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성의 대결(Battle of the Sexes)


세기의 테니스 대결에 앞서 기자 회견을 하는 빌리 진 킹(왼쪽)과 바비 릭스.

세기의‘테니스 성 대결’통해 남녀평등 재미있게 터치


지난 1973년 여자 알기를 신발털이 깔개 정도로 아는 쇼비니스트인 55세의 왕년의 테니스 챔피언 바비 릭스(1995년 77세로 사망)와 29세의 여자 테니스 챔피언 빌리 진 킹(73)의 세기의 성의 테니스 대결을 그린 재미있는 코미디성 드라마다.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에서 야단스러운 행사에 이어 열린 이 경기는 전 세계에서 9,000만 명이 TV를 통해 봤다.
스포츠 영화이지만 그 안에 남녀평등 문제와 동성애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기민하고 진지하게 다루었는데 궁극적으로 보는 사람의 기분을 고양시키는 작품으로 안팎으로 사뿐하고  능률적으로 잘 만들었다. 
빌리 진 킹(엠마 스톤)이 입심이 센 홍보담당자 글래디스 헬드맨(새라 실버맨)의 인솔 하에  동료 선수들과 전국을 돌며 경기를 할 때만 해도 여자 선수들이 받는 돈은 남자 선수들의 12분의 1이었다. 그 때만해도 여자는 남자의 보증 없이는 크레딧 카드를 발급받지 못했다. 
당시 여자 선수들의 경기인 버지니아 슬림스대회가 생겼는데 단연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킹. 따라서 킹은 보수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 테니스협회의 간부 잭 크레이머(빌 풀맨)를 찾아가 항의하나 별무 소득. 
킹은 래리 킹(오스틴 스토웰)의 아내로 래리는 아내의 코치요 매니저이자 트레이너. 그런데 킹이 미용사 매릴린 바넷(앤드레아 라이스보로)을 만나면서 둘 사이에 동성애가 싹이 튼다. 래리도 아내의 성적기호에 대해 눈치를 챈다. 그리고 킹은 죄책감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염려로 슬럼프에 빠진다.  
한편 오래 전에 테니스 챔피언이었던 바비 릭스(스티브 카렐)는 백만장자 상속녀 프리실라(엘리자베스 슈)의 건달기 있는 도박광 남편으로 데스크잡에 염증을 느껴 시도 때도 없이 도박에 매달린다. 이를 참고 용서하는 프리실라. 쇼맨인 바비는 다시 한 번 각광을 받을 생각에 킹에게 시합을 제의하나 거절당한다.   
이에 바비는 현 여자 챔피언인 마가렛 코트(제시카 맥내미)와 경기를 치루고 승리한다. 바비가 기자회견을 통해 여자를 마구 깔보고 조롱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본 킹은 바비와의 경기를 수락한다. 상금 10만 달러가 걸린 경기다. 이 경기 장면을 옛날 식으로 찍은 촬영이 향수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영화에는 당시 이 경기를 중계한 하워드 카셀도 컴퓨터로 재생시켰다. 
작년에 ‘라라 랜드’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스톤이 젊은 시절의 킹과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여유만만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연기를 기막히게 해낸다. 그리고 카렐도 곡예를 하는 원숭이 같은 쇼맨 연기를 활기차게 한다. 보고 즐기기엔 안성맞춤의 영화로 여자들이 박수를 칠 것이다. 발레리 화리스와 조나산 데이턴(‘리틀 미스 선샤인’) 공동 감독의 솜씨가 유연하다. 구식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도 좋다. 보다 극적으로 깊고 강력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토리아와 압둘(Victoria & Abdul)


빅토리아 여왕과 압둘이 궁정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국 여왕과 인도 말단 서기간 우정의 비결은


빅토리아는 영국 여왕이고 압둘은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맞아 인도에서 예물을 들고 온 말단 서기의 이름이다. 두 사람의 오래 지속된 뜻밖의 우정의 실화로 얘기가 아기자기하게 재미있고 연기와 촬영과 의상 그리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음악 등이 고루 훌륭한 대중의 입맛에 딱 맞을 시대극이다. 
형식에 얽매인 궁중생활에 싫증과 짜증이 난 여왕이 모든 것이 색다른 이국 인도의 젊고 잘 생기고 격식을 무시하는 남자를 만나 생기와 활기를 찾는 얘기를 유머와 페이소스를 잘 섞어 한 상 잘 차린 풍성한 잔치처럼 내놓았다. 
타지 마할이 있는 아그라에서 선발된 압둘(알리 화잘)과 그의 동료 모하메드(압딜 악타르)는 빅토리아여왕(주디 덴치)에게 바칠 선물을 들고 영국으로 간다. 압둘과 달리 모하메드는 압제자의 나라에 가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다. 이어 여왕의 궁중생활이 우습고 재미있게 묘사되는데 격식을 싫어하고 퉁명스러우나 속은 인자하고 현명한 여왕이 식탁에 앉아 닭고기를 손으로 집어 뜯어 먹고 곧이어 조는 모습이 웃긴다.
압둘이 여왕에게 예물을 바칠 때 영국 왕실 관리인의 지시를 무시하고 여왕과 눈을 마주치면서 여왕은 즉시로 이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압둘은 여왕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여왕 폐하에게 봉사하는 것은 몸 둘 바를 모를 특전입니다”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도무지 이해 못할 점은 어떻게 해서 압둘이 정복자요 탄압자인 여왕에게 그렇게 충성과 애정의 표시를 하는 것인가 하는 것. 종이나 하인의 근성으로 영화에서 이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는 것이 흠이다. 따라서 압둘의 개성 묘사도 빈약하다. 
여왕은 관리들의 반대에도 불사하고 압둘을 자기 심복이자 친구요 조언자로 삼고 산책을 하면서 개인적이요 공적인 일들까지 얘기를 나누고 이어 압둘로부터 우르두어까지 배우면서 압둘은 여왕의 선생이 된다. 영화는 대부분 이런 여왕과 압둘의 지극한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둘은 플라토닉한 우정관계이나 애정관계처럼 느껴진다. 
이 관계로 인해 여왕은 소녀처럼 웃고 떠들고 생기와 신선함이 되살아나는데 뒤늦게 압둘이 결혼했다는 것을 밝히고 또 무슬림이라는 것도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작은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압둘을 철저히 믿고 사랑하는 여왕은 압둘의 가족까지 초청해 압둘을 자신의 보좌관처럼 만든다. 여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버티(에디 이자드)가 왕이 되면서 압둘과 그의 가족은 인도로 쫓겨난다.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작품인데 극적 굴곡이 약해 큰 감동은 모자란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PG-13.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팜므 파탈 카르멘




내가 6개월마다 남자를 갈아 치우는 스페인 세빌의 담배공장 여공 카르멘이 단순한 요부가 아니라 여성 자유와 해방의 주창자요 자기 소신을 위해선 하늘과 죽음과도 맞설 용의가 있는 대담무쌍한 여자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은 지난 14일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오페라 ‘카르멘’(Carmen^사진)을 보고나서였다.
주인공이 담배공장에서 일해 오페라 처음에 “담배는 공기를 향기롭게 해 준다”라는 여공들의 끽연찬양 합창이 있는데 요즘처럼 모든 것이 ‘폴리티칼리 코렉트’한 세상에선 야단맞을 소리다.
뭇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인 카르멘은 자신의 성적 매력이 지닌 힘을 이용해 여자를 우습게 알던 때에 성의 불균형을 깨어버린 여자요 천대받는 집시라는 신분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 의기양양한 여자다. 이 정열덩어리 여인이 자신의 사랑과 진실을 위해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운명을 수용하는 것을 보자니 경외심마저 인다. 믿음을 위해 자기 생명마저 바치는 순교자와도 같은 여자다.
비제의 ‘카르멘’은 시종일관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음악과 극적인 내용 때문에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에도 팬들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LA오페라는 1회 공연을 추가했다.
이번 공연은 보고 즐기기엔 큰 손색은 없지만 상당히 평범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돋보인 것이 카르멘 역을 맡은 푸에르토 리코 태생의 소프라노 아나 마리아 마르티네스. 작달만한 체구나 불덩어리였는데 노래는 물론이요 춤과 제스처를 비롯한 동작이 모두 당당하고 정열적이었다. 음성은 청아하면서도 약간 칙칙했는데 마치 밑에서 피어오르는 물 먼지가 건드리는 맑은 냇물과도 같은 음색이다.
그런데 카르멘을 사랑해 함께 살자고 애걸복걸하다가 퇴짜를 맞자 살인을 저지르는 단순한 마음의 호세 역의 테너 리카르도 마시는 덩지만 컸지 카리스마도 노래도 모자랐다. 그리고 마르티네스와의 화학작용도 미적지근해 이 정열적이요 비극적인 오페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돈 호세의 라이벌로 투우사인 에스카밀로 역의 베이스 알렉산더 비노그라도프의 노래는 시원했으나 전반적으로 가수들이 별 특색이 없고 노래도 그만 그만했다.
눈요기 거리는 남녀댄서들의 플라멩코. 빨간 드레스에 빨간 부채를 든 여인들과 검은 바지에 흰 셔츠 그리고 빨간 타이를 맨 남자들이 어울려 구두 발로 리드미컬하게 박자를 맞추며 절제된 동작으로 추는 플라멩코가 화사하다. 합창도 좋았고 LA오페라 음악감독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LA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속도 있고 스무스 했다.
‘카르멘’은 여러 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프란체스코 로시는 플라시도 도밍고(현 LA오페라 총감독)와 줄리아 미제네스-존슨이 주연하는 오페라 영화 ‘카르멘’(1984)을 만들었고 칼로스 사우라는 ‘카르멘’(1983)을 댄스극으로 연출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오토 프레민저가 제작^감독하고 흑인 배우들만 나오는 ‘카르멘 존스’(Carmen Jones^1954)다. 2차대전 때 군인 조(해리 벨라폰테)와 낙하산 제조공장 여공 카르멘 존스(긴 다리 미녀 도로시 댄드리지가 아스팔트도 녹일 화씨 100도짜리 검은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권투 챔피언 허스키 밀러(조 애담스)간의 삼각관계를 그렸는데 주옥같은 노래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댄드리지의 노래는 마릴린 혼이 벨라폰테의 노래는 르번 허처슨이 그리고 애담스의 노래는 마빈 헤이스가 각기 더빙했는데 노래 가사는 뮤지컬 ‘오클라호마!’ ‘카루셀’ ‘남태평양’ ‘왕과 나’ 및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가사를 쓴 오스카 해머스틴 II가 썼다.
카르멘이 비록 여권 신장의 선창자이긴 하지만 역시 이 격정적인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유혹녀인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명칭이 더 잘 어울린다. ‘팜므 파탈’은 자신의 섹스 어필을 동원해 어리숙한 남자를 유혹해 이용한 뒤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 요부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범죄영화 장르인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들로 ‘카르멘’의 주인공과 내용은 이 장르의 전형적인 사례다.
아담을 유혹해 인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이브와 천하장사 삼손을 파멸시킨 딜라일라가 원로급 ‘팜므 파탈’. 영화 ‘이중 배상’(Double Indemnity^1944)에서 봉 같은 보험외판원 프레드 맥머리를 유혹해 보험에 든 자기 남편을 살해시키는 바바라 스탠윅과 ‘살인자들’(The Killlers^1946)에서 역시 어리숙한 전직 권투선수 버트 랭카스터를 유혹해 파멸시키는 에이바 가드너도 카르멘과 어깨를 나란히 할 탑 클래스 ‘팜므 파탈’들이다.
‘카르멘’은 23일, 28일 및 10월 1일 세 차례 공연이 남았다. 28일 공연(하오 7시 30분)은 LA다운타운 엑스포지션 공원과 샌타모니카 피어에서 야외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9월 19일 화요일

‘스파이더-맨: 홈커밍’ 탐 홀랜드




"수퍼 히어로와 달리 평범한 이웃 히어로 나와 딱 맞아요"


마블만화의 주인공 스파이더-맨의 액션과 모험 그리고 첫 사랑을 다룬 ‘스파이더-맨: 홈커밍’(Spider-Man:Homecoming)의 주인공 피터 파커 역의 영국배우 탐 홀랜드(21)와의 인터뷰가 할리우드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베이비 페이스의 홀랜드는 밝고 쾌활했는데 액센트를 섞어가며 질문에 차분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농담을 하면서 대답했다. 총명한 똘똘이 인상이었다. 홀랜드는 이 영화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 영화 홍보 차 한국에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소감은.
“사흘간 머문다. 첫 방문이어서 흥분된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로 그에 대해 멋진 말들을 많이 들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직업에 종사하는 나야말로 운 좋은 사람이다. 한국서 여러 사람 만날 생각에 굉장히 들떠 있다.”

-한국은 술 좋아하는 나라인데 술 좋아하나.
“영국과 마찬가지네. 난 매일 드문드문 술을 마시니 한국에서도 잘 지내겠네.” 

-만화의 수퍼히어로들은 스파이더-맨 외에도 배트맨, 수퍼맨 및 아이언맨 등 여러 명인데 스파이더-맨이 이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나는 그들보다 훨씬 젊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5세의 평범한 소년이어서 관객들이 다른 수퍼히어로들 보다 더 실제처럼 느끼면서 친근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백만장자여서 접근하기가 힘든 인물이다. 그러나 피터 파커는 모두 다니는 고등학교 학생이요 또 또래들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에게 부끄러워 말을 못 하는 아이여서 모두들 그에게 동질감을 가질 수 있다. 그 점이 다른 것이다.”

-스파이더-맨으로 팬들의 인기를 크게 받게 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열광적이다. 솔직히 말해 난 그것을 즐기고 있다. 온 세계를 돌면서 각기 다른 나라의 팬들을 만난다는 것은 진짜로 아름다운 일이다.”                
가면을 벗은 스파이더-맨이 달리는 열차 위에 서있다.


-팬들과의 만남 중에 가장 희한했던 경험은 무엇인가.
“런던에서 한 소녀와 사진을 찍었는데 소녀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소녀는 이튿날 자기 팔에 내 스파이더-맨의 문신을 새겼다고 했다. 그 말에 깊이 감동하면서도 내가 소녀의 평생 동안 그와 함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그러나 소녀가 정말로 좋아하니 그것으로 됐다고 본다.”

-오디션 과정은 어땠는가.
“오디션은 언제나 크게 신경이 쓰인다. 난 어려서부터 침대에서 스파이더-맨 흉내를 낸 것이 도움이 됐다고 본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흉내내기가 쉽긴 했지만 무척 긴장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디션은 다른 최종 후보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전 세계가 보는 중에 행해져 진짜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역을 얻은 것에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피터 파커는 학교에서 아무도 자기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데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는가.
“난 발레와 럭비학교에 다녔을 때 제대로 적응을 못 했지만 결코 그에 굴복치 않고 즐기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내 생활신조다.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시도한다. 피터 파커는 내 인생의 완벽한 모범이다. 그가 스파이더-맨이 되면서 인생이 바뀌는 것처럼 내 인생도 지금 내 눈 앞에서 급격히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런 변화에도 자기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지킨다는 점이야 말로 중요한 일이다.”

-지금 세상이 필요한 것이 다정한 이웃 히어로인가 아니면 세계를 구하는 수퍼히어로인가.
“다정한 이웃 히어로다. 그는 이웃을 묶어 주는 결속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회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고 본다. 이 영화가 멋진 점은 히어로가 외계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잡범들을 제거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영화의 실제적 주제다. 따라서 관객들도 영화를 보면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 피터 파커는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 리즈에게 말을 못해 쩔쩔매는데 본인도 그런가.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난 지금 여자에게 말을 걸 시간이 없다. 계속해 지구를 돌면서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난 어려서부터 늘 키가 작아 여자 복이 없었지만 이젠 스파이더-맨이 된 덕분에 좀 나아졌다.”

-세상의 소년들에게 해줄 조언은 무엇인가.
“상투적이지만 자기에게 충실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최고의 모습은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본인에게 있어 영웅은 누구인가. 
“그들은 내 아버지와 맹장염에 걸려 죽을 뻔 했던 내 남동생을 살려준 의사다. 그리고 내가 머리를 다쳤을 때 돌봐준 간호사다. 그들이 내 매일의 영웅들이다. 아 영화의 모토도 매일 우리를 도와주는 영웅들이 수퍼히어로들이라는 점이다.”

-이 영화로 인해 여행을 많이 했을 텐데 즐겼는가.
“난 짐을 아주 잘 싼다. 이 영화 홍보 차 개인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돌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들을 본다는 것은 정말 값진 일이다. 지금까지 가 본 중에 제일 좋은 곳은 파리였다.”

-코미디언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가.
“우린 항상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는 연예계에 30년을 종사했기 때문에 내게 늘 실제적인 조언을 해 준다. 그는 내게 유일하게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옆에 그러면 안 된다고 말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가진 것은 큰 행운이다. 그와 나의 관계는 가장 값진 것으로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나의 아버지이지 친구는 아니다. 아버지는 최고의 부모는 자식들의 친구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다.”

-어릴 때 발레를 배웠다고 했는데 지금도 춤을 추는가.
“춤은 내가 영화에서 연기하는데 값진 도움이 되고 있다. 연기란 육체를 동원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춤은 자신의 육체적 동작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난 춤을 사랑한다. 난 지금이라도 금방 일어나 춤을 출 수 있다. 그 동안 영화 때문에 춤을 못 춰 몸이 근질거린다.”

-스턴트에 본인이 얼마나 기여 했는가.
“난 춤을 배우고 체조 경험이 많아 가급적 특수효과를 안 쓰고 내가 스턴트를 했다. 그런데 감독 존 와츠가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벽을 타고 올라 거꾸로 회전해 뛰어내릴 수 있겠느냐고 하기에 ‘난 그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춤을 배웠으니 음악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텐데.
“음악은 에너지를 집결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을 차단시킨다. 난 시끄러운 세트에 있을 때 다음에 우는 연기를 해야 하면 내 전화에 담은 슬픈 노래들을 듣는다. 그러면 곧 그 분위에 젖게 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슬픈 곡 중 하나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미션’의 음악이다.”

-어떤 여자를 좋아 하는가.
“난 웃기를 좋아해 나와 함께 우스운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어머니가 좋아해야 한다.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 어머니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영화에서 벗은 상체를 보니 강건하던데 운동을 얼마나 하는가.
“난 요즘도 매일 체육관에 가서 앉았다 일어나기와 팔 굽혀펴기 등 운동을 한다. 매일 앉았다 일어나기를 2백번 정도 한다. 운동은 이제 나의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호텔에 있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성을 어떻게 다루는가.
“난 그저 친구들과 가족과 가까이 있으려고 애 쓴다. 내 인생이 변하긴 했지만 내 개인적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어렸을 때의 삶을 살고 있다. 부와 명성이 내게 지나치게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더!(mother!)


마더(중간)는 남편 시인과 달리 광란의 인파에 시달리고 있다.

은유·광기 뒤범벅… 제니퍼 로렌스 출연 공포스릴러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한 대런 아로노프스키(‘블랙 스완’ ‘꿈을 위한 진혼곡’)의 지나치게 부푼 이고와 영화의 배급사인 패라마운트가 그에게 준 과다한 창조적 자유가 뒤범벅이 돼 낳은 초현실적이요 구구 각색으로 해석이 가능한 공포영화이자 심리 스릴러다. ‘로즈메리의 아기’를 연상케 하는 광란의 루이스 부누엘 영화라고 하겠다.
영어 제목의 첫 글자를 비롯해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그 남자 그 여자가 이름이다) 모두 소문자로 쓰였는데 유독 ‘힘’(Him)이라고 대문자로 된 이름을 지닌 사람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인(하비에르 바르뎀)이다. 그는 신이기 때문에 대문자로 이름이 시작된다. 제목의 ‘마더’는 이 신의 아내(제니퍼 로렌스)로 ‘마더’는 자연을 상징한다. 이렇게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영화여서 한번 보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최근에 폐막된 베니스 영화제서 상영됐을 때 관객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그러나 며칠 전 토론토 영화제서 만난 아로노프스키는 “내 영화는 칭찬을 받든지 아니면 야유를 받든지 어느 것이든 극단적인 반응을 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허허벌판 자연 속에 고풍의 외딴 집이 있다. 이 집에는 유명 시인이 그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시인은 창작력이 고갈돼 고민 중이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여자는 집을 재단장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이런 설정을 보면 영화는 작가의 창작에 대한 열망이 빚어낸 광기와 함께 예술이 삶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감독의 소신임에 분명하다.  
어느 날 불청객 부부가 이 집을 방문하면서 평온하던 시인과 그의 아내의 삶은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다. ‘남자’(man-에드 해리스)는 기침을 계속하면서도 줄담배를 피우고 ‘여자’(woman-미셸 파이퍼)도 줄담배에 술꾼인데 ‘남자’는 시인의 열렬한 팬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여자’는 신경이 예민하고 건방지기가 짝이 없으면서 ‘마더’에 대해 처음부터 적대적이다.
글이 안 써져 고생하던 시인은 갈 곳이 없다는 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아내의 허락도 없이 둘을 자기 집에 묵으라고 허락한다. 그리고 이 둘이 시인과 그의 아내의 삶을 헤저어 놓으면서 시인과 그의 아내의 삶은 지옥 길로 치닫게 된다. 
이어 남자와 여자의 서로 적대적인 두 아들(친 형제 배우 도날과 브라이언 글리슨)이 찾아오면서 집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여기에 집의 온갖 파이프마저 터져 물난리가 나니 ‘마더’는 죽을 맛인데 시인은 오히려 이들 불청객을 즐기며 새로운 시상마저 얻는다. 그러나 시인은 아내의 강력한 청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쫓아내나 이어 시인의 수많은 팬들이 떼를 지어 집에 찾아오면서 광란의 바커스 축제가 벌어지고 폭력과 테러가 자행된다. 
아로노프스키는 영화에서 인간의 자연 파괴를 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는데 장시간 계속되는 영화의 마지막 광기에 대해선 보는 사람마다 제 각기 다른 해석이 가능하나 플롯이 지나치게 허무맹랑하다. 근 1시간 정도나 클로스업 된 얼굴로 내면 변화를 보여주는 로렌스의 연기가 가상하고 바르뎀과 해리스 및 파이퍼 등도 잘 한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들은 먼저 내 아버지를 죽였다(First They Killed My Father)


루앙이 포탄을 피해 언덕 아래 숨어 있다.


앤젤리나 졸리 연출력의 한계 또 다시 드러내



유엔 대사로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인도주의 활동을 펴고 있는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지의 양민 대학살에 관한 실화로 제작 의도가 가상하고 모양새가 번듯하나 깊이와 강한 충격이 모자란다.
졸리는 캄보디아에서 아들 매독스를 갓난 아기 때 입양해 이 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캄보디아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으로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루앙 웅(47)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루앙 웅이 쓴 자전이 원작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졸리에게 개인적으로 가까운 심혈을 기울인 대작인데 정성을 다한 마음만큼 열매는 익지를 못 했다. 졸리의 다른 연출작품들인 보스니아 전쟁을 다룬 ‘피와 꿀의 나라에서’와 태평양전쟁의 생존기 ‘언브로큰’ 등도 마찬가지로 졸리의 연출력은 열기와 깊이와 강한 힘이 모자란다.
이 영화와 같은 내용을 다룬 오스카 수상작인 롤랜드 조피 감독의 ‘킬링 필즈’(1984)의 잔인한 폭력이 던져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강력한 감동과 충격에 비하면 졸리의 영화는 너무 유순하게 폭력을 다뤘다. 13세 소녀의 눈으로 본 얘기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전인구의 4분의 1을 학살한 역사를 다룬 것으로선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나 충격이 크게 모자란다.
1975년 크메르 루지가 캄보디아를 통치하면서 프놈펜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던 루앙(스레이목 사레움이 민감하고 표현력 강한 연기를 한다)의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루앙의  오빠와 언니 등은 수용소로 보내져 기아와 노동과 학대에 시달린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난 루앙의 아버지가 처형된다(이런 폭력적인 장면들이 화면 밖에서 일어나거나 아니면 흐리게 처리돼 전체적으로 영화가 맹물 마시는 기분이다.)
그리고 루앙을 비롯한 아이들도 어머니를 떠나 뿔뿔이 헤어지고 루앙은 대 베트남전쟁을 위한 소녀병이 되어 지뢰매설과 총검술을 배운다. 이런 지옥 같은 역경 속에서도 루앙은 강한 의지와 지혜를 구사해 살아남고 오빠와 언니들과도 재회한다.
136분의 긴 상영시간 동안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가족의 이산과 재회 등을 폭 넓게 다루지 못하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루앙과 루앙의 부모 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피상적으로 다뤄졌다. 루앙과 또래의 아이들이 지뢰를 피해 조심스럽게 피신하는 장면 등을 공중에서 찍은 촬영과 음악은 좋다. 15일부터 네트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며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극장에서 상영된다.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학교 생활 (School Life)


선생님 존이 제자의 운동화 끈을 매어주고 있다.

사랑으로 지도하는 참 선생님들의 모습 ‘가슴 뭉클’


사부일체라는 말도 있듯 스승은 부모와도 같은 것. 아일랜드의 기숙사 초등학교 헤드포트의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를 1년간 다룬 기록영화로 스승들의 제자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돌봄 그리고 사랑이 가득히 배어있다. 
매우 감동적이요 아름답고 부드러운 작품으로 이 학교에서 근 반 세기 동안 제자들을 양성한 노부부교사 존과 아만다 레이든을 중심으로 교사들의 제자 지도와 학생들의 수업 풍경 그리고 교직원 회의와 학생들의 기숙사 안에서의 생활 및 레이든 부부의 가정생활 모습 등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레이든 부부가 가르친 제자 중에는 이 학교의 원기왕성하고 진보적인 교장 더못도 포함돼 있는데 부부가 연극과 음악 등 특별 과외 수업을 통해 수업 진도가 다소 느리고 소심한 아이들을 격려하면서 그들이 활짝 피어나게 만드는 심신을 다 한 가르침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자연 속에 위치한 고풍찬연한 건물 안과 밖에서 공부하고 뛰어노는 어린 학생들의모습이 자연스럽고 다정하게 카메라에 포착되는데 그런 학교 안팎의 학생들의 활동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 찍은 촬영과 잔잔히 물결치는 음악이 곱다. 
헤드포트는 예비학교로 이 학교를 나온 우수한 학생들은 영국의 사립명문 이튼 등에 들어간다. 한 남학생이 학기가 끝나고 선생님으로부터 이튼에 입학이 허락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기특해 보인다.
이웃집 마음 착한 아주머니 같은 아만다는 영어 선생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독서라고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리고 연극 ‘햄릿’을 무대에 올리면서 리허설하는 장면이 자세히 그려지는데 여기서 성적이 다소 부진한 남학생이 햄릿의 독살당한 아버지 귀신으로 나오면서 자신을 얻는다. 
한편 존은 이웃집의 무뚝뚝한 아저씨 같지만 속은 자상하고 인자한 라틴어 전문. 그는 정상수업과 함께 음치들보다 조금 나은 학생들을 모아 록밴드를 조직하는데 리허설 괴정에서 노래를 신통치 못하게 부르는 여학생들에게 가차 없이 “됐어”라며 핀잔을 준다. 그러나 결국 밴드가 구성돼 학생들이 모여 춤추고 박수를 치는 가운데 연주를 성공리에 마친다. 
모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극진히 사랑하고 그들의 진로 안내에 열과 성을 다하는데 더못 교장과 스승들은 한결 같이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너희들이 먼저 스스로 그 변화 시도에 앞장서라고 역설한다. 레이든 부부의 학교에서의 지도와 함께 그들이 집에서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개별 신상문제를 서로 염려하면서 얘기하는 다정한 정경을 통해 이들 부부의 제자 사랑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얘기된다. 
영화는 눈가에 습기가 고이는 스승들과 제자들의 이별장면으로 끝난다. 학생들이 자기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 앞에서 스승들과 함께 친구들과 포옹을 하면서 이별을 아쉬워하는데 이제 중학교에 들어갈 소년이 자꾸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이별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을 보자니 눈물이 고인다. 
떠나가는 제자들을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레이던 부부의 뒷모습과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차에 올라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삶의 퇴장 길로 들어선 사람과 활짝 열린 긴 미래로 나아갈 어린 아이들의 삶의 자태가 엿보인다. 스승과 제자가 모두 보기를 권한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홈 어겐(Home Again)


술김에 하룻밤을 함께 보낸 앨리스(왼쪽)와 해리.

위더스푼 출연 구태의연한 로맨틱 코미디


오스카상을 탄 리스 위더스푼의 오발탄 같은 로맨틱 코미디로 한 마디로 볼썽사납다. 40대 여자와 20대 남자의 사랑을 다룬 ‘메이-디셈버’ 로맨스 영화인데 진부하고 구태의연하며 인공 감미료 맛이 나는 보기에 낯간지러운 나쁜 영화다. 여성 팬들을 노리고 만들었는데 무기력하고 전연 특색이 없는 영화이니 속지 마시도록.
이 영화는 ‘왓 위민 원트’와 ‘섬싱스 갓 투 기브’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잘 만드는 여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딸 할리 마이어스-샤이어가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인데 그야말로 허영의 산물이다. 연출력이 펑퍼짐하고 각본도 밋밋하며 전체적으로 너무 소독을 해 영화에 긴장감이 없고 인물들도 개성이 전무하다.
두 주인공인 나이 먹은 위더스푼과 그의 젊은 상대역으로 나오는 개인적 특징이 결여된 패션 모델 같은 피코 알렉산더 간의 화학작용도 전연 없으며 위더스푼이 철없는 소녀처럼 과장되게 애교를 떠는 연기를 하는데 어색해 얼굴이 뜨거워진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뉴욕에서 살다가 남편 오스튼(마이클 쉰)과 헤어진 뒤 LA의 자기가 자란 집으로 이사 온 40대의 앨리스(위더스푼)는 실내 장식가. 고독하고 불행하다며 질질 짜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바에 갔다가 일이 생긴다.
20대의 영화감독 지망생 해리(알렉산더)와 그의 동생으로 배우 지망생인 테디(냇 울프) 그리고  이들의 친구로 각본을 쓰는 조지(이온 러드니츠키)는 막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쫓겨나 홧술을 마시러 이 바에 들렀다. 그리고 모두 술에 취한 남녀들이 춤추고 얘기를 나누다가 앨리스와 해리가 눈이 맞아 둘이 앨리스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앨리스가 이튿날 깨어보니 테디와 조지도 카우치에서 자고 있다.
이 때 앨리스의 어머니(캔디스 버겐-오래 만에 반갑지만 하필 이런 영화에서 만날 것이 무언가)가 나타나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더니 셋을 게스트 하우스에서 살라고 선심을 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명약관화한 일.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제리 루이스


내가 철이 덜 든 어른 같은 코미디언 제리 루이스를 화면을 통해 처음 본 것은 루이스가 그의 명콤비였던 딘 마틴과 함께 나온 ‘화가와 모델’이었다. 중학생 때 서울의 서대문에 있던 동양극장에서 봤는데 어찌나 우습고 재미있었던지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었다.
내가 정신 나간 얼간이 같은 루이스를 실제로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5년 1월 내가 속한 LA영화 비평가협회가 그에게 생애업적상을 주었을 때다. 나는 그 때 시상만찬에 참석한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뒤 “난 당신 영화 보며 컸어요”라고 감개무량해 했더니 루이스는 옆에 동석한 사람에게 “이 친구 내 영화 보며 컸대”라며 웃었었다. 그 날 루이스는 연단에 올라가 상을 받은 뒤 “이 상을 받아 기쁜데 염병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라고 투덜대(?)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었다.
제리 루이스가 지난 달 20일 91세로 타계했다. 고무 얼굴에 키들 키들대면서 미친 사람처럼 과장된 동작과 함께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굴어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던 루이스는 무대와 TV와 스크린을 누비면서 고단하고 우울한 세상에 웃음을 선사한 천재 코미디언이었다.
나는 루이스(사진)를 작년에 그가 은퇴한 재즈 피아니스트로 나온 감상적인 ‘맥스 로즈’를 위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와의 기자회견 때 다시 만났다. 루이스는 지팡이를 짚고 윌체어를 타고 회견에 임했는데 상소리를 섞은 유머와 위트를 유감없이 구사하면서 청산유수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에 “왓 왓”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미친 에너지를 발산하며 곡예사 같은 동작으로 사람을 웃기던 그의 이런 모습을 보자니 세월의 속절없음에 가슴에 구멍이 생기듯 허전해졌다. 그러나 루이스는 90이 오히려 좋고 스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 이제 걷기도 보기도 듣기도 힘들지만 그 것이 내가 내야할 렌트라면 괜찮다”며 세월을 수용했다.
루이스는 자기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과 함께 주연도 한 만능 재주꾼으로 그의 감독 데뷔작은 ‘벨 보이’(1960). 그의 대표작인 ‘정신 나간 교수’도 루이스가 1인3역을 한 영화다. 그런데 루이스는 미국 비평가들보다 유럽 특히 프랑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의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이 때문인지 루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비평가들은 창녀들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라고 독설을 해댄바 있다.
루이스는 영화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구는데 그는 이에 대해 “내 영화가 아이들의 행동에 바탕을 둔 이유는 아이들이 즐기는 재미야 말로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행복하고 웃을 때는 좋은 영화를 만들 때라는 루이스는 그러나 요즘 미국영화에 대해서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영화들이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1946년부터 10년간 명콤비였던 딘 마틴을 그리워하면서 “우린 마법적인 관계로 서로를 극진히 사랑했다”면서 “그와 갈라선 후 오래 동안 서로의 의견 차로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며 후회했다. 둘은 함께 모두 1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루이스는 깔깔대고 웃으며 농담도 잘 했지만 이와 함께 삶을 충분히 산 현자와도 같은 말도 많이 했다. 자기 삶에 대한 후회가 없느냐는 물음에 “후회란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 것을 계속해 생각하고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죽은 뒤에는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 기억되든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루이스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기쁨과 웃음을 준 것처럼 실제로도 즐겁게 산다고 말했다. “나는 하느님이 준 매일의 24시간을 즐기며 산다”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삶을 예찬했다.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글을 쓰고 가끔 영화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지난 36년간 사랑해온 아내 샌디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루이스의 잊지 못할 평생 친구는 케네디와 채플린. 케네디는 자기처럼 영화광으로 그가 죽을 때까지 서로 뜻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플린으로 부터는 많은 것을 배웠는데 채플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몸의 한 부분을 잃은 것 같았었다고 기억했다.  나는 루이스에게 “전설적인 코미디언인 당신은 우울하거나 고독할 때면 어떻게 그 것에서 벗어나느냐”고 물었다. 이에 루이스는 “묘지를 찾아가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 한다”고 이죽거렸다. 그러던 그가 이제 묘지에서 쉬게 됐다. 루이스의 몸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하늘에 올라 그는 지금 자기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 앞에서 천국 코미디쇼를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로부터 루이스의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9월 4일 월요일

총독의 저택(Viceroy‘s House)


마운트배튼 총독이 간디(왼쪽)와 인도 독립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가운데는 총독부인 에드위나.

인도 독립 서사시, 엉성한 구성으로 몰입 떨어뜨려


1947년 8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 이 역사적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인도 총독으로 부임한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휴 본느빌)의 실화를 허구와 섞어 만든 화사한 시대극으로 ‘베컴처럼 차라’를 감독한 인도계 미국 여류감독 구린더 차다가 연출했다. 
옛날 영화식의 대하 서사극으로 앙상블 캐스트와 현지 촬영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 등 표면적으로는 잔칫상처럼 화려하고 풍성하나 연출 능력이나 내용은 다소 진부하고 감정적으로나 극적으로도 깊이가 모자란다. 언뜻 보기엔 ‘인도로 가는 길’을 연출한 데이빗 린의 작품을 연상시키나 광범위하고 파란만장한 얘기를 너무 소심하고 곱고 깨끗하며 또 피상적으로 다뤄 극적 충격이 약해 작품 안으로 몰입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영화는 정치적 내용과 함께 340개의 방이 있는 총독의 저택 내 지배 계급과 하인 계급의 얘기를 ‘위층 아래층’ 식으로 다뤄 역시 본느빌이 나온 영국 드라마 시리즈 ‘다운턴 애비’를 생각나게도 한다.  
합리적이요 진보적인 마운트배튼 경은 아내 에드위나(질리안 앤더슨)와 함께 뉴델리 총독 저택에 여장을 풀자마자 인도 독립 문제 논의에 들어간다. 문제는 인도를 한 국가로 독립시키느냐 아니면 힌두족이 대다수인 인도로부터 회교도들을 분리시켜 2개의 국가로 독립시키느냐 하는 것. 이를 놓고 총독은 간디(네라지 카비)와 네루(탄베르 가니)와 연쇄 회담을 벌이면서 아울러 회교도 대표인 모하메드 알리 지나(덴질 스미스)와도 회담을 갖는다.
이와 함께 저택 밖 세상에서는 힌두교들과 무슬림들 간에 유혈 폭력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이런 갈등은 저택 내 하인들에게까지 번진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총독은 인도를 두 국가로 나누기로 결정하고 영국으로부터 변호사 시릴 래드클립(사이먼 캘로)을 불러들여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을 그리도록 시킨다.
이런 정치적 얘기와 함께 총독을 비롯한 지배 계층과 이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묘사되면서 뜬금없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의 얘기가 끼어든다. 마치 밖에서의 힌두교 대 무슬림의 갈등에 대비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저택 내 하인층인 힌두 청년 지트(머니시 다얄)와 무슬림 처녀 알리아(후마 쿠레시) 간의 사랑이 묘사되나 이는 상투적인 당의정 식의 곁가지다.
격동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로선 얘기의 결이나 구성이 엉성한데 장려한 드라마가 되기보다는 공손한 소프트 오페라가 됐다.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나 그들이 작품에 얹는 무게도 실하지 못하다. 좋은 소재를 충분히 살리진 못했으나 볼 만은 하다. 영국과 인도의 베테랑 스타들인 마이클 갬본과 지난 1월에 사망한 옴 푸리가 나온다. 그런데 바람둥이인 에드위나는 네루와 정사를 벌였고 마운트배튼도 정부가 있었다고 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폴리나(Polina)


폴리나(오른쪽)가 아드리앙과 함께 댄스훈련을 받고 있다.

“꿈을 찾아서…” 발레리나의 고뇌·피와 땀 그려


독립심 강한 발레댄서의 자아 추구를 직선적이면서 약간 기록영화 식으로 다룬 프랑스영화로 감독과 주·조연 배우가 다 실제로 발레를 연마한 사람들이다. 발레영화로 뛰어나 것은 ‘분홍 신’과 ‘흑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이 둘의 수준에 이르진 못하나 댄서의 고통과 고뇌와 인내 그리고 피와 땀을 진지하고 흥미 있게 다뤘다. 특히 전통 발레와 현대 무용을 표현한 안무가 볼만하다. 바스티앙 비베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
공산체제 하 소련의 한 공업도시에서 가난한 부모와 함께 사는 소녀 폴리나(베로니카 조브니츠카)는 발레학교 오디션을 통과해 엄격한 스승(알렉세이 쿠스콥)으로 부터 강훈련을 받는다. 폴리나는 귀갓길에도 즉흥적으로 댄스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타고난 댄서다.
이어 10대가 된 폴리나(아나스타시아 쉐브초바-실제로 마린스키 발레단원이었다)는 저명한 볼쇼이 발레단 오디션을 앞두고 현대무용을 보고나서 자신의 예술적 본능을 추구하기 위해 함께 댄스를 수련한 프랑스 청년 아드리앙(닐스 슈나이더)과 함께 프랑스로 간다. 틀에 박힌 전통 무용을 탈피해 즉흥적이요 살아 있는 현대적인 댄스를 배우겠다는 욕심에서다
여기서 폴리나는 아드리앙과 동거하면서 자유혼을 지닌 현대 무용가 리리아(연기파 베테런 쥘리엣 비노쉬도 실제로 발레를 수련했다)로 부터 강훈련을 받는다. 몸에 상처가 나고 발톱이 뭉개지는 고된 수련이다.
그러나 부평초 같은 폴리나는 리리아가 약속한 ‘백설 공주’의 프리마 돈나 역을 다른 사람에게 주자(자기 탓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벨기에 안트웝으로 이주해 바에서 일한다. 그리고 거리의 생활과 전자음악으로 부터 영감을 취하는 즉흥적 댄스단체에 들어간다. 폴리나는 비로소 여기서 춤을 추면서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만족시킨다.          
재능 있는 젊은 여인의 자기 음성을 찾는 이야기의 서술 과정이 고르지 못하고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약하긴 하지만 쉐브초바의 단단한 연기와 함께 다채로운 안무로 꾸며진 댄스 장면이 볼 만하다. 발레리 뮐러와 프랑스 안무가 앙젤린 프레료카 공동 감독. PG.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랑스 영화 ‘구멍’ (Le Trou·1960) 복원

롤랑이 하수구 벽을 뚫으면서 시멘트 조각들을 나르고 있다

탈옥 준비과정 사실적 묘사 조마조마


시몬 시뇨레와 세르지 레지아니가 공연한 어두운 러브 스토리 ‘황금 투구’(Casque d‘Or·1952)와 장 가방, 리노 벤투라 및 잔느 모로가 나온 갱스터 영화 ‘황금에 손대지 마라’(Touchez Pas au Grisbi·1954)와 같은 걸작을 만든 프랑스의 자크 베케 감독이 1960년에 만든 흑백영화 ‘구멍’(Le Trou)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긴장감 팽팽한 교도소 탈출 이야기다. 
베케는 5명의 탈출을 시도하는 미결수들 역에 주로 비배우들을 썼는데 영화 처음에 카메라를 향해 “이것은 내 친구 자크 베케가 내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 탈출을 기도한 롤랑 바르바(무대 이름 장 케로디)다. 또 베케는 바르바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 미결수 중 2명을 기술 자문으로 고용해 영화의 사실성을 극대화 했다. 
프랑스 갱영화의 거장 장-피에르 멜빌이 “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 영화”라고 칭찬한 작품으로 또 다른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장 르놔르에 사사한 베케는 영화 촬영이 끝난지 몇 주 후 53세로 요절했다. 원작은 조제 지오반니가 탈옥 시도를 소설로 쓴 ‘탈출’(The Break)로 베케는 처음에 이 사건을 신문에서 읽고 영화화를 생각했다고 한다. 
1947년 파리의 상테 교도소. 터프 가이들인 중범자 미결수 롤랑 다르방(장 케로디)과 마뉘 보렐리(필립 르로이) 그리고 별명 ‘각하’로 불리는 보슬랑(레이몽 뫼니에)과 제오 카신(미셸 콩스탕팅) 등이 수감된 좁은 방에 아내 살해 미수범으로 기소된 젊은 클로드 가스파르(마르크 미셸)가 이감돼 들어온다. 
롤랑 등은 그 때 탈옥을 기도하던 중이어서 마지못해 클로드에게도 그 계획을 말하는데 이에 클로드도 함께 탈출하겠다고 동의한다. 롤랑 등은 먼저 나무로 된 감방 바닥의 일부를 뜯어낸 뒤 안 쓰는 침대의 철제 골조를 뜯어 망치로 사용해 나무 바닥 밑의 시멘트를 뚫기 시작한다. 마침 이들이 있는 동이 공사 중이어서 망치로 시멘트를 강타하는 소리를 막아준다.
건장한 남자들이 사제 망치로 온 힘을 다해 시멘트를 까부수는 장면을 카메라가 오래 동안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면서 보는 사람마저 온 몸의 근육이 당겨지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데 영화는 전혀 음악 없이 실제 소리만을 써 사실감이 극에 이른다. 한 사람이 시멘트를 강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손거울을 깬 파편을 칫솔 끝에 감아 잠망경 식으로 감시구멍을 통해 복도의 상황을 탐지한다. 
교도소 내 시설과 숟가락 등 온갖 소지품으로 탈출용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과묵한 롤랑으로 그는 주도면밀하고 침착하고 하는 일에 능숙하다. 그와 역시 말수가 적은 마뉘가 팀의 리더 구실을 한다. 
시멘트 바닥이 뚫리면서 롤랑과 마뉘는 좁은 통로를 기어 쇠로 된 창살을 끌로 자르고 넓은 지하 공간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순찰하는 교도관들을 피해 숨어가면서 사제 열쇠로 문을 열고 하수구로 내려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공사는 하수구의 시멘트벽을 뚫고 외부 세계로 나가는 것. 하수구와 감방 사이의 거리가 멀어 벽을 뚫는 사람들은 사제 모래시계로 시간을 잰 뒤 감방으로 달려가 다음 사람을 깨운다. 이 모래시계는 ‘각하’가 엄살을 부려 교도소 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훔쳐온 2개의 주사액 병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벽에 구멍이 뚫리고 이제 남은 것은 야반 탈출뿐이다. 롤랑 등은 정장에 타이를 매고 구두를 닦아 신은 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는 척 한다. 순찰이 끝나면 탈옥할 예정이다. 
그런데 교도소장이 클로드를 불러 클로드의 아내가 소를 취하해 얼마 안 있어 출소할 수 있다고 통보하면서 일행의 탈출 시도에 난관이 생긴다. 과연 클로드는 동료들의 탈출 계획을 교도소장에게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동료애를 지킬 것인가.
남자들의 탈출을 위한 일거수 일투족과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정확을 기하려고 신경을 쓴 노력이 역력한 영화로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진행돼 협소감에 호흡하기가 힘들 정도다. 베케는 마뉘의 단단한 근육질의 벗은 상반신처럼 군더더기를 일체 배제하고 미결수들의 강인하고 치열한 탈출 시도를 물고 늘어지듯이 묘사했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괴로울 정도로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또 영화는 브로맨스 영화라고도 하겠다. 협소한 감방 안에서 동거하는 사나이들의 동지애가 믿음직한데 이런 과묵하고 듬직한 사나이들이 풍기는 묵직한 분위기를 ‘궁정의 광대’역을 맡은 ‘각하’의 유머가 다정하게 다독여준다. 
영화의 단순하고 꾸밈없는 스타일은 프랑스의 명장 로베르 브레송의 솜씨를 생각나게 하는데 특히 브레송의 감옥 탈출 실화를 그린 ‘남자 탈옥하다’(A Man Escaped·1956)를 거의 모방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이 영화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남자의 탈옥을 그린 것으로 ‘구멍’의 집요한 탈옥을 위한 빈틈없는 준비와 과정 등이 이 영화에서 빌려온 것처럼 유사하다. 
*‘구멍’(★★★★½, 5개 만점)이 새로 복원돼 9월1~7일 화인 아츠(8556 Wilshire Blvd.)에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