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쪽 뻗은 맨살 다리 뒷모습은 섹시하다. 2차 대전 때 전장의 미 G.I.들이 귀엽게 생긴 할리웃 수퍼스타 베티 그레이블을 넘버 원 핀업 걸로 뽑은 것도 그레이블의 위로 쪽 솟은 아름다운 다리 때문이었다.
2차 대전 영화를 보면 G.I.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 등과 다리가 훤히 드러난 수영복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그레이블이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사진)에 손키스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진은 G.I.들의 부적으로 그레이블의 다리를 ‘100만달러짜리 다리’라고 불렀었다.
여자의 예쁜 다리는 강력한 성적 무기이기도 한데 영화에서도 이 때문에 남자들이 여자에게 반한 경우가 더러 있다. ‘종착역’의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여정’의 로사노 브라지 그리고 ‘이중배상’의 프레드 맥머리는 각기 제니퍼 존스와 캐서린 헵번 그리고 바바라 스탠윅의 다리에 첫 시선이 끌려 결국은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발가락이 제일 예쁜 여자는 14세짜리 팜므 파탈 롤리타이고.
이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다리는 아무래도 단화보다 하이힐을 신었을 때가 훨씬 더 섹스어필하다고 보겠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이 단화보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호의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장갑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남성이 주워 줄 확률이 단화 여성보다 5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를 한 과학자들은 “여성의 구두 높이는 남성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고 결론지었다.
남일해가 부른 ‘빨간 구두 아가씨’의 아가씨도 하이힐을 신었음에 분명하다. “솔 솔 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똑 똑 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단화가 “똑 똑 똑” 소리를 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지난 5월에 열린 칸영화제 때 이 하이힐 소동이 일어나 ‘플래트게이트’(Flatgate-단화 게이트)라는 가십을 나았었다. 영화 ‘캐롤’ 프리미어 때 레드 카펫의 가드가 단화를 신은 여자들을 카펫 밖으로 내쫓아 세계적인 화제가 됐었다. 이에 영화제에 참석한 할리웃 스타 에밀리 블런트는 기자회견 때 “난 운동화가 더 좋다. 솔직히 말해 모든 여자들은 단화를 신어야 한다”고 칸 측 조치에 항의하기도 했다.
‘패션=고통’이라는데도 여자들이 하이힐을 선호하는 까닭은 그것이 단화보다 더 섹시하고 멋 있으며 또 힘과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패션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도 “여자들에게 안성맞춤의 구두를 주어 봐요. 그러면 세계라도 정복할 테니까요”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구두의 굽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섹시해지는 것인지 그 높이가 무려 5인치에 이르는 스틸레토힐도 있다. ‘스틸레토’(stiletto)는 단검을 뜻하는데 과연 이런 하이힐은 남성을 무력화할 치명적 매력을 지녔다고 봐도 좋겠다. 타인에 의한 인식이 전부이다시피 한 여배우들의 경우 불편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이힐을 신는 경우가 많다. 나는 매년 1월에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레드 카펫에서 일을 하면서 입장하는 여배우들을 감상하는데 단화 신은 스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여배우들은 할 수 없이 하이힐을 신다가도 일단 레드 카펫을 벗어나면 하이힐을 벗어 내동댕이치는 경우가 있다. 하이힐 증오파 중 으뜸인 영국 배우 엠마 탐슨은 2014년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 때 전 세계 팬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하이힐을 벗어 내동댕이쳐 큰 화제가 됐었다.
그녀는 전 세계로 TV 중계되는 이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석했는데 무대에 오를 때 왼 손에 안이 빨간색인 하이힐을 들고 맨발로 나타났다. 그리고 무대에서 “이 빨간 색은 내 피에요”라고 말한 뒤 하이힐을 뒤로 내던져버렸다. 용감한 여자다. 탐슨은 요즘도 종종 샌들을 신고 레드 카펫을 밟는다.
키다리 니콜 키드만도 하이힐 팬이 못 된다. 얼마 전 그녀와의 인터뷰 때였는데 맨발로 인터뷰에 응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자기보다 키가 작은 탐 크루즈와 이혼한 뒤 “이젠 하이힐 신어도 되겠네”라고 말했던 키드만도 하이힐이 주는 고통이 심했었던 것 같다.
하이힐이 단화보다 더 섹시할 줄은 몰라도 단화를 신어도 멋있는 배우들도 많다. 셰일린 우들리, 매기 질렌할, 크리스튼 스튜어트, 에밀리 블런트. 옛날 스타들 중에서 단화를 신어 더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배우들로는 오드리 헵번과 잉그릿 버그만이 있다.
여자들이 발병이 나고 발가락이 흉하게 돼도 제니퍼 로렌스가 ‘악마의 구두’라고 말한 하이힐을 신는 것은 그들의 화장처럼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려니. 남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반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만족을 위해서 라고는 하나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주체를 못해 뒤뚱거리면서 오리걸음을 걷는 여자들을 보면 추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럴 때면 낸시 시내트라가 부른 ‘디즈 부츠 아 메이드 포 워킨’이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