼질 않는다. 그저 남이 하는 것과 같은 활동을 한다. 먹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 건강의 비결은 나를 웃겨주는 남편과 훌륭한 아이들이다. 행복하면 건강하다.”

-현실에서의 스파이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의 사실을 안다면 굉장히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간다. 우리 모두가 다 마찬가지로 그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스파이에 관한 영화와 TV와 책이 나온다고 본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주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파이를 만난 적이 있는가.
“이 영화 때문에 전직 FBI 여자 요원으로 관광객으로 위장을 하고 전 세계를 돌면서 스파이 노릇을 했던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 만난 느낌이 어땠는가.
“고독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개체로서 자신의 실제 세상과 또 스파이로서의 다른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부다페스트에서 찍었는데 그 곳에 대한 소감이 어떤가.
“너무 좋아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첫 방문으로 사람들은 친절하고 도시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다뉴브 강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신은 골든골로브 시상식 때 수상자 발표를 했는데 그에 대한 소감은.
“프린스를 본 것이 큰 수확이었다. 긴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어 무대로 올라갈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신경 깨나 썼다. 무대로 나가기 전 프린스를 보고 너무 놀라 ‘요 프린스!’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는 깔깔대고 웃었다. 당황해서 혼났다.”

-당신은 영화에서 온갖 희한한 무기와 물건을 소유하는데 실생활서 아끼는 물건은 무엇인가.
“I-패드다. 여행을 하면서 그 것으로 영화도 보고 편지도 보내고 사진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망치나 드릴 같은 도구들을 좋아한다. 난 그런 것들을 써 가구도 직접 만들어 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F자 상소리를 수 없이 많이 내뱉는데 느낌이 어떤가.
“늘 어머니와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한다. 진짜로는 그렇게 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어머니와 함께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와 ‘난 당신이 더러운 입을 가져 좋다’고 말했을 때 너무 당황해 ‘아니, 난 진짜로 그렇지 않고 그것은 배역일 뿐’이라고 변명을 했다. 따라서 실제와 정반대의 사람 노릇을 한다는 것은 재미도 있다. 아직 아이들이 이 영화를 못 보게 하고는 있지만 10년 지나면 볼 테니 걱정이다. 감독을 탓하는 수밖에 없다.”  

-폴 휘그와 여자들이 주연하는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를 만드는데 원작 영화 본 소감이 어땠는가.
“너무 재미있고 우스워 같은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다. 딸들에게도 보여주려고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파이 (Spy)


모터사이클을  탄 수전(멜리사 맥카시)이 적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

현존하는 스크린의 최고의 여자 코미디언 뚱보 멜리사 맥카시가 치고 박고 뛰고 달리고 욕질을 해대면서 화면을 주름 잡는 흥미진진한 스파이 액션 코미디로 액션과 코미디가 아주 잘 뒤범벅이 돼 폭소를 터뜨리면서 흥분감에 빠지게 만든다. 
맥카시가 멋진 조연진들의 후광을 받으면서 완전히 영화를 말아먹다시피 하는데 기차게 우습고 활기 넘치는 연기를 한다. 내뱉는 것 같은 짧은 F자 투성이의 욕설과 농담을 비롯한 대사와 역동적인 행동이 어디 하나 못 쓸데가 없다.
맥카시를 스타로 만들어준 ‘브라이즈메이즈’와 ‘히트’를 감독한 폴 휘그(각본 겸)가 맥카시와 세 번째로 손잡고 만든 영화로 둘은 여자들이 주인공인 ‘고스트버스터즈’를 함께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스파이’는 일종의 남성 스파이 액션영화의 우스개 액션 여성 판이라고 하겠는데 맥카시는 ‘왜 그런 영화가 남자의 전유물이냐’고 대들 듯이 여성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여자가 주연하는 액션 코미디의 귀감이 될 만한 작품으로 빅 히트가 예상되는데 상소리가 심하고 때로 액션이 과하게 폭력적인데도 거부감이 가지 않고 귀엽기만 하다. 기차게 재미있고 신나는 영화로 많은 조연진의 제 각각의 모습과 언행이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영화는 처음에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멋쟁이 CIA 첩보원 브래들리 화인(주드 로)이 불가리아에서 핵폭탄을 가동시킬 수 있는 장치를 찾기 위해 여러 명의 적들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브래들리의 대담무쌍한 액션은 CIA 본부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적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는 내근 여직원 수전 쿠퍼(맥카시)가 정보를 브래들리의 귀에 꽂은 리시버를 통해 알려 주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수전은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브래들리를 짝사랑하고 있다.
브래들리가 핵무기 딜러인 독하게 예쁘게 생긴 레이나(로즈 번)에 의해 제거되고 레이나가 “나는 전 세계에 있는 CIA 요원의 신원을 알고 있다”고 공표하면서 수전의 상관(앨리슨 제니)은 레이나가 신원을 모르는 수전을 현장에 파견키로 결정한다. 좋아서 죽겠다는 수전은 사실 내근직 이전에 일선 현장요원으로서 훈련을 받았다. 수전의 일선 파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런 요원으로 으스대는 리처드 포드(제이슨 스테이덤이 실수 연발의 스파이 연기를 포복절도 하게시리 해낸다).
수전은 절대로 현장에 뛰어들지 말고 옷가방 크기의 핵폭탄 가동장치를 소유한 레이나의 행적을 추적해 보고만 하라는 지시를 받고 먼저 파리로 간다. 파리에 이어 로마와 부다페스트를 돌아다니면서 상관의 지시를 무시한 수전의 천방지축식 액션이 일어나는데 이런 과정에서 수전을 동행하는 사람이 뚱보여자를 좋아한다는 이탈리아의 플레이보이 첩보원 알도(피터 세라피노위즈). 그리고 수전은 레이나뿐만 아니라 역시 핵폭탄을 노리는 기름이 반질반질 흐르는 세르지오 데 루카(바비 카나발리)도 상대해야 하느라 바쁘다 바빠.       
액션장면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재빠르고 또 박력 있는 것은 주방에서 벌어지는 식칼을 휘두르는 수퍼모델 암살자 대 수전의 격투. 매카시의 육체적 코미디의 절경인데 그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주방기구를 머리에 쓰고 암살자의 칼날을 막는 모습이 가관이다. 진짜 잘 한다. R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러브 앤 머시 (Love& Mercy)


브라이언 윌슨(폴 데이노)이 TV 방송국에서 노래하고 있다.


1960년대 ‘굿 바이브레이션즈’ ‘슬룹 존 B’ ‘서핀 USA’ ‘서퍼 걸’ 및 ‘헬프 미 론다’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낸 캘리포니아 서프뮤직의 대표 보컬그룹이었던 비치 보이즈의 프론트 맨 브라이언 윌슨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개인적 삶과 사랑 그리고 그의 음악적 천재성 및 그룹 멤버들과의 관계를 진지하고 감정적으로 깊이 있게 그린 잘 만든 전기 영화다.
1960년대 브라이언이 젊었을 때의 음악활동과 1980년대 그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일종의 라스푸틴과도 같은 개인 의사 유진의 전횡적인 지배와 감시 하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시간대를 오락가락하면서 그렸는데 이런 시간대의 바뀜이 다소 급작스런 느낌은 있지만 흥미 있고 폭과 깊이를 함께 갖춘 준수한 작품이다.
많은 다른 음악인들의 전기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비치 보이즈가 열광하는 청중들 앞에서 공연하는 장면이 전연 없고 또 다른 노래하는 장면도 가급적 절제해 묘사하면서 브라이언의 음악가로서의 창조성과 내면의 악마에 시달리면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1980년대 브라이언(존 큐색)이 캐딜락을 사러 갔다가 아름다운 세일즈우먼 멜린다 레드베터(엘리자베스 뱅스)를 보고 첫 눈에 반해 그에게 구애를 한다. 이런 브라이언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그의 개인 의사 유진 랜디(폴 지아매티). 브라이언과 멜린다가 데이트를 시작하자 유진은 멜린다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여 자신이 정신질환을 앓는 브라이언의 건강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의 법적 대리인임을 밝히면서 데이트 할 때의 브라이언의 행동을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장면은 1960년대로 돌아가 브라이언(폴 데이노)과 그룹 멤버들 간의 음악활동이 진행된다. 브라이언은 대중 앞에서의 공연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것을 더 좋아하면서 인기 있는 서프뮤직을 넘어 보다 진지하고 복잡한 음악을 작곡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멤버들과 갈등이 생기는데 비치 보이즈가 일본 공연을 갔을 때도 브라이언은 LA에 남아 머릿속에 있는 음악적 영감을 실제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엘비스와 시내트라 등 수 많은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반주한 스튜디오 악단 레킹 크루를 고용해 획기적인 음악을 작곡하고 편곡한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서서히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멜린다는 브라이언의 두 번째 아내가 돼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고 돌팔이 유진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면허가 취소되면서 브라이언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다. 영화는 멜린다가 브라이언의 자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뛰어난 것은 브라이언의 역을 맡은 두 배우 데이노와 큐색의 연기다. 둘 다 브라이언과 닮은 데라곤 없지만 그의 음악적 천재성과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신의 적과 싸우는 내적 연기를 매우 훌륭하게 보여준다. 빌 폴래드 감독. PG-13. Roadside.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본드 악인 신재승




007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주색잡기에 능한 킬러 스파이 본드에 못지않게 흥미 있는 인물이 본드 악인과 본드 걸이다. 특히 본드는 본드 악인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술꾼 플레이보이 스파이에 지나지 못했을 것이다.
본드 악인은 냉혈동물 같은 킬러에서부터 거의 어릿광대처럼 구는 인물들까지 다양한데 여러 악인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탐욕스럽고 냉소적인 오릭 골드핑거일 것이다. 역대 007시리즈 중 가장 잘 만들었다는 평을 받은 ‘골드핑거’에서 황금광 골드핑거로는 독일 배우 게르트 프뢰베가 나오는데 복덕방 아저씨 같은 모습의 프뢰베가 본드를 가지고 놀다시피 한다.
그런데 이 골드핑거의 바디가드이자 킬러로 벙어리인 아드잡(막일이라는 뜻)은 한국인이다. 거구에 검은 상의와 타이를 매고 치명적인 금속 테두리를 한 샐크햇을 사용해 사람 잡는 아드잡역은 일본 올림픽 역도선수 해롤드 사카다가 했다. 결국 아드잡은 영화 끝에 이 실크햇 때문에 본드에 의해 감전사 당한다.
본드 악인으로 나온 또 다른 한국인으로는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킬러 자오로 나온 릭 윤(사진)이 있다. 그는 남침을 시도하는 북한군 대령(한국계 윌 윤 리)의 하수인으로 나와 본드와 싸우다 황천으로 간다.
아드잡과 자오에 이어 세 번째로 본드 악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신재승이다. 신재승은 오는 9월8일에 출간될 영국 작가 앤소니 호로위츠의 제임스 본드 소설 ‘트리거 모티스’(Trigger Mortis)에 나오는데 복수심에 불타는 새디스틱하고 간교한 인물이라고 최근 외신이 전했다. 아드잡이나 자오보다 훨씬 비중이 큰 역으로 알려졌다. 왜 호로위츠가 본드 악인으로 한국인을 골랐을까.
호로위츠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베스트셀러 작가로 특히 제임스 본드 소설의 작가 이안 플레밍과 명탐정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본드와 홈즈야 말로 영국을 가장 충분하게 정의하는 인물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리거 모티스’는 플레밍 가족의 허락을 받아 쓴 것으로 원고 초본을 읽어본 가족은 “손톱을 깨물게 만드는 소설로 이안의 타이프라이터에서 찍혀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칭찬했다고 영국의 텔레그라프지가 말했다.
소설은 호로위츠가 플레밍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플레밍의 단편 유고로 TV 시리즈에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쓰지 않은 ‘머더 온 휠’(Murder on Wheel)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섞어 썼는데 호로위츠는 인터뷰에서 “진짜 본드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얘기는 ‘골드핑거’가 끝난 지 2주 후인 1957년에 시작된다. 본드가 참가한 유럽 국제 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 원으로부터 시작해 미국과 소련이 우주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본드가 미국의 우주계획을 사보타지하려는 소련의 음모를 분쇄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본드 걸이자 본드 악인으로 나오는 여자가 ‘골드핑거’에서 본드 걸로 나왔던 푸시 갤로어라는 점이다. 호로위츠는 본드 소설 중 ‘골드핑거’를 제일 좋아해 푸시 갤로어를 재등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설에는 푸시 갤로어 외에도 새 본드 걸로 제파디 레인이 나온다고 한다.
레즈비언이기도 한 푸시 갤로어(이름이 아주 음탕하다)는 역대 본드 걸 중에서 가장 품위 있고 농염한 섹스어필을 분출하는 여자다. 영화에서 그 역은 풍만한 육체와 느끼할 정도로 진한 얼굴을 한 오너 블랙만이 맡아 본드 역의 션 코너리와 화끈한 러브신을 보여준다. 굿 콤비네이션!
본드 걸 하면 보통 본드의 성적 노리개로 생각하기 쉬우나 많은 본드 걸들이 본드를 죽이려는 본드 악인들로 나왔다. 이들은 처음에는 본드의 야수적 성적 매력에 굴복, 그와 정사를 나누다가 뒤늦게 제 정신을 차리고 자기 직분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여자 본드 악인 중에서 가장 겁나는 사람이 ‘007 위기일발’에서 국제 테러암살단’인 ‘스펙터’의 아주머니 킬러 로사 클렙(롯테 레냐)이다. 로사는 구두 앞꿈치에서 튀어나오는 독침으로 사람 잡는다. 그러나 로사는 나이도 많고 팔등신 미녀가 아니어서 본드와 통정하진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여자를 성적 노리개 정도로나 생각하는 본드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적이 있다. ‘여왕폐하의 007’에서 제2대 본드인 조지 레젠비가 유럽 범죄조직의 두목 드라코의 외동딸 트레이시(다이애나 릭)를 사랑해 결혼하나 트레이시는 결혼식 직후 ‘스펙터’의 두목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에 의해 암살된다. 터프 가이 본드가 눈물을 흘린다.  
골드핑거 외에 카리스마 강한 본드 악인으로는 역시 ‘007 위기일발’에서 ‘스펙터’의 킬러로 나오는 도널드 ‘레드’ 그랜트(로버트 쇼)를 꼽을 수 있다. 그랜트는 금발에 준마처럼 탄탄한 체구를 지닌 찬피동물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파리 잡듯이 살인을 한다.
오는 11월에 개봉될 24번째 007시리즈 ‘스펙터’에서는 오스카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배우 크리스토프 월츠가 본드 악인으로 나오고 본드 걸로는 레아 세이두와 모니카 벨루치(50)가 나온다. 벨루치는 역대 본드 걸 중 가장 나이 먹은 여자다.
‘트리거 모티스’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과연 한국의 어느 배우가 신재승의 역을 맡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옛날처럼 중국이나 일본 배우 쓰지는 않겠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6월 1일 월요일

샌안드레아스 (San Andreas)


구조헬기 조종사 레이(드웨인 잔슨)가 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샌프란시스코를 내려다 보고 있다.

LA·SF 덮친 9.2 빅원 “오 마이 갓”


지진 구경하다가 사람 골병들겠다. 정말 피곤한 영화다. 플롯이나 인물들의 제대로 된 개발은 뒷전에 놓고 시종일관 특수효과를 동원해 캘리포니아를 박살내는데 주인공들이 “오 마이 갓”을 후렴처럼 계속해 내지른다. 그래 정말 “오 마이 갓”이다. 제목은 캘리포니아주를 관통하는 지진대 이름.
툭하면 땅이 흔들리는 LA와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에겐 다시 한 번 지진 대비책을 생각하게 해줄 영화라는 점에서 주정부에 기여하는 바는 있지만 지진의 광란만가지곤 얘기가 부족해 써 넣은 가족애와 전연 어울리지 않는 로맨스 그리고 주인공은 꼭 마지막에 가서야만 구출된다는 상투적인 설정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찰턴 헤스턴과 에이바 가드너가 주연한 대형 졸작 ‘지진’(1974) 등 대재난 영화들이 많이 나온 1970년대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영화인데 이번 영화에서 땅덩어리가 칼로 버터 자르듯이 통째로 뭉텅 절단되는 샌프란시스코는 1906년에 대지진이 일어나 3,000여명이 사망하고 도시의 80%가 화재로 파괴됐다. 이 지진은 1936년에 스펜서 트레이시, 클라크 게이블 및 재넷 맥도널드가 공연한 ‘샌프란시스코’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필견의 명화다.      
‘샌안드레아스’는 처음에 맛보기로 LA 소방국 소속 베테런 수색 구조요원 레이(레슬러 출신으로 별명이 ‘록’인 드웨인 잔슨)가 헬기로 절벽에 매달린 자동차에서 젊은 여자를 구출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은 스릴 있다.
이어 칼텍의 지진 전문 교수 로렌스(폴 지아매티)가 라스베가스 인근에서 발생한 심한 진동이 릭터기에 기록되자 조교 김박 박사(한국계 윌 윤 리로 세상에 이런 한국 이름도 있는지 금시초문이다)와 함께 조사차 후버댐에 간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후버댐이 터지면서 김 박사는 장렬한 죽음을 맞는다. 아무리 소수계 배우지만 너무 빨리 죽는다. 로렌스는 TV 인터뷰에서 이번 지진의 여파는 미 동부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데 글쎄올시다 이다.
이어 진도 9.2의 지진이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하는데 먼저 LA에서 일어나면서 최근에 지은 것이 분명한 다운타운의 초현대 고층빌딩이 무너지고 빌딩 꼭대기에 있는 식당에 들렀던 레이와 이혼수속 중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규모의 회사 사장 대니얼(아이오안 그루퍼드)과 동거중인 아내 엠마(칼라 구지노)가 “오 마이 갓”을 내지르며 레이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LA의 할리웃 사인과 함께 빌딩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이번에는 지진이 샌프란시스코를 덮친다. 마침 이 곳에 있던 레이와 엠마의 장성한 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다리오)가 역시 “오 마이 갓”을 내지르며 아버지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지진이 나면서 블레이크가 탄 차가 지하 주차장에 갇히는데 이를 구조하는 남자가 빌딩에서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눈 영국 청년 벤(휴고 존스턴-버트)과 그의 어린 남동생 올리(아트 파킨슨).
이에 레이는 엠마와 함께 딸을 구하려고 헬기와 자동차 그리고 경비행기를 번갈아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그리고 계속해 샌프란시스코가 박살이 나는데 높이 15피트의 쓰나미 파도가 이 도시를 덮치면서 블레이크는 빌딩과 함께 물 속에 갇힌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동료 일본기자 요코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브래드 페이턴 감독. PG-13. New Line.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젬마 보버리 (Gemma Bovery)


빵집 주인 마르탱(오른쪽)은 아름다운 육체파 젬마를 감시하며 탐낸다.

이웃집 여인을 탐하지만… 비극적 코미디


제니퍼 존스와 이자벨 위페르 등이 나온 영화로도 만들어진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의 경량급 로맨틱 코미디(끝은 코미디는 아니지만 코믹한 비극적 사건으로 종결된다)로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의 풍경과 주인공 역의 아름다운 영국산 육체파 젬마 아터튼이 눈부시다. 
크게 나무랄 데는 없는 미풍 같고 시치미 뚝 떼는 코미디인데 주인공 젬마보다는 오히려 옆집에서 젬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그녀를 탐내는 빵집 주인 역의 명 코미디언 화브리스 뤼시니가 주인공인 셈이다. 
파리에서 출판업을 하다가 걷어치우고 가업인 빵집을 경영하려고 노르망디의 한 작은 마을 고향집으로 아내(이자벨 캉드리에)와 좀 덜 떨어진 10대 아들(케이시 모텟 클라인)과 함께 내려온 마르탱(뤼시니)의 옆집에 눈부시게 아름답고 육체가 탐스러운 영국인 젬마 보버리(아터튼)가 남편 찰리(제이슨 플레밍)와 함께 이사를 온다. 영화는 마르탱의 해설로 진행된다.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생활에 좀이 쑤시는 마르탱은 이 때부터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과 이름이 비슷한 젬마를 감시하면서 탐을 낸다. 뤼시니가 딸 수 없는 열매를 찬탄과 욕망의 눈길로 훔쳐보는 연기를 기차게 잘한다.         
역시 따분하기는 마찬가지인 실내 장식가인 젬마가 이 동네에 거대한 저택이 있는 귀족집의 미남이요 신체 건강하고 젊은 아들 에르베(닐스 슈나이더)를 만나면서 둘은 격정에 휩싸인다.  이를 감시하면서 투덜대는 마르탱. 여기에 과거에 젬마와 관계를 가졌던 플레이보이가 나타나 관계의 재연결을 간청하면서 얘기는 비극이 움츠리고 있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영화는 젬마의 시각이 아니라 마르탱의 시각으로 전개되는데 그래서인지 젬마의 역이 충분히 살아나질 못한다. 아터튼은 육체적으로 감각적이긴 하나 시골생활의 권태와 질식할 것 같은 가정생활의 무료함에 시달리는 여인의 역을 실감 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눈요깃거리가 되고 말았다. 
영화는 뤼시니가 말아먹다시피 하는데 마지막에 젬마의 집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여주인공 이름과 비슷한 여자가 이사를 오면서 마르탱의 고전소설과 옆집 여인에 대한 호기심에 다시 불을 댕긴다. 6월12일에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주연하는 심각한 ‘보바리 부인’이 개봉된다. 성인용. Music Box. 랜드마크(피코+웨스트우드), 타운센터 5(엔시노), 플레이하우스 7(패사디나).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여성영화 전성시대’열리나


‘피치 퍼픽 2’는 15일 개봉 첫 주말 6,900만달러를 벌었다.


남성위주의 할리웃이 계속해 젊은 남자 관객들을 위한 만화 속 수퍼히로들이 판을 치는 액션영화를 양산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여성 팬들을 겨냥한 영화들이 빅히트를 하면서 할리웃이 여성용 영화제작 방향으로 키를 움직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최근 ‘여성파워’의 위력을 과시한 영화가 안나 켄드릭과 레벨 윌슨 등 여러 명의 여자 배우들이 주연한 ‘피치 퍼픽 2’. 노래와 춤이 있는 대학교 아카펠라 합창단원들의 코미디인 이 영화는 15일에 개봉, 주말 3일간에 무려 6,92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냈다. 이 영화는 감독도 배우이기도 한 여류 엘리자베스 뱅스인데 뱅스는 여성 감독 데뷔작으로 할리웃 사상 최고의 주말 3일간의 수입을 올린 기록을 냈다.
‘피치 퍼픽 2’의 수입은 같은 주말 흥행 2위를 한 ‘매드 맥스: 분노의 길’이 낸 4,540만달러를 훨씬 앞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매드 맥스’의 주인공은 매드 맥스라기보다 샬리즈 테론이 맡은 여전사 퓨리오사라고 할 수 있다. 테론은 매드 맥스 역의 탐 하디 못지않게 액션을 과시하고 있어 이 영화는 남성위주의 액션영화라는 틀 속에 ‘여성파워’를 강조한 영화라고 하겠다.
올 들어 여성영화로서 성공한 것은 이들 외에도 ‘신데렐라’와 ‘그레이의 50가지의 색조’가 있는데 이들은 올 들어 현재까지 흥행수입 3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경우에 여성영화로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말리피슨트’와 10대용 최루영화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는 같은 주말에 개봉된 탐 크루즈 주연의 ‘에지 오브 투모로’의 흥행수입을 앞지르고 4,82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곧 개봉될 여배우 주연의 여성용 영화로 빅 히트가 예상되고 있는 것이 멜리사 맥카시가 첩보원으로 나오는 액션 코미디 ‘스파이’(6월6일 개봉). 이 영화는 역시 맥카시가 주연해 빅 히트한 ‘신부 들러리들’과 ‘히트’를 감독한 폴 휘그가 연출했는데 같은 주말에 개봉될 남성영화 ‘앙투라지’의 흥행을 능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휘그 감독은 지금 남자들 대신 맥카시 등 여배우들이 나오는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를 연출 중이다.
이어 7월1일에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남성영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 맞서 개봉되는 여성용 영화 ‘매직 마이크 XXL’과 7월17일에 만화가 원전인 남성영화 ‘앤트맨’에 맞서 개봉될 여자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가 나오는 ‘트레인렉’도 빅 히트가 예상되고 있다.
스튜디오들은 사실 총 관객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파워를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액션위주의 블락버스터 영화에 여자들을 과거보다 많이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현재까지 빅 히트를 하고 있는 ‘어벤저스: 얼트론의 시대’에서 스칼렛 조핸슨이 맡은 블랙 위도 역을 보다 폭 넓게 다루고 있고 조핸슨 외에 스칼렛 위치 역으로 또 다른 여배우 엘리자베스 올슨을 기용한 것이 그같은 경우라고 타임스는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여성영화의 장르를 로맨틱 코미디나 로맨틱 드라마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액션영화를 비롯한 모든 장르로 확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들은 ‘피치 퍼픽 2’에 이어 올 여름에 나올 여성영화들이 빅히트가 예상되면서 2015년도 총 흥행수입이 할리웃 사상 초유의 11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인기 여배우들이 나온 여성영화라고 해서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8일에 개봉된 리스 위더스푼과 소피아 베르가라가 나온 버디 코미디 ‘뜨거운 추격’은 개봉 첫 주말 1,330만달러를 번데 이어 두 번째 주말에는 관객이 59%나 감소했다. 이 영화는 여류 앤 플레처가 감독했으나 여성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할리웃은 아직도 남성위주의 세상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 흥행 탑들을 기록한 영화의 주인공들 중 여배우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달랑 12%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은 2013년에 비해 3%가 줄어든 수치다. 그리고 지난해에 할리웃의 6대 스튜디오들이 배급한 영화들 중 여자 감독이 만든 것은 불과 4.6%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미 민권자유 유니언은 최근 이 같은 고용 불균형을 수사해 달라고 당국에 의뢰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푸’3부작




인도의 벵갈 깡촌에서 태어난 소년 아푸의 삶의 서클을 그린 인도의 명장 사티아짓 레이의 ‘아푸’(Apu) 3부작은 인도 영화를 세계적인 예술영화의 무대에 올려놓은 인생과 인간성에 관한 풍요한 찬미다. 인도 영화계의 마하트마 간디라 불린 레이의 이 3부작은 세계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비부티부산 배너지의 2권으로 된 베스트셀러가 원작. 영화는 1955년 제1편이 만들어진 뒤 5년간에 걸쳐 3편이 완성됐다.
마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케 하는 자연광과 현장을 이용한 영화들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낙천성과 함께 강한 생명력을 구사하는 아푸의 삶을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될 때까지 윤회하듯이 아름답고 정직하고 또 민감하게 그렸다.
가슴 다한 연민의 정과 자비롭게 통찰하는 눈길 그리고 시적인 붓질로 인생을 관조한 심오한 영화인데 절제되고 정적인 카메라가 포착한 인간성의 적나라한 내면의 조감도라고 하겠다. 흑백화면이 광채를 발휘, 보는 사람을 아름다운 이미지 속으로 침잠케 만든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 마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 같아 작품의 사실성을 더욱 북돋우는데 대화가 별로 많지 않은데도 찌들고 여윈 삶을 헤쳐 나아가는 아푸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이 웅변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요와 함께 소용돌이치는 역동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영화로 가깝고 상냥하며 비탄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으로 술렁거리는데 이런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을 인도의 세계적 시타 음악가인 라비 샨카르의 음악이 뒤에서 효과적으로 반주해 주고 있다.  
1955년에 만든 3부작의 제1편 ‘파터 판찰리’(Pather Panchali)는 ‘작은 길의 노래’(Song of the Little Road)라는 뜻으로 레이의 영화 데뷔작이다.
벵갈의 깡촌에서 평승려인 아버지와 잔소리가 많지만 굳건하고 실제적이며 다정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푸가 검고 큰 눈으로 세상의 경이를 보고(사진) 경험하면서 자라는 얘기다. 카메라가 아푸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한 시골 정경을 조용하고 곱게 화폭에 담는다.
아푸의 또 다른 가족은 아푸의 독립심 강한 어린 누나와 죽음의 변두리에서 서성대지만 장난기를 잃지 않은 깡마른 꼬부랑 할머니(이 할머니를 통해 우리는 닥쳐올 죽음을 관조할 수 있다). 아버지는 출장이 잦아 아푸는 여자들 틈에서 자라는 셈이다. 인간적이요 솔직하며 아름다운 영화다.
제2편은 ‘아파라지토’(Aparajito)로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The Unvanquished). 원래 레이는 속편을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파터 판첼리’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면서 속편을 만들었다.
아푸의 누나가 병으로 죽으면서 슬픔에 빠진 가족이 시골을 떠나 시끌벅적한 도시 베나레스로 이사 온다. 카메라가 도시의 혼란의 소리와 풍경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많은 10대 소년 아푸가 콜카타에서 공부하며 성장하는 모습과 그와 어머니와의 관계(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성장과정과 비슷한 어머니를 둔 아푸가 나처럼 느껴졌다)를 표현력 풍부하게 묘사했는데 1957년 베니스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제3부는 ‘아푸 산사르’(Apu Sansar)로 ‘아푸의 세계’(The World of Apu). 이 영화는 레이가 그의 또 다른 걸작 ‘음악실’(The Music Room)로 세계 영화계의 전설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었다.
20대가 된 아푸는 작가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하면서 박봉에 콜카타의 달동네에 살면서도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낙천성과 생명력에 감염이 된다. 어느 날 아푸는 친구와 함께 시골에 있는 친구의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남의 부인이 될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여자와 벼락치기로 결혼을 하게 된다.
아푸와 아내는 콜카타의 쪽방에서 행복한 신혼살림을 하는데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출산 차 친정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서 사망한다. 깊은 슬픔에 빠진 아푸는 아들을 보기조차 마다하고 집을 떠나 방랑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동안 써놓은 귀중한 소설 원고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전3부작을 통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제3편의 마지막 장면. 아푸가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기 전 아내의 집에 와 어린 아들과 대면하는데 아들은 아푸에게 돌팔매질로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탓한다. 부자간의 짧지만 긴장감 감도는 갈등이 끝나고 아들을 목마 태우고 미래를 향해 발길을 옮기는 아푸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로써 아푸의 삶이 한 바퀴 돌아온 셈이다.
레이의 또 다른 명화들로는 ‘데비’(Devi), ‘미들맨’(The Meddleman), ‘체스하는 사람들’(The Chess Players), ‘방문객’(The Visitor) 등이 있다. 나는 ‘아푸’ 3부작을 최근 웨스트LA에 있는 뉴아트 극장에서 아침부터 오후에 걸쳐 오래간만에 다시 봤는데 가득한 사랑에 숙연해 졌었다. 당신의 영혼의 깊이를 더욱 깊이 파주는 평화로운 작품으로 영화의 근본적인 힘을 깨닫게 된다. 디지털로 복원된 ‘아푸’ 3부작이 6월4일까지 뉴아트(11272 샌타모니카·310-281-8223)에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