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준비생 샤오캉이 좀도둑 아체(왼쪽)를 따라가고 있다. |
“세상은 너무 권태로워” 방황하는 젊음
불만의 도시 타이베이에 사는 20대 젊은이들의 이유 없는 반항과 좌절감과 권태를 시치미 뚝 떼고 유머와 함께 비감을 섞어 그린 대만의 명장 차이 밍-리앙의 1992년도 작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플롯보다 무드와 스타일로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상호관계를 피력하고 있는 그는 카메라 동작을 가급적으로 아끼면서 검소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독특한 영화적 시각을 지닌 미니멀리스트로 선배인 허우 샤오 센(그의 회고전이 오는 20일까지 웨스트우드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극장에서 열린다)과 작고한 에드워드 양 감독과 함께 1990년대 대만 영화계의 뉴 웨이브를 형성한 감독이다.
절제돼 아름다운 화면으로 대만이라는 도시의 우수와 비인간성 및 질식할 것 같은 무료와 나태를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해 이강셍이라는 배우를 통해 묘사하고 있는 차이 감독의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물이 흥건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이강셍이 나오고 그의 아파트는 하수구에서 올라온 물로 작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가끔 가다가 호우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린다.
차이 감독의 또 다른 영화로는 ‘강’ ‘구멍’ ‘굿바이, 드래곤 인’ 및 ‘나 혼자 자기 싫어’ 등이 있다. 매력적인 감독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4명의 젊은 남녀. 택시기사인 아버지(역시 차이 감독의 단골배우인 루 이칭)와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서 사는 과묵한 샤오캉(이강셍)은 대입준비 학원에 다니는데 일상이 따분해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그는 부모 몰래 학원비를 환불 받아 게임방과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시간을 죽인다.
‘이유 없는 반항’의 대형 포스터가 세워진 이 게임방을 자주 들르는 또 다른 젊은이들이 공중전화 동전 통을 터는 좀도둑 아체(첸 차오중)와 그의 친구(젠 창빈). 그런데 아체는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일하는 아쿠에이(왕 유웬)와 사랑도 없는 로맨스 관계를 맺고 있다. 샤오캉과 아체는 둘 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닌다.
샤오캉은 이상하게 아체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아체가 샤오캉 아버지의 택시의 왼쪽 거울을 파괴하면서 이 집착은 더욱 강해져 아체를 스토킹하다시피 한다. 플롯이 전무하다시피 한 영화로 영화는 섹스와 파괴와 폭력으로 끝나는데 그러고도 무료하기 짝이 없다.
완전히 무표정한 이강셍이 지루하고 불안하고 또 반사회적이면서도 막연히 무언가를 찾는 도시 젊은이의 내면 묘사를 거의 코믹할 정도로 절실하게 해낸다. 보고 있자니 그의 무료와 권태에 전염이 돼 좀이 쑤신다. 성인용. 18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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